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4화
‘통찰’이라는 건 신기한 능력이었다.
왜 ‘통찰’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가 대폭 올라간다.
이는 비단 사물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다.
현상과 상황에 대한 이해까지도 올라간다.
화분이 연훈이 형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이 상황.
보통 같았으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대로 낙하하는 화분을 바라만 봤겠지.
하지만,
스윽.
지금 난 어느 정도의 각도로 연훈이 형을 밀어야 화분의 추락 범위에서 연훈이 형을 가장 안전하게 빼낼 수 있는지.
그 궤적이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왼쪽 가슴팍을 먼저 밀치고, 왼쪽 옆구리를 다시 잡은 다음 힘주어 옆으로 밀어내자,
콰아아앙!
연훈이 형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지던 화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 으아,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이번에도 역시나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조금만 늦게 반응했어도 죽을 뻔했다.
화분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통찰도 끝이 났다.
난 원래 속도로 돌아온 세상에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다만 지끈거리는 머리는 뒤로하고 연훈이 형부터 챙겼다.
“형 괜찮아요?”
“화, 화분이……. 엄청 커다란 화분이……. 흐으읍!”
형이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난 우선 형을 진정시켜 줬다.
그러곤 위쪽을 쳐다봤다.
이만큼 커다란 화분이 떨어지다니.
분명 뭔가 문제가 있던 거다.
현재 우리가 있는 편의점은 빌라 1층에 입주한 편의점이었다.
위쪽은 전부 민가란 말이다.
이 사건의 주범이라 할 만한 사람이 지금 저 안에 살고 있을 거다.
“어떤 미친놈이…….”
악이라도 질러서 빌라 입주민들 전부 깨워 버릴까 싶은 찰나,
“아이고오! 세상에! 괜찮으세요? 진짜 죄송합니다!”
빌라 입구에서 한 중년 남성이 나왔다.
손에 모종삽을 들고 있고 바지에 흙 알갱이 따위가 묻어 있다.
범인을 찾았다.
“아저씨.”
“태, 태윤아. 하지 마.”
“형. 잠시만요.”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데 없으신가요? 병원비나 위로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까…….”
“지금 돈이 중요해요? 사람이 죽을 뻔했잖아요!”
“정말……. 입이 열 개라도…….”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만, 그만하자……. 태윤아.”
뒤에 있던 연훈이 형이 겁먹은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지금 가장 겁먹은 사람은 연훈이 형이란 걸.
본인이 죽을 뻔했던 사건이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중년 남성은 허리를 꾸벅 숙였다.
보아하니 정말 죄송한 모양이다.
이 사람 안색도 창백하게 질려 있으니까.
하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건인데 밖으로 나와 이실직고하는 걸 보니 양심적인 사람인 거 같긴 하다.
“근데, 그, 변명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화분이 절대 떨어질 만한 위치에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분갈이하려고 베란다에 꺼내두긴 했는데 난간도 있고, 베란다 안쪽에 뒀던 거라서……. 저도 지금 이 상황이 안 믿깁니다.”
그때 중년 남성은 이리 말했다.
“화분이 떨어질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고요?”
난 그 말을 재차 물었다.
“네. 안 믿기시죠? 저도 안 믿깁니다. 다만, 그게 사실인지라……. 죄송합니다.”
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곤 내 귓가에 들렸던 그 음성,
‘우연훈의 사망 확률 증가.’
이게 결코 장난 따위가 아님을 확신했다.
확신이 너무 늦었다.
귓가에 대고 떠들어 대는 정체불명의 목소린데.
당연히 이 정도의 초월적인 짓거리도 가능할 거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이 중년 아저씨 잘못이 아니다.
이 일의 잘못을 찾으라면,
‘나구나.’
내가 탈퇴 의사를 내비쳐서 그렇다.
“그, 위로금은…….”
중년 남성은 어떻게든 보상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자 연훈이 형이 나서서 말했다.
“아뇨. 저 안 다쳤으니까. 위로금 안 주셔도 됩니다.”
형은 별일 없었으니 그냥 넘어갈 생각인가 보다.
다만,
“아뇨. 입금해 주세요.”
“태, 태윤아!”
이 돈은 받아야 한다.
연훈이 형은 내가 왜 그러나 싶겠지만,
“계좌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 돈은 받는 게 서로에게 좋다.
나도 마음 같아선 안 받고 싶다.
나 때문에 일어난 사곤데.
다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사고는 어쨌든 사람이 죽을 뻔했던 사고니까.
이 사고에 대한 상호 간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적당한 금액이 통장에 이체 내역으로 찍혀 있는 것만큼 확실한 합의는 없다.
이 중년 남성도 우리가 돈 안 받겠다 했을 때보다 더 화색을 내비치고 있지 않은가.
“형. 이건 받는 게 이분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아요.”
“맞습니다.”
“그, 그래?”
그제야 형도 조심스레 남성에게 자신의 계좌 번호를 알려줬다.
남성은 위로금을 입금한 후 조심스레 화분을 치우기 시작했다.
편의점 알바생이 뒤늦게 나와 상황을 파악하며 화분 청소를 거들어주기도 했다.
우리도 화분 청소를 조금 거들어드렸다.
남성은 그럴 필요 없다며 연신 손사래를 쳤지만 도와드려야 속이 조금 편할 것 같았다.
“이제 슬슬 가죠.”
“그래야겠다.”
적당히 화분을 치웠다 싶을 때.
난 형을 데리고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형. 저 탈퇴 안 할게요.”
“어. 어? 어어? 갑자기?”
재빨리 탈퇴 의사를 번복했다.
이 게임이 결코 장난이 아님을 확인했으니까.
이건 어떤 초월적인 누군가의 소행이다.
나 같은 한낱 인간은 따를 수밖에 없는.
다만 그 질이 굉장히 나쁠 뿐이지.
‘죽음을 대가로 걸어?’
신이 있다면 어떤 놈일지는 모르겠다만 미친놈일 건 확실했다.
만일 내가 죽어서 신을 만나게 된다면 죽빵 한 대만 갈기고 싶을 정도로.
그때,
[미션 성공.]
[탈퇴 의사를 번복했습니다.]
귓가에 다시 한번 음성이 들려왔다.
이걸로 연훈이 형은 사망의 위험에서 한 발 멀어지게 된 것 같았다.
“왜 갑자기 탈퇴를 안 하겠다는 거야?”
연훈이 형은 내가 마음을 바꾼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상한 목소리가 저한테 말해서요, 라고 할 순 없다.
“형 말에 설득당해서요.”
대충 이렇게 대꾸했다.
뭐, 둘러댈 만한 이유가 이것밖에 없지 않은가.
“진짜?”
“네.”
“다행이다!”
“그쵸?”
“응!”
연훈이 형은 자신의 설득이 먹혔다는 게 꽤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리더다운 일을 한 것 같아서 기쁜 걸까.
뭐 어쨌든 기쁘다니 그걸로 된 거였다.
다만,
‘데뷔를 진짜 해야 하나.’
내 쪽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데뷔할 생각 따윈 없었다.
아이돌.
좋지.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살고.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이며.
돈도 많이 벌고.
사랑도 많이 받으니까.
하지만,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죽음인 시장이잖아.’
살벌하기 그지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다만 살벌한 것도 사실은 성공해야 살벌이지.
성공 못 한 아이돌은 그냥 짠내 나는 직업이다.
남들은 명품 입고 무대 올라갈 때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한 의상 입고 올라가야 하니까.
아니면 보세로 대충 분위기만 맞춰서 사 온 의상 입고 올라가거나.
‘하아.’
그걸 하자니 머릿속이 엉망이 됐다.
지난 생을 살면서 느낀 건데 난 아이돌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그룹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싶어서.
날 따뜻하게 받아주는 공동체가 좋아서.
중소 기획사 전전하며 연습생 딱지만 달고 있었을 뿐이다.
당시엔 정말 아이돌이 꿈인 것 같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난 아이돌 놀이가 하고 싶었던 철부지일 뿐이었다.
한데 진짜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니.
‘미치겠네.’
어디서부터 다시 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우선,
‘춤이랑 노래 구색은 맞춰야지.’
망돌이라 하더라도 너무 못하면 안 된다.
그건 그냥 예의가 아니니까.
어쨌든 무대 올라가는 직업인데 관객들 눈갱, 귀갱은 피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로,
‘다시 다이어트해야 하나.’
몸매 관리다.
다행히 현재의 몸은 관리가 된 몸이다.
하지만 내 입맛은 24살의 일반인 입맛이다.
술도 마실 줄 알고, 야식도 즐기며, 그냥 평범하게 먹고 싶은 거 먹으며 살았다.
다만 그 삶을 청산하고 빡세게 관리해야 한다.
이 또한 예의다.
망돌이더라도 아이돌이라는 직함 달고 나오는 건데.
몸매 관리는 아이돌이라는 직군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직무 수행인 셈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벌써 숙소가 있는 빌라 건물 앞이었다.
“올라가자. 태윤아.”
난 연훈이 형을 따라 숙소로 올라갔다.
나온 지 벌써 1시간이 넘게 지났다.
아마 멤버들은 전부 자고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는데.
“왔어요?”
“이야기 잘했어?”
“어때?”
도승이 형.
운이 형.
동준이 형까지.
모두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응. 이야기 잘 끝냈어.”
연훈이 형은 밝은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그러곤 내게 직접 말하라는 듯 눈치를 줬다.
아까 그 난리를 쳐놓고 번복하는 게 이제 와 조금 쪽팔리다만,
“탈퇴 안 할게요. 죄송해요. 새벽에 진상 짓 해서.”
사과했다.
내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긴 했다만 미안한 건 미안한 일이다.
그러자.
“하아아.”
“다행이다.”
“진짜. 봉태윤 이 새끼…….”
도승이 형은 잠시 날 흘겨보더니,
“……잘 생각했다. 고마워. 탈퇴 안 해줘서.”
어울리지 않게 따뜻한 말을 했다.
말을 하면서도 속이 뒤틀리는지 입가를 이상하게 비튼다.
보아하니.
‘운이 형이 시켰네.’
옆에서 운이 형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아마 운이 형이 시킨 모양이다.
동준이 형은 날 보며 묘한 미소를 짓더니,
“태윤아~ 우리가 너 나가 있는 동안 몇 가지 계획을 세웠어~”
특유의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한다.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
“아, 네. 맞죠.”
“앞으로 우리가 돌아가면서 너 연습 도와주려고.”
“네?”
번갈아 가며 내 연습을 도와준다고?
“이미, 그러고 있지 않아요?”
사실 이미 난 형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전생의 기억을 뒤져보면 그렇다.
동작 하나, 노래 한 소절.
내 힘으로 해낸 게 없다.
형들이 하나하나 나노 단위로 알려줬던 기억뿐이니까.
“아니,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정말 옆에 붙어서 될 때까지 굴리겠단 거야.”
“아, 네?”
“쫄지 마. 안 죽어 안 죽어.”
지금 나름의 벌이랍시고 특훈 같은 걸 제시한 모양이다.
새벽에 갑자기 탈퇴 의사 내비친 게 괘씸하긴 했나 보다.
다만,
“저야 감사하죠.”
어차피 기량을 끌어 올려야 했다.
내 쪽에서 부탁해야 할 일을 나서서 해주겠다니 다행인 일이다.
무엇보다.
‘역시. 좋은 사람들이야.’
난 형들을 쭉 둘러봤다.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24년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이 사람들만 한 인물이 없었다.
뭐랄까.
이제야 진짜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때,
“어, 뭐야?”
“울어?”
형들이 이리 말한다.
울어, 라고 묻는 말.
이 말은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다.
“하하하! 연훈이 형 또 운다!”
연훈이 형이 뒤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태윤아……. 탈퇴 안 해줘서 고마우…….”
“아이고야. 형…….”
이 마음 여린 사람이 대체 운전면허는 어떻게 딴 건가 싶다.
운전대 잡다가 뿌애앵 하고 울었을 거 같은데.
“후우우음.”
연훈이 형은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감정을 정리했다.
“후우우. 이제 자자 얘들아. 오늘은 하루가 기네, 참…….”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제일 먼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형들도 나란히 자리에 누웠다.
“태윤아. 여기.”
연훈이 형은 자신의 옆자리를 또 한 번 팡팡 두드린다.
난 그쪽으로 가서 누웠다.
“다들 잘 자~”
“잘 자요.”
“내일 봅시다.”
“오늘 수고 많았어.”
그렇게 다들 선선한 밤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잘 자요, 형들.”
5년 만에 처음으로.
밤 인사를 건넸다.
마음에 무언가가 뿌듯하게 차오르는 것 같은 와중.
[데뷔 앨범 초동 10만 장을 기록하시오.]
‘응?’
하필이면 이때 다음 미션이 날아왔다.
타이밍 한번 최악인데, 라는 생각을 하던 중.
[기한 D-365.]
[성공 시, 다음 미션으로 진행.]
[실패 시, 멤버 강도승의 사망.]
미션의 내용물이 더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