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9화. 배교도(背敎徒) (7)
목진강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현실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비수를 폭발시켜 단박에 절반의 부하들을 쓰러트린 놈과 대치한 지 반 각도 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 시진이 훌쩍 넘어, 어느덧 적의 부대까지 나타났다.
당장에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지독하기 그지없는 천마신교의 율법에 걸려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탈출했을 때도 이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대장님!”
부하의 외침에 흠칫 놀란 목진강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일단 물러나라! 부조장은 단공환영진을……!”
그때, 이천상이 말했다.
“움직이면 다 죽는다고 했을 텐데.”
“……!”
“너희가 물러나는 속도가, 나의 공격 속도보다 빠를 거라고 믿나?”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목진강은 물론 복면인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특히 목진강은 두 번 놀랐다.
‘도대체 왜!’
기도로 느껴지는 이천상의 수준은 분명 자신보다 아래였다.
언뜻 보이는 나이는 적게 잡으면 이십 대 초반, 많게 잡아도 서른을 안 넘긴 듯하다. 그런데도 저만한 수준이면 신교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릴 만한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적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나이 때문이지, 순수 기량의 문제는 아니었다.
‘천하 무공의 어떤 비기를 익혔다 한들, 저 수준에서 내보일 만한 살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도가 흔들리고 내력이 불안정해진 걸 보면, 자신의 목숨을 깎아 먹는 전형적인 반쪽짜리 무공이 아니던가!’
그 반쪽짜리 무공에 일류고수 오십여 명이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명백히 이천상보다 강한 목진강으로서도 흉내조차 내지 못할 공격이었다.
목진강의 눈이 깊어졌다.
‘이대로는 안 돼.’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가 적과 교전하면 이쪽이 몰살당할 것이다. 병력 차이가 너무 심했다.
결국 목진강은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전면전이 벌어지면 죽는다! 모두 후퇴해라!”
그 말을 들은 순간 복면인들은 현실을 깨달았다.
파아아악!
복면인들이 재빨리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그 찰나지간 또 한 번 필살의 공격이 날아들까 싶어 모두가 몸을 웅크리며 물러났다.
물론 몸으로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쓸모없는 행위라도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공통된 모습을 보이는 법, 무림인도 범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목진강의 얼굴이 밝아졌다.
부하들이 자신을 지나쳐 물러나는 와중에도 이천상의 기도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공격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놈은 공격하지 못해!’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고작 적 하나의 위협에 지금껏 발이 묶여 있었단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목진강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네놈은 반드시 사로잡아 모든 걸 토해 내게 만든 뒤 사지를 찢어 죽……!’
그때였다.
목진강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왜 나를……?’
부하들이 물러나는 와중에도 놈은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전혀 당황하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돌을 깎아 만든 인형처럼 자신만 노려보는 적의 모습에 목진강은 당황했다.
‘……!!’
당황과 동시에 강한 불안감이 깃들었다.
‘저놈 설마?!’
순간 이천상의 동공에서 은은한 푸른 광채가 일었다.
훅!
알 수 없는 위기감에 후방으로 물러나려던 목진강은 순간 몸의 중심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쿵!
그대로 넘어진 목진강은 자신의 다리가 적에게로 끌려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허공섭물!!’
아니다. 이것은 극에 이른 깨달음으로 구현되는 허공섭물의 술수가 아니었다.
목진강의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광경.
그것은 납치했던 흑마대주와 조장들이, 적의 기괴한 수법으로 땅을 뒹굴며 끌려가던 모습이었다.
‘미친!’
허공섭물은 내공을 이용, 손도 대지 않고 외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상승의 경지였다.
하지만 이천상의 수법은 단순히 내력을 이용해 빨아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뭔가 특수한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했다.
‘이익!’
우우우웅!
마기를 전력으로 개방하니 끌려가던 몸이 멈추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목진강이 쌍장을 내질렀다.
번쩍!
장력이 발출되기도 전.
쾅!
한 줄기 광채와 함께 시커먼 비수가 쏘아졌다.
부하들을 죽일 때 쏘아 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리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느리단 것이지, 목진강의 눈에는 그조차도 빨랐다.
펑! 퍽!
장력 하나를 분쇄한 흑영비가 그대로 목진강의 허벅지에 박혔다.
퍼엉!
“쿨럭!”
남은 장력 하나를 무방비로 맞은 이천상이 뒤로 튕겨 나갔다. 금강야차마공의 내공 방패로 치명상은 피했지만,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만한 충격이었다.
“이놈!”
이천상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 순간.
바로 그 순간, 이천상의 미간에서 흘러나와 목진강의 정신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모종의 기운이 뚝! 하고 끊어졌다.
목진강의 눈에서 불이 뿜어졌다.
이천상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고 활용한 상단전의 능력이 사라졌다. 그러자 목진강의 인지 능력도 곧장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개 같은 놈!”
파아아악!
물러나려 했던 목진강이 이천상을 향해 날아갔다. 적의 병력이 이제야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적을 상대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분노로 눈이 돌아간 목진강. 분풀이로 팔 하나는 잘라 내고 납치할 생각에 엄청난 살기가 뿜어졌다.
하지만 그는 한 사람을 잊고 있었다. 지금껏 이천상의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허필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이다.
파아아앙!
튕겨 나가는 이천상과 교차하며 나아간 허필이 힘차게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그제야 허필의 존재를 깨달은 목진강, 그러나 그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터엉!
아무렇게나 휘두른 손짓 한 번에 허필의 권력이 허무하게 튕겨 나가 흩어졌다.
“애송이.”
훅! 펑!
순식간에 허필의 품으로 파고든 목진강이 우장(右掌)으로 허필의 우측 가슴을 때렸다.
펑!
허필이 피를 토하며 밀려 나갔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목진강의 전진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퉁!
무시하고 돌진하려던 목진강은 오른팔에 강한 중량감을 느꼈다.
“이놈!”
밀려 나가던 허필이 왼손을 뻗어 그의 오른 손목을 잡아챘다. 일격에 피를 토할 만큼의 내상을 입었지만, 절대 이천상에게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를 붙든 것이다.
목진강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부웅!
허필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적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대단한 의지였다.
쾅!
힘으로 허필을 땅에 처박은 목진강이 씨익 웃었다.
“놓지 못하겠느냐?”
“크윽!”
“좋다. 이 정도 재미는 있어야지.”
목진강이 발을 들어 허필을 밟았다.
쾅!
허필이 누운 땅에 실금이 번져 나갔다.
잔혹한 쾌감과 살기로 얼룩졌던 목진강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뭐야?!’
전혀 봐주지 않은 일격이었다. 한 방에 흉골이 다 부서져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공격이었다.
한데도 허필이 누운 땅에 금이 갔을 뿐, 정작 허필은 답답한 신음을 흘린 것 빼곤 멀쩡했다.
목진강의 눈에 핏줄이 섰다.
오늘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와중에 별것도 아닌 하수조차 마음대로 죽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야말로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벌레 같은 새끼! 죽엇!”
쾅! 쾅! 콰쾅!
엄청난 힘으로 허필을 밟는다.
허필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땅을 파고들었다. 이천상의 기괴한 무공에 손도 못 쓰고 당했지만, 실제로 그의 실력은 신교 육대의 수장급 이상이었다.
점점 땅으로 파고드는 허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표정이 사라지고, 적을 노려보던 눈은 흐릿하게 풀렸다.
“후욱!”
무려 이십 번을 넘게 허필을 밟은 목진강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어렸다.
“뭐야, 이놈?!”
마기를 한껏 담아 마음껏 밟았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초절정고수라도 내력 방패 없이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한데도 이놈은 멀쩡했다. 심해진 내상, 흐릿하게 풀린 눈을 보니 정신을 잃은 듯한데 정작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스르륵. 툭.
끝까지 목진강의 손목을 잡고 있던 허필의 손이 땅으로 떨어졌다.
다시 한번 발을 들어 올리던 목진강은 순간 저 멀리 절벽을 타고 오르는 적병을 보았다.
‘젠장!’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너무 시간을 끌었다. 심지어 이천상도 비틀거리며 자세를 세우고 있었다.
목진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파아아앙! 퍽!
이천상의 허리가 꺾였다. 목진강의 주먹이 배에 꽂힌 것이다.
비로소 놈에게 한 방 먹여 줬다는 생각에 목진강이 씨익 웃었다.
“애송이 놈.”
파바바박!
목진강의 손가락이 이천상의 혈도 곳곳을 찔렀다.
이천상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마혈과 혼혈을 동시에 짚인 것이다.
이천상을 어깨에 멘 목진강이 몸을 돌렸다.
“……?!”
목진강의 눈이 흔들렸다.
어느새 허필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 어떻게?!”
“군주님을 내려놔라.”
다 쉰 목소리, 입가에서 또 한 번 핏물이 흘렀다.
목진강이 땅을 박찼다.
훅! 콰앙!
강력한 일장으로 허필을 날려 버린 목진강이 다시 몸을 날렸다.
예상보다 많은 출혈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놈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걸 떠나 부하들을 죽인 그 필살의 마공만 알아내도 오늘 입은 피해는 전부 보상될 거라고 믿었다.
날아간 허필을 지나친 목진강.
그때, 이천상의 눈이 번쩍 뜨였다.
퍽!
“컥!”
무릎으로 턱을 가격당한 목진강은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부웅!
무서운 몸놀림으로 목진강의 상체를 붙든 이천상이 순식간에 두 다리로 그의 목을 휘감고, 두 손으로 오른팔을 잡았다.
우두두둑!
“크아악!”
팔꿈치가 역으로 꺾이며 무시무시한 통증을 일으켰다.
고통에 눈이 뒤집혔지만, 그 와중에도 목진강은 지금 이 상황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마혈과 혼혈을 짚었는데도 어떻게 정신을 차렸으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이익!”
목을 감은 다리를 왼손으로 쥐려는 순간, 어느새 이천상은 다리를 풀고 그의 등판을 걷어찼다.
퍽!
비틀거리는 목진강.
땅에 떨어진 이천상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풀렸던 마혈이 다시 조여지며 마비 증세를 일으키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목진강.
귀신처럼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퍼어억!
그 먼 거리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유이상과 주연교가 비수가 꽂힌 그의 다리와 몸통을 공격했다.
비틀거리다가 엉덩방아를 찧은 목진강.
빠각!
유이상의 발이 목진강의 턱을 걷어찼고, 주연교의 발이 허벅지에 박힌 비수를 찍어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끔찍한 통증은 그대로 느끼면서도 머리가 핑핑 돌아 사지가 흐느적거렸다.
주연교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감히!”
그녀의 손바닥이 목진강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퍼억!
시원한 일장에 목진강이 정신을 잃었다.
유이상이 주연교를 힐끔거렸다.
“죽이는 줄 알았소.”
“죽이면 안 되지요. 아직은.”
주연교가 이천상에게 다가갔다.
“군주님. 괜찮으세요?”
“나보다는 허 조장을.”
주연교가 쓴웃음을 지었다.
“멀쩡해요, 허 조장은.”
이천상이 고개를 돌렸다.
비틀거리며 다가온 허필이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잡기는 잡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