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 외전-90화 (740/774)

외전 90화. 욕망의 문 (2)

쩌어엉!

양백호가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대검의 검날을 후려쳤는데도 적인의 주먹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마기 가득한 검날을 때리니 더더욱 금빛 진기가 승하는 듯했다.

훅!

역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적인의 몸은 순식간에 양백호의 좌측방 일 장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신묘하기 그지없는 보법 뒤에는 두꺼운 석판 열 장도 깨 버릴 만한 장력이 날아왔다.

퍼엉!

폭발한 장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지진과도 같은 울림을 만들어 냈다.

‘강하다.’

신들린 대검술로 적인의 공격을 막아 가는 양백호.

조금은 답답해 보일 만큼 방어적인 무공을 구사하는 그의 얼굴은 신중하고 침착했다.

‘그 땡중과는 전혀 달라.’

숲속에서 싸웠던 계율원의 부원주와는 격이 다르다.

고작 한 직급 차이였지만 무공은 하늘과 땅 차이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적인은 확실히 싸울 줄 알았다.

소림의 강력한 무공을 적재적소에 구사하며 공격적으로 압박하는 한편, 대검이 위협적으로 날아들 땐 넉넉한 힘과 속도로 회피했다.

두 눈은 분노로 가득했지만, 몸놀림은 절대 과격하지 않았다. 감정은 감정이고 싸움은 싸움이다. 적인은 상대와 겨룸에 있어서 결코 감정을 싣지 않았다.

냉정했고 효과적이었다.

‘계율원주라.’

소림의 집법원과는 또 다른 성격의 조직이 계율원이었다.

계율원의 엄격하기 그지없는 가르침은 잘못을 행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 억제를 뿌리치고 불자로서 해선 안 될 잘못을 저지르면 집법원이 나선다.

집법원이 이미 잘못을 저지른 죄인을 단죄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계율원은 불자로서 유혹에 빠지지 말도록 가르치는 조직이니 당연히 더 엄격하고 강압적이었다.

그러한 조직을 아무나 맡을 수는 없을 것이다. 몇 마디 대화에서 드러나는 언변과 성격은 도저히 계율원주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지만, 무공만 보면 계율원의 수장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후우웅!

부드러운 바람을 휘감으며 접근한 적인이 정직하기 그지없는 일권을 질렀다.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단순한 주먹질이었지만, 양백호는 그 주먹을 무시할 수 없었다.

콰릉!

타점(打點)에서 폭발한 경력이 천둥과도 같은 폭음을 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양백호의 대검을 스치고 지나간 권력(拳力)이 대지에 큼직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양백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나한권(羅漢拳).’

소림나한권.

꽤 거창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이제 막 무공에 입문한 승려들이 배우는 기본 권법이었다. 심지어 건강을 위해 학승(學僧)들도 연마하는 기초공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나한권도 고수의 손에서 펼쳐지면 강력한 절기가 된다. 양백호 역시 무림을 전전하며 강호에 풀린 나한권을 몇 번 봤지만, 이처럼 무식한 위력을 자아내는 나한권은 처음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라라라라락!

거센 광풍 속을 거니는 듯 적인의 가사 자락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나한권은 곧 나한십팔수(羅漢十八手)라고도 한다.

나한수는 애초에 사람 때려잡을 목적으로 만든 무공이 아니다. 반쯤은 체조에 가까운 외가무공으로, 불자의 예법과 부처의 자비로움을 표현한 단순한 형식을 취했다.

합장과 밀어 냄, 끌어옴과 휘어 냄은 무당의 태극권을 보는 것처럼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동작 속에 녹아든 내공과 경파(勁波)는 초절정고수 양백호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로 강했다.

콰콰쾅!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상반신이 마구 흔들렸다. 흘려 낼 것은 흘려 내는데도 불구하고 배와 허리에 강한 충격이 쌓였다.

쿵!

마지막 일격을 쳐 내고 자세를 낮춘 양백호를 보며, 적인이 낮게 탄식했다.

“괴이한 놈이로고.”

화르륵!

성스러운 빛을 뿜던 황금빛 기운이 격렬하게 이글거렸다.

“마교의 주구 따위가 유공(柔功)의 이치를 아는구먼. 천하 무림이 통탄할 일이로다.”

후우웅!

적인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양손을 모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짓거리도 끝이다. 단숨에…….”

그때였다.

피이이이잉! 서걱!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진 한 줄기 검기가 적인의 뒤에서 싸움을 벌이던 용권문 권사 셋의 몸을 베었다.

주르륵.

적인의 뺨에 깊은 검상이 새겨졌다.

제때 피하지 않았다면 얼굴 상부가 통째로 날아갈 뻔했다. 적인의 눈이 흔들렸다.

“좋군.”

쿠르릉!!

왼손으로 오른팔을 매만지며 천천히 걸어오는 양백호의 몸에서 피처럼 붉은 마기가 타올랐다.

펄럭이는 대장의(大將衣)가 낮게 깔린 검은 안개처럼 보인다. 두 눈에 서린 끔찍한 마기는 적인조차 부담을 느낄 정도로 사이하고 음험했다.

적인의 눈이 깊어졌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는가. 과연 마귀 놈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더 효율적인 승리를 위한 포석이지.”

“쓰레기다운 처세다. 하지만 네놈의 일검은 빗나갔어.”

“그 일검에 맞았다면 지금껏 네 무공을 받아 줄 필요도 없었다.”

“주둥이만큼이나 제대로 연마된 마공인지 보겠다.”

“그래 보게나.”

파아아악!

양백호가 적인에게로 돌진했다.

‘별 볼 일 없군.’

뭐가 있는 줄 알았더니, 전신에 마기를 두른 채 냅다 달려오는 게 전부였다. 적인은 내심 코웃음을 치며 용왕유권(龍王柔拳)을 준비했다.

그때였다.

‘……?!’

순간 적인은 반야신공의 진기가 확 하고 흐트러질 뻔한 것을 느꼈다.

우아아아아!!

달려드는 양백호 뒤.

마치 수천, 수만의 군대가 창칼을 꼬나쥐고 돌진하는 듯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군대가 들이닥치는 듯했다. 그리고 그 군대의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살점이 썩거나 온전치 못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시체였다. 전장에서 죽은 한 많은 병사들이 되살아나 장군과 함께 돌진하는 형상이었다.

귀신의 군대.

마공에 지지 않는, 아니 압도한 정신력을 지닌 혈마인이 초월적인 의지로 구현해 낸 귀신의 사기(士氣)였다.

상중하, 세 개의 단전을 고루 연마해 낸 적인의 눈에는 그 실체가 똑똑히 보였다.

“무도한!”

용왕유권의 내력을 거둔 적인이 양손에 재차 강력한 진기를 끌어모았다.

양백호의 검이 움직였다.

번쩍!

어두운 새벽에 뜬 핏빛 초승달이 법도를 내놓은 명왕을 향해 날아갔다.

적인이 쌍장을 내질렀다.

콰르르릉!!

두 사람의 경력이 충돌하자 투명한 충격파가 반구 형태로 폭발했다.

“으악!”

“으윽!”

충격파에 휩쓸린 야차와 권사들 오십여 명이 우수수 쓰러졌다.

살벌한 난전을 잠시나마 주춤하게 만든 격렬한 충돌이었다. 깜짝 놀란 그들이 양백호와 적인을 바라보았다.

퍽!

끔찍한 파육음이 들렸다.

그 놀라운 순간에도 이천상은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기회라는 듯 금강마권, 야차혈장을 빠르게 구사해 용권문의 권사 열 명의 몸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았다.

깜짝 놀란 장춘이 외쳤다.

“뭣들 하는가! 어서 놈들을……!”

찌이이익!

장춘은 말을 다 잇지도 못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장창이 그의 소매를 쭉 찢었다. 피하지 않았다면 팔뚝이 날아갔을 것이다.

“이놈!”

“시끄럽다.”

귀창의 목소리도 어딘가 달라진 듯했다. 진짜 귀신이라도 씐 것처럼 거친 목소리와 기세를 자랑하며 양손으로 잡은 장창을 휘둘렀다.

파라락! 피잉! 피잉!

머리, 어깨, 단전 등을 쉴 새 없이 찔러 오는 장창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뱀과 같았다.

장춘은 미칠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돼!’

마교도라고 해 봤자 이 병력이면 손쉽게 깨부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용권문은 소림의 속가제자가 정식으로 허가받고 세운 문파인 만큼, 불가의 심법과 권법을 제대로 연마하는 세력이었다.

한데도 밀린다.

소림의 불가신공이 마공을 잡아먹지 못하고 있었다.

무공 자체의 우열 이전에 상극인데도 그러했다. 장춘은 이 현상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의 눈에 권사들이 보였다.

권사들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충혈된 눈은 공포에 젖은 채였고 휘두르는 권법은 시정잡배의 주먹질만큼이나 수준이 떨어져 있었다.

‘왜?!’

서걱!

“큭!”

창날에 가슴을 긁힌 장춘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한눈을 팔긴 했지만 절대 맞을 수 없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반 박자 늦게 움직인 것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든 것이다.

‘……!’

깊은 상처를 통해 마구 치고 들어오는 귀창의 마기.

그제야 장춘은 깨달았다.

상극이라 함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설령 소림의 무공이 천하에서 제일 뛰어나다 해도, 상극이 존재하는 한 소림의 정종무공도 파훼될 수 있다는 것을.

하물며 이들은 마도무림의 총본산인 마교도이며, 마교는 강호에 흘러나온 마공을 눈 아래로 보는 정통 마공들을 수도 없이 보유한 집단이었다.

‘이길 수 없다.’

싸움이 터진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 잠깐 사이에 벌써 용권문 권사들이 반이 죽었다. 계율원 당주들도 이젠 서너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적도 피해가 상당했다. 하지만 수가 많았고, 결정적으로 마기를 받아 불타오르는 사기가 이쪽을 압도하고 있었다.

수장끼리의 싸움은 몰라도, 부대 단위의 싸움은 결과가 나왔다. 더 지속해 봐야 의미가 없는 싸움이었다.

“모두 물러나라!”

장춘이 물러나며 외쳤다.

“후퇴해! 지금은 싸울 때가……!”

퍼엉!

장춘이 피를 울컥 토했다. 권사 하나의 머리를 날려 버린 주연교가 순식간에 접근하여 그의 등판에 일장을 때려 박은 것이다.

“이!”

제아무리 상처를 입었다 해도 마귀 하나 때려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장춘이 몸을 돌려 용미권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쇠 울음이 강렬했다.

어느새 주연교 옆에 도달한 이천상이 야차번으로 장춘의 주먹을 막은 것이다.

장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의 주먹을 막은 마귀 놈의 눈에 다시 한번 벼락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안……!’

퍼어억!

귀창의 장창이 휘어지며 장춘의 목을 뚫었다.

허무한 최후였다. 그 역시 젊은 시절 강호행을 하며 실전을 겪어 본 사내였지만 그것도 삼십 년 전이었다.

게다가 이런 부대 단위의 전투를 치러 본 적도 없으니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선두에서 싸운 장춘의 죽음은 필연이었다.

이천상이 주연교를 바라보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 주연교가 외쳤다.

“적장이 죽었다! 남은 건 오합지졸이니, 모두 일거에 몰아쳐라!”

“우아아아아!!”

더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았던 함성이 다시 한번 폭발했다.

당황한 계율원 당주들이 이를 악물며 이천상과 귀창을 공격했지만, 이미 승패는 완전히 기운 채였다.

이제는 거의 독문병기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야차번이 화려한 금빛 마기를 토하며 당주 하나의 몸을 날려 버렸다.

이번 전투에 이르러 비로소 야차번을 놓고 애병을 쥔 귀창의 창술은 인정사정없이 휘몰아치며 당주 둘의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내공보다는 기교와 초식이 더 돋보이는 기가 막힌 창술이었다.

그렇게 적인을 제외한 적장 모두가 죽었다.

적장들이 목숨을 잃자 권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쳤다. 벌써부터 전장을 이탈한 권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허필이 외쳤다.

“적들이 도주한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그렇게 부대의 싸움이 막바지로 진입했을 때.

수장들의 싸움은 정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콰르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