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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97화 (747/774)

외전 97화. 마공(魔功)을 보는 시선 (5)

수욕 후 일 층 거처로 들어온 이천상은 곧장 가부좌를 틀었다.

그는 유상천의 마공을 떠올렸다.

‘흑고루마공.’

아직 극의에 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다만 그 무공의 수준은 금강야차마공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신교팔대마공급 초일류 무공이란 뜻이었다. 십대마왕들은 저마다 그 정도 마공이학을 연마하고 있을 것이다.

‘풍성한 기공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데에 능한 마공이었다. 유상천이 병장기술보다 권장을 익힌 이유가 바로 그 마공 때문이었어.’

날붙이에 내공을 실으면 당연히 그 기운도 날카롭게 변한다.

그렇다고 두껍고 무거운 병장기를 휘두르기에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천마백골수라는 무공도 있었지만, 유상천이 권장을 익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흑고루마공 때문이었다.

더 빠르고, 더 거대한 힘을 난사하기에 적합한 맨손 기공술.

‘지금의 나에게 녹일 수는 없는 공부다.’

애초에 흑고루마공의 구결이나 진기 운용법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무공이기도 하다.

다만, 천마백골수를 구사할 때 보여 준 발경의 묘리, 그것은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흑고루가 호수라면, 백골수는 호숫물을 한 점으로 응축시키는 관(管)이다. 그 관의 압력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겠지.’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여러 가지 마공을 알고 있었다.

당장 주력으로 사용하는 금강야차마공과 연치상에게서 빼앗은 폭혈마공, 그리고 혈강수가 있다.

금강야차와 폭혈은 정상급 마공으로서 하나만 대성에도 극마를 넘볼 수 있는 무학들이었다. 혈강수는 불완전한 마공이지만, 그 위력만큼은 오히려 금강야차를 뛰어넘는 무공이었다.

신교의 기본공인 진마공과 마환공을 보며 무학의 기본 원리와 마공의 특성을 깨우쳤고, 특성이 다른 최고급 마공들을 배우고 익히며 마공의 한계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진마공?’

순간 이천상은 머리 한구석에서 한 점의 빛이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빠르게 진마공의 구결을 살펴보았다.

‘…….’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군.’

방 밖으로 나가 보니 마침 주연교가 보였다.

“이 조장.”

“각주님.”

“지필묵이 있나.”

“네? 아, 네. 가져올까요?”

“그래, 내 방으로.”

그때, 거처 밖에서 경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나가자 양건이 기다렸다는 듯 마구 손을 흔들었다.

“여어, 각주님!”

상관을 대하는 건지 친구를 대하는 건지 모를 모습이었다. 주변 야차들이 기겁해서 양건의 입을 막고 팔을 잡아 내렸다.

이천상이 말했다.

“놔줘라.”

“퉤퉤! 놔라, 이것들아! 놔주라고 하잖아!”

양건이 팔을 빙빙 돌리며 투덜거렸다.

“충성심 대박이네. 우리 애들은 이러지 않는데.”

“양건.”

“말씀해, 각주님.”

“내 방으로 잠시 들어와라.”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양건이 히죽 웃으며 허리춤에 달랑이는 술병을 들어 보였다.

“한잔할까, 각주님? 오랜만에 옛날 기분도 낼 겸 말이야.”

“존대해라.”

“낼 겸 말입니다.”

“들어와.”

“그러자고. 요.”

잠시 후, 이천상의 방에 양건과 주연교가 모였다.

주연교가 종이 한 무더기를 옆에 놓았다.

“종이는 얼마나 필요할지 몰라서 많이 가져왔어요.”

양건이 주연교를 힐끔거렸다.

“이봐, 답지 않게 왜 자꾸 존대야? 밖이면 몰라도 안인데 옛날처럼 하지?”

“넌 진짜 세상 편하게 산다.”

“안 그래도 팍팍한 세상 편할 땐 편하게 살아야지.”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대로 해라.”

“거봐. 저 녀석도…….”

“양건은 먹을 갈아라.”

“다 좋은데, 그래도 상관이라고 저 말투가 무시가 안 돼…….”

양건이 투덜거리며 벅벅 먹을 갈았다.

이천상이 두 사람 앞에 종이를 놓았다.

“두 사람은 진마공과 마환공의 구결을 기억하고 있나?”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물론. 원체 달달 외워 놔서.”

이천상이 붓 하나를 가져와 바닥에 앉았다.

“주연교는 진마공의 구결을, 양건은 마환공의 구결을 적어라.”

“오잉? 왜?”

이천상은 말없이 자신의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양건과 주연교는 서로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이 마환공과 진마공의 구결을 다 적었지만, 이천상은 아직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양건이 이천상이 붓을 놀리는 종이를 힐끔거렸다.

“뭐야, 그건? 무공 구결 같은데.”

이천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양건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모르는 마공 구결을 굳이 볼 필요는 없었다.

잠시 후, 종이 두 장에 뭔가를 빽빽하게 적은 이천상이 진마공과 마환공의 구결이 적힌 종이를 가져와 보기 시작했다.

양건과 주연교는 멀뚱멀뚱 서로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천상의 방을 구경했다.

“이야, 천상이 출세했네. 우리 방보다 네다섯 배는 큰 것 같다. 심지어 우리는 그 방에 셋이서 지내는데 이 넓은 방을 혼자 쓰네.”

“근데 좀 황량하다.”

“저놈 성격을 생각해. 야차번 하나에 박도(朴刀) 하나, 직도(直刀) 하나만 덩그러니 놨네. 진짜 팍팍하다니깐.”

“칼을 썼었나?”

“모르지, 나야. 어쩌면 병장기에 대한 환상이 있는 거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몰러.”

두 사람이 시시껄렁한 대화를 주고받을 때.

이천상은 세 개의 마공 구결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될 것 같다.’

그가 적은 마공 구결은 혈강수의 구결이었다.

‘가능해. 마환공과 진마공은 신교의 기본공이 아니라 정통 마공 그 자체의 원형과 같다.’

두 마공이 모든 마공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두 마공을 제대로 파 본 사람은 상위의 마공을 익힐 때 훨씬 더 쉽고 안정적인 연마가 가능할 것이다.

두 마공만 제대로 익혀도 마(魔),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

‘될 것 같긴 하지만, 뭔가가 부족한 것도 같다.’

이천상이 마환공의 구결을 보았다.

‘마환공은 토대 그 자체지만 유연하진 않아. 분해가 쉽지 않다.’

이번엔 진마공의 구결을 살폈다.

‘반대로 진마공은 지극히 유연하다. 어떤 식으로 구결을 쪼개고 합쳐도 안정적인 출력과 축기가 가능한 게 장점이야. 다만 마환공보다 위력은 약해지겠지.’

조금 더 고민하던 이천상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마환공과 진마공 외에, 본교의 기본공들을 알고 있는 게 있나?”

양건이 어깨를 으쓱였다.

“청음공(靑陰功)과 귀혼심법(鬼魂心法)을 알고 있지.”

주연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찰기공(羅刹氣功), 귀문공(鬼門功), 봉황마력(鳳凰魔力)을 알아.”

양건이 뜨악한 눈으로 주연교를 바라보았다.

“세 개나?”

“왜? 문제 있어?”

“마환진마 외에 다른 기본공을 알고 있는 게 보통 일은 아닌데? 나도 다른 데 가면 이상한 놈 소리를 듣는다고. 한데 세 개라니?”

“강해지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손대 봤지. 어차피 하급 마인들도 볼 수 있는 건데 뭐 어때?”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다 적어 주길 바란다.”

“적어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쯤 되니 진심으로 이유가 궁금한 듯, 양건이 다시 한번 물었다.

“뭐 하는 건데?”

“나중에 알려 주마.”

“……제일 힘 빠지는 대답인데, 그거.”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가 소매를 걷었다.

“뭐, 좋아. 알고 있는 무공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도 좋은 수련이지. 이참에 한번 해 보자고.”

두 사람은 다섯 개의 마공 구결을 적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데 한번 끊김이 없었다. 각자 말했던 무공들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 됐다.”

두 사람이 구결을 다 적을 때, 이천상 역시 폭혈마공의 구결을 적은 상황이었다.

이천상은 위쪽에 마환과 진마, 청음, 귀혼, 나찰, 귀문, 봉황의 기본공들을 놓았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혈강수와 폭혈마공의 구결을 놓았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이제야 그림이 된다.’

말없이 이천상을 보던 주연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

“당신, 새 마공을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이천상이 주연교에게 시선을 돌렸다.

양건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새 마공이라니? 마공을 창조한다고? 새로?”

“…….”

“에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저놈 재능은 인정하지만 벌써부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겠어? 녀석이 대종사(大宗師)도 아닌데.”

“하지만…….”

주연교가 마공 구결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많은 마공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자기 무공의 허점이나 발전 방안을 찾아보려고 그러는 거겠지. 안 그래?”

양건의 물음에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 아직 마공 창조는 저 녀석이라도…….”

“새 마공을 만들어 보고 싶다.”

“딸꾹!”

양건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뭣이라?”

이천상이 진지한 눈으로 구결들을 살폈다.

“뭔가 될 것 같기는 한데, 아직 모호한 게 많다. 그래도 너희가 적어 준 마공들로 돌파구는 찾을 수 있겠어.”

“……?!”

두 사람이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이천상은 다시 쪼그려 앉아서 구결들을 점검했다.

멍하니 이천상을 보던 양건이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 그래도 많이 변했어. 농담도 할 줄 알고. 그렇지?”

“…….”

“그래도 아직 배울 게 많아.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면 진짜인 줄 알잖아. 농담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

애써 웃음 짓던 양건의 얼굴이 점점 불신으로 얼룩졌다.

“뭐야, 너. 진짜야?”

이천상이 손을 저었다.

“할 일 없으면 이만 나가도 좋다. 오늘 적어 준 수고는 술로 보답하겠다.”

“야!”

양건이 벌떡 일어났다.

“너 인마, 그거 위험해!”

“뭐가 위험하지?”

“이 자식이? 진짜 몰라서 그래? 새 무공을 창조하는 게 단순히 어렵기만 한 일인 줄 알아? 자기 몸에 직접 시험해 봐야 되는 거라고! 잘못되면 주화입마에 들어서 폐인이 될 수도 있어!”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

“야! 사람 걱정하는 거 안 보이냐?!”

“괜찮을 테니 방해 말고 이만 나가라. 나쁘지 않게 나오면 너희에게도 보여 주지.”

심각한 눈으로 이천상을 내려다보던 양건이 이내 제 가슴을 퍽퍽 때렸다.

“어이쿠, 저 고집불통을 누가 말리겠냐고. 이제는 뭐 세 합 안에 두들겨 맞을 게 뻔해서 덤빌 수도 없고.”

고개를 휘휘 젓던 그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양건이 나간 문을 보던 주연교가 이천상에게 말했다.

“……당신이야 뭐 워낙에 알아서 잘하니까, 나는 걱정하지 않을게.”

“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 줘.”

“그러지.”

가만히 이천상을 바라보던 주연교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간 이후, 이천상은 집중해서 무공들을 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혈강수와 진마공, 그리고 귀문공을 한곳에 몰았다.

“진마공으로 안정을 잡고 귀문공으로 출력을 제한하면…… 특색은 좀 잃을지라도 충분히 괜찮은 게 나올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 하지만 여러 무공을 분해해 본 결과 또 폭혈마공을 중심으로 한 무겁고 파괴력 있는 마공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천상의 눈이 반짝였다.

수천 개의 글자가 그의 머리를 오가며 분해와 조합을 반복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귀문의 화(禍)자 구결로 혈강수의 위력을 낮춘 대신 날카롭게 벼린다면…….’

혈(血), 그리고 화(禍).

이천상이 폭혈마공의 구결을 응시했다.

‘나찰로 신체 부담을 줄이고 청음과 귀혼으로 무겁게, 진기의 흐름은 놔둔 채 봉황과 마환으로 혈도의 경도를 올리면 포(包)자 결과 금(禁)자 결을 조합해 폭혈의 천(天)자 결까지 넘볼 수 있다.’

포(包)로 시작하여 천(天)으로.

이천상이 턱을 쓰다듬었다.

“완성만 되면 무공을 바꿔 익혀도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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