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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92화 (742/774)

외전 92화. 욕망의 문 (4)

“오, 도 대주.”

공무외가 웃으며 도헌을 반겼다.

“허허, 요새 통 얼굴 보기가 힘들구먼.”

도헌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근래 무공의 성취가 있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어허, 그래?”

공무외의 눈에 순간적으로 마기가 스쳤다. 겉으로는 크게 바뀐 것처럼 보이지 않는 도헌의 기도를 살피려 함이었다.

“……?!”

순간 공무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헌의 말은 사실이었다.

예전에도 도헌의 기도는 발군이었다. 신교육대 대주 중에서도 잘 다듬어진 그의 마기는 멋지게 제련된 검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도헌의 마기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예전보다 진기 자체가 더 깊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한계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무외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대단하구먼. 새로운 마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은데, 이제는 내 눈으로도 자네의 기도를 온전히 읽기가 힘들어.”

“예전에 주신 사령단 덕이 컸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공무외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까짓 사령단 한 알로 자네에게 그런 인사를 받아야 쓰겠는가? 끝까지 함께할 사이거늘.”

도헌은 속으로 웃었다.

‘내가 정한 끝이 어디인지 네놈이 알기나 하겠느냐.’

속내와 달리 말은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본교의 마인이라면 꿈에서라도 얻고 싶은 영약이 아닙니까. 덕분에 이리 성장했으니,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허허, 거 사람 참.”

퍽 자연스러워진 아부에 공무외가 웃으며 일어났다.

“오랜만에 봤는데 술이나 한잔할까?”

“좋습니다. 다만 그 전에…….”

“역시 부탁이 있어서 왔구만?”

“죄송합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인지라.”

“이 사람아, 죄송할 일이 뭐가 있나? 자네 힘이 닿지 않으면 내가 나서고, 내가 나서기 애매한 일에는 자네가 나서고.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었나? 하하!”

도헌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공무외가 도헌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말해 보게. 냉큼 처리하고 가서 분내나 맡자고.”

“알겠습니다.”

도헌이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공무외에게 전했다.

“이게 뭔가?”

“야차사령부에서 온 연락입니다.”

공무외가 눈살을 찌푸리며 서신을 펼쳤다.

“사령부에서 왔다고? 하면 곧장 나에게 전하면 될 것을 어찌…….”

의아해하며 서신을 훑던 그의 눈이 일순 크게 흔들렸다.

도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별일 없었으면 당주님께 곧장 연락을 드렸을 겁니다. 그러나 당주님을 감시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할 거라는 판단에, 일단 저를 통한 전달을 원한 것 같습니다.”

“이천상이로군.”

“그렇습니다.”

“이천상이 보냈지만, 결국 양백호도 이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지.”

“물론입니다. 부대 전체가 광동 인근에서 대기 중이니까요.”

“……흐음.”

공무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광혈신마 어르신이라.”

가만히 공무외를 보던 도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전에 줄을 잡으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더는 기다리지 않으시겠다고요.”

“그랬지.”

“혹, 광혈신마 어르신입니까?”

공무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렇군요.”

“전에도 말했지만,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게나. 자네에게 아직 내가 줄을 댄 사람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까닭은, 완벽하게 그분 밑으로 들어갔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네.”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려 줘도 될 것 같구먼. 뭐, 자네도 짐작했을 것 같긴 하네.”

공무외가 입맛을 다셨다.

“내가 손을 뻗은 대상은 백골신마(白骨神魔) 어르신일세.”

도헌의 눈이 커졌다.

백골신마.

십대마왕 중 광혈신마 백헌과 함께 가장 연배가 높은 거물.

지닌바 무력 또한 실로 엄청나서, 조백천이 교주로 등극하기 전까지 대력신마와 함께 사마제(四魔帝)로 불렸을 정도다.

그중 대력신마는 교주가 된 조백천의 눈 밖에 나서 축출되었으니 사마제 중 현역으로 남은 사람은 교주를 제외, 둘밖에 남지 않았다.

전대 교주의 타계 후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정치판에서도 그저 관망하는 쪽을 택한 중립 성향의 장로……. 공무외가 줄을 댄 자가 설마 그일 줄이야.

“백골신마 어르신이셨습니까?”

“음, 짐작하지 못했나 보군.”

“그렇습니다. 저는 솔직히 광혈신마 어르신이나…… 아니면 혈도대마(血刀大魔)께 줄을 대신 줄 알았습니다.”

공무외가 미소를 지었다.

“혈도대마라…… 하기야, 실력도 좋고 욕심도 많고 제 아랫사람들도 잘 챙겨 주는 사람이지.”

“예.”

“하지만 그 사람은 안 돼.”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보게, 도 대주. 자네 역시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모든 걸 적당히 갖춘 사람보다, 하나의 장점이 뛰어난 이를 살피시게.”

“어째서입니까?”

“모든 걸 적당히 갖춘 사람은 내 아래에 있어야지 머리 위에 있으면 안 돼. 그런 사람을 우두머리에 두게 되면 피곤해져. 훗날 밟고 올라설 때도 아주 성가신 과정을 거쳐야 하네. 대체로 그래.”

도헌은 공무외의 말을 귀를 열고 들었다.

공무외 역시 이 정치판을 굴러다니면서 몸으로 겪은 깨달음이 많을 것이다. 겸상도 하기 싫은 사람이지만, 신교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의 깨달음도 배울 줄 알아야 한다.

“특히나 작금 혈도대마의 성정과 위치는 위험하다고 볼 수 있네. 십대마왕은 누구 하나 튀어선 안 돼. 권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기색을 요만큼이라도 보이게 된다면 교주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겠지.”

“아!”

“혈도대마에게는 인망이 있네. 차라리 교도들 모두가 그를 따랐다면 모를까, 지금 정도로는 애매하지. 조만간 교주님께서 직접 내치시거나, 아니면 다른 마왕들을 조종하여 힘을 빼 놓으실 게야.”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는 서로가 보는 눈이 달랐다. 뼛속까지 칼잡이인 도헌의 눈에는 그나마 혈도대마가 십대마왕 중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외의 말을 들어 보니, 확실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고 줄을 잡았다간 함께 숙청당할 수 있다. 좋은 가르침이었다.

“그나저나.”

공무외의 얼굴이 묘해졌다.

“양백호 이 사람, 꽤 적극적으로 변했구만.”

“예?”

“호마상단 주인 놈이 광혈신마 어르신께 뇌물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거 아닌가? 고문을 했든 뭘 했든, 본교 돌아가는 꼴을 한번 주시해 보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는데.”

도헌이 고개를 저었다.

“호마상단의 주인이 먼저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시는가?”

“광혈 어르신께 선을 대고 있었다면 남들보다는 본교에 대해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광혈 어르신이 잡아떼 버리면 그놈 역시 살아서 돌아갈 수 없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러니까 자네 말은, 포로로 잡힌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고자 발광을 했다?”

“작전에 나가다 보면 그런 놈들이 수두룩합니다.”

말을 하면서 도헌은 광혈신마에게 진한 혐오감을 느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뇌물을 받아먹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눈먼 돈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정파 놈들과 손잡은 정황이 포착된 상단의 주인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받아 처먹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자칫 신교의 기밀 정보가 일개 상단주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소리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처럼 위험천만한 관계를 쌓고 있었다니.

‘대체 본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도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무외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이건 또 새롭군. 확실히 사람은 여기저기서 굴러 봐야 해. 정치판에서만 굴러 본 나는 자네 같은 생각을 못 하거든.”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광혈 어르신이라…….”

공무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구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긴? 안전하게 귀교시켜야지. 비록 거칠지만 양백호는 좋은 칼이야.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쉽지. 아직 제대로 뽑아 먹지도 못했잖나.”

“그렇지요.”

“게다가 그곳에는 이천상도 있네. 나도 그 녀석에게 도움받은 게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일이야.”

공무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골 어르신을 뵈어야겠네. 자네도 함께 가겠는가?”

도헌의 눈이 흔들렸다.

“저도 함께 말입니까?”

“하하, 이토록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와 함께할까? 이 기회에 어르신께 점수도 딸 겸, 같이 가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나 해 보세나.”

올 것이 왔다.

도헌이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 * *

야차사령부가 광동 남곤산 인근에 진을 친 지 엿새가 지났다.

“아직 연락이 안 왔나?”

“그렇습니다. 엿새가 지났으니 곧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음.”

고개를 끄덕인 양백호가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총단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도 누구 하나 긴장을 풀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들이 아주 보기가 좋았다.

양백호가 미소를 지었다.

씁쓸함과 대견함이 섞인 미소였다.

“이 한 번의 임무로 야차들이 하나가 되었군.”

“…….”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 제각기 성격이 다른 마인들이 한순간에 오합지졸에서 군대가 되었어. 잘 따라 주어 다행이네.”

“그렇습니까.”

양백호가 이천상을 보며 물었다.

“마음은 어떤가.”

“평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

“예.”

무표정한 얼굴로 야차들을 보는 이천상.

굵은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턱선, 조금은 나른하게 가라앉은 눈매만 보면 참 고집 센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을 감정이라는 게 결여된 표정인지라, 전체적으로 봤을 때 딱히 고집이 세다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가만히 이천상을 보던 양백호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대단하더군.”

“……?”

“절반밖에 남지 않은 부대원들을 이끄는 솜씨 말일세. 백오십을 이끌든 일흔 명을 이끌든, 자네와 야차들의 움직임은 조금의 허점도 없었어. 명령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흥분하지 않고 임무에 임하더구먼.”

“전사(戰死)를 대비해서 훈련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훈련했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양백호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일전, 이천상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그 시뻘건 마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마기였다. 마기의 질만 따지면 나 이상, 가히 극마(極魔)를 노려 볼 만한 기였어.’

당연히 마기의 질이 높다고 다 극마에 이를 순 없다. 애초에 진짜 극마지기(極魔之氣)도 아니었고.

다만, 이놈은 확실히 비범했다. 비범했고 신비했다.

‘그래서 위험해.’

이천상의 존재를 신기하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진심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그 마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때 이후로는 그 기묘한 핏빛 마기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기도를 샅샅이 확인해 봤지만, 평소의 무겁고 장중한 금빛 마기만이 온몸에 가득할 뿐이었다.

‘귀교해서 따로 알아봐야겠군.’

양백호가 해를 바라보았다. 서산의 끝에 닿아 있었다.

“거참, 언제쯤 오는 건지.”

“옵니다.”

“음?”

이천상이 우측을 바라보았다. 양백호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

정말이다. 은밀하고 쾌속한 움직임, 정보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정보원이 양백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령주님을 뵙습니다.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음.”

서신을 받아 읽은 양백호가 야차들을 향해 외쳤다.

“전원 이동 준비! 한 시진 안으로 총단에 도달토록 할 것이다!”

“존명!”

비로소 길고 길었던 임무를 마친 야차사령부가 신교로 향했다.

선두에 서서 달리는 양백호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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