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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91화 (741/774)

외전 91화. 욕망의 문 (3)

“뭐, 뭐야?!”

“아아악!”

당황한 하인과 시녀들의 비명이 상단을 뒤흔들었다.

혹시 몰라 챙겨 둔 각종 문서와 보화들을 점검하던 호상백이 버럭 외쳤다.

“무슨 일이냐!”

쿵! 퍼억!

문짝 부서지는 소리와 사람 몸뚱이가 작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상백의 눈이 흔들렸다.

‘설마?!’

사라라락!

호상백 주변으로 이십여 명의 검사들이 나타났다. 혹시 몰라 남겨 두었던 호위들이었다.

덜컹!

문이 열리고 내원 호위 무사 하나가 들어왔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데다 호흡마저 거칠어져 있었다.

“단주님! 피하십시오! 마교도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호상백은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놈들은……!”

순간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것들이?!’

병력을 둘로 나눈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듣기로 소림승과 용권문은 불가의 신공을 익힌지라, 아주 먼 거리에서도 마인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 쓸모없는 놈들이 이런 것도 읽지 못하고!’

호위장 동준이 물었다.

“얼마나 되느냐?”

“제대로 세어 보진 못했습니다만, 족히 오십은 되는 듯했습니다!”

오십.

호마상단의 내원과 외원에 퍼진 호위 무사 숫자만 일백이 넘는다.

그 병력이면 용권문의 권사 오십과 싸워도 그럭저럭 버틸 만한 숫자였다. 심지어 지역적인 이점도 있다.

한데도 그걸 다 뚫고 온 것이다.

동준이 호상백에게 말했다.

“단주님. 어서 피하시지요.”

“그래야겠네. 일단 이것부터 들게나.”

동준의 눈이 흔들렸다. 호상백이 내민 것은 무게만 오십 근에 달할 것 같은 보화 주머니였다.

“그것은 포기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포기하다니, 뭘 포기해!”

신경이 한껏 날카로워진 호상백이 마구 소리를 질렀다.

“이게 보따리 하나가 얼마인 줄 알아? 네놈들 전부가 평생 모아도 이 안에 든 물건의 삼 할도 못 채울 것이야!”

호위들의 얼굴이 굳었다.

호상백이 낑낑대며 보따리를 들어 호위 한 명에게 던졌다.

“들어라! 그리고 너! 너는 이걸 들어! 너희도 와서……!”

퍼어어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동준 옆에 서 있던 호위 하나가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이마에는 화살 하나가 박혀 있었다.

“헉!”

퍼억!

보고하러 온 무사의 등에도 화살 세 개가 꽂혔다.

열린 문 너머에서 날아온 화살이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새에 무사 하나를 죽이고, 그 뒤에 날아온 화살들은 전령을 죽였다. 그야말로 코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동준이 외쳤다.

“정백, 하용, 진곡, 마병 넷만 남고 나머지는 단주님을 모셔라!”

“예!”

호상백이 외쳤다.

“저것부터 들으라고 하지 않더냐!”

동준이 마주 외쳤다.

“단주님 말씀은 무시해! 어서 움직여라!”

“이놈! 동준!”

콰앙!

순간 살벌한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졌다.

적이 치고 들어오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이었다. 깜짝 놀란 호위들이 부서진 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큰 덩치의 중년 사내 하나가 주먹을 매만지며 들어오고 있었다.

사아아아악!

사내의 존재감은 무시무시했다. 중원 정종의 무학과는 전혀 다른 기파, 인간 본연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기괴한 기운을 한껏 뿜어내며 걸어온다.

마기를 두른 율적산이었다. 내원까지 들어오며 홀로 움직여 반대편 무사들을 모조리 쳐 죽인 그가 단주의 거처까지 들어온 것이다.

호상백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동준이 이를 악물며 그에게 검을 겨누었다.

“누구냐!”

콰득!

문짝이 부서지며 야차들이 진입했다.

단주의 거처로 침투 부대 삼십여 명이 들어왔다. 제법 격한 싸움을 벌인 듯 호흡이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지만, 마기로 번들거리는 그들의 눈빛은 무섭도록 형형했다.

“네놈들……!”

이를 악물며 호상백 앞에 서서 검을 겨누는 동준.

율적산이 양건에게 물었다.

“수뇌부들은?”

“눈에 보이는 이들은 전부 모아서 묶어 두었습니다. 야차들이 하나씩 남아서 지키는 중입니다.”

“잘했다. 내 쪽은 수뇌로 보이는 놈들이 하나도 없어서 말이지.”

모두 잡아갈 수 있다면 좋지만, 몇몇은 놓쳐도 상관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상단주의 포획이었다.

율적산이 동준에게 말했다.

“무기 버려라. 너희에겐 승산이 없다.”

동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의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평소라면 목숨을 걸겠지만, 이 싸움은 해 보나 마나였다.

화아아악!

눈을 빛내며 이쪽을 노려보는 마교도들의 기세는 정말이지 소름 끼쳤다.

율적산이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군. 모두 저놈들을…….”

그때였다.

치리링.

동준이 검을 버렸다.

호상백이 당황하여 외쳤다.

“뭐,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나를 안전한 곳으로……!”

“끝났소이다, 단주.”

동준이 양손을 들며 말했다.

“도망칠 수도 없고, 싸움을 벌이는 것 또한 무의미하오.”

“이, 이놈이?!”

율적산이 피식 웃었다.

“상쾌한 결말이로군.”

“부탁 하나 합시다.”

“부탁할 처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들의 수장으로서 내 목숨을 내놓겠소. 그러니 수하들은 살려 보내 주시오.”

“……오호?”

율적산이 눈을 빛냈다.

“어디서 그럴듯한 영웅담은 들어 본 모양이군. 자네들은 이미 죽은 목숨인데 그런 거래가 통할 줄 알았던가?”

“동의하지 않으면 나는 물론 내 수하들도 끝까지 저항할 것이오.”

“이길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이길 순 없어도 최소한 두셋은 안고 갈 수 있겠지. 동료들을 생각한다면 내 목숨 하나로 끝을 봅시다.”

율적산이 짧게 혀를 찼다.

‘아까운 놈이로군.’

죽음 앞에서 저리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다.

호상백이 버럭 외쳤다.

“무슨 개소리냐! 동준, 이놈! 어서 칼을 들어라! 어떻게든 활로를 만드는 것이 너의……!”

퍼억!

동준의 주먹에 맞은 호상백이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동준이 피식 웃었다.

“돈 버는 머리는 있어도 사람 보는 눈은 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앞으로 또 고용하려거든 대우 좀 잘해 줘라. 그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몸을 돌린 동준이 율적산을 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소?”

율적산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원 무장을 해제하고 무릎을 꿇어라. 살려 주지.”

호마상단의 일을 마무리한 침투 부대가 전부 모였다.

“스무 명은 남고 나머지는 저쪽 전장에 합류한다.”

“예!”

파아악!

율적산과 서른 명의 야차들이 움직였다.

콰릉! 콰르릉!

한참을 달리고 나니, 저 멀리서 붉은 마기와 황금빛 진기가 부딪치며 무지막지한 충격파를 일으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놀라서 안쪽으로 도망치는 민간인들도.

율적산과 야차들이 속도를 올렸다.

또 한참을 더 달리자, 이쪽으로 달려오는 무림인들이 보였다.

율적산의 눈이 번뜩였다.

그 무림인들을 일군과 이군, 삼군의 야차들 일부가 뒤쫓고 있었다.

율적산이 외쳤다.

“도주하는 적들을 잡아라!”

파바바박!

서른 명의 야차들이 산개하며 용권문의 권사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퍼어억!

전장을 정리하고 날아온 귀창이 마지막 권사 하나의 몸에 창을 박아 넣었다.

“후우.”

숨을 몰아쉬는 귀창 앞에 율적산이 내려섰다.

“어떻게 되었나?”

“이놈으로 끝이다.”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났군.”

“대장전은 아직이야.”

율적산과 귀창이 저 멀리 격전장을 바라보았다.

귀창이 외쳤다.

“전원 령주님께로 돌아간다! 섣불리 접근하진 마라!”

* * *

양백호와 적인의 싸움은 끝날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았다.

퍼퍼펑! 쩌어어어엉!

고속으로 움직이는 대검이 권풍을 베고 공격하면,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장력이 대검을 튕겨 내고 장풍으로 반격한다.

무학 자체의 수준을 논하자면 당연히 적인이 한 수 위였다. 양백호 역시 고급 마공을 익혔지만, 그가 강한 것은 마공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는 수련과 경험, 그리고 무공을 들여다보는 안목 덕분이었다.

사람들이 강한 무공을 찾아 헤매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수준이 비슷하다면 더 강하고 출력이 높은 무공을 익힌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 그러한가에 대한 답을 양백호가 제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퍼퍼펑! 훅!

한 몸이 된 듯 대검을 기가 막히게 휘두르며 적인의 권장을 튕겨 낸 그가 순식간에 치고 들어가 적인의 몸통으로 검첨을 밀어 넣었다.

퍼어엉!

대검을 튕겨 낸 적인이 진각을 밟았다.

쾅!

일대가 뒤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진각이었다. 땅에서 힘을 받아낸 그가 우장을 휘두르니, 뿜어져 나오는 공력이 해일과도 같았다.

소림의 자랑이라는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었다.

부원주인 적미가 구사하는 장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더 크고 더 강했으며, 더 신묘했고 더 적절한 순간에 들어가니 양백호라도 이것만큼은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서걱!

하지만 정작 피를 본 것은 적인이었다.

온몸을 던져 미끄러지듯 접근하니 대력금강장의 경력은 허공을 치고 날아갔다.

순식간에 하단으로 파고든 양백호의 대검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적인의 팔뚝을 갈랐다. 적인이 승려답지 않게 욕설을 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양백호는 멈추지 않았다.

신묘한 보법으로 물러나는 적인을, 오로지 마기의 폭발력을 이용한 신법으로 따라잡아 좌권과 우검을 연달아서 휘두른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대검술과 권법의 연계였다. 하지만 양백호의 미묘한 중심 이동과 발경술로 인해, 두 개의 무공은 본래 하나인 것처럼 유연하게 어우러져 적인을 압박했다.

쾅!

대검이 튕겨 나갔다. 상반신 바로 앞에서 터트린 적인의 사자모니인(獅子牟尼印) 때문이었다.

경력이 너무 가까이서 터졌고, 충격 때문에 내공으로 육신을 보호하지도 못했다. 살점을 떼어 주고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적인의 과격한 수법이었다.

퍼어어억!

양백호의 권풍이 물러나는 적인의 허벅지를 때렸다.

강철처럼 단단한 허벅지가 붉은 마기의 침투를 허용했다. 적인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양백호의 무공은 지극히 실전적이었다. 그저 실전적인 수법만으로 태산북두 소림 무공을 상대하긴 어렵지만, 그에게는 천마신교에서도 쉽게 열람할 수 없는 강력한 마공과 전장의 대검술이 있었다.

초반 상대의 무공을 보며 약점을 간파하는 것이 양백호의 습관이었던 바, 상대에 대한 여러 정보를 안고 변화한 그의 전투술은 적인도 쉽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아군의 패퇴까지.

양백호와 싸우면서도 휘하 당주들과 용권문 권사들의 죽음을 생생히 느낀 탓에, 적인의 집중력은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퍼엉! 콰쾅! 서걱!

몇 차례의 화려한 공방 후, 기습처럼 휘둘러진 대검이 적인의 좌측 손목을 내리쳐 잘라 버렸다.

포기한 건 아니지만, 이미 심신의 타격이 컸다. 적인은 양백호를 이길 수가 없었다.

퍼버버벅!

대여섯 번의 대검술에 온몸이 난자된 적인이 무릎을 꿇었다.

이제는 더 이상 침투하는 마기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일평생 익혔던 반야신공의 힘이 무섭게 쪼그라들었다.

적인이 헐떡이며 양백호를 올려다보았다.

양백호의 차가운 눈이 그를 조롱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 같은 마교도 놈들! 너희가 감히……!”

푸화아악!

적인의 몸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어차피 죽일 놈의 유언 따위 듣지 않는다. 대검을 털어 낸 양백호가 야차들을 향해 외쳤다.

“승전이다! 깃발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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