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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18화 (768/774)

외전 118화. 배교도(背敎徒) (6)

복면인들이 움직이기도 전.

이천상은 유이상에게 전음을 날렸다.

[진축을 부쉈으니 환영진은 더 이상 발동되지 않는 거요?]

[확신할 수 없소. 어느 정도의 공간을 아우르는 진법인지까지는 모르니까. 다만 이 정도 진법이라면 축 하나 망가졌다고 무너지진 않을 거요.]

[그럼 다시 발동되는 건가?]

[최고위 진법이라도 이만한 영역을 휩쓸 정도라면 재사용 기간이 최소 일각에서 이각은 될 것이오. 애초에 걸린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걸로 확인 종료다.

[허필을 데리고 십 장 밖으로 물러나시오.]

복면인들이 달려드는 순간, 이천상은 오른손에 든 흑영비에 강력한 내공을 담았다.

단순히 내공만 담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임무에서 야차번에 가상의 혈도를 만들어 폭혈마기를 감당해 냈던 것처럼, 흑영비에도 똑같이 내기를 쏟아부은 것이다.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이천상의 머리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전이(轉移), 확장(擴張), 주입(注入), 고밀(高密), 포획(捕獲).’

남들보다 훨씬 더 빠른 사고는 그만큼 빠른 진기 이동을 가능케 해 준다.

복면인들이 땅을 박차고 허공에 뜰 때, 이미 이천상이 뿜은 대량의 마기는 흑영비로 전이되었고 가상의 혈도를 만들어 길을 확장했다. 이천상은 연이어 그 안으로 폭혈의 구결이 살아 있는 마기를 주입했고, 주입된 마기는 순식간에 고밀도로 압축되었다.

화아아악!

흘러넘치는 살기 뒤로 복면인들의 마기가 전해져 왔다.

그 무형의 마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흑영비에 압축된 고밀도의 진기를 단단하게 포획하여 묶어 두었다.

이천상의 사고가 더 빨라졌다.

‘심부 압축, 확장, 부분 압축, 확장.’

흑영비에 담긴 폭혈마기가 중앙 심부까지 압축되었다가 벼락처럼 확장되었다. 이천상은 확장된 마기를 심부 밖까지만 압축하곤, 또다시 확장시켰다.

압축과 확장이 반복될수록 흑영비에 담긴 폭혈마기는 더 거칠어지고 더 막강한 힘을 품게 되었다. 한 번의 압축과 확장이 일어나는 순간 그 힘은 두 배가 되었으며, 또 한 번의 압축과 확장의 과정이 지나가면 네 배가 되었다.

‘…….’

밀려 나가는 공기, 그 속에 올올이 떠다니는 먼지 한 올까지도 보인다.

오로지 이천상의 사고만이, 그의 의식만이 초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번쩍! 번쩍!

그 자신은 물론, 너무 빨라 주변인 모두가 인지하지 못하는 핏빛 광채가 그의 미간에서 명멸을 반복했다.

스윽.

이천상의 손등 곳곳의 피부가 부풀었다.

마치 나병이라도 걸린 양, 곳곳에 수포와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은 수포가 아니었다. 극도로 압축된 폭혈마기의 폭발을 억누르기 위해 쏟아부은 마기와, 당장이라도 해방되고 싶어 날뛰는 폭혈마기가 부딪치며 일어난 수십 개의 작은 폭발이었다.

점점 느려지는 시간 속에서.

부풀었던 피부가 작게 찢어지며 실처럼 붉은 액체를 허공으로 쏘아 보냈다.

그런 과정이 일어났는데도 복면인들은 절반조차 날아오지 못했다. 이천상의 사고가, 진기 운용이 그야말로 벼락을 방불케 했다.

‘한계!’

더 증폭시킬 순 없다. 한 번 더 압축과 확장의 과정을 거치면 무려 열여섯 배의 힘이 모이게 되는데, 그 정도 힘을 불러냈다가는 자신은 물론 유이상과 허필까지 몽땅 폭발에 휩쓸려 죽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해.’

폭혈마기를 증폭, 제어하는 데만 단전에 쌓인 내공의 절반을 쏟아부었다.

이천상은 곧장 포천금마공을 운용했다. 손에 들린 폭탄을 제어하면서 또 다른 마공을 운용하려 하니, 그조차도 눈앞에서 불똥이 튀는 걸 느꼈다.

‘포자 결, 역순.’

마치 강궁의 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흑영비를 쥔 손에 엄청난 힘이 깃들었다.

스스스.

신병이기 소리를 듣는 흑영비의 칼날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천상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탄자 결(彈字訣).’

퍼어어어어엉!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간 흑영비가 날아오르는 복면인들 한 가운데로 들어갔다.

어찌나 빨랐는지, 상단전의 힘으로 시계(視界)가 느려진 이천상의 눈으로도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천상은 서둘러 제어를 풀었다.

‘폭(爆).’

그의 손과 흑영비를 잇는 포천금마공의 힘이 오롯이 흑영비로 향하는 순간.

느려졌던 시계가 무섭도록 빨라졌다.

퍼버벅! 팅!

소리는 크지 않았다.

허공에 떠오른 복면인들, 그리고 그 뒤에서 달려오던 복면인들의 몸 곳곳에서 핏줄기가 터졌다.

떠오른 복면인들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쿠구구궁! 퍼벅!

“컥!”

“크윽!”

바닥에 떨어진 삼십여 명의 복면인 중 대다수가 일어나지 못했고, 나머지도 가슴이나 복부를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서 달려오던 복면인들 이십여 명도 우르르 쓰러졌다.

자연히 남은 후방 전력도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침묵이 일었다.

절정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능히 일류라 할 만한 마인 백여 명 중 무려 오십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그것도 단 한 수였다.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엄청난 암기술 한 번에 작은 부대급 전력 중 절반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이 기가 막힌 광경에 목진강도 눈만 부릅뜰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르륵.

이천상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혈색 좋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과다한 내공 운용과 증폭된 폭혈마기의 반발력으로 내장이 진탕된 것이다.

‘아프다.’

하지만 배 속 내장보다도 머리가 더 아팠다.

말 그대로 깨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이대로 머리가 산산이 조각나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이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천상의 표정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눈썹만 조금 찡그렸을 뿐, 죽은 복면인들을 보며 서 있는 그의 자세에서 흐트러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툭. 툭.

이천상의 왼손 끝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터져 버린 흑영비의 비수 조각이 그의 좌측 견갑을 뚫으며 어깨에도 상처를 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를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부서진 흑영비의 피격 반경을 계산, 가장 안전한 영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이천상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침묵만이 가득했던 싸움터에 그 심호흡 한 번은 현실적인 공포가 되어 목진강과 복면인들을 덮쳤다.

목진강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그게…… 무엇이냐?”

이천상은 말없이 목진강을 바라보았다.

펄럭!

불어오는 바람에 장포가 펄럭였다.

목진강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협곡 위 절벽은 너무나도 넓은데, 마치 이천상 한 명이 다 막고 있는 듯 강렬한 존재감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뭐지? 이게 뭐야?’

부하들에게 가려져 있어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 놈이 뭔가를 날렸다.

아니, 사실 부하들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놈이 뻗은 손에서 쏘아진 것이 무엇인지 단련된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없었다.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순간적으로 방출된 무형의 충격파와 그 속에 녹아든 무시무시한 마기였다.

‘대체 이 마기는?!’

폭발하며 흩어진 마기의 편린에서 엄청난 밀도가 느껴졌다.

고작 손톱만큼도 안 되는 마기의 파편에서 천 근의 밀도를 느꼈다. 극에 이른 초절정고수의 기공 비기에서나 느껴질 법한 무서운 힘이었다.

목진강의 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놈의 얼굴은 창백했고 코와 입에서는 피를 뿜고 있었다. 분명 이번 한 수가 숨겨진 비기였으리라.

하지만 목진강은 공격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비기를 또 한 번 펼치게 되면 그때는 전멸당할 게 뻔했다.

‘아니, 그러진 않을 것이다. 놈의 기도는 엄청나게 불안정해졌어. 저런 몸으로 조금 전과 동등한 위력의 수법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가…….’

문제는 확신이 안 든다는 것이다.

‘설마 비수를 일부러 폭발시킨 것인가? 다른 암기를 날린 게 아니라? 하지만 비수 이외에 뭔가를 손에 쥐고 있는 걸 보지 못했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그것은 그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뭔가 해결책이 나와야 공략이라는 걸 할 텐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복면인들이 목진강을 힐끔거렸다. 힐끔거리는 그들의 눈도 불안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스르륵.

순간 목진강의 눈이 흔들렸다. 이천상의 등 뒤에 유이상이 나타난 것이다.

유이상은 놀라서 목진강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이 상태를?”

이천상이 흑영비를 폭발시켜 적의 진군을 막고 그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을 때.

유이상은 극한까지 끌어올린 은신술로 협곡의 출구 너머는 물론 봉우리 주변까지 훑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시간이 무려 반 시진이었다.

놀랍게도 반 시진 동안 목진강은 물론 복면인들 모두가 그 자리에 얼음처럼 박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르륵.

이천상의 코에서 계속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의 안색은 분을 바른 여인의 얼굴보다도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다 둘러보고 왔소?”

“그렇소.”

“좋소. 그럼 돌아가서 아군을 끌고 오시오.”

“……괜찮겠소?”

“그럴 것이오.”

입술을 깨문 유이상이 다시 사라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은신술이었다.

스륵.

이천상의 등 뒤로 허필이 와 섰다. 그 역시 반 시진 동안 긴장해서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물론 적들이 왜 움직이지 않았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던 목진강이 입을 열려는 순간.

스륵.

이천상이 남은 흑영비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움찔!

목진강과 살아남은 오십 명의 복면인 모두가 놀라서 흠칫했다.

“공격하면 죽는다.”

“…….”

“물러나도 죽는다.”

“……!”

“지금처럼 그 자리 그대로 있어라.”

단조로운 음색으로 포장된 단어들은 듣는 사람의 귀와 폐를 오싹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목진강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유이상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지만, 위기조차 느끼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이미 그의 머리에는 유이상도, 허필도 없었다.

오로지 이천상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목진강이 입을 열었다.

“네가…….”

입을 연 순간, 그는 제 입에서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마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사람처럼 목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엄청나게 낯설고 거칠었다.

‘뭐지? 뭐야?’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힘들었다. 눈을 빤히 뜨고 상대를 보는데, 내가 보는 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고가 무뎌졌다. 귀에서 우웅 하는 이명이 들렸다.

정작 환영진을 깔아 둔 것은 이쪽인데, 적과 마주하자 본인이 환영진에 걸려 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목진강의 눈이 커졌다.

내가 환영진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하자 그제야 현실의 나를 깨달았다.

‘내가 왜 이곳에 가만히 서 있는 거지?’

목진강이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꽉 막혔던 인지 감각이 이제야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막힌 숨통이 턱 트인 것만 같다.

‘그놈은? 잡으라고 했던 그놈은 어디로……?’

순간 목진강은 떠올릴 수 있었다. 이천상에게 무언가 속삭인 후 자리에서 벗어난 유이상의 존재를.

‘이런 미친!’

우우우우우웅!

마치 가위에 눌린 몸을, 애써 힘을 줘서 풀어 버리려는 것처럼.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내공을 온몸으로 뻗어 내며, 목진강이 외쳤다.

“뭐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놈을 잡아!”

그때였다.

우아아아아아!!

저 멀리 협곡 입구에서부터 엄청난 함성과 지독한 마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원군 도착.

이천상이 목진강을 향해 비수를 겨누었다.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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