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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04화 (754/774)

외전 104화. 검은 악마의 후예 (4)

“흑마대 쪽입니까?”

“그래.”

이천상의 방 안에는 일 조장 허필, 이 조장 주연교, 삼 조장 단리우가 모여 있었다.

첫 임무에서 살아남은 조장 중 가장 통솔력이 있고 강한 조장들이 하필이면 일 조부터 삼 조였다. 신입을 제외한 다른 조장들은 개인주의가 강하거나 이천상을 신뢰하는 만큼 어려워했다.

허필이 턱을 쓰다듬었다.

“혈마대가 아니라 흑마대 쪽이라…… 하긴, 주 진법 능력을 생각하면 우리가 흑마 쪽으로 붙는 게 좋긴 하겠습니다만.”

이각은 전면전에 능하고 삼각은 중장거리에서의 기습 침투, 중앙 돌파에 능하다.

물론 지금의 사령은 다른 부대의 진법도 전부 배우고 익히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 진법에 익숙한 것이 당연했다.

일각의 군랑진은 넓은 반경에서의 산개 전투에도 능하고 하나로 뭉쳐 강하게 압박하는 데에도 능하다. 말하자면 이각과 삼각보다 전문적이진 않되, 두 곳보다 유연한 전투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혈마대에는 어디가 갑니까?”

“삼각이 간다.”

“역시 그렇겠지요. 산악전에 가장 능하니까요.”

야수궁은 운남 애뇌산 인근에 자리 잡은 새외사궁 중 하나다. 워낙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는 데다가 원체 험해서 부대 단위로 싸우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러니 체력이 좋고 치고 빠지는 데에 능한 삼각 야차들이 이들 중 산악전에 가장 적합한 부대라 할 수 있었다.

“흑마든 혈마든 우리가 할 일은 지원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싸울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전포를 입은 이천상은 평소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애들은 준비됐나.”

“그렇습니다.”

이천상은 문득 야차번을 바라보았다.

벽에 기대어 선 야차번, 철봉에 달려 흘러내리는 붉은색 굵은 천이 목이 잘린 귀신의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한참 동안 야차번을 보던 그의 눈이 그 옆 직도와 박도로 향했다.

순간 도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구결이 허술하다고는 했지만, 상단전을 건드리는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권장술(拳掌術)의 깊은 이치가 담겨 있네. 나는 자네가 칼을 쓰기 전에 맨손부터 연마했으면 좋겠네.

도헌이 혈강수의 비급을 준 이유 중 하나였다.

이천상은 시간이 꽤 지나서야, 도헌이 왜 칼을 쥐지 말고 맨손부터 연마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맨손 무공은 가장 원초적인 투술이다.’

싸우다가 칼이 부러지거나 놓쳤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때 익숙한 병기가 없다고 그냥 죽어 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천하의 어떤 무공을 익히건 권장법은 기본이다.

게다가 맨손 무공을 제대로 익히면 상대와의 거리를 타지 않는다.

십일 조장 위찬에게는 철저하게 검을 연마하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위찬의 재능이 검에 특출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맨손 무공부터 익히라고 하기에는 그 자신이 깨달은 무도가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이천상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강하게 쥐어진 주먹. 그 안에 깃든 것은 인간이 지닌 힘의 결정체였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겠다.

사람은 의지가 강할수록, 그리고 창칼을 꼬나쥔 적과 가까워질수록 주먹을 점점 더 강하게 쥐게 된다.

바로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고 싶기 때문이다.

내 몸에 닥친 이 위급한 상황을 자력으로 이겨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적을 쓰러트려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통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맨손으로 적과 생사결을 나눈 사람은, 그 어떤 전투에서도 망설임 없이 돌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맨손 무공을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이었다.

애초에 공포심조차 없었던, 아니 느끼지 못했던 이천상은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알았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흑마대의 임무 특성상 깃발을 들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천상이 벽에 걸린 직도(直刀)를 꺼내 뽑아 보았다.

날에서 반사된 시린 빛이 두 눈을 아프게 찔렀다. 비록 쓰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칼날 관리를 열심히 했기에 막 만들어진 것처럼 매끈했다.

주연교의 눈에 의아함이 일었다.

“각주님. 이번에는 칼을 쓰십니까?”

“아니.”

탁!

직도를 칼집에 넣은 그가 다시 벽에 걸었다.

그러곤 탁자 옆에 놔둔 가죽 요대를 들어 다시 허리에 둘렀다.

가죽 요대에는 두 자루의 비수가 매달려 있었다. 애초에 요대에 찰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수들이었다.

‘아직은 저만한 칼을 쥘 때가 아니야.’

그때, 단리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비수는……?”

모두가 단리우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쏟아진 시선에 단리우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혹시 흑영쌍비(黑影雙匕)가 아닙니까?”

“알고 있나?”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본 유일한 보병(寶兵)이라…….”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섬비괴마(閃匕怪魔)라는 사람이 썼던 비수라더군.”

이번엔 허필과 주연교가 깜짝 놀랐다.

“섬비괴마라면 십 년 전에 죽은 칠십이마장(七十二魔將)의 일인 아닙니까?”

“그렇다더군.”

“허어.”

흑영쌍비는 공무외가 도헌을 통해 건네준 선물 중 하나였다.

복건 호마상단으로의 첫 임무 전에 받은 것인데, 그때는 제대로 쓸 수도 없을 것 같아서 차지 않았다.

허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와는 급이 다르십니다.”

가만히 허필을 보던 이천상이 주연교와 단리우에게 말했다.

“둘은 애들 출정 준비시키도록.”

두 사람은 허필을 힐끔거렸다. 괜히 이천상한테 한 소리 들을 것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진 탓이었다.

허필은 다 좋은데 가끔 혓바닥을 참 곤란하게 놀렸다. 실제 성격은 의리도 있고 사람 챙길 줄도 알았지만, 저놈의 주둥이 때문에 한 번 사달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보아하니 그 사달이 오늘 나게 생겼다.

주연교는 혀를 차며 나갔고 단리우는 손등으로 허필의 엉덩이를 툭 치고 갔다.

그렇게 방에는 이천상과 허필 둘만 남았다.

허필이 입맛을 다셨다.

“불편하셨습니까?”

“그래, 불편하군.”

“그러실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언사에 주의하도록 하지요.”

이천상이 살짝 턱을 당기며 허필을 바라보았다.

허필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 때리십시오.”

“때리면 봉인 풀 건가?”

“……?”

“네가 봉인하고 있는 그 마공, 완전히 풀어 낼 거냐고 물었다.”

순간 허필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이 뒷짐을 졌다.

“첫 임무 때도 그랬지만, 이번 임무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신입까지 받은 터라 작은 실수 한 번에도 많은 사상자가 날 수 있지.”

어떤 임무라도 그럴 것이다. 다만, 흑마대가 지원 요청까지 한 상황이라면 절대 쉬운 임무는 아니다.

“……보이셨습니까?”

허필의 말에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

“다만 그 깊이를 명확히 알지는 못했다. 근래 들어 알게 되었다. 허 조장이 봉인한 그 내공, 아니 마공의 힘이 각주들에 비해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

“그리고 자네, 세 마공도 익히지 않았잖나.”

“그랬지요.”

“실력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자네가 봉인하고 있는 그 마공을 보면, 실로 그럴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

“그것이 전대 십대마왕의 하나, 대력신마의 무공인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허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자네 의지대로 봉인을 풀 수 있는 마공인가?”

“……그렇습니다.”

“그 말인즉슨, 첫 임무 때도 충분히 풀 수 있었다는 뜻이로군.”

허필이 눈을 감았다.

“각주님. 저는…….”

“사정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최소한 죽어 가는 부하들을 보면서도 외면할 만한 성격은 아니라고 본다. 하물며 까딱 잘못했다간 자신도 죽을 판인데, 그런 와중에도 봉인은 풀지 않았어. 이유가 있겠지.”

허필이 입술을 깨물었다.

애써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마공을 개방하는 것은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설령 그 위기에서 벗어난다 한들…… 후일이 문제였다.

이천상이 눈을 빛냈다.

“이유는 더 묻지 않겠다. 이번 임무에서, 모두의 목숨이 위험하다 싶은 순간 그 봉인을 풀어라.”

“각주님.”

“내가 허락하겠다.”

“……?!”

“넌 야차사령의 조장이다. 쫓겨난 호법원의 호마가 아니야.”

“…….”

“명령을 들어도 나한테 들어라. 책임을 져도 내가 진다. 네 목숨이 끊어지는 등의 부작용이라면 봉인을 추천하지 않겠지만, 혹시 모를 외압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접어 두어라.”

허필이 떨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보았다.

이천상이 몸을 돌려 탁자 위의 책자 하나를 집어 허필에게 건넸다.

“출병은 한 시진 뒤다. 야차들을 준비시키고 그것부터 읽어라.”

“……이게 무엇입니까?”

“혈화마공의 비급이다.”

“이것을 왜?”

“개방하지 않은 그 마공의 흐름이 혈화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보았다. 아니면 어쩔 수 없지.”

“…….”

“뭐가 되었든 도움은 될 것이다. 읽고 태워 버려라.”

가만히 이천상을 보던 허필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허필까지 나가자 드넓은 방에 이천상 혼자 남게 되었다.

의자에 앉은 이천상이 흑영쌍비를 뽑아 들었다.

두 자루 비수는 똑같은 형태에 똑같은 예기를 담고 있었다. 흑영이란 이름답게 칼날도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손가락과 손목의 움직임으로 자유롭게 비수를 가지고 놀던 이천상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흑마라.”

* * *

“당주님?”

“일 중이었는가.”

도헌이 웃으며 공무외를 맞았다.

“잠깐 업무 좀 처리하느라고요. 한데 이 시간에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심란한 눈으로 도헌을 보던 공무외가 한숨을 쉬었다.

도헌은 그의 태도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

“당주님.”

“내가 이곳에 직접 온 것은, 자네가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기를 바라서이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알게 될 테니까.”

“예?”

“나와 함께하면서 사사로운 정은 많이 끊어 냈으리라고 보내.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결단도 필요하니까. 다만…….”

“……?”

“그래도 자네는 정 많은 사내가 아닌가? 하긴, 그래서 자네를 좋아하네. 정을 끊지 않았음에도 독한 결정을 내렸으니 보통 사람과는 정신력부터가 남다른 셈이지.”

“당주님. 저는 당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흑마대주 소공과 친분이 있지 않나.”

“예에. 술친구 하는 사이입니다만.”

“흑마대가 어떤 임무를 맡았는지는 자네도 알겠지.”

얘기가 자꾸 도는 느낌이었다.

도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년 전 도주한 노마들을 포획, 혹은 없애기 위해 출정한 것으로 압니다. 명단까지는 모르지만요.”

“흑마대주와 조장 몇몇이 적의 손에 사로잡혔다는 첩보를 받았네.”

“예?”

도헌은 깜짝 놀랐다. 소공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까닭이었다.

공무외가 한숨을 쉬었다.

“그뿐만이 아닐세. 흑마대와 혈마대에게 지원 병력을 붙였는데, 그 병력이 바로 야차사령이라네.”

“……!”

“그리고 그 흑마대에게 사령 일군이 붙었네.”

순간 도헌이 침을 삼켰다.

사령 일군.

일군은 일각이고, 일각의 주인은 이천상이다. 이천상의 부대가 흑마대에게 붙었다는 뜻이다.

“이천상…….”

“하필 일군에는 백골 어르신의 손자도 있네.”

공무외가 눈을 부릅떴다.

“내 나름대로 지원할 터이니 자네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네. 내 말, 알아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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