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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99화 (749/774)

외전 99화. 마공(魔功)을 보는 시선 (7)

양백호 없이도 야차들은 저마다 필요한 훈련을 지속했다.

오히려 각주들의 명령 없이도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다. 한 번의 실전이 그들에게 큰 자신감과 알 수 없는 상실감을 함께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전우를 죽게 하지 않는 법이 곧 나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다. 반대로 내가 죽지 않아야 전우도 살릴 수 있다.

하물며 한번 실전을 겪어 본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진법이 얼마나 뛰어난 공부인지도 확신했다. 다른 부대에서 배운 것보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실전에서의 위력은 어떤 진법보다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진법 훈련이 끝나면 식사를 하고 알아서들 개인 훈련에 들어갔다.

훈련에 매진하는 야차들의 분위기는 그 자체로 큰 변화이자 사령부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지었다. 이제 야차사령에서 하루를 대충 넘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명령이나 조언 없어도 스스로 발전하려 하니, 상관들도 더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그렇게 야차사령부는 짧은 시간, 이전보다 훨씬 더 조직적인 부대로 변화하고 있었다.

* * *

모든 훈련을 끝낸 후,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자는 부대원들의 제안을 거부한 이천상은 오늘도 거처로 들어와 무공을 점검했다.

새로운 마공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힘을 불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애초에 내 무공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다른 무공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한차례 운기 후 금강야차마공까지 돌아본 이천상이 눈을 떴다.

창밖의 달이 유독 밝았다. 자시(子時) 직전이었다.

이천상은 탁자로 가서 몇 권의 서책을 꺼내 들었다. 종이에 적어 두었던 구결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이 부분이 걸려.’

이천상은 대충 혈화마공(血禍魔功)이라 지은 마공서의 후반부 구결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혈화마공의 골조를 세우는 것은 쉬웠다. 이유인즉, 기본이 되는 혈강수 자체가 워낙 뛰어난 파괴력을 가진 마공이었기 때문이다. 상단전을 너무 과격하게 건드리는 탓에 연성자의 이성을 상실케 하고, 나아가 광증까지 유발하는 것이 문제지만.

‘불안정한 토대는 진마공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상단전과 중단전인데.’

이천상의 눈이 깊어졌다.

‘혈강수의 위력이 어떤 마공보다도 빼어난 이유는 상단전을 위험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제어할 능력이 있든 없든 상단전의 힘을 강제로 끌어다 쓰니까.’

말하자면 사람에게 있는 힘, 없는 힘을 몽땅 뽑아다가 위력만 살렸다는 뜻이다.

애초에 상단전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익히자마자 이성이 흐려지게 되고, 상단전이 열린 고수라도 자주 쓰게 되면 점점 광증이 일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다. 여기가 이상해.’

사람들이 말하는 광증은 말 그대로 이성을 잃고 미쳤다는 뜻이었다.

쉽게 말해 상식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광인이라 부른다. 주변 사람을 분명히 알아보는데도 광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고, 조금 전에 들었던 것도 까먹은 채 자신만의 세상에서 사는 사람을 광인이라 부를 때도 있다.

어떤 식이든,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광증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바.

‘그렇게 치자면 나 역시 광인에 가깝다.’

이천상은 상식과 한참이나 떨어진 부류였다.

미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지만, 사람들의 상식에서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이 역시 광인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광증이라는 것이 상단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

상단전에 문제가 생기면 폐인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다.

어느 정도의 문제인가에 따라 증상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통상의 경우, 이성을 상실하면 제 감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중단전 역시 관여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단전, 즉 두뇌를 통해 세상을 본다. 말하자면 두뇌로 감정과 신체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광증은 그렇지 않아. 제어되는 부분이 깨져 버리면, 그때부터는 감정이 폭주를 일으킨다.’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라는 것은 딱 이렇다, 라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개념이다.

무엇이 어떻게 사람의 행동에 개입하는지도 모호한 문제다. 그래서 광증을 치료하기도 어렵다.

‘……?’

순간 이천상의 눈이 반짝였다.

‘치료하는 게 어렵다…….’

그렇다. 광증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광증을 일으키는 것은 치료하는 것보다 수만 배는 더 쉽다.

‘극심한 감정적 타격, 혹은 상단전 그 자체의 문제로 인해 광증은 생길 수 있다.’

이천상은 빠르게 혈화마공의 구결들을 다시 살폈다.

몇 번이나 마공서를 읽은 그는, 다시 혈강수의 비급을 살폈다.

잠시 후.

“그랬군.”

비로소 이천상은 깨달을 수 있었다.

“혈강수는 극단적인 파괴력을 위해 상단전을 건드려 위력을 더한다. 그 폐해로 광증을 겪게 되지만, 정작 타격을 받는 것은 상단전이 아니라 중단전이다.”

그렇다.

혈수신마의 상단전이 망가졌다면 애초에 원한까지 잃어버렸을 것이다.

상단전이 심하게 뭉개졌다면 죽었을 것이요, 그보다 못하더라도 폐인이 되거나 오감에 문제가 생기는 등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문제가 있긴 있되, 주로 피해를 본 곳은 상단전이 아니라 중단전이다.

즉, 혈수신마의 광인 같은 행색과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주시할 게 아니라 한 문파의 풀 한 포기,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조리 쓸어 버렸다는 부분을 주시했어야 했다.

아무리 원한이 깊어도 그 정도로 과격한 분노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 중단전을 건드려 감정의 강한 자극을 통해 위력을 살리는 게 마공이라지만, 혈강수 같은 극단적인 예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말하자면 혈강수는 사람의 감정 체계를 무너트리거나 어느 하나의 감정을 매섭게 증폭시킨다고 봐야 했다. 그것이 바로 혈강수의 본질적인 문제였다.

‘상단전을 건드린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리 위험한 것도 아니다. 분명 평범하진 않지만, 상단전을 건드리는 한 부분이 중단전과 호응하는 부분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천상의 눈이 혈화마공의 초반부를 향했다.

‘그렇군. 마공을 개방하는 순간부터 살심을 자극해 극대화된 살기로 적을 옭아매는 것……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이천상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새 서책을 꺼내 처음부터 다시 적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 썼던 내용을 완벽하게 수정한 초반부였다.

‘상단전은 건드려도 된다. 다만 중단전과 호응하는 이 선(線)을 끊어 놔야 해.’

이천상의 눈이 반짝였다.

‘위력은 떨어진다. 하지만 안정적인 출력과 날카로운 기세로 적의 심신에 타격을 가하는 구결은 살릴 수 있어.’

위력이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위력을 다소 떨어트려 놔야 다른 부분에 강점을 만들 수 있다.

한없이 위력에 치중한 마공들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당장 싸울 때만 해도, 공격에만 치중한 싸움법은 일견 거칠 것이 없어 보이나, 수비에서의 문제가 도드라지기 때문에 자칫 반격 한 번에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

혈강수는 그런 무공이었다. 수많은 대종사가 뛰어들어 완성형 무공들을 분해하여 만든 게 아니라, 어디서 본 듯한 조잡한 구결들을 끌어와 공격력만 강하게 만들어 놓은 반쪽짜리 마공.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가 자신이 아는 것을 총동원해 만들었지만, 결국은 배움의 한계로 눈앞의 위력만 쫓아 만든 불완전한 마공이 바로 혈강수의 실체였다.

‘그렇다면.’

기초 마공을 갖고 만드는 무공이 아니다.

혈화마공은, 혈강수의 불완전함을 완전함에 이르도록 만든 것이다. 새로운 무공의 창조라기보다, 본래 혈강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포천의 마공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포천의 완성도는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혈화마공은 거의 다 완성이 될 수 있었다.

‘이 선을 연결하는 구결만 없애고 안정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면…….’

이천상이 거침없이 붓을 놀렸다.

잠시 후.

“……됐군.”

이천상이 혈화마공의 마공서를 덮었다.

“완성했어.”

처음으로 마공서 하나를 완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마공으로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구결들을 분해하고 조합하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배움이었기 때문이다.

이천상은 가슴 속 왠지 모를 간지럼을 느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무언가가 심박수를 올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뿌듯함 혹은 보람이라고 말한다. 이천상 역시 그러한 단어를 알고는 있지만, 그 자신이 느껴 본 적이 없기에 스스로의 상태를 알 수 없었다.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느끼면 그뿐.

혈화마공의 비급을 덮으며 일어난 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

마공 하나를 완성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기척을 냈다.

기척이라기보다는 일부러 쏘아 낸 기세였다. 몹시 익숙한 그 기세는, 이천상 자신만 모르는 감정 하나를 불쑥 꺼내 놓았다.

작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감정.

바로 반가움이었다.

* * *

사령관사 내에서 이천상을 본 도헌은 대경했다.

“이럴 수가…….”

“오랜만이오.”

“자네, 정말 내가 아는 그 이천상이 맞나?”

“그렇소.”

놀란 도헌은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이천상이 양백호를 바라보았다. 양백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도 대주와 친분이 있다고 들었네.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해서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 시간에 온 거라네.”

“그렇군요.”

이천상이 다시 도헌을 바라보았다.

도헌이 헛웃음을 흘렸다.

“자네가 양 령주님의 바로 아래 서열의 상관이 되었다는 말은 들었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해졌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네.”

“아직 멀었소.”

“그래, 멀었지. 그래도 정말 놀랍군. 막연하게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해졌어. 처음 자네와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일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무공이 절정고수라 불릴 지경에 도달할 시간을 생각하면,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이천상은 그 짧은 시간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 신교 최고급 마공과 일부 사령단, 그리고 많은 실전이 있긴 했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너무 빠른 성취였다.

사령단이 아니라 천마신단이었다 한들, 익힌 무공이 금강야차가 아니라 전설상의 천마지학이었다 한들 이렇게 빨리 강해질 수 있을까.

도헌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도헌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십분 이해하며, 양백호가 손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그렇게 서 있지들 말고 일단 앉지.”

잠시 후, 세 사람이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도헌이 웃으며 물었다.

“잘 지내셨는가.”

“그렇소.”

“그래, 그리 보이는군.”

엄청난 성취도 성취지만, 이전과 다른 여유가 느껴졌다.

도헌은 그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천상이 점점 사람답게 변해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 시간에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오? 단순히 날 보러만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자네, 그 딱딱한 말투는 여전하구만. 하긴 이제는 반갑군, 그 말투도.”

“그렇소?”

도헌이 양백호를 바라보았다.

양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도헌의 시선이 다시 이천상에게로 향했다.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네만, 일단 묻고 싶은 게 있네.”

“무엇이오?”

“자네, 혈강수를 익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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