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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15화 (765/774)

외전 115화. 배교도(背敎徒) (3)

삼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흑마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 천마신교에 암살만을 위한 부대는 불필요했다. 애초에 마도무림의 총수라 명령만 내리면 움직여 줄 살수 조직이 엄청나게 많기도 하거니와, 신교의 분위기 자체가 암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이질적인 조직을, 당대 교주인 조백천이 만들었다.

논란거리가 되기 충분했지만, 교주가 직접 만들라고 지시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흑마대는 은신에 능한 마공과 각종 전문 지식을 배운 이들로 채워졌다.

“삼십 년 전에 도주한 사람일세. 자네가 말했듯 본교의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기존의 부대가 올지, 새 부대가 올지 모를 게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들은 모르겠지요.”

소공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 뒤에 있는 조직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흑마대는 그리 폐쇄적인 부대가 아닙니다. 흔적은 남기지 않지만, 신교가 행하는 일이 한두 가지입니까? 어떻게든 부대의 존재가 알려졌을 겁니다.”

“음.”

“설령 모른다 해도, 삼십 년 전과 같은 부대라 한들 그때와 같은 마공을 익히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긴 하네만.”

“다만, 이 백운산이라는 장소와 노마들의 언행을 보면 흑마대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소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복잡하군. 어쨌거나 그들이 자네나 우리를 노린 이유가 신교에 대한 정보, 혹은 그들이 모르는 마공을 얻기 위함이라는 건 어느 정도 맞는 추측 같네.”

“혹은, 그 이외의 이유도 있을지 모르지요.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기관진식에 능하거나 감이 좋은 대원 하나를 붙여 주십시오. 제가 직접 목가 늙은이가 도주한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소공의 눈이 커졌다.

“미끼가 되어 보겠다고?!”

“그렇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지원을 더 받아야 할지 우리만으로 진행해도 될지 가닥이 잡힙니다.”

“차라리 지원을 더 받는 게 나아. 흑마대는 명성 따위에 연연하지 않네.”

“징계나 명성 때문이 아닙니다. 자칫 지원 부대를 불렀다가 그들이 더 큰 덫을 준비했다면, 반대로 이쪽이 손해를 입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진정 정보와 마공 탈취가 목적이라면 말입니다.”

“……!!”

사고의 범위가 다르다.

소공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이천상이 말했다.

“시간은 빠를수록 좋을 겁니다. 우리는 물러설 수 없고, 저쪽은 훨씬 더 유연할 테니까.”

* * *

탁. 타닥!

불씨가 날아올랐다.

가만히 모닥불을 바라보던 엄궁이 입을 열었다.

“유독 바람이 차구려.”

묵직한 그의 목소리는 참으로 듣기가 좋았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나는군. 그때도 우리는 이 근처를 쏘다녔는데 말이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엄궁이 미소를 지었다. 쓴웃음이었다.

“아마 정파 놈들이 우리를 보면 두 눈이 접시만 해질 것이오. 설마하니 우리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걸 모를 테니까.”

그제야 모닥불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일이 왜?”

엄궁보다도 훨씬 더 굵고 낮은 목소리였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탁성. 듣는 것만으로도 배 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렇잖소? 우리가 벌이는 일은 저 망할 놈의 정파 놈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협의지도(俠義之道)와 다르지 않으니까.”

“…….”

“정작 협의니 정의니 떠들어 대는 그놈들보다 우리가 더 정파 같아서 가끔은 역겹소.”

“협의지도가 아니지.”

“음?”

“우리가 하는 일은 협의지도가 아니야.”

엄궁이 피식 웃었다.

“비탈길을 굴러떨어진 약초꾼 일가를 구해 주고, 생계가 어려운 의원들에게 아무도 모르게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소. 근처 흑도 놈들이 날뛸 때는 몰래 청소해 주고, 자리 한번 잡아 보겠다고 기웃거리는 산적 놈들은 모조리 땅에 묻었소.”

“…….”

“이게 협의지도가 아니고 무엇이오?”

“최소한이지.”

“음?”

“그것은 정의로운 게 아닐세. 당연한 것이지.”

“…….”

“하물며 그와 같은 일련의 행동들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걸 알고 움직였으니, 협의지도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네.”

“그마저도 안 하는 정파 놈들이 천지에 널렸소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협의지도를 논할 입장은 아니야.”

엄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그렇다네.”

“우리는 마인이오. 마인은 마인다워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오.”

“마인이라고 밥 안 먹고 똥 안 싼다던가. 마인이기 전에 사람이야.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놈들이 문제인 것이지,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고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네.”

“자랑한 적 없소.”

“그렇다면 지금까지 자네가 했던 말도 다 의미가 없군.”

엄궁이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들쑤셨다.

수많은 불씨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엄궁.”

“말씀하시오.”

“아들이 보고 싶지 않나?”

모닥불을 쑤시던 엄궁의 손이 멈추었다.

그의 눈빛이 흐려졌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는 그쪽은 아들 같은 제자들이 보고 싶지 않소?”

“보고 싶군.”

“그래, 그렇겠지.”

“다만, 그 녀석들은 제 몫을 충분히 해낼 놈들이야. 적어도 길 가다가 객사할 팔자들은 아니지.”

“…….”

“내가 녀석들에게 갖는 미안함 이전에, 나름대로 살 방안은 마련해 주었으니 일신의 걱정은 크지 않네.”

“그렇구려.”

“하지만 자네는 다르지 않은가?”

엄궁이 쓴웃음을 지었다.

“잘 지내고 있겠지.”

“어린아이가 걱정 없이 살 만큼 신교는 만만한 곳이 아니라네. 자네도 알지 않나?”

“내가 입교했을 때의 나이가 일곱이었소.”

“…….”

“정말 지옥 같았지. 어쩌다가 돈 몇 푼에 팔린 이름 없는 꼬맹이가 마도무림의 총본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소.”

“…….”

“그때부터 교를 나올 때까지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쉬어 본 적 없소이다.”

“그랬겠지.”

“그래도 잘 버티고 있을 것이오. 아니, 잘 버틸 수 있으리라 믿어야지.”

“보고 싶지 않은가?”

똑같은 질문이 또 들어왔다.

엄궁이 눈을 감았다.

“보고 싶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보고 싶소.”

“그게 사람이라네.”

쿵.

땅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엄궁이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덩치의 노인이 아름드리나무에 기대앉아 있었다. 모닥불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노인의 무릎 옆에는 거대한 칼 한 자루가 세워져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것 같은 대도(大刀)는 그 크기가 다섯 자에 달했다.

내공을 익혔다고 휘두를 만한 병기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고수라도 칼에 몸이 휘둘리는 경험을 갖게 될 것 같은 일세의 거병(巨兵)이었다.

엄궁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힘든가 보오.”

“나이가 든 게지.”

“애초에 그런 걸 쥐고 휘두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리 힘이 좋았소?”

“엄격하고 냉정하고 때로는 잔혹하지. 하지만 신교가 타락하여 악귀의 집단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엄궁은 굳이 지적하지 않고 노인의 말을 담담하게 들었다.

“적어도 그자가 교주가 되기 전까지는 그러했지.”

엄궁의 눈이 흔들렸다.

그자.

노인이 말한 그자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는가.

당장 자신이 신교에서 나온 것도 다 그자 때문이었다. 뿐인가? 저 무시무시한 거병의 주인 역시 그자 때문에 평생 몸을 담은 조직을 나와야 했다.

“한 번씩 생각하곤 하오.”

“…….”

“전대 교주님께서 그리 허무하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

“그랬으면 우리의 운명도 이렇게까지 달라지진 않았을 텐데. 우리가 이렇게 가슴 아파할 일도 없을 텐데.”

“지난날을 안타까워해 봤자 아무 의미 없네.”

“알고도 집착하게 되는 것이 후회 아니오.”

“그건 그렇지.”

우웅.

노인의 눈에 푸른 마광이 번뜩이다 사라졌다.

“괜찮겠나?”

“무엇이 말이오.”

“형법오악(刑法五惡) 말일세.”

엄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는 동지끼리의 신세 한탄이었지만, 지금은 한 조직의 수뇌부로서의 고뇌였다.

“어쩔 수 없었소. 지금 상황에서 외부로 보낼 만한 인사가 그들 말고는 없었소이다.”

“그들은 좋지 않은 자들이네.”

“정확히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멍청이들이지.”

“함광이나 허공은 나쁘지 않네. 성정이 거칠기는 하나 정도 있고, 시킨 일을 어떻게든 잘 해결하기 위해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는 않을 걸세.”

“그렇게 보셨소?”

“문제는 목가 놈들 둘이지. 그들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네. 애초에 삼십 년 전에 도주해서는 안 될 놈들이었어.”

엄궁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겠소? 사람이 없는데.”

“아는가? 전력만 보면 우리는 구파일방 중 두 곳과 싸워도 넉넉할 만한 힘을 자랑하고 있네.”

“그 조직의 수뇌부가 나요. 당연히 잘 알고 있지.”

“그러면서 사람이 없다니.”

“널따란 평야에서 전면전을 해 준다면야 그렇겠지. 문파 대 문파 싸움으로 가면 우리는 구파 중 하나도 감당할 수 없소.”

“…….”

“그러지 않기 위해 그 많은 사람이 불철주야 사방천지를 뛰어다니고 있지 않소? 그래서 사람이 없는 것이오.”

“만에 하나 형법오악이 신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면…….”

순간 엄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게 뭐 어떻다고?”

“…….”

“저질이라는 말도 칭찬이 아닌가 걱정해야 할 만큼 무능하고 머저리 같은 교주 밑에서 호의호식하는 놈들이오.”

“그것은…….”

“설령 교주를 증오한다 한들, 그 거지 같은 울타리 내에서 배부르게 사는 놈들이 아니오? 몇 놈만 잡아 오고 다 죽어도 전혀 상관없소.”

“자네는 너무 극단적이야.”

“그래서 우리 조직의 수뇌가 될 수 있었던 것이오. 악마가 아니면 감당키 힘든 자리거든.”

엄궁이 차가운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런 악마에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목적이 있대도 충분히 협의지도로 보이는군.”

“…….”

“명심하시오. 우리는 고향을 잃은 이들이오. 저쪽 인명 생각해 주면서 일 벌이다가 반대로 우리가 죽게 되오.”

“나중에 커서 자네 아들이 부대원이 되어 찾아와도 그리 말할 참인가?”

“……!”

가만히 엄궁의 얼굴을 바라보던 노인이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준비하세.”

“……무엇을 말이오?”

“전령이 오고 있네. 도주로를 포착한 모양이야.”

엄궁 역시 노인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시커먼 피풍의로 얼굴까지 가린 누군가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엄 군장님과 대력 어르신을 뵙습니다.”

엄궁이 물었다.

“찾았느냐?”

“현재 목표물 호언이 포강 인근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포강이라…… 그리 똑똑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고향을 들르다니, 많이 지친 모양이군.”

“길을 잡겠습니다.”

“그러시게.”

엄궁이 노인을 보며 말했다.

“가십시다.”

“그러세.”

훅!

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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