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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화 (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화

그날 그 사건을 없애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했을까.

생과 사가 갈리던 그 찰나에 어떤 선택을 내렸어야 모두가 살 수 있었을까.

지난 5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날 괴롭히던 질문이다.

그 질문의 답을 수십 개, 아니, 수백, 수천 개는 넘게 만들어두었다.

그중 가장 완벽한 답.

사실 별게 없었다.

“액셀 밟으라고!”

“아, 아, 어!”

연훈이 형이 액셀을 세게 밟았어야 했다.

당시 연훈이 형은 갑자기 달려들던 트럭 탓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연훈이 형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든 이런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면 몸이 굳을 테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굳었잖아!’

연훈이 형은 딱딱하게 굳은 채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형! 액셀에 발 올려요!”

“어? 으, 응!”

난 연훈의 형의 오른쪽 허벅지를 있는 힘껏 눌렀다.

그러자 액셀 페달이 끝까지 밀려 들어갔다.

후웅!

차가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간다.

“어어어!”

갑자기 올라간 속도에 연훈이 형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이대로 갔다간 우리도 중앙선을 넘어버릴 판국이었으니 핸들을 꺾은 건 올바른 판단이었다.

뒤이어,

콰아아아아앙!

굉음이 들려왔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우릴 빗겨 간 트럭이 그대로 벽을 박아버린 거였다.

“미친.”

“으아아아, 뭐, 뭐야!”

“저 미친 트럭 뭔데!”

“으아, 으아아아. 아아아아아.”

나를 제외한 네 사람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시끄러운 상황 속,

“……하아.”

오직 나만 고요했다.

아니, 멍한 거였다.

[미션 성공.]

[세이렌 멤버 전원을 구해냈습니다.]

그토록 상상하고 상상하던 일이.

소원을 빌 수만 있다면 반드시 빌고 싶었던 그 소원이.

“……이뤄졌잖아.”

현실이 되었다.

원래라면 뒷좌석의 형들이 모두 죽고 운전대를 잡은 연훈이 형은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다.

한순간에 다섯 사람의 꿈과 삶을 모두 앗아갔던 그 사고가,

“아…….”

우릴 빗겨 갔다.

방금 전까진 반사적으로 행동한 거였는데.

“태, 태윤아?”

“뭐야.”

“태윤이 울어?”

“쟤가 운다고?”

“무슨 일이야?”

이제야 현실감이 느껴졌다.

난 눈물을 닦았다.

지금은 눈물 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태윤아, 괜찮아?”

연훈이 형이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형을 빤히 바라만 봤다.

연훈이 형이 다시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우니까.

난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 앉아 있는 다른 형들.

강도승.

이운.

박동준.

이 형들도 멀쩡히 살아 있었다.

“야. 너 왜 안 어울리게 울어.”

“왜 그래. 얘가 놀랐을 수도 있지.”

“도승이 형 매정하다. 강도승 매정쟁이. 우우우.”

이게 현실이 맞나?

난 살아 있는 형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현실 같은 풍경이다.

누군가의 장난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하다.

“여기. 휴지로 눈물 좀 닦아, 태윤아.”

“아, 응.”

손에 닿는 휴지의 감각.

몸을 감싼 자동차 시트의 감각.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안전벨트의 감각.

이 감각들이 가짜일 리가 없다.

“후우우우.”

난 심호흡을 했다.

“이제 좀 진정 됐어?”

연훈이 형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묻는다.

“태윤아, 괜찮지?”

뒷자리에 앉아 있는 운이 형이 자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윤이 우는 거 처음 보네~”

동준이 형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천하태평하다.

“제일 안 울 것 같이 생긴 놈이.”

도승이 형은 늘 까칠하다.

5년 만에 들어보는 형들의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던 것 그대로였다.

“……네. 멀쩡해요.”

난 5년 만에 처음으로, 형들의 물음에 답을 했다.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을 닦은 뒤 얼굴색을 정리했다.

“우리 태윤이가 알고 보니 울보네~”

조수석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동준이 형이 말한다.

“너무 놀리지 마. 아까 진짜 큰 사고 날 뻔한 거였잖아.”

그러자 운이 형이 조용히 날 두둔해 준다.

“아까 쟤가 연훈이 형 허벅지 안 눌렀음 우리 다 죽었어.”

도승이 형은 방금 전 내가 했던 일을 봤던 모양이다.

“깜짝 놀랐어. 갑자기 태윤이가 내 허벅지를 누르길래. 태윤이 아니었으면……. 진짜……. 상상만 해도…….”

운전대를 잡은 연훈이 형은 방금 전 일을 떠올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때문에, 애들이, 하마터면…….”

“어어어!”

“연훈이 형 운다!”

“누가 수도꼭지 잠가!”

“흐으으응…….”

이제야 기억났다.

연훈이 형은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란 걸.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고마워, 태윤아. 진짜 우리 막내 아니었으면…….”

당장에라도 눈물을 왈칵 쏟아낼 것 같은 몰골이었다.

“형. 뚝 그쳐요. 이러다 진짜 사고 나요.”

“……응!”

연훈이 형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기세는 무슨 꼬마장군감이었다.

현재 우리는 사고를 피한 후 급히 갓길에 차를 댄 상태였다.

과하게 흥분을 한 상태에서 운전을 했다간 추가 사고가 벌어질 수 있을 테니까.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를 바라보니 트럭 주변으로 벌써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우리도 내려서 도와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운이 형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트럭 기사를 운전석에서 빼내는 중이었다.

우리까지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얼추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가지 마요.”

저 현장에 가고 싶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저 트럭 기사, 음주운전이었다.

그것도 음주 후 운전이 아닌 음주 중 운전.

긴 시간 운전을 하다 보니 적적함을 달래려 한 잔씩 습관적으로 마셔왔던 인간이었다.

더 나아가 저 사람, 끝까지 본인 형량 깎으려고 발버둥 쳤었다.

우리 과실도 있다며 아득바득 우겨댔으니까.

그때 억지 부리던 모습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 따위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래. 그냥 가자. 데뷔 전에 혹여나 안 좋은 이야기 돌지도 몰라.”

“불안불안할 때는 하지 않는 게 좋지.”

“흐음. 그래도…….”

“아뇨. 가요. 제발.”

“……그래. 가자.”

그렇게 우린 사고현장을 빠르게 떠났다.

다만 아무리 못된 사람이었어도 생명은 생명이다.

핸드폰으로 119를 눌러 사고 장소와 상황을 간략하게 전달하긴 했다.

난 트럭에서 멀어지는 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나, 회귀한 거 맞는 거 같네.’

아무리 봐도 이게 현실적인 상황은 아니다.

또한,

‘이탈자? 통찰? 무슨 이상한 소리도 들었던 것 같은데.’

사고가 나기 직전.

인격이 말살된 듯한 기계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던 것도 같다.

이 모든 게 비현실적이라 어디에서부터 이해를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하아. 이제 다시 숙소 가면 내일부터 빡세게 연습이네~”

동준이 형이 뒤에서 태평하게 이런 소리나 하고 있고.

“데뷔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힘내자.”

운이 형이 동준이 형을 달래듯 말했다.

“난 잔다.”

도승이 형은 시트에 몸을 묻고는 눈을 감았다.

“태윤아. 너도 한숨 자. 내가 숙소까지 진짜 안전운전해서 갈게.”

연훈이 형은 내가 졸릴까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난 사람들을 한 차례 쭉 둘러봤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어렸었나.’

고작 5년이지만 어쨌든 미래에서 회귀했다.

지금 이곳에서 내 나이는 19살.

하지만 원래는 24살이었다.

리더이자 맏이인 연훈이 형도 지금 이 시점에선 23살이다.

분명 형들이었는데,

‘아닌 거 같네.’

묘하게 동생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안 자요. 형 안전운전하는 거 감시할 거예요.”

난 연훈이 형을 바라봤다.

현시점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꿈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이다.

그 현실이 내가 알던 현실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냥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거라고 속 편히 믿고 싶다.

형들을 다시 볼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내가 살던 그 세계보다 이 세계가 훨씬 더 좋은 걸 부정할 순 없을 테니까.

다만,

‘흐음.’

걱정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했다.

우선은,

‘숙소부터 가자.’

여기에선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자! 도착했다!”

연훈이 형이 우리 숙소가 있는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 렌트카는 내일 아침이면 업체에서 수거해 갈 예정이다.

“다들 내려!”

“우으음! 잘 잤다!”

“역시. 연훈이 형 베스트 드라이버.”

“연훈이 형이 운전을 잘해”

형들은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난 아무 말 없이 형들의 말을 주워들을 뿐이었고,

‘이게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펼쳐졌을 그림이구나.’

그 트럭 기사가 음주운전 같은 걸 하지 않았더라면 이어졌을 일상이다.

‘신기하네.’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내겐 마법 같았다.

“가자. 태윤아. 뭐 해.”

운이 형이 내 짐을 들어주며 말했다.

“아, 네.”

난 운이 형이 건네준 더플백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계단을 타고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생각해 보니,

‘이때 우리 옥탑 살았지.’

당시 우리가 쓰던 숙소는 열악해도 조금 열악한 게 아니었다.

일단 숙소가 옥탑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또한,

“자아! 집이다!”

“으아아아!”

“후우.”

일단 구조상 우리 숙소는 투룸이긴 한데.

“이불부터 깔고 얼른 자자. 피곤해 죽겠네.”

“도승아. 씻고 자야지.”

“안 씻을 거야.”

그냥 커다란 원룸에 창고 같은 자투리 공간 두 개 붙어 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방이랍시고 붙어 있는 두 개의 공간은 성인 남자 한 사람이 몸을 눕히기에도 사이즈가 여의치 않은 공간이었다.

해서 우리들은 그 두 개의 공간을 옷방과 창고로 사용하며 거실에서 다 같이 이불을 깔고 자고 있었다.

당시엔 딱히 불편하다 생각 안 했는데,

‘더럽게 불편하겠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착취다.

심지어 이때의 난 열아홉 살인데.

프라이버시 따위 당연히 없었다.

이따위 삶이 2022년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냐 묻겠지만,

‘생각보다 기상천외한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기업 대표가 회사 실무를 모르면 이런 식의 기상천외한 일이 생긴다.

“태윤아 얼른 씻고 와. 내가 이불 깔고 있을게.”

연훈이 형이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두툼한 이불들을 바닥에 깔기 시작했다.

저 마른 사람이 자기 몸보다 두꺼워 보이는 이불을 들고 낑낑거리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

“줘요. 제가 할게요.”

“으응?”

현시점에서도 내가 연훈이 형보다 크다.

아마 이때 내 키가 184인가 그랬을 거다.

처음 입사했을 땐 연훈이 형이랑 키가 비슷했는데 1년 사이에 10센티 가까이 자랐다.

지금은 팀 내에서 가장 컸던 도승이 형이랑 시야가 얼추 비슷하다.

어쩌면 내가 조금 더 클지도 모르고.

“얘가 여행 갔다 오더니 철이 들었나.”

“조금 뿌애애앵 하는 느낌 아니었나.”

“태윤아~ 갑자기 크면 형들 속상해~”

난 형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하고 웃었다.

묘한 느낌이다.

형들인데 다 동생들 같으니까.

“네. 알겠어요.”

난 이불을 다 깔고 난 뒤, 화장실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씻고 나왔다.

샤워를 마친 형들은 벌써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일렬로 거실에 누워 있었다.

연훈이 형은 마스크팩까지 붙인 상태다.

자기 나이 많은 거 방송에 티 나면 안 된다며 피부 관리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봐야 스물세 살인데.

“태윤! 얼른 와!”

연훈이 형이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네.”

난 그쪽으로 가서 누웠다.

다 큰 남성 다섯이 한방에 누워서 자는 것.

사실 흔한 풍경은 아니지만, 묘한 장점은 있다.

이상하게 안정감이 든다 해야 할까.

“오늘 너무 재밌었어. 오는 길에 조금 위험한 일이 있을 뻔하긴 했지만, 그거 빼곤 진짜 최고였던 거 같아.”

연훈이 형이 그리 말하며 마스크팩을 떼어냈다.

“맞아. 재밌었어.”

“고기 진짜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다.”

“살찐다.”

“진짜 강도승 저 소시오패스 어쩌지?”

“뭐? 강도승? 뒤에 형 안 붙이냐?”

“한 살 차이가 형이냐?”

“이 새끼가…….”

“아아악! 강도승이 사람 친다!”

난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이 실랑이를 벌이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오늘이 아마 데뷔 전 마지막일 것 같다며 다 같이 속초로 여행 다녀온 날이었을 거다.

5년 전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숙소에서 구워 먹었던 고기가 맛있었던 건 기억이 난다.

“태윤이는 어땠어?”

그때 운이 형이 내게 감상을 물었다.

“맞아. 태윤이가 오늘 묘하게 말이 없네.”

연훈이 형도 맞장구치며 내게 물었다.

“저는,”

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좋았어요. 엄청.”

이게 가장 솔직한 말이다.

형들을 구해내고.

숙소에 돌아오고.

이렇게 다 같이 한 이불 덮고 누웠으니까.

좋지 않을 수 없던 날이다.

다만, 그렇기에 더 미룰 수 없이 지금 해야 할 말이 있다.

“근데, 형들한테 할 말 있어요.”

“응?”

“뭔데?”

“쟤 왜 갑자기 진지해지냐.”

“무슨 일 있어?”

난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뒤 일렬로 누운 형들을 바라봤다.

형들은 누운 자세 그대로 고개만 반쯤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 잠깐 웃음이 날 뻔했지만 표정을 정리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저, 아이돌 안 하려고요.”

“응?”

“뭐?”

“태윤아?”

“저 새끼 왜 저래.”

앞으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그 수많은 문제들.

그 문제들을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이거다.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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