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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23화 (773/774)

외전 123화. 작전 속의 작전 (3)

자신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검도(劍道)가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사람들이 붙여 준 혈향검(血香劍)이라는 별호를 이름으로 삼았다.

은은한 달빛이 내리쬐는 평상에 걸터앉은 혈향검은 자신의 검을 뽑아 보았다.

스르릉.

검이 검집에서 뽑히는 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했다.

혈향검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순간, 홀로 검을 보는 시간만큼 두근거리고도 차분해지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날붙이가 주는 마력에 홀렸다. 그 와중에 굳이 검을 선택한 이유는 어떠한 휘어짐도 없이 올곧게 나아가는 형태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단 한 순간도 다른 무공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오로지 검.

사람의 피부를 가르고 근육을 찢고, 뼈를 절단하는 예술적인 살인 병기는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좋군.’

혈향검은 자신의 애검을 천천히 휘둘러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휘두르고 있지만, 그의 눈에는 공기를 가르는 검압이 보였다.

그것이 환상인지 실제로 그러는 것인지는 혈향검도 알지 못했다. 다만 손잡이를 통해 느껴지는 미세한 압력 차이를 장소마다, 시간의 흐름마다 다르게 느끼는 그였다.

사람들은 혈향검이 전사(戰死)하지 않고 꾸준히 검을 연마한다면 한 갑자의 세월 안에 극마에 이를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고 칭찬하였다.

그 칭찬의 근본에는 혈향검의 뛰어난 감각이 있었다. 공기의 미세한 압력과 흐름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연마되었다면, 그 정도로 섬세한 감각을 지녔다면 극마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혈향검은 세인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늙어서 죽든 지금 당장 죽든, 그저 검과 함께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검에 대한 애정이 과해 인명을 녹슨 철검보다도 천하게 여기는 게 문제일 뿐, 무인으로서 그의 자세는 모두에게 귀감이 되기 충분했다.

‘아름답군.’

혈향검의 애검은 대단한 보검이라거나 마기가 물씬 풍기는 마검이 아니었다.

그저 흔한 철방에서 만든 질 좋은 철검을 오랫동안 잘 관리한 것에 불과했다.

때로는 이가 빠지고 때로는 금이 가기도 했지만, 제작자에게 가서 계속 검을 복구했다.

그렇게 복구하고 또 복구한 지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검에 상처를 주는 이를 만나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 검과 함께할 수 있을까.’

평생을 함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검이 부러지면, 마치 혈육을 잃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 올 것만 같았다.

‘내 목숨도 유한하듯, 네 목숨도 유한하다. 서로가 끝장이 나는 순간까지 제대로 날뛰어 보자꾸나.’

그때였다.

우웅.

혈향검의 검이 희미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

혈향검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검에 대한 깨달음이 지극히 깊은 그는, 세인들이 말하는 초절정고수가 되지 못했음에도 검명(劍鳴)을 터트리는 희대의 검인(劍人)이었다.

그러나 검과 나 자신을 일치시키지 않았는데도 검이 스스로 울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이냐.’

괜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마치 검에 깃든 혼이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위협을 전해 주는 듯했다.

혈향검이 입을 열었다.

“흑백.”

스르륵.

혼연히 나타난 두 마인의 신법은 흑마대 대원들에 견줄 만했다.

제각기 흑의와 백의를 입은 두 사람은 의복과 마찬가지로 시커멓고 허연 검을 안고 있었다.

“주변을 수색해라.”

흑백쌍검(黑白雙劍)은 혈향검의 말에 결코 토를 달지 않았다.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귀신처럼 사라진 두 검사가 마을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혈향검 역시 기감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끼익.

저 뒤편 모옥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검사가 다가왔다.

“조장님.”

“무슨 일이냐.”

“산모가 지쳤습니다. 물과 소량의 음식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혈향검이 무서운 눈으로 검사를 바라보았다.

검사는 흠칫했다.

“우리는 저 두 사람을 지켜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오직 그 명령 하나뿐이야.”

“…….”

“달리 대답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검사가 조용히 사라졌다.

혈향검이 다시 고개를 돌려 검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애를 가졌다는 사실은 그들을 잡았을 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받은 명령에 융통성을 부여할 만한 가치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또 시간이 흘렀다.

“……?”

혈향검이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검.”

나직이 진동하며 나아가는 그의 목소리에도 백검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혈향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검.”

다시 또 불러 보았지만, 여전히 백검의 목소리나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흑검.”

훅.

저 멀리 후측방에서 수색하던 흑검이 단숨에 모옥 몇 채의 지붕을 밟아 가며 날아왔다.

“부르셨습니까.”

혈향검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흑백쌍검의 능력은 거의 동일하다. 거리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흑검만 듣고 백검이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목표물을 감시하는 검사들 열 명을 추려 저쪽 소나무 인근을 수색해라.”

스륵.

귀신처럼 사라진 흑검이 잠시 후 모옥 안의 검사들을 이끌고 우측으로 달려 나갔다.

‘음.’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가고 싶었지만, 만에 하나를 위해 자신은 모옥에 있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이중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이니까.

혈향검은 다시 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은 흑검과 검사들이 향한 곳으로 집중된 채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적이다!”

메아리치듯 퍼져 오는 소리에 혈향검이 벌떡 일어났다.

카앙! 퍽! 쾅!

빠르고 살벌한 타격음이 우수수 들려왔다.

혈향검의 눈이 번쩍였다.

‘강자!’

그 타격음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미약한 마기의 농도가 거의 자신에 필적했다.

혈향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품에서 작은 연통을 꺼내 하늘로 겨누었다.

퍼어엉!

연통이 터지며 하늘 높이 올라가 붉은 불꽃을 터트렸다.

파아아악!

혈향검은 곧장 어두운 격전지로 몸을 날렸다.

“……?!”

혈향검의 눈이 흔들렸다.

백검은 칠공에서 피를 토한 채 저 멀리 수풀에 쓰러져 있었고, 흑검은 두 팔이 부러진 채로 엎어져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마기가 불안정할 뿐 죽지는 않았다. 반면 검사들은 반이 죽고 반이 의식을 잃었다.

혈향검이 무서운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명검처럼 날카로워진 그의 감각이 사방을 훑었지만, 조금 전 느꼈던 그 마기의 주인이 도통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암살자?’

그럴 리가 없다.

그가 느낀 마기는 절대 암살에 어울리는 마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마공을 익힌 자가 암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때였다.

“적이다!”

“목표물을 지켜라!”

모옥에서 두 남녀를 지키는 검사들이 외치는 소리.

혈향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설마하니 이런 초보적인 성동격서에 걸려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가 재빨리 땅을 박차려는 순간.

‘……?!’

한 발로 땅을 박차는 그 박자에, 그는 등 뒤에서 서늘한 마기를 느꼈다.

휘하 검사들은 절대 풍길 수 없는, 최고급 마공을 익힌 자만이 풍길 수 있는 밀도 높은 기운.

홱 몸을 돌린 혈향검이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박자가 엉켜 자세도 어정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번쩍!

어두운 밤을 벼락처럼 밝히는 새하얀 검광.

혈향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짐승처럼 달려든 누군가가 자세를 낮춰 검광을 피하더니, 어두운 금빛으로 물든 두 주먹을 휘둘러 왔다.

쩌정! 퍼버벅!

“컥!”

답답한 신음을 토해 내며 물러난 혈향검.

상상을 초월하는 기습의 최초 일격은 검배로 막았지만, 나머지 세 번의 권격으로 복부와 가슴을 허용했다.

‘이!’

권속(拳速)이 빠른 만큼 제대로 된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상위의 마공이 분명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혈향검은 내부가 진탕되는 것을 느끼고, 이를 악물며 검법을 펼쳤다.

언제고 천하제일검에 도달하겠다는 염원을 담아 만든 검법, 신검칠식(神劍七式)이었다.

번쩍! 번쩍! 피슉!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벼락처럼 휘둘러진 검초의 마지막 일격만을 허용했다. 그조차도 상완이 조금 베인 것에 불과했다.

혈향검이 이를 악물었다.

내부가 진탕되어 평소처럼 굴강한 마기를 쏟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검속도 평소보다 미세하게 느려진 것이다.

그 약간의 미세함으로 인해, 상대의 몸을 난도질해야 마땅할 검초가 위협용으로 끝나 버렸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상대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빠르고 기이했다.

‘흡사 짐승!’

파바박!

한껏 낮춘 자세로 좌우를 찍어 가며 다가온 상대가 금강석처럼 단단해 보이는 주먹을 일직선으로 휘둘렀다.

혈향검은 눈앞이 막막해지는 것을 느꼈다.

쾅!

이번 일격은 제대로 들어갔다.

검으로 막아 충격을 분산시켰지만, 줄어든 위력만으로도 상체 전체가 뒤로 꺾이는 듯했다.

파아아악!

혈향검은 재빨리 후퇴하여 몸을 점검하려 했다. 검속만큼이나 보법과 신법에도 신경을 썼기에, 그의 움직임 역시 미지의 상대만큼이나 빨랐다.

그러나.

‘뭐, 뭐야?!’

혈향검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빠르게 물러나던 몸이 물속에 빠지기라도 한 듯 무거워졌다. 당연히 속도도 느려졌다.

‘이건 설마?!’

어둠에 가려진 상대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상대의 형형한 눈빛이 무감하게 가라앉았다는 것과, 그가 뻗은 손에서 흘러나온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자신의 사지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은 볼 수 있었다.

‘허공섭물!!’

왼손을 뻗어 포천금마공을 운용, 혈향검의 후퇴 속도를 저하시킨 이천상이 북천마혜보를 펼쳐 코앞까지 다가왔다.

혈향검은 다급하게 검으로 찍어 눌렀지만, 포천금마공의 포자 결로 인해 검로마저 미묘하게 뒤틀려 버렸다.

이천상의 야차혈장이 혈향검의 가슴을 그대로 찍었다.

쾅!

“커헉!”

기어이 피를 토한 혈향검이 땅을 굴렀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파아악!

확실히 혈향검은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내상을 입었지만 땅을 구름과 동시에 자세를 바로잡아 후속타를 대비했다.

그러나.

파르르륵!

혈향검이 고개를 들 때, 이미 이천상은 그의 머리 위를 지나쳐 모옥 안으로 들어간 채였다.

혈향검은 저도 모르게 외쳤다.

“안 돼!”

퍼버벅! 콰앙!

모옥의 벽이 무너지며 검사 세 명이 튕겨 나왔다.

혈향검이 괴성을 지르며 모옥을 향해 달렸다.

그때였다.

파아아앙!

반투명한 백색 해골 환영이 혈향검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장력?!’

혈향검이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쾅!

쪼개진 장력이 땅에 실금을 만들었다.

혈향검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을 느꼈다. 대단한 장법이었지만 마기의 질이 높지 않아 손쉽게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검병을 쥔 손아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강한 마공이었다. 이 정도면 가히 신교 최고급 마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상으로 내공 운용이 원활하지 않은 걸 감안하더라도 이 위력은 반칙이었다.

“딱 조리할 수 있을 만큼만 남겨 주셨네.”

어느새 모옥에서 뛰쳐나온 유상천과 위찬이 혈향검의 앞을 막았다.

유상천이 으르렁거렸다.

“발목 잡지 마라, 위찬이.”

“맨손인 선배가 잡았으면 잡았지, 저는 못 잡습니다. 칼 들고 있거든요.”

“한 손이 남잖아!”

“농담은 나중에 합시다!”

두 사람이 혈향검을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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