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 외전-117화 (767/774)

외전 117화. 배교도(背敎徒) (5)

얼마나 걸었을까.

“잠시.”

유이상의 말에 이천상과 허필이 멈췄다.

“…….”

말없이 주변을 훑은 유이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허필이 물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소?”

“없소.”

“음?”

“없어서 이상하오.”

사아악.

유이상의 몸에서 은밀한 마기가 새어 나왔다.

무색투명한 그 마기는 분명 역천기(逆天氣) 특유의 독특함을 자랑했지만, 일정 이상 반경으로 퍼져 나가진 않았다.

“뭔가가 있는데.”

이천상과 허필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유이상의 육감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는데, 정작 주변에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수상하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유이상.

허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진법이나 기관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천상은 말없이 협곡 좌우를 살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일각이 넘도록 유이상은 그 자리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허필은 연신 주위를 훑으며 자신이 찾지 못한 진법이나 기관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고, 이천상은 유독 좌측 절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유이상이 입을 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안 좋아지고 있소.”

그 자신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문제라 허필은 답답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계속 있을 수는…….”

그때였다.

촤아악!

저 멀리 협곡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는 방향이 아니라 들어온 방향이었다. 이천상은 여전히 벽을 살피고 있었지만, 유이상과 허필은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드르륵.

땅이 울렸다.

생동감 넘치는 감각. 발바닥에서부터 타고 오르는 이 진동은 마치 산사태의 전조와 비슷했다.

유이상이 외쳤다.

“피하시오!”

콰르릉!

훅 밀려드는 대량의 습기.

직후 협곡 입구에서부터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강물이 짓쳐 들었다.

촤아아아아악!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었다. 높고 넓은 협곡을 꽉 채우다 못해 좌우 절벽 위를 때리고 내리칠 정도의 강물이 무서운 속도로 몰아치고 있었다.

허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재빨리 움직이려던 둘이 순간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천상을 돌아보았다.

“이보시오!”

“군주님!”

초절정고수라도 휩쓸리면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파도가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천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쓰다듬으며 좌측 절벽을 살피는데, 그 모습이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유이상이 버럭 외쳤다.

“정신 차리시오!”

“저곳으로.”

“……?!”

이천상이 흑영쌍비를 뽑아 들었다.

“저곳을 갈지(之)자로 타고 올라갈 테니 두 사람은 내가 짚은 곳을 정확하게 찍어서 오르시오.”

파아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절벽을 타고 오른 이천상이 삽시간에 삼 장을 오른 후 절벽에 비수를 찍었다.

퍽! 퍼벅! 퍽!

역수로 쥔 비수로 벽을 찍으며 절벽을 타고 오르는데, 한 마리 원숭이가 따로 없었다.

그 신들린 움직임에 두 사람이 밀려오는 강물도 잠시 잊고 입을 떡 벌렸다.

“갑시다!”

파아악!

먼저 정신을 차린 허필이 외치고, 두 사람 역시 폭발적인 내공을 이용, 순간 가속으로 절벽을 타고 오르다가 이천상이 비수로 찍은 부분에 손가락을 걸쳤다.

유이상과 허필은 깜짝 놀랐다. 이천상이 그 와중에 손가락 두 개 이상 들어갈 틈을 내 놓았던 것이다.

자잘한 돌 부스러기 때문에 손가락이 아팠지만, 그 정도면 육신의 무게를 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퍼버버벅!

어느새 이천상은 절벽 정상에 이르렀다.

두 사람 역시 재빨리 벽을 탔다. 이천상이 미리 길을 냈기 때문에, 둘의 움직임은 이천상보다도 한층 빨랐다.

터어엉!

거리가 얼마 남지 않자, 유이상이 발끝으로 절벽을 강하게 박차 순식간에 정상으로 올랐다.

뒤이어 허필도 절벽 끝에 손을 올렸다.

그때, 강물이 세 사람이 지나온 길을 휩쓸어 버렸다.

철썩! 촤아아아악!

절벽 끝을 잡고 상체를 올리던 허필의 신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몰아치는 강물에 하반신이 휩쓸린 것이다.

허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

탁!

유이상이 양손으로 허필의 팔을 움켜잡았다.

우우우웅!

몇 걸음 떨어져 주변을 경계하던 이천상도 허필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포천금마공의 수법으로 강한 인력(引力)을 만들어 당기는 것이다.

훅!

유이상의 힘과 이천상의 마공으로 힘을 받은 허필의 하반신이 강물에 휩쓸려 가는 방향으로 돌아가다가 절벽 위로 떨어졌다.

드르르륵!

허필의 몸이 이천상이 있는 곳까지 딸려 왔다.

촤아악! 촤아아아악!

밀리고 또 밀리는 강물이 순식간에 협곡을 채우고 나아가다가 이내 서서히 줄어들었다.

물과 물이 부딪치는 소리가 하늘을 울리는 굉음처럼 들린다. 유이상과 허필은 눈을 부릅뜨며 점차 줄어드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화르르륵!

이천상의 몸에서 황금빛 마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유이상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탁!

좌수에 든 비수를 벼락처럼 요대에 꽂은 이천상이 힘차게 손을 뻗었다.

콰앙!

쏘아진 야차혈장이 불쑥 솟은 작은 바위를 둘로 쪼갰다.

훅!

유이상과 허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줄어들던 강물이 씻은 듯 증발해 버린 것이다.

“……뭐야?”

멍하니 협곡을 바라보던 허필은 순간 자신의 하체를 내려다보았다.

‘안 젖었어?’

기가 막혔다.

강물에 휩쓸린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물의 느낌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온몸의 피부로 대량의 습기까지 느꼈다.

한데 젖었어야 할 옷이 멀쩡했다.

소름이 돋았다.

유이상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환영진.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이 환영진은 단순히 미혼향이나 환경, 소리 따위로 인지 능력을 저하시켜 만드는 여느 환영진과 달랐다.

대자연의 기운을 비틀어 만드는 진짜 진법이었다. 환상, 환청을 비틀린 기운을 이용해 강제로 주입시키는 최상위 진법인 것이다.

“이럴 수가! 그 자식들이 정말로 이곳에 그만한 환영진을 만들었단 말이야?”

유이상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이 바위를 깨부순 즉시 강물이 사라졌다. 말하자면 저 부서진 바위가 이 환영진의 진축(陣軸)이었다는 것이다.

“당신…… 저것이 진축인지 어떻게 알았소?”

“몰랐소.”

“……?!”

“그저 수상해서 부쉈을 뿐이오.”

“수상하다니?”

이천상이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우리가 딛고 선 땅, 즉 이 절벽은 상당히 단단하고 밀도가 높소. 그러나 저 바위는 그렇지 않더군.”

“……!!”

“암질(巖質)이 확연히 달랐소. 어린애가 휘두르는 망치로도 부술 수 있었을 거요.”

유이상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이것이 환영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몰아치는 강물이 너무 과격해서 당황하던 참이었다. 아마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데도 이천상은 직접 만져 보지도 않은 암질의 차이를 간파하고 수상하다 느껴서 부숴 버린 것이다.

진법에 대한 지식 따위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안목이 좋다면 뭘 해도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필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절벽도 그렇습니까?”

“그래.”

이천상이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 사람이 타고 올라온 길이었다.

“비수로 찍은 부분의 틈이 꽤 크게 벌어져 있었다. 암질이 단단해서 일일이 찍고 올라가기는 힘든 길이기 때문에, 쉽게 찌르고 파낼 수 있는 결을 찾았다.”

“…….”

“그런 부분은 곳곳에 많다.”

허필이 피식 웃었다.

“군주님 아니었으면 다 죽었겠습니다.”

“그렇지 않다.”

이천상이 유이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갔다면 셋 다 위험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소?”

유이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선 곳은 환영진의 초입이었소. 더 들어갔다면 그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한 물에 휩쓸렸겠지.”

즉, 유이상의 무시무시한 직감과 이천상의 극단적으로 발달한 안목이 아니었다면 무사치 못했을 거란 말이었다.

유이상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마침 그때 절벽의 틈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오?”

“매 순간 위험 요소가 없는지 살피고 있었소.”

유이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말이 상시 경계지, 정말로 한시도 집중을 놓지 않고 주변을 경계하며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기 마련이다.

어느 조직이든 경계병을 항상 수십 명씩 세워 놓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집중력이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없기에 많은 경계병을 교대까지 시키며 세우는 것이다.

이천상은 그걸 넘어 모두의 생존을 위해 상시 생로(生路)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흑마대보다 훨씬 깊고 날카롭다.’

암살자들의 인내심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무섭다.

그러나 이천상은 신교 최고의 암살자들이 모였다는 흑마대의 어떤 마인보다도 뛰어난 안목과 인내심을 가진 듯했다.

실제로 이렇게 대화하는 와중에도 연신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절대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구려.”

“지금은 이런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오.”

이천상이 협곡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더 가도 되겠소?”

“그렇소.”

“알겠소.”

이유라도 물어보려나 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한번 믿으면 확실하게 믿고 가겠다는 것인지, 어떤 일이 벌어져도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절벽 위를 따라 걸었다. 한차례 매서운 경험을 해서 그런지 유이상과 허필의 눈빛이 몇 배나 더 날카로워졌다.

다시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협곡의 출구가 보일 무렵이었다.

“온다.”

“오는구려.”

이천상과 유이상이 동시에 말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번쩍!

그간 워낙 긴장하며 이동해서 그런지 오히려 적의 출현이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 멀리 떨어진 절벽 위쪽에서 목진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

유이상의 눈이 흔들렸다. 허필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일었다.

왜인지 목진강의 등 뒤에는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를 젖히고 복면인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등장하는데, 그 숫자가 어림잡아 백여 명에 달했다.

저 많은 무사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세 사람이 진짜 놀란 것은 무사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였다.

“……마공?!”

중원의 잡다한 마공이 아니었다.

공기를 들끓게 하는 열탕 같은 기운. 사람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이질적이고도 진한 마기.

이것은 소위 정통 마공이라 불리는 천마신교의 마도학(魔道學)이었다.

파아악!

신법을 펼쳐 달려오던 목진강과 백여 명의 무사들이 어느덧 일행의 이십여 장 앞까지 도달해 멈춰 섰다.

먼 거리였지만, 풍부한 내공을 지닌 그들에게 있어 대화를 나누기 어렵지 않은 거리이기도 했다.

목진강이 입을 열었다.

“대단하구나.”

이천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일까? 그는 목진강의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설마 단공환상진(斷空幻像陣)을 그리 수월하게 벗어날 줄은 몰랐다. 마냥 애송이들인 줄로만 알았더니, 진법의 조예가 깊은 녀석도 있구나.”

“…….”

“진법을 알아챈 녀석이 누구냐?”

대답해 줄 필요가 전혀 없다.

허필이 입을 열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개 같은 늙은……!”

“이 사람이다.”

이천상이 엄지로 유이상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 덕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해서, 어쩔 것이냐?”

이천상답지 않은 도발적인 말.

목진강이 씨익 웃었다.

그전의 평온했던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풍부한 감정이 넘쳐흐르는 그의 얼굴은 기묘한 공포를 자아냈다.

“저분이시란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저 얼빠진 녀석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

파아아아아악!

백 명의 복면인들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