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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16화 (766/774)

외전 116화. 배교도(背敎徒) (4)

펄럭!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장포가 별빛 한 점 없는 밤하늘과 같았다.

유이상은 생각했다.

‘왠지 어렵군.’

당당한 체격. 등에 붉은 글자로 새겨진 야차라는 두 글자.

좌측 어깨에는 알 수 없는 철로 제조된 견갑을 장착했는데, 유독 동그랗고 널찍했다. 충격을 완벽하게 분산할 수 있는 구조였다.

펑퍼짐한 소매는 붉은 천으로 묶어 길고 굵은 팔뚝에 붙였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날붙이에 대한 보호가 될 것이다.

당장 전투가 벌어져도 곧장 대응 가능한 걸음걸이와 어울리지 않게 무심함으로 가득한 분위기는 기묘할 정도로 무겁고 딱딱했다.

‘그림이 되는구만.’

그의 옆에서 걷고 있는 야차일군 일 조장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등에 새겨진 야차라는 두 글자 빼고는 똑같은 복식인데도, 풍기는 분위기는 달과 반딧불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유이상의 눈이 깊어졌다.

‘입교 시기가 똑같다고?’

투입 전, 소공에게 간단하게나마 얘기를 들었다.

자신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입교한 일반인이라고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았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성장해 버렸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유이상은 소공의 말을 믿었다.

그 자신부터가 마공을 배운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흑마대를 넘어 신교, 나아가 중원 전체를 뒤져도 자신만 한 재능은 찾기 어려울 거라고 소공은 말했다.

이미 그러한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이천상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왜 다른 이들은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유이상이었다.

비로소 자신과 동등의, 혹은 그 이상의 재능을 타고난 천재를 보게 된 유이상.

생각이 복잡해지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공 성취야 천재적인 재능 덕분이라고 하지만…….’

이천상에 대해 진짜 놀란 점은 바로 그의 전투 능력과 부하들에게 받는 신임이었다.

유이상의 눈빛에 은은한 불길이 솟았다.

‘재미있어. 꼭 한번 붙어 보고 싶다.’

그때, 이천상이 걸음을 멈추었다.

유이상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반딧불, 아니 허필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

“군주님?”

“묘한 냄새가 나는데.”

“냄새요?”

허필이 킁킁거렸다. 하지만 별다른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유이상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진짜 냄새가 아니라 비유 아니겠소?”

허필이 멀뚱한 눈으로 유이상을 바라보았다.

유이상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지? 왜 그런 눈으로 보지?

이천상이 유이상을 돌아보며 물었다.

“맡아지지 않소?”

“그런 기색은 딱히…….”

“냄새 말이오.”

“……?”

“감각이 좋다고 들었소.”

유이상이 뜨악한 얼굴로 말했다.

“설마 진짜 냄새였소?”

허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킁킁거렸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긴가민가해서 물어보는 거요.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너무 희미해서 맞나 싶소.”

이런 젠장.

괜스레 부끄러워진 유이상이 헛기침을 한 후 마기로 온몸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잠시 후.

‘어?’

유이상의 눈이 커졌다.

이천상이 물었다.

“맡았소?”

“예? 아, 그렇소.”

“혹시 아는 냄새요?”

유이상이 턱을 쓰다듬었다.

“분명 한 번 맡아 본 적이 있는 냄새인데, 느낌이 좋지 않은 걸 봐서는 일단은…….”

“…….”

“잠깐.”

유이상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것 봐라?”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이내 어느 한 지점을 향해 걸어갔다. 전방 우측, 길옆에 놓인 작은 바위였다.

유이상이 시린 눈으로 바위를 노려보았다.

허필이 왜 그러냐며 입을 열려는 순간, 이천상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걸 받으시오.”

유이상이 품에서 꺼낸 것은 엄지만 한 작은 약병 두 개였다.

“자시오.”

“이게 뭐……?”

약병의 정체를 물으려는 순간, 이천상은 거침없이 뚜껑을 열고 붉은 액체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괜스레 머쓱해진 허필이 마찬가지로 약병에 든 액체를 마셨다.

유이상이 씨익 웃었다. 그 미소를 본 허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쓰군.”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지.”

유이상이 바위를 툭툭 건드렸다.

“미혼향(迷魂香)의 일종이오. 지금 두 분이 자신 건 미혼향이나 몽혼약 등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독의 해약이오.”

“미혼향?!”

놀란 허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관진식 등을 다룬다면 미혼향 같은 것도 깔아 둘 만하지. 하면 이 앞길은 암기나 독이 뿜어져 나오는 기관이 아니라 정신이나 오감을 흐트러트리는 환영진(幻影陣) 계열이 펼쳐져 있겠구려.”

유이상이 뜻밖이라는 듯 허필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런 쪽 경험이 많으신가 보오?”

허필이 입맛을 다셨다.

“어쩌다 보니.”

호법원 출신 호마(護魔)들은 흑마대 못지않게 기관이나 진법에 대해 철저히 배워야 한다.

오히려 조장급 인사들이라면 그쪽에 관한 전문성은 흑마대보다도 깊다고 할 수 있다. 요인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워야 할 테니까.

“알고만 있을 뿐, 경험은 많지 않소.”

유이상이 쓴웃음을 지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요.”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에 이천상이 끼어들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것이오?”

유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고도의 환영진은, 미혼향은 물론 시각을 교란하는 환경 배치와 음파까지 쏟아붓소. 자연기로 운용되는 환영진이야 그런 것도 필요 없지만, 애초에 그런 종류의 환영진이 펼쳐졌다면 다 죽는 거니까 의미 없고.”

자연기를 이용, 복잡한 술식으로 구현된 환영진은 그야말로 최상위의 진법 중 하나였다.

진법의 전문가나 기공의 극치를 이룬 화경, 혹은 극마의 고수가 아닌 이상 거의 무조건 걸린다고 봐야 한다.

다행인 것은 전 무림을 통틀어도 그만한 진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세 손가락 안에 꼽히며, 조성 시기도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릴 정도로 길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유이상이 전방을 노려보았다.

“별다른 위협이 느껴지지 않소.”

이천상의 눈이 반짝였다.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그 말은 곧 철저하게 감으로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소공의 말에 의하면 유이상의 감각은 타고난 것으로, 사실상 오감을 넘어 육감(六感)에 가깝다고 했다. 그리고 그 육감으로 무수히 많은 임무를 성공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이천상은 육감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했다.

‘신기하군.’

한 번쯤 진지하게 파고들 만한 주제라고 생각하며, 이천상이 말했다.

“그럼 갑시다.”

“그럽시다.”

세 사람은 다시 길을 걸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결코 무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일행은 한 줌의 내공도 쉬이 소모하지 않기 위해 다소 빠른 보폭으로 걸을 뿐 신법을 펼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유이상의 질문에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각만 유지한다면 괜찮소. 조금 전처럼 둔감한 모습을 보여 줘선 안 될 것이오.”

유이상보다도 먼저 냄새를 맡은 이천상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유이상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면목 없게 되었소. 그래도 뭐, 진짜 위협적이었다면 내 몸의 반응이 달라졌을 것이오.”

“그게 집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변명은 되지 않소.”

“……커험!”

맞는 말인데, 이게 참 면전에서 들으니 무척 껄끄럽고 부끄러웠다.

허필은 왠지 동지가 생긴 것 같은 표정으로 유이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과 처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다 저렇게 당황하곤 했다.

‘나도 아직 적응이 안 되는데, 뭘.’

유이상이 물었다.

“마공을 배운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들었소.”

허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질문이랍시고 던진 말인데 시작부터 민감한 주제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도 그렇소이다.”

이천상은 여전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언뜻 보면 유이상에게 관심 한 톨 없어 보였다.

정작 깜짝 놀란 건 허필이었다.

“일 년밖에 안 되었다고?”

“그렇소만.”

“한데 흑마대의 조장이 되었단 말이오?”

“그래서 이상하더이다. 나는 되는데 남들은 안 되는 걸 보는 기분, 이거 참 답답한 거요.”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재수 없다고 욕먹소.”

“그것뿐이면 다행이지. 처음 입대했을 때 선배들한테 많이 맞았소.”

“그럴 만도 하지.”

“이제는 그 선배들을 내가 지휘하고 있지만.”

자랑이라고 꺼낸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재수가 없다.

허필은 떨떠름함과 놀라움이 공존하는 얼굴로 물었다.

“어디서 뭐 하다 오셨소?”

유이상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의가(醫家) 출신이오. 내 누이와 처남 될 사람을 광마대 조장 놈이 죽였지.”

“……!”

“그래서 광마대에게 잡혀 왔소.”

허필은 입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유이상이 이천상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쪽은 흑마대에게 잡혀 왔다고 들었소.”

“그렇소.”

“광마대주와 친하시고?”

“처음으로 믿은 사람이오.”

“그렇구만.”

유이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천상의 그 말이 얼마나 놀라운 발언인지 아는 허필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임무 중인데도 참 많이 놀라게 된다. 그것도 임무와 관련 없는 일로.

유이상이 말했다.

“사적인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딱 봐도 알겠더이다. 광마대주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오.”

천마신교를 나쁘게 볼 테니, 그 말은 자연스레 칭찬이 된다.

“솔직히 내게는 광마대주를 좋게 볼 이유가 하나도 없소. 어찌 되었든 그 개자식의 상관이니까. 처음에는 빨리 힘을 길러서 도헌과 광마대부터 없애 버릴 생각이었소.”

“…….”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광마대주에 대한 분노는 식어 가더이다. 우리 대주님과 나누는 대화를 몇 차례 들었거든.”

유이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사람이지. 아주 좋은 사람이오.”

허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도 도헌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도헌의 성품이 강직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절대 유이상처럼 마음을 돌려먹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복수심에 미쳐 버렸을 테지.

‘성격이 너무 좋은 거 아닌가?’

사실 마인치고는 좋은 걸 넘어서 호구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유이상이 재차 입을 열었다.

“어쨌든 반갑소. 당신이 싸우는 걸 보니 나도 절로 흥이 오르더이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말이오.”

“…….”

“여러모로 참 특이한…….”

“왜 죽지 않았소?”

“……?”

이천상은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교를 나가거나 사고를 쳤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군.”

“……내가 평범하지 않은 모양이오.”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소.”

“그렇게 보이시오?”

“내 눈에는 그렇소.”

유이상이 고개를 저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거요. 다만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지.”

“그래서, 어떻게 죽으려고 흑마대원이 되었소?”

허필은 묘한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초면에 저런 민감한 질문을 하는 이천상을 처음 보는 그였다.

유이상이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진짜 복수는 사람 죽인다고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더이다. 그래서 복수의 경로를 바꾸었소.”

“어떻게 말이오?”

“이 빌어먹을 천마신교를 아예 망하게 하거나, 싹 바꿔 버릴 생각이오.”

순간 이천상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묘한 눈으로 유이상을 바라보았다.

“바꿔 버릴 생각이라고?”

“그렇소.”

“왜?”

“더는 나 같은 사람이 생겨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

“천하를 공포로 물들인 악의 구렁텅이에, 그 살벌한 악을 끄집어내 날려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수가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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