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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94화 (744/774)

외전 94화. 마공(魔功)을 보는 시선 (2)

화르르륵.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사령관사 옆, 거대한 공터에 겹겹이 겹친 장작들이 일 장 높이로 쌓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첫 임무였다.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선 야차들.

야차들을 둘러보며, 양백호가 말했다.

“모두가 용맹하게 싸웠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임무였고,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죽은 전우들은 제 생명을 던지길 주저하지 않았다.”

“…….”

“우리가 여기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이유다.”

양백호가 첨단부에 커다란 보따리를 낀 철봉을 들었다.

보따리 안에는 죽은 야차들의 소맷자락이 들어 있었다. 거처에 남은 개인 의복의 소매만 잘라 모은 것이다.

“용맹하게 싸웠기 때문에, 그들은 욕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도착했겠지. 저 불은 장례가 아니라 욕계로 먼저 간 전우들을 향한 존경의 표시다.”

양백호가 보따리를 장작 위로 던졌다.

푸스스! 화르르륵!

더더욱 기세 좋게 불타오르는 장작.

세 걸음 뒤로 물러난 양백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모두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일각 후.

“일어나라.”

모두가 일어나자, 양백호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전우들을 눈물로 보내지 않는다. 이 앞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을 것이다. 술과 고기로 피로를 잊고 웃음으로 먼저 간 전우들에게 예를 표하자.”

“존명!”

사령부의 숙수들이 미리 준비한 음식들과 술을 깔았다.

작정하고 만들었는지 양이 매우 많았다.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만큼 많았고 마셔도 마셔도 줄어들지 않을 만큼 많았다.

야차들은 순식간에 취했다.

싸움이 일상이라지만, 첫 임무는 유독 힘들고 과격했다. 심지어 소림승에 용권문의 권사들과도 싸웠으니, 자부심 이전에 정신적 피로감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반 시진이 지나자 야차 중 절반 이상이 그 자리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한 시진이 지나자 멀쩡히 앉아 술을 마시는 야차들은 백 명도 채 남지 않았다.

양백호는 맨바닥에 누워 자는 그들을 굳이 숙소로 가라며 깨우지 않았다. 수하들은 마음껏 회포를 풀 자격이 있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상관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날이었다.

다행인 건 군주들은 누구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율적산은 말술이었고 귀창은 술을 즐기지 않았으며, 이천상 역시 술을 적당히만 마시고 있었다.

“으라차차!”

율적산이 큼직한 술통을 들고 와 이천상 옆에 앉았다.

“아이고, 저 망할 놈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어도 붙잡고 놔주질 않네.”

이천상은 말없이 술을 홀짝였다.

율적산이 피식 웃으며 새 잔에 술을 따라 그에게 주었다.

“고생 많았네, 일군주.”

“이각주도 고생 많으셨소.”

“아, 복귀했으니까 다시 각주가 되는 건가? 거참 헷갈리는군.”

낄낄거리며 잔을 비운 율적산이 거하게 트림하곤, 다시 빈 잔에 술을 따르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괜찮나?”

“무엇이 말이오?”

“수하들을 많이 잃었잖은가.”

이천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각 야차들이 유독 많이 쓰러져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피해가 컸고 가장 살벌하게 싸운 부대라서 그렇다.

잠시 수하들을 확인한 그가 다시 말없이 술을 홀짝였다.

대답 없는 대답을 들은 율적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수하를 잃은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지.”

“…….”

“다 내 책임 같고, 내 잘못 같은 죄책감에 젖어 들게 돼. 술을 좀 마시다 보면 스스로도 설득할 수 없는 변명을 입에 올리지. 어쩔 수 없었잖아, 내 책임이지만 내 잘못은 아니야……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

“…….”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되지. 결국은 내 잘못이라는 걸.”

“이각주도 그랬소?”

“그랬었지, 많이.”

율적산의 얼굴이 씁쓸함으로 얼룩졌다.

이천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들은 용맹하게 싸웠소.”

“그랬겠지.”

“모두가 나를 믿었소. 예전에는 몰랐지만, 사람이 사람을 투명하게 믿는다는 것이 힘들다는 걸 이제야 알겠소.”

“힘들지. 그래서 자네가 대단한 거라네.”

“내 책임이지만 내 잘못은 아니오.”

율적산이 안타까운 눈으로 이천상을 보았다.

하지만 이천상의 그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그들의 죽음이 내 잘못이라고 말하면, 야차들의 죽음은 개죽음이 된다고 생각하오.”

“……그런가.”

“아직도 그런 감정이 어떤 건지 모호하오. 알 것 같기도 한데 또 자세히 고민해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겠소.”

“…….”

“같은 말로 부끄러움이 뭔지는 알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하겠소.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이오.”

“…….”

“그래도 녀석들이 부끄럽지 않게 죽은 것만큼은 확실하오.”

율적산이 작게 웃었다.

이천상이 잔을 들어 쭉 비웠다.

“죽어 보지 않았으니 사후 세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있다면 나중에 만날 수 있겠지.”

“그래, 그렇게 될 걸세.”

그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덩치 큰 사내놈들 둘이 모여서 시를 읊는구먼.”

귀창이 이천상 옆에 앉았다.

“후,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나도 한 잔 줘 보게.”

율적산이 귀창에게 술을 건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천상이 있었다.

귀창이 시원하게 잔을 비우며 말했다.

“참 힘든 임무였어. 그렇지 않았나.”

이천상과 율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창이 방만한 자세로 앉았다.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자세였다.

“당분간은 푹 쉬고 싶군. 세상에 소림승과 싸우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어.”

“그러게나 말일세.”

율적산이 잔을 홀짝이며 말했다.

“그래도 부대라서 오래 쉬지는 못할 거야. 끽해야 사흘 정도일까?”

“사흘이면 충분하지. 더 쉬면 몸 굳어서 안 돼.”

“맞는 말이야.”

귀창이 이천상을 힐끔거렸다.

“일각주.”

“말씀하시오.”

“고생 많았네.”

귀창은 율적산처럼 구구절절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고생했다는 한마디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았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소.”

“한 잔 받겠나?”

이천상이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귀창이 그의 잔을 가득 채웠다.

이천상은 받은 잔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말없이 거대한 불을 바라보던 귀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뜨겁구만. 난 우리 애들하고 마시겠네.”

꽤나 산뜻한 퇴장이었다.

멀어지는 귀창을 보던 율적산이 말했다.

“삼각주는 자네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네.”

“그는 내게 빚진 게 없소.”

“물론 그렇지. 그래도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네.”

“알 것 같군.”

“알 것 같다고?”

“머리로는.”

피식 웃던 율적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어디 가?”

“잠깐 바람 좀 쐬러 가오.”

“젊은 놈이…… 얼른 다녀와. 취해서 엄한 데서 자지 말고.”

대답 없이 몸을 돌려 걷던 이천상은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아직도 술을 마시는 사람 중에는 허필과 양건, 주연교와 설이전 등이 있었다.

꽤 즐겁긴 한 모양이었다. 목숨을 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그 안도감과 쾌감이 얼마나 클 것인가. 모난 성격의 허필도 잔뜩 취해서 껄껄껄 웃고 있었다.

조용히 그들을 보던 이천상이 일각 쪽으로 걸었다.

뜨거운 불 앞에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바람이 몹시 선선했다.

잠시 후, 일각 앞 공터에 도착한 이천상은 큼직한 나무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하늘을 보니 별이 밝았다. 달도 거의 다 찼는데, 달보다 별에 더 눈이 갔다.

무감한 눈으로 별을 보던 이천상의 눈이 점점 흐려졌다.

그는 야차들을 떠올렸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는 알지만, 이해는 할 수 없는 어색한 얼굴들.

그들과 아주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을 함께하며 진법을 연마했다.

각자 기량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가 되려 노력했고, 실전에서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

아무렇게나 생각을 이어 가던 이천상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하나가 되었다면, 녀석들이 죽었을 때 다른 녀석들도 다 죽는 게 맞지 않는가?

그리고 나 역시 이곳에서 살아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한데 왜 여기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사실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오감이 지독하게 현실 같은 꿈은 아닐까.

술이 생각보다 맛있던데, 꿈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는 한 번도 술이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애초에 맛으로 마시는 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하늘에 유성 하나가 호선을 그리며 웃더니 사라졌다.

사라진 호선에 야차들의 얼굴이 보였다. 죽은 야차 중 누군가의 턱선 같기도 했고, 눈매 같기도 했으며 머리카락 같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천상은 별과 별을 이어 보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열 번째 호선부터는 처음 그었던 호선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별과 어떤 별을 이었는지 헷갈렸다. 그래도 그었다. 처음 그렸던 호선을 잊지 않도록 빠르게 그려 넣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작업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선을 이으니 칠 조 구담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천상은 구담 옆에 송효, 하종, 왕태, 문경, 종령의 얼굴을 차례대로 그렸다.

어두운 하늘은 순백의 종이였고 수없이 많이 찍힌 별들은 종이 위에 드러난 보이지 않는 기준점들이었다. 이천상은 상상이란 이름의 붓으로 점들을 이어 야차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그려 넣었다.

열 명이 스무 명이 되었다. 스무 명은 곧 마흔 명으로 불어났다.

오십 명째에 이르러서는, 처음 그려 넣었던 구담의 얼굴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버렸다.

찝찝했지만, 또 다음 야차를 그렸다. 그러자 차례대로 송효, 하종, 왕태의 그림을 잃었다.

그리고, 또 그렸다. 잃고, 또 잃었다.

죽은 마지막 야차를 그려 넣었더니, 앞서 그렸던 야차들이 다 사라졌다.

뒤죽박죽이었다. 별이 반짝였다. 달이 밀고 들어와 야차들의 그림을 지워 낸 것 같았다.

왠지 이마에 쥐가 난 것 같아서 만져 보았더니,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꾹 눌러 펴는데 갑자기 코앞에 커다란 잔이 나타났다. 투명한 술이 가득한 잔이었다.

익숙한 손이었다. 주연교였다.

잔을 비우니, 또 누군가가 술이 가득 찬 잔을 주었다.

이 또한 익숙한 손이었다. 양건이 분명했다.

이천상은 두 사람이 주는 술을 다 받아 마시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된다.

잊었던 야차들의 얼굴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천상은 다시 야차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든 명에 가까워서 그린 걸 외우는 게 쉽지 않았다.

다 기억하는 걸 실패하면 다시 술을 받아 마셨다. 술을 마실수록 죽은 야차들의 얼굴이 선명했다.

얼마나 반복했을까.

어느새 별들이 흐릿해졌다. 어두운 하늘 동쪽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천상은 죽은 야차들의 얼굴 모두를 담아 놓을 수 있었다.

머리에 담아 두었던 별빛들이 코를 지나 입으로, 목으로 내려오다가 가슴에서 멈추었다.

이천상은 술을 마셨다. 맛은 없었지만 마시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기묘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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