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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12화 (762/774)

외전 112화. 천재(天才)와 마재(魔才) (6)

‘별수 없군.’

목진강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흔치 않은 기환공이 장기인 허공에게 야차일군의 진격을 막게 하고, 순수하게 기공력이 뛰어난 함광에게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막게 했다.

각자가 맡은 상황에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남은 목진강은 유이상, 소공, 목장백 셋 중 하나만이라도 잡아가면 됐다. 그러면 문제 해결이었다.

그러나 허공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죽었고, 함광 역시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이기지 못해 물러난 판이었다. 심지어 절벽 아래로 흑마대원들이 하나, 둘 몸을 날리고 있었다.

‘퇴각이다.’

목진강이 함광에게 외쳤다.

“일단 물러나세!”

하지만 함광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허 늙은이!”

이천상의 비수에 찔려 죽은 허공의 시신이 함광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비록 수십 년간 우애다운 우애도 나눠 보지 못했지만, 신교에서 도주한 후 삼십여 년을 함께 보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허공이 죽는 꼴을 보니 눈이 뒤집혔다.

“이 개자식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절규하는 함광을 향해 목진강이 외쳤다.

“함광!!”

쩌렁쩌렁한 목진강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일순간 야차와 흑마들이 움찔할 정도로 강력한 마기가 어려 있었다.

“물러나게! 우리만으로는 이놈들을……!”

번쩍!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는 북천마혜보는 가히 절정의 보법이라 할 만했다.

순식간에 함광을 향해 달려 나간 이천상이 힘차게 일장을 내질렀다.

함광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콰앙!

야차혈장을 손짓 한 번으로 튕겨 내는 함광의 내공은, 어떤 의미론 허공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었다.

“죽일 놈이!”

“함광!”

파아악!

이천상을 향해 돌진한 함광이 두 주먹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강하다.’

파파파팡! 펑!

연환으로 몰아치는 다섯 번의 주먹은 전부 피해 냈지만, 마지막 일격은 피해 내지 못했다.

이천상이 순식간에 대여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 나갔다. 쌍장을 포개어 막았는데, 막은 손에서 강한 통증이 일었다.

‘역시.’

허공 역시 내공과 경지가 이천상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 허무하게 당한 것은 방심을 유도한 전술과 내공 운용을 한눈에 꿰뚫어 본 이천상의 엄청난 안목 덕분이었다.

함광은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기공력이 돋보이지만, 그는 잡다하거나 독특한 무공이 아닌 상식적인 무공을 우직하게 익혀 온 강자였다.

지금의 이천상으로서는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 단순 경지만 따지자면, 사실상 상대가 안 되는 난적이었다.

그러나.

번쩍!

빛을 탐식하는 어두운 칼날에도 섬광이 일 수 있는 것인지.

두 자루 흑영쌍비가 사선으로 그어지며 함광의 돌진을 막아 냈다.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로운 병기였다. 함광은 이천상의 비수들이 한눈에 신병이기임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들끓은 살기를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저깟 외물 때문에 허공이 죽었다는 생각에 더 분노가 치솟았다.

“애송이가!”

파파팡!

쏟아내는 장력이 중첩되며 이천상을 향해 휘몰아쳤다.

강력한 내공이었다. 방대한 내공을 겹치고 겹쳐 밀어 내는 장력은 실로 감당키 힘든 기세를 뿜고 있었다.

이천상이 몸을 재빨리 비틀었다.

거의 동시에, 장력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앙!

미끄러지듯 허공을 지우며 나아간 장력이 바위 하나를 통째로 깨부쉈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맨몸으로 받았다가는 온몸이 찢겨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함광이 다시 이천상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번쩍!

어느새 떨어지는 돌무더기들을 밟아 가며 내려온 곽소종이 함광의 등을 향해 흑검(黑劍)을 찔러 갔다.

“이!”

함광이 몸을 회전했다.

쾅!

튕겨 나간 곽소종이 절벽에 부딪혔다.

무식한 위력이었다. 온몸의 관절을 유연하게 두어 충격을 해소했기에 살았지, 그러지 않았다면 등뼈가 쪼개져 죽었을 것이다.

파아악!

곽소종의 기습은 몹시 시기적절했다. 순식간에 함광의 품으로 파고든 이천상이 그의 가슴과 팔뚝에 깊은 자상을 냈다.

콰앙!

함광의 무릎에 맞은 이천상이 튕기듯 몸을 물렸다.

“……?!”

함광은 당황했다. 이천상을 친 무릎에서 느껴져야 할 반발력이 예상보다 훨씬 약했다.

후웅.

펄럭이는 전포 자락이 활짝 펼친 날개와도 같았다.

여유롭게 물러난 이천상. 북천마혜보로 함광의 충격을 흘려 낸 것이다.

보법의 수준도 대단했지만, 그 순간 무릎으로 공격해 올 것을 몰랐다면 절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멀리서 이천상의 무공을 본 유이상은 깜짝 놀랐다.

“뭐 저런 녀석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소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라. 저자가 바로 외전 야차사령의 일군주 이천상이다.”

소공은 유이상을 바라보았다.

유이상의 눈빛은 놀라움과 감탄, 그리고 묘한 경쟁심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럴 만도 하겠지.’

유이상의 안목은 누구 못지않게 대단했다. 재능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부터 상황 인식 능력 등, 모든 부분에서 특출난 천재였다.

그런 엄청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니 같은 흑마대원들이 영 성에 안 찼을 것이다. 분명 치고 들어가야 할 순간인데도 망설일 때가 있고, 물러나야 할 때 제대로 물러나지 않은 적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적과 싸우는 순간에는 그 통찰력이 더더욱 빛을 발했다.

유이상은 상대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무공 이상의 재능이었다. 마치 사신(死神)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압도적인 살상의 재능.

자연히 주변 사람들을 보며 답답해하고, 함께 해야 할 일을 그냥 혼자 해치워 버린 적도 꽤 많았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영역에 노니는 재능의 소유자를 발견했다.

이천상의 재능은 유이상과 또 달랐다. 유이상이 본능적으로 적을 죽일 줄 안다면, 이천상은 누구도 쫓아올 수 없는 압도적인 사고 능력으로 순식간에 적의 움직임을 포착, 대응법을 찾아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본능의 수준으로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이상에게는 없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냐.’

유이상의 표정을 본 소공이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이 저런 표정을 보여 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나 시큰둥하면서도 장난스럽고, 진지하면서도 조금은 힘이 빠진 듯한 인상이었다.

‘그럴 만도 하겠지.’

그때였다.

“대주님!”

절벽에서 내려온 수많은 흑마대원 중 십여 명이 우회하여 소공에게 다가왔다.

소공이 멋쩍은 듯 웃었다.

“왔나.”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나는 괜찮으니 여기 사 조장의 내상부터 바로잡아 줘라. 유 조장이 조금 손보긴 했는데 여전히 중태야.”

“아, 알겠습니다!”

대원 몇 명이 목장백을 끌고 가 옷을 벗기고 깨끗한 붕대를 풀어 헤쳤다.

또 다른 대원이 조심스레 권했다.

“대주님. 일단은 뒤로 물러나시지요.”

소공이 야차들을 바라보았다.

야차일군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집중을 잃지 않고 전진하고 있었다. 이천상과 곽소종이 함광을 상대하고 있었고, 떨어져 내리는 흑마대원들이 목진강에게 붙었다.

대원이 말을 이었다.

“지원 부대의 수장과도 말을 맞추었습니다. 이곳이 정리되면 다시 만나서 정비를 할 것입니다.”

소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내공 봉쇄도 풀리지 않은 자신이 있어 봤자 폐만 될 것이다.

“물러나도록 하자.”

“예!”

소공은 문득 유이상을 바라보았다.

대원들의 말을 듣기나 한 것인지, 여전히 이천상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한 그의 헤 벌린 입에서는 이제 침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 조장.”

“…….”

“유이상!”

깜짝 놀란 유이상이 소공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퇴각한다.”

“아.”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유이상을 가만히 살피던 소공이 피식 웃었다.

“너는 가서 일군주를 도와라.”

“예?”

“왜? 싫어?”

“아, 아닙니다!”

“곽 조장은 다쳤어. 게다가 그는 나를 제외하고 인원 통솔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다. 가서 곽 조장 이쪽으로 보내고, 네가 일군주와 함께 함광을 상대해라.”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자 아끼는 부하를 향한 작은 배려였다. 유이상이 씩 웃었다.

“대주님의 명을 받습니다.”

“이럴 때만 대주님이지.”

훅!

유이상이 순식간에 전권으로 진입했다.

소공이 몸을 돌렸다.

“가자.”

* * *

‘이런 놈이 있나.’

함광은 더는 분노에 사로잡혀만 있을 수 없었다.

번쩍! 번쩍!

흑영쌍비를 휘두르는 이천상의 무공은 무척이나 음험하고 날카로웠다.

처음에 드리운 그 황금빛 마기는 어디로 갔는지, 지독하게 사이하면서도 경쾌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그 마기가 비수의 능력을 몇 배로 살려 주고 있었다.

때로는 역수로 쥐고 찍어 가기도 했고 정수(正手)로 잡아 벼락처럼 몇 방 찔러 가기도 했다. 비수를 휘두르는 척하면서 팔꿈치로 빗장뼈를 노리거나, 회전하며 각법을 시전한다 싶은 순간 기괴한 보법으로 파고들어 비수를 휘둘러 댔다.

함광은 당황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마공을 구사하는 자와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비수를 애병으로 삼아 극한의 경지를 뚫은 고수는 천하에 흔치 않았다. 비수는 짧으니, 소검소도(小劍小刀)를 쥔 고수와 싸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 말할 수 있지만, 그건 직접 상대해 본 적 없는 속 편한 놈들의 훈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천상의 흑영쌍비는 독하고 탐욕스러웠다.

함광이 기공을 끌어 올리기도 전에 붙어서 온몸의 사혈과 급소를 공격하는데, 그 연환기(連環技)가 벼락처럼 빨랐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고 날카로우며 정교해졌다.

‘이놈, 애초에 비수를 연마했던 놈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그 자신보다 한참 더 강한 상대와 생사결을 벌이면서 비수 다루는 실력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두 수 위의 고수와 싸우면서 본인의 무공을 성장시키는 무지막지한 재능이었다. 생사결을 거쳐야만 성장하는 것이 무인이라지만, 이처럼 대결 도중 시시각각 발전하는 무인은 전 무림을 뒤져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파바박!

짐승의 앞발처럼 비수를 휘두른다.

흑영쌍비를 역수로 쥔 이천상이 두 팔을 마구 휘둘렀다. 물러나는 함광의 옷자락이 비수에서 튀어나온 핏빛 마기에 걸레짝이 되었다.

파아아아악!

물러나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곧장 지근거리로 치고 들어간 이천상이 함광의 목과 빗장뼈, 벌린 겨드랑이를 노렸다.

‘미친놈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급소만을 공격해 온다.

한번 찔리거나 베이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를 지독하게 노려 오고 있었다.

거리를 벌려 기공술을 구사하려 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이놈의 보법은 그 수준이 천하일절이었다. 압도적인 내공으로 속력을 올리려 했지만, 보법 자체의 수준 차이가 워낙 커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피슉!

한 번씩 틈을 노리고 찔러오는 곽소종의 흑검 역시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천상의 활약이 워낙 돋보여서 그렇지 곽소종의 검 또한 암살자의 그것이라, 집중을 놓치는 순간 몸에 구멍 하나가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빌어먹을!’

목진강에게로는 백이 넘는 흑마대가 가서 공격하는 중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둘 다 죽게 생겼다. 허공의 죽음에 흥분했던 사실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우우우우웅!

함광의 안색이 누렇게 변해 갔다.

순간 이천상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반 박자 빨리 따라붙어 목을 찍든, 지금이라도 물러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문제는 너무 애매한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뭘 어떻게 선택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물러나기라도 할 수밖에.’

그때였다.

화아아악!

함광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한 청년의 손에서 일순 폭발적인 내공이 휘몰아쳤다.

유이상의 이산공이었다.

“좀 뒈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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