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 외전-89화 (739/774)

외전 89화. 욕망의 문 (1)

“…….”

적당한 곳에 도착하여 상황을 주시하던 율적산의 눈이 번뜩였다.

‘빠져나간다.’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한번 기운을 발산하니 여기서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적의 기파가 대단했다.

메아리치며 다가오는 기파의 끄트머리만 느껴 봐도 알겠다. 적측에 얼마나 무서운 고수가 있었는지.

‘소림의 계율원주라.’

당대 소림의 적자 배는 하나같이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었다.

그중 제일은 적송이었지만, 그를 제외하더라도 적자 배 무승들의 재능이 유례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긴, 자극도 어지간히 받았겠지.’

당대 무림 최강의 권법가로 이름을 올린 적송대사는 권왕(拳王) 소리를 듣는 이였다. 그 무력이 너무 대단해서 적수공권으로는 당적할 자가 없는지라 권신(拳神)이라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런 사람과 수학했으니 재능에 안주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계율원주 적인의 무공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양백호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인의 노력도 대단했겠지만, 양백호는 젊은 시절부터 목숨을 내놓고 성장한 진짜 무사였다. 황궁에서 강호로, 강호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신교로 들어와 수뇌부들의 찬사를 들을 정도의 무력을 쌓았다.

게다가 저 자리에는 전투의 귀재인 귀창이 있고 엄청난 안목의 소유자인 이천상도 있었다.

지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율적산이 몸을 일으켰다.

“준비들 해라.”

숲속에 은신한 야차들의 눈빛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쿠웅.

아스라하게 울려 퍼지는 충격.

율적산이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파아아악!

침투 부대가 움직였다.

* * *

“과연.”

적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사제의 몸에 난 흔적을 보았다. 깔끔했지만 다소 둔탁했지. 여느 병장기로 낼 수 있을 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적인의 눈이 양백호가 들고 있는 대검으로 향했다.

“네놈이었구나.”

“물론이다.”

두 눈에는 뜨거운 분노가, 목소리에는 서늘한 살의가.

은은한 황금빛 기운을 몸에 두른 적인의 모습은 실로 분노한 명왕상 그 자체였다.

반면 양백호는 침착했다.

침착함을 넘어 권태로워 보일 정도였다. 당장 생사를 걸고 싸울 대적이 앞에 있는데도 심리적인 동요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두 수장의 모습은 마치, 서로를 지독하게 증오해서 오히려 상대를 닮아 버린 희고 검은 귀신들을 보는 듯했다.

양백호가 입을 열었다.

“뱃심도 두둑하군. 예가 어디라고 감히.”

적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귀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었나. 불자로서 당연히 와 봐야지.”

“올 거면 소림 전체를 끌고 왔어야지.”

“오만이 과하구나. 네깟 놈들 맞이하는 데는 나 하나로 족하니라.”

“오늘 너희를 우리가 똑똑히 보았으니, 차후 소림은 이 일에 대해 분명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사람 사는 세상에 마귀가 기어 올라온 것부터가 문제야. 너희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의 역병과도 같다.”

“승려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구먼. 불법은 내던지고 주먹질할 줄 아는 놈들만 그득해졌다더니, 과연 소림도 얼마 남지 않았어.”

“닥치거라! 천하에 악(惡)을 퍼트리는 마귀 놈들을 몰아내기 위해 지옥도(地獄道)라도 감수할 것이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느냐?”

“그런 뻔뻔하기 그지없는 자기 합리화로 얼마나 많은 불제자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더냐?”

“문답무용! 이 자리를 빌려 원통하게 죽은 내 사제와 사질들의 넋을 기릴 것이다!”

양백호가 피식 웃었다.

불법을 배운 자가 넋을 기리겠다는 헛소리를 하다니? 소림이 소림답지 않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건 행색만 승려지 불법이라곤 동자승보다 모르는 무뢰배나 다름이 없었다.

“땡중의 복수라…… 좋지, 마음에 들어.”

이글거리는 눈으로 양백호를 노려보던 적인이 손으로 숲속을 가리켰다.

“자리를 옮기도록. 네놈들의 뒤를 따르겠다.”

“그건 또 웬 병신 같은 말인가.”

“참으로 구제받지 못할 놈들이로구나. 이곳은 무림과 관련이 없는 민초들이…….”

그때였다.

퍼어어엉!

이천상의 야차혈장과 귀창의 창풍(槍風)이 무섭게 회오리치며 적인을 지나쳤다.

퍼펑!

장력과 창풍을 막아 낸 좌우 승려 넷이 비틀거렸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터어어어엉!

양백호가 어깨 위로 대검을 든 채 달려들고, 이천상과 귀창이 그보다 빠르게 좌우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런 셋의 뒤를 야차들이 뒤따랐다.

적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놈들!”

파아아악!

적인을 중심으로 계율원 당주 열 명과 용권문의 권사들이 움직였다.

민초들의 건물은 한참 떨어져 있었지만, 고수들의 격전 범위는 그 거리를 다 아우를 정도로 넓다. 자칫 잘못하다간 민가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백호와 적인의 싸움은 제각기 힘을 집중시킨 절제되고도 더 무서운 싸움이 되었다.

쿠우우웅!

대검과 장력이 부딪치며 무서운 울림을 발했다.

직접적인 타격까지 줄 수 있는 충격파의 범위는 넓지 않았지만, 지진이라도 날 것 같은 소음이 일대로 쫙 퍼져 나갔다.

“분산!”

귀창의 명령이 떨어지자 삼군의 야차들이 무작위로 찢어지며 당주들과 권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천상의 명령은 그보다 단순했다.

“압박해라.”

넓게 포진한 일군과 이군의 야차들이 거대한 장막처럼 당주들과 권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쩌어엉!

소림승 둘의 주먹이 철 깃대 하나에 막혔다.

주륵!

이천상의 발이 살짝 밀려 나갔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권법이었다. 지닌바 무력이 사령부의 군주급보다 아래였지만, 무공 자체가 무겁고 강하여 빼어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천상의 동공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파파팡!

뛰어올라 내치는 각법, 중단에서 내지르는 권법 속 빈틈을 비집고 들어간 그가 깃대를 놓고 금강마권을 휘둘렀다.

퍽! 퍽!

각법을 구사한 승려의 허벅지, 권법을 내지른 승려의 옆구리.

금강마권은 정확하게 한 방씩 들어갔다. 승려들이 신음을 토하며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퍼버벅! 쩌어엉!

야차들과 싸우던 당주 셋이 이천상에게 달려들었다.

재차 깃대를 잡은 이천상의 손에 어두운 금빛 마기가 일었다.

‘……!’

찰나지간 손등이 확 부풀었다.

쏟아지는 마기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제멋대로 튀어 나가려는 거친 기운이 당장 폭발할 것처럼 날뛰며 전신의 신경을 압박했다.

이천상은 그 마기를 조절하려 하지 않았다.

금강야차마기로 혈맥과 혈도, 신경을 보호한 그가 억지로 깃대를 휘둘렀다.

쩌정! 퍼어어엉!

당주 둘의 주먹을 튕겨 내고, 마지막 당주의 주먹에 이르러서는 꽤 우렁찬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천상도 물러나고 당주도 물러났다.

주르륵.

깃대를 쥔 이천상의 손이 피로 물들었다.

손등의 피부가 터졌다.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한 번만 더 폭혈마공(爆血魔功)을 운용하다가는 손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파라락!

이제 북천마혜보는 완전히 몸에 붙어 버렸다.

고작 몇 번의 전투에 불과했지만,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삶과 죽음이 교차할 때 강해지는 것은 단순히 실력만이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을 완전히 체화할 수 있게 만드는 곳이 바로 전장인바.

천재적인 두뇌를 타고난 사람도 한 번 본 것을 몸으로 녹여 낼 수는 없다. 이천상은 지금, 이 순간에야 비로소 북천마혜보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퍼버벅! 쾅!

묵직한 깃대는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왼손 권장과 보법으로만 당주들을 상대하던 이천상은 곧이어 그들의 눈에 서린 초조함을 포착했다.

그 양부의 상단에서도, 신교에서도 봐 왔던 것이었다.

승리를 바라는 집착,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가 맞이한 한계, 상대를 경시한 자들의 놀라움 등이 한데 섞여 저와 같은 초조함으로 탈바꿈하곤 했다.

이천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저러한 감정들이 싸움을 훨씬 더 쉽게 풀어 갈 단초가 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훙! 휘이익!

막강하기 그지없는 소림의 절기들이 이천상의 몸을 통과했다.

아니,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이천상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마치 상대의 공격이 어떻게 들어올지, 어디를 노릴지를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당황하는 계율원 당주들을 지나친 이천상이 일순 엄청난 탄력으로 몸을 회전했다.

빠각! 퍼어억! 쾅!

한계까지 끌어올린 금강야차마기로 가득한 깃대가 소림승 하나의 머리를 뜯어내고 그다음 서 있던 자의 머리통을 부쉈으며, 마지막에 서 있던 자를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단 일격에 당주급 무승 셋을 처리했다. 단순한 비무였다면 제아무리 천재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수준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싸움이었다.

상대의 실력을 누가 먼저 간파하는가, 상대의 버릇을 얼마나 빨리 잡아내는가,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가.

소림의 당주들은 소림의 신공이 마공에 상극이라는 자신감 하나로 달려들었지만, 이천상은 그들의 감정을 보고 수준을 깨우쳤으며 버릇과 눈빛을 읽었다.

번쩍!

대장의 무시무시한 무공을 목도한 일군 야차들의 사기가 일순간 폭발적으로 불타올랐다.

비록 절반의 병력을 잃었으나, 그들은 또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이천상과 함께 하면 이길 수 있다.

그를 따라가면, 그의 명령을 듣는다면 어떤 적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

적의 숫자와 기세에 다소 주춤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야차들은 이천상의 깔끔하고도 화려한 분전이 불붙인 호승심을 안고 공격에 나섰다.

퍼버버버벅! 퍼어엉!

야차일군의 압박이 두 배로 더 강해졌다.

같은 힘, 같은 병력이라도 사기의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위력을 내는 법이다. 야차일군의 사기는 더 오르지 못할 곳까지 치솟아 있었다. 그들의 분전을 옆에서 보는 이군 야차들도 마찬가지였다. 야차들 전부가 기세등등하게 함성을 지르며 도검을 휘둘렀다.

좌우에서 터진 박빙의 싸움이 한순간에 기울었다. 일군과 이군의 불타오르는 마기는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강해져, 어느새 엄청난 군기(軍氣)로 화해 용권문의 권사들을 압박했다.

권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적으로도 열세였지만, 그래도 이곳은 그들의 거점이었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지형에 익숙한 자들이 더 유리한 건 상식이었다.

그런데도 밀린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초장부터 난장이 벌어질 줄 몰라서 당황했지만, 장춘은 곧 이 흐름을 만들어 낸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이천상을 노려보며 자세를 낮췄다.

‘저 이상한 놈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때였다.

번쩍!

권사 셋을 때려죽인 이천상의 눈이 벼락처럼 장춘을 향했다.

순간 장춘은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충격을 느꼈다.

이토록 많은 군상이 얽힌 와중에도 정확히 자신의 살기를 포착한 적장.

그 적장의 눈빛은 지옥에서 막 기어 올라온 마귀의 그것이라, 인간의 한계까지 연마된 장춘의 내공조차도 확 쪼그라들고야 말았다.

훅!

이천상이 고개를 돌리자 벼락과도 같은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때, 장춘은 등 뒤에서 다가오는 또 한 줄기의 살기를 읽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용미권(龍尾拳)을 펼쳤다.

쾅!

창대와 주먹이 부딪치며 소름 끼치는 폭음을 터트렸다.

귀창이 씨익 웃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 마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나니 귀신이 찾아온 것이다.

“네놈이구나!”

“이익!”

날 선 장창과 바위처럼 단단한 주먹이 재차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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