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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88화 (738/774)

외전 88화. 마(魔)와 정(正) (6)

“이군주가 떠난 지 얼마나 됐지?”

“반 시진입니다.”

“좋아. 이제 슬슬 움직이도록 하지.”

양백호를 선두로 이천상과 귀창이 그 뒤에 섰다. 남은 야차들이 세 사람을 따라 조용히 이동했다.

산길을 타 넘어가고 있지만, 이 많은 인원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은밀했다.

그러나 분위기만큼은 달랐다. 무섭게 타오르는 눈을 하고 결연히 이동하는 야차들의 모습은, 중원이 공포로 기억하는 마인(魔人) 그 자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후회하지 않나.”

불쑥 튀어나온 말에 이천상과 귀창이 양백호를 보았다.

“일군의 부상자를 거점에 남겨 둔 것 말일세.”

중상자 중 살아남은 사람은 세 명이었다.

이천상은 멀쩡한 부대원 셋을 거점에 두어 부상자들을 돌보게 하였다. 남은 일군의 야차 수는 예순일곱이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빛을 보았네.”

“…….”

“아쉬움이 가득하더군.”

“그렇습니까.”

“중상자 셋이 삼 조원이었지?”

“예.”

양백호는 그들이 일각의 어디 소속인지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연치상 그놈 때문에 삼 조원들이 많이 주눅이 들어 있었지. 한데 이번 전투로 인해 완전히 개화한 모양이더군.”

“…….”

“칼에는 눈이 없어. 생사의 전투에서는 누가 어떻게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법. 중상자들의 몸을 보니, 다른 야차들보다 상처가 더 많더구만. 그만큼 열심히 나서 준 것이겠지.”

조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곳도 많다. 그나마 삼 조는 셋이라도 살았으니 처지가 나은 축이었다.

하지만 이천상은 동의했다. 전투 중, 삼 조 야차들이 유독 심하게 날뛴 것이 사실이었다.

“과거를 잊고 싶었든, 단순히 공(功)을 세우고 싶었든 그들의 열성이 없었다면 적을 분쇄하진 못했을 걸세.”

어디 고생한 사람이 삼 조뿐이겠는가.

이번 임무에서 일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그들의 분전은 야차사령부 전체를 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군주도, 삼군주도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네.”

양백호의 눈이 점점 살벌해졌다.

그의 눈에, 소림승들과 싸웠던 격전지가 보였다. 저 길목만 넘어가면 곧장 도시가 나온다.

“드디어 종장일세.”

스르릉.

양백호가 대검을 뽑아 들었다.

어두운 밤, 시린 달빛을 받아 빛나는 대검이 흉흉한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처리하고 돌아가서 축배나 들자고.”

“예, 그래야지요.”

웃으며 대답하는 귀창.

이천상은 말없이 전방을 노려보았다.

귀창이 힐끔 이천상을 보았다.

고양되는 이런 순간에 한마디 보탤 녀석은 아니었지만, 유독 눈빛이 강했다.

“왜 그러나?”

스륵.

이천상이 걸음을 멈추었다.

양백호도, 귀창도. 뒤를 따라오던 야차 모두가 길을 멈추었다.

“왜 그러시는가?”

양백호의 물음에도 이천상은 묵묵부답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기라도 한 양, 저 멀리 도시 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귀신처럼 형형했다.

양백호와 귀창이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천상이 뭔가 발견했음을.

양백호가 야차들을 보며 입술 앞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모두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우웅.

이천상의 눈에 은은한 금광이 일었다.

마기는 새어 나오지 않았지만, 금강야차마공이 활성화되며 그의 오감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금광으로 명멸하는 눈빛 속, 은은한 핏빛 점이 일었다.

이천상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그 혈점(血點)은 그의 상단전에서 흘러나온 신기(神氣)였다.

‘이상하군.’

이 시점에 갑자기 금강야차마공이 활성화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보인다.’

이곳에서 도시까지의 거리는 백여 장 정도다.

하지만 도시 외곽에서 호마상단까지의 거리는 그보다 한참 멀다. 못해도 십 리는 될 것이다.

그 십 리나 되는 거리를 관통한 이천상의 마안(魔眼)은 호마상단 내의 병력을 읽어 가기 시작했다.

‘이백…….’

이천상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어떻게 읽었지?’

십 리 밖의 적이 얼마나 있는지, 그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것은 초절정고수인 양백호에게도 무리다.

그쪽에서 한계까지 기파를 발산했다면 모를까, 누가 있어 십 리 거리를 돌파하여 적의 수준과 숫자를 볼 수 있겠는가.

‘대체 어떻게?’

그때였다.

울컥. 울컥.

단전이 기이하게 날뛰었다.

용량이 커진 단전을 꽉 채운 금강야차마기가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폭주할 기미를 보였다.

실제로 폭주하진 않는다. 통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마치…….

‘긴장을 한 것인가.’

이천상 자신이 아니라 마기가 긴장하고 있었다.

기는 의념으로 통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기분에 따라 기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보통 기가 긴장 상태로 돌입했다는 것은 기를 보유한 사람 역시 긴장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천상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때였다.

후우우웅!

호마상단 내부, 가장 강력한 기를 보유한 누군가의 기세가 점점 커졌다.

이천상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공명(共鳴).’

그제야 이천상은 깨달았다. 제 마기가 왜 긴장하고 있는지.

적측에 있는 누군가의 기와 공명한다는 것은, 상대의 기와 금강야차마공의 진기가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다.

‘불가의 무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가.’

제대로 해석이 안 된다.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때였다.

치이이이익!

머리 한구석에서 불그스름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상단전의 벽에 부딪혀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게 느껴졌다.

벽을 녹이고 있는 것인지, 기운 자체가 스스로 산화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운이 주인의 의지에 반하며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으로 이천상의 눈이 흔들렸다.

‘혈강수?!’

그렇다.

혈강수의 비급을 완전히 외웠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혈강수를 구결에 따라 운용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무 도중, 혈강기(血罡氣)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포악하기 그지없는 힘을 드러냈을 때가 있었다.

그 후로 혈강기의 제어에 힘을 쏟았다. 다행히 그 뒤로 혈강기는 잠잠해졌다. 기운 자체를 연마한 적도 없지만, 이미 생겨 버린 기운을 통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통제에서 벗어난 혈강기가 왜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스르륵.

앞뒤, 좌우로 마구 움직이던 혈강기가 이내 땅으로 푹 꺼졌다.

이천상이 눈을 부릅떴다.

“흡!”

화르르르륵!!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이천상의 몸에서 불길하기 그지없는 마기가 넘실거렸다.

양백호의 눈이 커졌다. 귀창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엄청난 마기!!’

사아아아악!

마치 온몸에 불이라도 붙은 듯, 이천상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연기였다. 흘러넘치는 마기의 양은 적었지만, 그 밀도는 양백호가 보유한 마기 이상이었다.

‘이런!’

양백호가 재빨리 이천상의 명문혈에 손을 대었다.

순간 그는 손바닥이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서둘러 손을 떼니, 손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화상이 아닌데도 화끈거리는 것이 상당한 고통을 유발했다.

양백호가 작게 외쳤다.

“일군주!”

고개를 숙이던 이천상의 눈이 번쩍 뜨였다.

훅!

불길하게 넘실거리던 붉은 연기가 단숨에 이천상의 몸으로 들어갔다.

스르륵.

천천히 몸을 일으킨 이천상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심했다.

“…….”

가만히 이천상의 등을 보던 양백호가 입을 열었다.

“일군주.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왜일까?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한 목소리인데, 양백호는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목소리가 더 낮아진 것 같았다. 심해(深海)에 들어가기라도 한 양, 무서운 압력과 공허함이 감도는 목소리였다.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령주님.”

“말씀…… 헉!”

“문제라도 있습니까?”

“자네 눈이……?”

양백호는 물론 이천상의 얼굴을 본 야차들 전부가 깜짝 놀랐다.

“오른쪽 눈이 피처럼 붉게 변했네.”

동공만 붉은 것이 아니었다. 흰자위까지 전부 붉었다. 동공과 흰자위 모두 피처럼 붉으니, 그야말로 섬뜩하기 그지없는 외양이 되었다.

이천상이 오른쪽 눈가를 매만졌다.

우웅.

기묘한 마기의 흐름이 느껴지더니, 이내 이천상의 눈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양백호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자네 혹시……?”

“주화입마는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가.”

“일단은 진군해야 합니다. 저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뭐라? 소림이?”

“예.”

양백호의 눈이 흔들렸다.

“자네가 그것을 어찌 아나?”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 도시의 눈을 이쪽으로 쏠리게 하기 위해서는, 저희 모두가 도시로 진입해야 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양백호가 손을 들었다.

“전군 진군.”

두두두.

더 이상 고요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이쪽의 움직임을 알아챘다면 빠른 이동만이 상책이다.

선두에 서서 신속히 이동하는 양백호의 머리는 복잡했다.

‘그 기운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외부로 표출된 기운을 느끼기만 했을 때와 직접 손을 댔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겉으론 한없이 밀도 높고 흉포한, 그러나 내부에선 활화산 같은 폭발력이 느껴지는 마기.

사악하고 뜨겁다. 무자비한 광기를 머금은 그 기운은 아무리 봐도 사람 몸뚱이에 들어갈 만한 마기가 아니었다.

‘도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뭘까?

상념에 젖은 사이, 그들은 어느새 도시의 외곽에 진입해 있었다.

스륵.

외곽으로 들어오자마자 야차들이 제각기 진형을 형성했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대처해 알아서 진형을 갖추는 걸 보면, 그래도 이번 임무에 큰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양백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

천천히 내뱉은 숨에 걱정, 의아함, 심란함 등 모든 감정을 쏟아 냈다.

번쩍!

양백호의 두 눈에 불같은 마기가 치솟았다.

화아아아악!

땅에 대검을 꽂고, 검병에 양손을 올린 채 폭발적인 마기를 쏟아 내는 양백호의 모습은 전장에 진입한 장수 그 자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양백호 뒤에 선 이천상과 귀창은 물론 진형을 형성한 야차들까지.

대장의 기세에 흥분한 모두가 자연스레 마기를 끌어 올리니, 순식간에 도시 외곽 일대가 숨 막히는 살기와 공포로 가득해졌다.

양백호가 입을 열었다.

“와라.”

대상을 칭하지 않는 단순한 명령.

번쩍!

저 멀리서 황금빛 광채가 번뜩였다.

이천상의 금강야차마기와 거의 흡사한, 그러나 그보다 더 밝고 한없이 정대한 기운의 총화(總和)였다.

파라라라라락!!

도대체 어떤 신법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선두에서 달리는 이들, 그리고 그 뒤에 산개하여 따르는 이들의 기세가 야차사령부의 마귀들 못지않게 강력했다.

쿵!

깃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날아오르다가 땅에 내려선 순간 일대에 지진을 일으킨다.

강철처럼 단단하고 무거운 존재감.

분노한 명왕과 같은 얼굴로 야차들을 굽어보는 소림의 초절정고수가 여기에 있었다.

쿵! 쿠쿵! 쿠쿵!!

하나씩, 그러나 빠르게.

계율원주의 뒤로 내려서는 이들 중 열 명은 삼십 대로 보이는 승려들이었으며, 그 뒤에는 용 무늬가 새겨진 푸른 무복의 권사들이 도열했다.

양백호가 입을 열었다.

“소림.”

소림의 계율원주, 적인대사가 입을 열었다.

“마교.”

정과 마, 마와 정.

무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맞수였던 두 집단의 고수들이 드디어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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