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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08화 (758/774)

외전 108화. 천재(天才)와 마재(魔才) (2)

소공의 눈이 흔들렸다.

유이상은 즉시 자세를 낮춘 채 마기를 끌어 올렸다. 와중에 은밀히 이산공을 운용하며 폭발적인 일격을 준비했다.

“후우우.”

어인 일인지 허공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했다.

그가 느긋하게 곰방대를 뻐끔댈 때마다 연기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졌다.

‘빌어먹을.’

유이상은 허공의 자세를 살폈다.

한 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곰방대를 쥐고 있다. 굽은 허리, 크지 않은 체격에 살집도 없어서 더 초라해 뵌다.

그런데도 도무지 공격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골 촌로와 다를 바 없었지만, 유이상의 눈에는 한 점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무결한 자세로 보였다.

‘이상해.’

그 와중에도 유이상은 허공의 몸에서 흐르는 허허로운 기운의 실체를 더듬어 가고 있었다.

‘마공이 아니야.’

그때, 허공이 말했다.

“고민하고 있었느니라.”

뜬금없는 말에 소공은 생각을 멈추고 바짝 긴장했다.

허공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너희와 이런저런 담소나 나눌까, 아니면 풀어 줄까.”

“……?”

“그도 아니면 그냥 죽여야 하나…… 고민이 많았느니라.”

유이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담소, 석방, 살인. 세 가지 결과가 어째 다 다른데?”

“그러게 말이다. 한데 자네는 이름이 뭔가?”

“알아서 뭐 하시게, 이 노친네야.”

“거 예의범절을 모르는 친굴세. 연장자를 앞에 두고도 말버릇이 고약해.”

“애초에 우리 임무는 댁들을 이송하는 거였다. 목표물에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지.”

“잡아 죽일 대상도 아닌데 적당히 좀 차려 주면 안 되나? 그래도 내가 자네들보다 한참 선배인데.”

가만히 허공을 보던 유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놔주면 선배 대우 해 드릴게.”

“재미있는 친구로군.”

허공이 한 번 더 연기를 뿜었다.

순간 소공의 눈이 흔들렸다. 허공의 입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자연스럽게 꿈틀거리더니, 한 마리 용의 형상을 갖추다가 흩어지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저건?’

유이상 역시 그것을 발견했는지 툭 던지듯 말했다.

“어디 유랑 극단 출신이신가? 연기로 희한한 걸 만드네?”

“신기한가?”

“안 신기해할 사람 있나?”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유이상은 끊임없이 허공의 빈틈을 찾았다.

허공이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군. 그 와중에도 내 빈틈을 찾나? 내공은 어설픈데 실력은 좋다…… 이런 인재를 오래 방치해 둘 만큼 어설픈 곳이 아니니, 필경 무공을 접한 지 얼마 안 된 천재로군.”

유이상의 볼이 살짝 떨렸다.

그때, 소공이 말했다.

“용연기환공(龍煙奇幻功).”

“으음?”

허공이 소공을 보았다.

소공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환공이지만 정공(正功)으로 분류되는 무공으로, 중원이 아닌 새외 어딘가에서 기원한 절공이라 알고 있소.”

허공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한 식견이로고. 하기야, 목가 늙은이가 자네더러 보통 고수가 아니라고 했었지. 실력만 뛰어나다고 그런 평가를 할 위인이 아니야. 내가 못 본 무언가를, 그 늙은이는 본 모양이로군.”

“당신은 마공을 익히지 않았군.”

허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그 한기 가득한 눈빛에 소공과 유이상 둘 다 움찔했다.

“익히지 않지. 익힐 수가 없지. 익히고 싶지도 않아. 그날 우리의 단전을 파헤친 이들이 마인이었다. 평생 장애를 겪고 살지언정 마공을 익힐 생각 따위는 없다.”

“하지만 나와 붙었던 배반자는 마공을…….”

“닥치지 못할까!”

갑작스레 울리는 허공의 목소리에 순간 공기가 확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허공의 눈에 불이 붙었다.

“함부로 배반자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마라.”

여전히 긴장했지만, 소공이라고 허공에게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사태가 이러해서 신중해졌을 뿐, 그는 누구에게 겁을 집어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배반자가 아니면 무엇이오? 대죄를 지어 놓고 외부인과 결탁해 탈주했으니 이는 훌륭한 중죄이올시다.”

사아악!

허공의 몸에서 인 살기가 순식간에 유이상과 소공, 목장백을 집어삼켰다.

‘젠장!’

유이상은 속으로 소공을 씹었다.

‘빈틈을 만들려고 자극하는 건 알겠지만, 빌어먹을 노친네는 나랑 수준이 다르다고요!’

주르륵.

목장백의 입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소공의 어깨를 적셨다.

무시무시한 눈으로 소공을 노려보던 허공이 이내 살기를 줄였다.

훅!

차가운 공기가 불어닥쳤다. 열탕처럼 끓는 살기가 사라지고 나니, 갑작스레 추워진 기분이었다.

허공이 몸을 돌렸다.

“들어가라. 너희는 돌아갈 수 없다.”

소공이 말했다.

“그대의 고민 세 가지 중 하나가 우리를 풀어 주는 것이었소.”

“마음이 바뀌었다.”

“그럼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나 들어 봅시다.”

허공이 같잖다는 눈으로 소공을 돌아보았다.

“네놈의 처지를 알기나 하는 것이더냐? 네놈들은 우리에게 사로잡힌 인질이다.”

“인질을 풀어 줄 생각도 했으니 그대도 정상은 아니구려.”

“형법당 뇌옥에 갇힌 순간부터 우리는 정상이 아니었지.”

허공이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이상은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켰다. 빤히 등을 보이고 있는데도 쉽사리 공격할 수가 없었다.

‘크다.’

허공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컸다.

실제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얼핏 보면 내성 원주급 인사, 즉 초절정고수 같지는 않은데, 사람을 막막하게 하는 압박감만큼은 그 이상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용연기환공? 그게 뭐지?’

가만히 허공을 쏘아보던 유이상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공이 의아한 눈으로 유이상을 보았다. 허공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유이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존댓말 써 주겠수다.”

“존댓말을 쓰는데도 싸가지 없어 보이기는 쉽지 않은데.”

“내 성격이 이 모양인 걸 어쩌겠소? 말투라도 바꿔 줬으니 다행 아니오?”

허공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푸스스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좌우로 흩어지며 거대한 용의 형상을 만들었다.

회백색 연기로 이뤄진 두 마리 용이었다. 그 크기는 놀랍게도 장정 서넛을 합친 것보다도 더 컸다.

“다시 한번 주절거려 보거라.”

유이상이 씨익 웃다가 버럭 소리쳤다.

“이보시오! 우리 탈출했소!”

허공과 소공은 깜짝 놀랐다. 유이상의 목소리가 사방팔방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영마기를 한껏 실은 목소리가 협곡 전체로 메아리를 쳤다. 음공(音功)은 아니지만, 소리의 크기는 음공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소공이 빠르게 말했다.

“무슨 짓이야?!”

그때였다.

스르륵.

섬뜩한 기세 두 줄기가 좌우에서 나타났다.

명백한 마인의 기세였다. 어딘가 불안정했지만, 그 기세가 신교육대의 대주급을 상회하고 있었다.

“뭐야?”

나타난 노인 중 하나, 함광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저놈들이 어찌 저기서 나왔지?”

허공이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하니 저놈이 대놓고 소리를 질러 이 늙은이들을 모을 줄 몰랐던 것이다.

“모르겠다. 뭔가 괴상한 무공을 익힌 것이겠지.”

함광이 허공을 노려보았다.

“늙은이, 설마 자네가 이들을 풀어 준 것인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내가 이놈들을 왜 풀어 준단 말인가.”

“그게 아니면! 내 봉마결수(封魔結手)를 저 미숙한 놈이 풀었다는 소리인가?!”

“닥치지 못해!”

“늙은이나 닥쳐라! 이봐, 목가야!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저놈은 아직 멀었다고! 대산에 대한 정을 여태 끊지 못해 인질까지 풀어 주다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화아아악!

두 줄기 회백색 용이 함광을 노려보았다.

허공이 살기가 그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더 나를 모욕했다가는 네놈의 단전을 또 부숴 주겠다.”

“저 새끼가!”

화아아악!

허공과 함광이 풍기는 살기가 맞부딪치며 흙먼지를 날렸다.

유이상은 눈알을 굴렸다. 이판사판으로 난장판을 만들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은 전략 같지 않은가.

그때였다.

콰르릉!

한 줄기 묵직한 권풍이 부딪치는 살기 한가운데를 뚫고 땅을 뒤집었다.

모두가 권풍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중키에 평범한 체격. 외모도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이 난장판 속에서도 감정적인 동요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노인, 목진강이 말했다.

“진정들 하지.”

“……크흠.”

목진강의 한마디에 두 노인이 고개를 홱 돌렸다.

싸움 종료. 허무하리만치 쉽게 끝나 버린 신경전이었다.

유이상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강하다.’

조금 전, 대지를 갈아 버린 그 권풍의 위력은 지금의 그로서는 받아 내기 힘든 것이었다.

‘엄청나구만. 광마대주님의 육장(肉掌) 기공보다 두 수 이상 위야. 위력만 보면 거의 초절정…….’

그때, 소공이 외쳤다.

“당신, 목가요?”목

진강이 소공을 바라보았다.

소공이 어깨에 업힌 목장백을 내렸다.

“이 친구, 숨넘어가기 직전이오. 이 친구 몸에 마기를…….”

“그놈도 목가라고 했던가.”

“……그렇소.”

목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와라.”

가만히 목진강을 보던 소공이 목장백을 들었다.

그때, 유이상이 소공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 하는 거냐?”

“저 늙은이에게 맡기려고 그러는 겁니까?”

“그렇다.”

“안 됩니다.”

소공은 초조했다.

“비켜, 인마! 사 조장 이대로 두면 죽어!”

“저 늙은이한테 맡기면 즉사합니다.”

“뭐?”

유이상이 긴장한 눈으로 목진강을 바라보았다.

“저 늙은이, 사 조장을 죽일 생각입니다.”

소공은 깜짝 놀라 목진강을 바라보았다.

목진강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딱히 섬뜩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미소였기에 더더욱 무서워 보이는 미소였다.

“어떻게 알았느냐?”

“감이오.”

“감이라?”

“살기는 없는데 위화감이 너무 진해.”

“흐음.”

“목가라면 먼 친척이라도 집안사람인데 서슴없이 죽이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댁도 정상이 아니로구만.”

목진강이 고개를 저었다.

“문 내 어른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한 놈도 찾아오지 않는데 내가 왜 그놈들에게 애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냐?”

“과연 선배는 선배로구만. 그 나이쯤 되어야 진짜 마귀가 되는 거요?”

“하물며 그 연배에 고작 육대 조장급이라…… 재능도 없는 놈은 신교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험한 꼴 보기 전에 지금 죽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지.”

유이상의 눈에 불이 붙었다.

“지랄하고 있네, 이 미친 개 같은 늙은이가. 곱게 뒈지지도 못하고 처나가서 비루한 인생 연명한 주제에 어디서 궤변 같지도 않은 궤변이야, 시발 놈이.”

무지막지한 쌍욕이었다. 허공과 함광의 눈에 파르라니 살기가 일었다.

목진강이 툭 던지듯 말했다.

“지금 죽고 싶으냐?”

“장난하냐?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죽고 싶지도 않은데 그런…….”

“확실히 감이 떨어지긴 한 모양이구만.”

“……?”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를 잡아 두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너희는 지금 죽거나 이송돼서 죽을 거야.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싹싹 빌면 선배들에게 이송은 하자고 설득해 주지.”

“그게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더냐?”

“거봐, 감 떨어진 거 맞다니까.”

유이상이 씨익 웃었다.

“아니면 내가 천재라서 나만 느낄 수 있는 건가?”

그때였다.

콰릉!

저 멀리 우측 샛길에서 강렬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쿠르릉! 쿠릉!

아름드리나무가 마구 쓰러지는 소리였다. 놀란 허공과 함광이 굉음이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백여 장 밖.

무심한 금빛 연기를 피워 올리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 뒤로, 시커먼 장포를 걸친 늑대들이 돌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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