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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20화 (770/774)

외전 120화. 배교도(背敎徒) (8)

“쿨럭!”

피를 토한 중년 사내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엄궁이 입을 열었다.

“호언.”

“…….”

“이유가 무엇인가.”

사내, 호언은 말없이 엄궁을 올려다보았다.

달리 분노의 기색도, 초조함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심유하기 그지없는 눈빛은 한 점 동요 없이 차분하기만 했다.

엄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네에게 해 준 대우, 그렇게 불만족스러웠나?”

“그럴 리가 있겠소.”

눈빛만큼이나 차분한 대답이었다.

“그럼 왜 도주했나?”

“이유 따위 말해 준다고 날 살려나 주겠소?”

호언이 눈을 감았다.

“어차피 당신들이 택할 선택지는 둘 중 하나요. 날 죽이거나, 다시 잡아가거나.”

“잘 알면서 허락도 없이 나갔나.”

“다시 잡아가도 제대로 일할 생각도 없고 그런 날 가만둘 당신들도 아니니, 이러나저러나 죽겠지.”

“…….”

“난 준비되었소. 이만 죽이시오.”

엄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쾅!

그의 발이 호언 뒤의 벽을 뚫고 들어갔다.

“왜냐.”

“…….”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유라도 말하고 죽어라. 대우가 불만이 아닌 거면? 혹시 우리의 일 처리가 불만이었나? 겉으로는 협의지도를 세운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중원 놈들이 마도라 부르는 놈들의 세력이라 실망했나?”

호언이 눈을 떴다.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제대로 죽이지도 못할 인간이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 조직으로 들어가 해치운 일이 몇 가지이며, 지낸 세월이 얼마요?”

“…….”

“처음부터 당신들이 천마신교의 잔당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소.”

“그러니까 왜 나갔느냐 묻지 않느냐!”

엄궁의 일갈은 집 전체를 울릴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우리는 네놈을 사람답게 대해 줬어! 너희 가문이 대대로 제국의 반역 가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능력만 보고 뽑아 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대우했건만, 대체 왜 우리를 배신한 거냐!”

호언이 쓰게 웃었다.

“제국은 이미 유명무실해졌소이다. 반역도의 가문이라 한들 손가락질할 사람도 남지 않았소.”

“……!”

“당신들이 날 잘 대우해 줬다는 건 알고 있소. 그리고 난 그에 대한 빚을 필요 이상으로 갚아 주었소.”

“그래서 배신했다고?”

“말없이 조직을 나온 것이 당신들이 보기엔 충분히 배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유를 말해라. 왜 나갔느냐? 설마 우리 조직의 정보를 다른 곳에 팔아 치울 생각이었나?”

호언이 조소를 지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을 군사로 앉힌 거요, 당신들?”

“이익!”

“그저 회의를 느꼈을 뿐이오. 별다른 이유는 없소.”

“회의?”

“이유를 말하라고 했지, 그에 따른 세부 설명까지 바란 건 아니지 않소?”

“…….”

“이만 죽이시오.”

엄궁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오냐. 그렇게 죽음을 원한다면 기꺼이 죽여 주겠다.”

호언이 다시 눈을 감았다.

쩌억!

벽에서 다시 발을 뽑은 엄궁이 오른손을 들었다.

“죽이기 전에 하나 말해 주지.”

“…….”

“네놈 아들 일가가 도주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

“직접 잡아서 캐물어 봐야겠다, 네놈이 우리의 정보를 유출했는지.”

번쩍 눈을 뜬 호언.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당신들과 함께하며 누구도 만난 적이 없소. 당신들이 더 잘 알 것이오.”

“그러니까 아들 일가는 가만히 놔두어라?”

“내가 이곳으로 찾아온 것은, 어차피 죽을 걸 알았으니 자식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 때문이었소. 그 잠깐 사이에 당신들에 대한 정보를 건넸겠소?”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나는 그렇게 무모한 자가 아니오.”

“꽤 멍청하긴 했지. 우리가 네놈을 잡으러 올 걸 알았다면, 당연히 자식들에게는 찾아가지 말아야 했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

“그 정도 머리는 있는 사람 아니었나?”

“아니, 틀렸소.”

호언의 눈이 붉어졌다.

“한때나마 내가 몸담았던 조직을 너무 믿었던 것 같소. 천하가 마교도라고 손가락질할 때 코웃음 치며 당신들을 두둔했던 나를 죽일지라도, 내 자식들은 죽이지 않을 만큼의 의리는 있을 거라고 믿었소.”

“착각이 심하군.”

“그랬던 것 같소. 내 착각이 심했군.”

호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인두겁을 뒤집어쓴 마졸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오.”

“이놈!”

엄궁이 들었던 손을 내리치려 할 때였다.

“걱정하지 마라.”

엄궁과 호언이 움찔했다.

방 한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거구의 노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자네가 죽을 걸 알고 나갔고, 우리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으니 처형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자네의 아들 일가는 건드리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가시게.”

엄궁이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인은 두 사람을 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팔짱을 낀 채 어딘지 모를 바닥만 쳐다보고 있을 뿐.

엄궁이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시오. 만에 하나 정보가 누출된다면 본산에서 우리를 노리려 들 것이오.”

“본산에서는 이미 우리를 노리고 있다네.”

“우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

“안다고 해도 의미는 없지. 자네 말마따나 문파 대 문파 싸움으로 나가면 구파의 하나도 감당치 못할 전력이 아니었나?”

“이보시오, 선배!”

노인이 엄궁을 바라보았다.

순간 엄궁이 움찔했다. 노인의 눈에서 뿜어지는 엄기가 실로 매서운 탓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호언 이상으로 차분했다.

“자네가 왜 그리 조급해하는지 아네. 그리고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도.”

“…….”

“내가 말했지? 우리가 하는 일은 협의지도가 아니라고.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그러니 이놈의 자식들을 그냥 놔두라는 거요?”

“정보 누출이 걱정되었다면 진즉에 잡아 두었어야지.”

“그걸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자네,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우리가 왜 모였는지는 알고 있는 건가?”

“당연히!”

쾅!

엄궁의 분노 어린 진각에 방 전체에 실금이 퍼졌다.

“우리는 저 무도한 교주 놈과 그 일파를 숙청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배교도(背敎道)라는 말로 우릴 모욕했지만, 그것도 상관없소! 우리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하오!”

“연관도 없는 사람들 다 죽여 가면서 말인가.”

“연관이 없긴 왜 없소! 이놈의 자식인 이유만으로도 우리와의 연관은 충분하오!”

“그 작자도 그랬지.”

“뭐요?”

“자전신마 역시, 아무 잘못도 없는 이들을 가족이라고, 친구라고 혹은 과거에 엽차 몇 번 마셨다고 다 잡아 죽였더랬지.”

화아악!

엄궁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일렁였다.

아직 극마에 오르지 못했지만, 살기의 농도만큼은 십대마왕 중 하나로 손꼽혔던 노인, 대력신마의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나를 모욕하는 것이오?”

“모욕이 뭔 줄은 아나?”

“선배!”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자전신마는 물론, 명분이라는 변명으로 제 입맛대로 천하를 주무르는 정파 놈들의 비열한 짓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닥치시오!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모였소! 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귀신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존재가 되더라도 견딜 것이오!”

“자네가 호언의 자식을 찾아 죽일 생각이라면, 나는 이 길로 신교 본산으로 찾아가겠네.”

“……뭐라고?!”

“가서 자네의 아들은 물론, 우리 조직과 연관된 모두를 잡아 죽이겠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엄궁의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

“지금 협박하는 거요?”

“제대로 악랄해지지 못한 어설픈 자네들이 차마 못 내린 결단을 손수 내려 주겠다는 것이야.”

“그게 무슨 헛소리요!”

“본교에 있는 자네 아들, 그리고 우리의 혈육이나 제자들은 자전신마의 손에서 멀쩡할 성싶은가?”

“……?!”

“혹시 모르지. 우리 중 누군가가 비밀리에 정보를 유출했을지도. 그로 인해 본산 수뇌부들에게 정보가 유입되고 있을지 모르잖나.”

“……!!”

“지금껏 그래 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말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 직접 움직여 주겠네. 가서 다 죽이고 돌아오지. 나 역시 거기서 죽을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 줄도 알아야지. 아니 그런가?”

엄궁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대력신마가 씁쓸하게 웃었다.

“진즉 해야 했을 일을 못 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노력해야 하는 상황과, 진즉 해야 했을 일을 못 했기에 깔끔하게 포기해야 할 상황은 따로 있는 법일세.”

“…….”

“호언의 자식 일가에 관한 일은 전적으로 후자라네.”

“대체, 대체 왜 자꾸 일을 힘들게 하려는 거요?”

“힘든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일세.”

“…….”

“자네만의 정의가 그리도 불공평하게 발휘되는 거라면, 나아가 배교도라고 손가락질받으면서까지 모인 조직원 모두가 그런 가치를 공유한다면.”

카드드득!

육중한 대도가 실금 위를 단호히 가로질렀다.

“자네들과 나의 길은 여기서 마무리되어야 할 것 같네.”

“…….”

“왜? 자네가 보기에 나도 이쪽 정보를 본산에 흘릴까 무섭나? 그래서 죽여야 할 것 같은가?”

엄궁이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쾅!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른 엄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가로 향했다.

방을 나서기 전, 엄궁이 씹어뱉듯 말했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시오. 저자를 죽이든 살리든, 얼마나 지혜로운 판결을 할 수 있을지 보겠소.”

엄궁이 자리에서 사라지자 대력신마가 긴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가는 길, 우리가 너무 못 볼 꼴을 보인 것 같네.”

호언이 떨리는 눈으로 대력신마를 바라보았다.

조직에 있을 때, 마음을 터놓고 얘기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어르신. 저는…….”

“말하지 않아도 되네. 자네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

“그렇다고 자네를 살려 둘 수는 없네. 준비가 되었다 했으니 내 따로 사과는 않음세.”

호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께서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누구라도 저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지요. 다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려 주지 못하는 현실 이외에, 그간 자네에게는 미안했던 일이 참 많았어. 마지막에 와서야 사과하는 이 늙은이를 욕해 주게.”

“아닙니다.”

호언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직이 다른 형편없는 이들과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저이를 이해해 주게나. 집과 고향을 잃고 비루하게 살아남은 우리의 한(恨)이 너무 컸네. 본래 저런 사람은 아니었어.”

“이해합니다. 용서와는 별개로요.”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네.”

대력신마가 호언의 가슴에 솥뚜껑 같은 손을 올렸다.

“편히 가시게.”

“부디 대업을 이루시길.”

호언이 눈을 감았다.

우우웅.

대력신마의 손에서 은은한 광채가 일자, 호언의 목이 툭 꺾였다. 체내로 침투한 경력이 단숨에 심맥을 끊어 버린 것이다.

‘고통은 없었을 것이네.’

죽은 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고, 죽이고 살아남은 자의 얼굴에는 그림자만 가득했다.

대력신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떠나보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씩 늘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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