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0화. 천재(天才)와 마재(魔才) (4)
“멈춰라!”
목진강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 달리 무척이나 격양되고 살기등등했다.
화아아악!
무서운 마기가 집약된 그의 손이 소공과 목장백, 유이상에게 향했다.
찰나지간 집약시킨 마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이었다. 어떤 무공인지는 몰라도 기세만 보면 일장에 세 사람을 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천상이 재차 손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바로 뒤까지 도달한 야차들이 진군을 멈추었다.
훅.
야차들이 내뿜는 마기가 강한 압력을 자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열탕처럼 뜨거워졌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소공은 감탄했다.
‘대단한 절도다.’
뒤가 없는 진군 명령을 받아 달려오는 야차들은 분명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런데도 이천상의 지시에 곧장 멈추었다. 대열을 완벽하게 유지한 채로.
백이 넘는 병력이 수장의 손짓 한 번에 멈추는 광경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야차들의 눈치가 뛰어나다는 뜻이었고, 이천상이 수장으로서 완벽한 신뢰를 받는다는 방증이었다.
나아가 저와 같은 속도로 달려들다가 일순간 정지한다는 것은, 야차들이 철저하게 단련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는 생각했지만…….’
소공은 혀를 내둘렀다.
‘저 녀석, 저렇게까지 강해졌을 줄이야.’
이천상의 마기는 철저하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그것도 대단한 것이다. 마기는 패도적이고 음험하며 강렬하고도 사악하다. 중원의 여느 신공과 달리 제대로 갈무리하기가 어려운 기운이었다.
흑영마공처럼 은신술에 특화된 마공이 아닌데도 이천상은 자신의 마기를 거의 완벽하게 갈무리하고 있었다. 한 수 위의 고수에게는 들킬 수밖에 없다고 하나, 저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연스레 갈무리할 정도라면 이천상의 경지가 어지간한 전투 부대 수장급 이상이라는 말이었다.
소공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묘한 두려움을 느꼈다.
‘고작 일 년도 되지 않았거늘 어떻게 저러한 경지를?!’
사람이 기재(奇才)를 보면 감탄하게 된다. 천재(天才)를 보면 감동과 질투를 느낀다.
그러나 이천상은 그런 수준조차도 넘어섰다. 일 년도 안 되어 저 정도 경지를 구축할 수 있는 재능은 단순히 천재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괴물이다. 천재는 만인의 추앙을 받지만, 괴물을 본 사람들은 경외감과 이질감을 느낀다.
‘유이상과 비슷하지만 한 수 뒤진다고 생각했다.’
유이상의 성과도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인체 전반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일 년도 되지 않아 흑마대의 조장급 인사로 올라왔다.
‘그게 아니었어. 최소한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만약 유이상에게도 저토록 수준 높은 마공과 영약이 지급되었다면? 유이상 역시 지금의 이천상과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정확한 확률이야 추산할 수 없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처럼 휘하 야차들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껏 봐 왔던 유이상의 모습만 보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살려서 데려온 목각 인형이 어느새 대호가 되었구나.’
심지어 그 호랑이의 성장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일 년도 안 되어 저 정도라면, 앞으로 십 년 뒤엔 천하에 적수가 없을 수도 있었다.
‘천만다행이다. 도 대주에게 맡긴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었어.’
도헌의 성격이 아니었다면 어디로 뻗어 나갈지 모르는 저 미친 재능이 부정한 권력과 결합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소름이 쭉 끼쳤다.
“감이 좋군.”
목진강의 서늘한 목소리가 소공의 상념을 깨웠다.
“기관진식을 발견한 것도 모자라 그걸 파훼하다니, 능력 이전에 감이 좋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지.”
우우웅.
목진강의 손에 집결된 마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를 불렸다.
그전까지만 해도 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힘이었다. 그 힘을 더더욱 불리고 있다는 건, 허튼짓할 시 그대로 죽여 버리겠다는 경고였다.
목진강이 담담하게 말했다.
“물러나라.”
허공이 뒤이어 말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병력을 뒤로 물려라.”
기막을 거둔 함광이 양손에 진기를 모았다. 은은한 청백색 진기가 모이는데, 목진강 정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냥 싹 쓸어 버리는 것도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은은한 살기가 야차들의 압력 속에서 송곳 같은 기세를 발했다.
유이상이 소리쳤다.
“그냥 공격하시오! 이 늙은이들은 절대……!”
“절대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목진강의 푸른 안광이 유이상을 향했다.
순간 유이상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던 목진강의 눈에 살기가 어리자, 함광과 허공이 드러내는 살기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리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지.”
진심이다.
직계 혈족은 아니지만, 먼 사촌인 목장백을 서슴없이 죽이려 한 그였다. 당연히 유이상과 소공을 죽이는 데에 망설임 따위는 없을 것이다.
소공도, 유이상도 그렇게 생각했다. 목진강의 말을 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천상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재미있군.”
재미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자 정말 살벌하게 들렸다.
“먼저 죽여라.”
“뭐라?”
“죽이라고 하였다.”
목진강의 눈이 깊어졌다.
함광이 욕설을 뱉었다.
“미친 새끼! 그런 말을 하면 우리가 못 죽일 줄 알았더냐?”
“그러니까 죽이라고 했다.”
“…….”
“인질이란 구출의 대상이 아니다. 괜스레 신경 쓰이게 만드는 존재에 불과해. 우리 손을 더럽히지 않게 해 준다면 그것도 좋지.”
허공이 입을 열었다.
“거짓말을 하는군.”
“셋을 세기 전에 죽이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난전이다.”
이천상은 상대가 생각할 시간 따위 주지 않았다.
“하나.”
단호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여전히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깃들지 않았다. 정말 셋을 셈과 동시에 공격 명령을 내릴 것 같았다.
허공의 눈이 흔들렸다.
함광이 버럭 소리쳤다.
“헛소리다! 목가야! 절대 인질들을……!”
“둘.”
내공 한 줌 섞지 않은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긴장감을 유발할 줄이야.
목진강은 굳은 표정으로 이천상을 노려보았다.
‘진짜다.’
무심한 눈빛, 표정 없는 얼굴.
피우는 기세와 함께, 곧장 공격하려는 듯 미세하게 어깨를 꿈틀거리는 모습까지.
저놈은 진짜로 공격 명령을 내릴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비록 놈들의 숫자와 기세가 대단하긴 했지만, 정면 승부만 피한다면 어떻게든 다 죽여 버릴 자신이 있었다.
당연히 죽자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쪽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싸움이 아니라 후퇴, 도주라는 선택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들’이 오지 않았다.
회수조(回收組)가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이놈들을 사로잡아야 했다.
물론 이들이 다 죽어도 위에서 문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 몇 번 실패했다고 싹 죽일 정도로 정나미 없는 조직이었다면 애초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테니까.
다만, 그들이 바라는 노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공산이 컸다.
이천상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
“잠깐.”
목진강이 입을 열었다.
후우웅.
세 사람에게 뻗은 손을 내리니, 강력하게 집결되었던 마기도 사라졌다.
목진강이 양손을 들었다.
“우리가 졌네.”
함광과 허공이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목가야?!”
“뭐 하자는 짓이야!”
목진강이 고개를 저었다.
“저 무심한 놈 눈빛 좀 보게. 허세인 줄 알았는데 진짜야. 진짜로 싹 쓸어 버릴 생각이란 말일세.”
두 사람이 이천상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천상의 표정과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몸에 갈무리된 마기도 그대로였고 자세 역시 똑같았다.
하지만 목진강의 확신 어린 말 때문일까? 두 사람은 이천상의 아무 변화 없는 그 모습에서 강한 위압감을 느꼈다.
목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천상은 목진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소공에게 말했다.
“몸은 어떻소?”
여기서? 이 시점에 나한테 말을 건다고?
짧게 눈을 굴리던 소공이 헛기침하며 대답했다.
“보다시피 무기력하네.”
“내공 운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오?”
“그렇다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강이 재차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때보다 예의가 없는 건 분명한 듯하군. 적어도 그때 마인들은 엄격한 만큼이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
“그렇게 엄격하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자가 죽어야 할 때 죽지도 못하고 이 자리에 있군.”
“……!”
“과거를 들먹이지 말라. 마공을 익혔다고 다 마인은 아니다. 그대는 마(魔)도, 그 무엇도 되지 못한 버러지일 뿐이다.”
이천상의 무심한 말은 살벌한 비수가 되어 목진강의 가슴에 꽂혔다.
목진강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저보다 더 치졸하고 사나운 욕설을 들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정심(定心)의 소유자가 그였다. 한데 이상하게 이천상의 말은 무시가 되지 않았다.
그 무감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는 마치 선악을 초월한 절대자의 그것과 같았다. 모든 것을 초월한 자가 재판을 내리는 듯, 진정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기괴한 목소리였다.
목진강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그때였다.
이천상의 발이 힘차게 대지를 찍어 눌렀다.
쿠우우웅!!
무시무시한 진각과 함께 차곡차곡 갈무리해 두었던 금강야차마공의 진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진각에 야차들을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 목진강은 저도 모르게 유이상과 소공, 목장백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쿠르르릉!
순간 저 멀리 바위 언덕 위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노마들이 고개를 돌렸다.
“저, 저거?!”
놀랍게도 그곳에서는 백여 명의 흑마대원들이 무차별로 마기를 난사하며 절벽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한 명이라면 불가능하다. 열 명이라도 절벽을 무너트릴 수는 없다.
그러나 백 명이라면, 절벽 끝을 깨서 수없이 많은 돌과 바위들을 떨어트릴 수 있었다.
목진강이 버럭 소리쳤다.
“함광!”
파아아악!
벼락처럼 움직인 함광이 쌍장을 내질렀다. 수없이 많은 바위가 떨어지기 전에 장력으로 다 부숴 버릴 셈이었다.
그 순간, 유이상이 움직였다.
파아아아악!
놀랍게도 유이상은 소공과 목장백을 내버려 둔 채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이산공을 펼쳤는지 땅을 박차는 폭발력이 엄청났다.
놀란 목진강이 유이상을 돌아보고, 허공이 몸을 날려 유이상에게로 향할 때.
후우우우우웅!!
불타오르는 금빛 마기로 꽉 찬 이천상이 손을 뻗었다.
쿠르릉!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그중 가장 놀란 것은 소공이었다.
목장백과 자신의 몸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날지는 않았지만, 땅을 구르다가도 미세하게 허공에 떠서 이천상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허, 허공섭물?!’
아니다.
이천상에게 아직 허공섭물은 무리였다. 그러나 허공섭물에 비할 만한 무시무시한 비기를 창안해 냈다.
천금마공(天禁魔功).
포(包)자 결에 이상을 깨닫고 재차 고쳐 낸, 양백호와의 술자리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새로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또 하나의 마공.
포(包)가 아닌 포(捕)다. 모든 것을 사로잡아 끌어당겨 부숴 버리는 마공이었다.
포천금마공(捕天禁魔功)으로 소공과 목장백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이천상이 외쳤다.
“지금이다.”
파파파파파팡!
야차들이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