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06화. 검은 악마의 후예 (6)
“…….”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천상의 눈이 달처럼 서늘해졌다.
주연교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군주님. 야영을 준비할까요?”
“그러도록.”
십만대산에서 출발한 야차일군은 순식간에 강서성으로 진입, 어느새 우도(于都) 인근에 당도했다.
광동성과 인접했는데도 기후가 전혀 달랐다. 확실히 더 건조하고 서늘했다.
야차들에게 야영 명령을 내리고 온 주연교가 손을 털며 말했다.
“전체 훈련 때는 크게 티가 안 났는데, 막상 이렇게 나오니까 티가 나네요.”
“뭐가 말인가.”
“야차들 숫자요.”
현재 일각은 십일 조까지만 딱 맞춰서 받았다.
사실 더 받으려면 충분히 받을 수 있었지만, 야차사령은 더는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조직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이천상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이끄는 일각은 더더욱 인원 관리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고르고 고른 인물들로 겨우 십일 조까지 채웠으니, 이천상을 제외한 백십 명의 야차들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주연교가 저 멀리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았다.
“저기가 백운산이로군요.”
“그래.”
한참이나 떨어진 거리였지만, 내공이 심후한 그들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주연교의 눈이 깊어졌다.
“총 다섯 명이라고 하셨지요.”
“지금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도주한 전대 노마들을 말함이다.
노마라고는 하지만, 도주할 당시 그들은 중년의 나이였다. 지금으로서는 노마지만, 그때 기준으론 한창때였다.
“하나같이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 들었습니다.”
“단전이 멀쩡한 마인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전부 끔찍한 내외상을 입어서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거동도 불가능할 지경이었다더군.”
“그런 몸으로 어떻게 살아 있었을까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이천상이 그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야영 준비가 끝나는 즉시 조장들을 불러와라.”
“예.”
잠시 후.
조장들이 이천상 주변에 모였다.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흑마대주 소공과 삼, 사, 오 조장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납치지만, 아직 목숨이 붙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유상천이 입을 열었다.
“죽었을 겁니다.”
조장들이 유상천을 바라보았다.
유상천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자기 의견을 피력할 자리에서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이천상이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나?”
“지금껏 본교를 상대로 벌인 인질극이 성공한 사례는 전무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먼 옛날, 차기 교주위에 오른 분께서 무도한 정파 놈들에게 납치당했을 때조차 당시 교주님께서 적들과 함께 불태웠다고 들었습니다.”
꽤 살벌한 사건이라 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그러한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본교에서 활동했던 이들입니다. 당연히 본교의 무자비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주연교가 입을 열었다.
“저도 십 조장의 말에는 동의합니다.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가능성을 놓고 볼 때 살아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천상이 조장들을 둘러보았다.
십일 조장 위찬까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단 한 명, 허필만큼은 신중한 눈으로 백운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천상이 물었다.
“일 조장의 생각은 어떤가.”
허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조장들이 허필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이 물었다.
“우리 모두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일 조장의 잘 모르겠다는 말은 생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리는군.”
“솔직히…….”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던 허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만 생각하면, 오히려 생존에 가깝다고 봅니다.”
조장들이 놀란 눈으로 허필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이 다시 물었다.
“이유는?”
“물론 죽였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문제는 도주한 전대 노마들의 성향입니다.”
단리우가 물었다.
“성향이라면, 그들이 죄다 선하다는 뜻이오?”
허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그들의 직책과 과거 행적에 관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오히려 무자비한 면이 있다고 보여지는군. 당시 본교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런 단호한 면이 없는 자들이 내성 전투 부대 수장이 될 수는 없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렇긴 하지.”
“다만 자신들의 가족을 끔찍하게 아꼈다는 내용이 있어. 보고서에 작성될 정도라면, 그러한 성향이 유독 강하다는 뜻이겠지?”
“음.”
“흑마대의 사 조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목장백이라는 사람인데, 허물어진 목씨 집안에서 나름 출중한 재능으로 본교에 입교했다고 했지.”
허필이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잘 나가던 목씨 집안이 왜 허물어졌는가?”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주한 노마 중 둘이 목씨였지.”
“그렇습니다.”
허필이 턱을 쓰다듬었다. 며칠 관리하지 못해 턱수염이 수북하게 자라나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본교의 배신자입니다. 그런데도 목씨 집안이 완전히 절멸되지 않은 것은 선대가 쌓은 공(功) 때문이지요. 그 공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요.”
주연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다 보니 기억이 나네요. 저도 환희원 시절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교의 목씨 집안은 수백 년 전부터 본교를 위해 헌신한 가문이라고 했지요.”
유상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따로 나가지 않았소? 그 정도 헌신을 보여 줬다면 마도칠가(魔道七家)처럼 외부에 똬리를 틀어도 괜찮았을 텐데. 본교가 지원도 해 줬을 거고.”
“그건 나도 몰라.”
주연교가 허필을 바라보았다.
“일 조장은?”
허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 역시 그리 세세한 건 몰라.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목씨 집안이 반역자들을 둘 이상 배출하고도 제재만 받는 정도에서 끝난 이유는 그들의 공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것이지.”
“음.”
“아닌 말로 그 정도면 몰살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은혜야. 한데도 목장백처럼 재능이 있는 목가가 있으면 또 받아 주기까지 했어. 본교는 결코 물렁하지 않아. 그만큼 목씨 집안에게 함부로 하기가 어려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지.”
“즉.”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일 조장 말은 신교에 머무는 목씨들을 위해서라도 이쪽 부대를 함부로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인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물며 흑마대 사 조장이 자신들의 핏줄이니 더더욱 어찌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허필이 입맛을 다셨다.
“어쩌면 일부러 흑마대를 보냈을지도 모르지요. 목장백이 조장으로 있으니까. 아니면 목씨 집안의 충성을 확인해 볼 의도로 보냈을지도 모르고요.”
조장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천상이 재차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자세한 사정까지 알 필요는 없다. 작전을 행함에 있어 누구와 상의할 수 없는 순간에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중요한 건 그것이다. 임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으면 돼.”
“그것도 그렇지요.”
“게다가 우리는 지원 부대일 뿐, 전대 노마들을 이송해 가는 것은 흑마대의 임무다. 어쩌면 그 임무를 우리가 이어받을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철저한 지원 형태로 움직일 테니 조장들은 야차들 관리 제대로 하도록.”
이천상이 유상천과 위찬을 바라보았다.
“특히 신입 조장들은 더더욱 야차들 관리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이번이 첫 임무일 테니까.”
유상천과 위찬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뜨기 직전까지 휴식을 취한다. 그 전에 흑마대 본대에서 연락이 오면 곧장 움직일 것이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동녘이 떠오르자마자 출발한다.”
조장들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홀로 남은 이천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하군.’
모든 것을 항상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파악하는 것이 습관이 된 그였다.
하지만 왜인지, 근래 들어 자꾸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느낌이라고 말했지만, 느낌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항상 이천상의 감각을 두들겼다.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기분이 이상하다고 표현하는 것인가.’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 이천상은 기분이 이상했다.
문제는 그것이 논리적으로 해석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천상의 머리는 평소와 달리 알 수 없는 오류를 자꾸만 일으키고 있었다.
기실, 허필의 분석은 이천상이 진즉 도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평소와 달리 그것을 확신할 수가 없었고, 제대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묘했다.
자꾸만 생각이 끊기고, 예전만큼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훨씬 더 편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전처럼 다 읽히고 있는데, 또 그것을 예전처럼 하나하나 분석하며 교차 검증할 필요가 없이 곧장 반응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크나큰 변화였다.
이천상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 폭발적인 변화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 당황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는 것에 또 한 번 당황했다.
근래 그가 잠에 못 드는 이유였다. 이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지금까지도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넘기면 그뿐이다. 예전의 이천상은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공 때문인가? 아니면 병이라도 걸린 건가.’
다행인 것은 무공이 소실되거나 약해지는 등의 변화 따위는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오히려 마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갔다.
이천상이 무표정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왜 한숨을 쉬겠는지 알겠다고 생각하며,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 * *
다음 날 새벽.
저 멀리 동쪽이 조금씩 밝아지는 기미가 보였다.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전원…….”
이미 깨 있던 야차들이 눈을 빛냈다.
그때, 이천상이 저 멀리 언덕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대기.”
이천상이 주연교와 단리우를 향해 손짓했다.
“선임 조장 허필은 잠시 부대를 맡도록.”
훅!
이천상과 두 조장이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상당히 가파른 비탈길이었지만, 세 사람은 순식간에 타 내려갔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흑마대.”
저 멀리 숲에서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한 명이 몸을 일으키자 그 뒤에 은신해 있던 나머지 백여 명의 마인들도 몸을 일으켰다.
주연교와 단리우는 깜짝 놀랐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 숨어 있었음에도 몸을 일으킬 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뭇잎이 몸에 부딪히는 걸 빤히 봤는데도 소리가 없었다.
‘은신술!’
평범한 은신술이 아니었다. 단순히 기척을 줄이는 걸 넘어, 자신 주변의 소리까지 제어하는 놀라운 기예였다.
선두에 선 사내가 입을 열었다.
“외원 야차사령 일군의 주인인가.”
주연교와 단리우의 눈이 살벌해졌다.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
이천상의 무뚝뚝한 대답에 사내의 눈빛도 날카로워졌다.
이천상이 말을 이었다.
“흑마대가 맞나?”
“……그렇다.”
“소속을 밝혀라.”
사내의 볼이 살짝 떨렸다.
그는 이천상을 알고 있었다. 이유인즉, 이천상을 신교로 데리고 올 때, 그 임무를 맡았던 것이 그의 조였기 때문이다.
내공 한 줌 없었던 범부가, 어느새 야차사령의 마인이 되어 자신에게 하대하고 있다.
기분이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흑마대 일 조장 곽소종이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에도 있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이들의 은밀한 마기는 천마신교의 정통 마공이 아니고서야 풍길 수 없는 것이었다.
“지원 부대로 왔다. 어떻게 움직여 주면 되겠나?”
곽소종의 눈이 번뜩였다.
“단도직입적이군. 좋아, 그렇게 나와 주면 우리야 편하지.”
“말해라.”
“백운산으로 침투해 주었으면 한다. 너희 전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