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화
가진 것의 활용.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거다.
현재 우리가 가진 강점들을 쭉 생각해 봤다.
형들이야 다들 아이돌로서의 기량 자체가 좋은 편이다.
그러니 강점을 늘어놓자면야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당장 쓸 만한 거.’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다.
더쇼케라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패를 잡으려면 만만한 계획을 짜선 안 된다.
확실하고 성능 좋은 한 방.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얼굴 좀 써야 할 거 같아요.”
얼굴뿐이다.
그 말에 형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훈이 형에게로 향했다.
연훈이 형은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무시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그, 왜, 애들아? 왜 나를 보는 거야?”
연훈이 형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다만 우리 모두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연훈이 형 얼굴이 결코 이 자그마한 회사에 있을 얼굴이 아니란 것을.
얼굴 자체만 두고 보면 최근 데뷔한 남돌 중에 이만한 인물이 있나 싶을 정도다.
고전적인 미남형 얼굴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선이 얇은 꽃미남 느낌이긴 한데 이목구비의 합이 기가 막히게 완벽하니 취향조차 잠시 무너질 정도다.
아무리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일단 잘생겼으면 맛이라도 살짝 보는 게 덕후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연훈이 형 얼굴은 안 알려진 맛집이다.
“형 얼굴 좀 팔아서 어그로 좀 끌죠.”
“아, 아니. 내 얼굴이 무슨 그렇게 화제가 된다고…….”
“될걸요.”
사실 얼굴만으로 화제가 되긴 어렵다.
그 부분에 있어선 다른 계획도 있다.
당장 형들에게 말하긴 어렵긴 하지만.
그러니 일단은 얼굴만으로도 화제가 될 거라고 밀고 나가야 한다.
“믿어봐요. 반응 올 거예요.”
“흐음.”
“일단 난 찬성~”
가장 먼저 찬성한 건 동준이 형이다.
“나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되든 안 되든 참가는 자유잖아.”
운이 형도 찬성 의사를 밝힌다.
“그래. 뭐가 될지 모르는 거니까.”
도승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건 연훈이 형 하나다.
“애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 한번 해보자.”
“형 얼굴 쓰는 방향으로 해도 되는 거죠?”
“그…… 그래.”
연훈이 형 얼굴이 붉다 못해 터질 것 같다.
늘 자기 얼굴에 자신감이 부족한 게 흠인 사람이었다.
“그전에 일단 팀장님한테 말씀부터 드려야지.”
연훈이 형은 얼굴색을 정리하곤 말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난 핸드폰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 * *
숙소 밖으로 나와 옥상 구석에 섰다.
아직 한창 겨울이라 한기가 스몄지만 그런 거야 상관없다.
난 핸드폰을 들고 주소록을 뒤졌다.
5년 전에 쓰던 폰인지라 아직은 낯설다.
-윤태형 팀장
통화를 누르기 전.
잠시 생각했다.
이 인간,
‘이때에도 쓰레기였었지.’
현재 우리가 속한 그룹, 세이렌의 담당 매니저이자 팀장인 사람이다.
매니저이면서 팀장인 이유론 WD엔터의 매니지먼트팀엔 이 사람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팀장이면서 로드까지 뛰는 상황이다.
얼핏 보자면 영세한 곳에서 고생 중인 고급 인력 같은 느낌도 든다.
실상은,
‘인생 꿀빨 생각만 가득한 놈이지.’
실무자로서의 기본도 안 된 놈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역시. 한 번에 받지 않네.’
전화가 끊긴다.
다시 한번 걸어보니,
-……여보세요?
뒤늦게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목소리.
아니, 이 사람 성격 생각해 보면 술에서 깨지 못한 거려나.
“안녕하세요, 팀장님. 봉태윤입니다.”
-아, 아아, 응. 그래. 무슨 일이야.
“저희 더 쇼케이스 시즌 2 지원해 보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난 빙 둘러가지 않고 바로 말했다.
사실 바로 말하는 게 이 사람에겐 가장 편하니까.
이유론.
-뭐, 바쁜 거냐? 더쇼케면 큰 프로그램 아니야? 근데 거기 데뷔 안 해도 나갈 수 있어?
“아뇨. 바쁜 거 없어요. 그리고 이번엔 데뷔 안 한 팀들도 지원받는대요. 안 될 거 알지만 그냥 한번 해보려고요.”
-그래. 알아서 진행하고 후보고만 해줘. 돈 나가는 것만 아니면 된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자기 귀찮은 것만 아니면 뭐든 상관없는 인간이다.
제일 먼저 물어본 것도 바쁘냐는 거였으니까.
대충 이렇게 뭉개서 전달하면 된다.
나중에 가면 이런 인간이랑 일하는 게 무척이나 짜증 나겠지만 당장은 오히려 좋다.
뭘 하든 신경 안 쓸 테니까.
난 통화를 끊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해도 된대요.”
“이렇게 빨리?”
“뭐,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
“네.”
난 형들에게 통화 내용의 결과를 보고한 뒤 식탁에 앉아 식사를 마저 이어갔다.
“얼른 먹고 연습실 가요.”
“아, 응.”
“그래.”
“뭔가, 아침부터 정신이 없네.”
오늘부터 할 일이 많아질 거 같았다.
* * *
연습실에 도착했다.
사실은 연습실이라 하기에도 안쓰러운 공간이다.
WD엔터의 경우 사업장이 크게 두 곳으로 나누어진다.
한 곳은 실무진들이 일을 하는 진짜 사무실.
그곳은 중소기업들이 주로 상주하는 커다란 벤처 센터 빌딩에 입주해 있다.
다른 곳은 현재 우리가 있는 연습실.
이곳은 숙소 근처에 있는 곳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형식이었다.
문제는,
“공기청정기 틀자~”
“문 좀 열어둘게요.”
“며칠 안 왔다고 공기가 탁해진 거 같네.”
환경이 너무 열악하단 거였다.
지하에 있는 한 15평쯤 되는 공간인데 건물 자체가 낡아서 그런지 환기 시스템이랄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저기 공기청정기 하나.
저마저도 회사에서 지원해 준 게 아니라 우리가 돈 모아서 샀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의문이네. WD가 왜 아이돌을 런칭하려 한 건지.’
이 정도로까지 지원을 안 해줄 거면서 대체 왜 아이돌 연습생을 두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
옛날엔 조금이라도 지원을 해주는 듯싶었는데 현재 상태는 정말 처참하다.
‘그냥 눈치 까고 나가라는 건가?’
어쩌면 이거일 수도 있다.
많은 회사가 이러진 않지만 가끔 양아치 같은 회사가 이러는 경우는 들어본 적 있다.
일단 아이돌이 돈이 된다기에 어디서 떨어져 나온 연습생 긁어모아서 구색은 맞춰놨는데 투자금이 마땅치 않아서 데뷔를 계속 미루는 곳.
그냥 미루기만 하면 다행인데,
‘돈 나올 구석 안 보이니까 버리려는 거구나.’
가만히 각을 재보니 이거 런칭해도 돈 먹는 하마가 될 거 같아 그냥 알아서 떨어져 나가라고 지원을 전부 끊어버리는 거다.
WD라고 안 그러라는 법은 없다.
아니지.
어쩌면 누구보다 더 그런 짓을 벌일 법한 회사다.
얘네 돈 없는 거야 너무 빤히 보이니까.
그래도 이따위 환경에서 초동 10만이라니.
‘미치겠네.’
욕이 절로 나온다.
“후우우.”
답답함에 한숨을 쉬자,
“으음! 지금 여기 공기 너무 안 좋아! 심호흡하지 마!”
연훈이 형이 심호흡으로 오해하고는 걱정한다.
참나.
이런 걸로 걱정을 하는 사람이나.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드는 연습실 컨디션이나.
머리가 아파 온다.
“오늘 영상 찍어야 하니까 연습실 청소 좀 하죠.”
도승이 형이 말한다.
그렇게 잠깐 연습실 청소를 하는 시간으로 스트레칭을 대신 했다.
청소를 끝내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영상 컨셉에 대한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 라고는 하지만 다들 날 쳐다봤다.
이 일의 시작이 나니까 당연하다.
“일단, 제가 생각한 컨셉이랑 곡은 이거거든요?”
더쇼케 지원 영상.
이건 더 쇼케이스 홈페이지에 개설되어 있는 지원 페이지에 올리면 된다.
그리고 난 영상을 올리는 시간과 영상 썸네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내가 머릿속에 짜두고 있는 계획을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한 곡은,
“<스위트 보이> 어떠세요?”
“응?”
“뭐?”
“태윤아?”
인터넷 밈이었다.
<스위트 보이>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밈이다.
한 초등학생들이 나와서 자신들이 가상의 아이돌이라며 소개를 하는 영상이었다.
처음엔 누군가의 흑역사라며 대리수치 영상으로 조명을 받았다가 요즘은 그냥 유쾌한 밈 정도로 취급되며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유행하고 있었다.
“제정신이냐?”
도승이 형이 발끈했다.
“고작 이런 거 하려고 나가자고 한 거야?”
아이돌 같은 걸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이렌, 이라는 이름 달고 나오는 첫 공식 활동인데 멋있는 거 하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얼굴 활용할 수 있는 거 하려면 이게 최선이에요.”
난 그리 말하며 내가 찾아두었던 <스위트 보이> 레퍼런스 영상을 보여줬다.
그 영상을 보자,
“이걸 진짜로 하자고?”
“네.”
“근데, 확실히, 연훈이 형이 이거 하면.”
형들이 설득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영상이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는데 이걸로 설득이 된다는 건 역시나 연훈이 형 얼굴 때문이다.
얼굴이 개연성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반면,
“지, 진심이지 태윤아……?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거지……?”
당사자인 연훈이 형의 동공이 잔뜩 흔들리고 있었다.
“네. 진심인데요.”
난 한순간도 진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 *
점심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
세이렌 멤버들은 조금 숙연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방금 막 더쇼케에 올릴 지원 영상의 최종 편집본을 확인했다.
카메라맨이 없어 삼각대만 두고 동선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찍어야 했기에 간단한 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오전 시간 내내 고생한 후 나온 결과물은,
“이게 진짜. 지원 영상이라고? 우리의?”
“네.”
“태윤아…….”
“네?”
“장난치니?”
조악한 퀄리티에 엉망인 영상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상을 처음 제안했던 봉태윤은 여유롭기만 했다.
“정말 이대로 낼 거야?”
이운이 봉태윤에게 재차 물었다.
“네. 제가 예상했던 대로 그대로 나왔어요.”
봉태윤은 한 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이런 쓰레기가 네가 원했던 퀄리티라고?”
강도승이 조금 강한 워딩을 섞어가며 재차 물었다.
“네.”
이번에도 봉태윤은 물러섬이 없었다.
“진짜, 진짜로 이걸로 올릴 거지…… 태윤아?”
우연훈이 묻는다.
답은 역시나,
“네.”
한결같았다.
“난 재밌고 좋은데? 뭐 어때 이것도 다 추억인데.”
이 중 태평한 건 박동준뿐이었다.
박동준이야 원래가 저런 성격이니 어쩔 수 없고.
다들 봉태윤을 미심쩍게 쳐다봤다.
봉태윤은 그런 시선 따위 아랑곳 않고 노트북을 닫았다.
“저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다시 찍으면 안 될까?”
“아예 아이돌틱한 걸로 하나만.”
“기왕 나가기로 한 거 최선을 다하는 게 좋잖아.”
다들 불안하단 듯 말을 쏟아냈다.
“아이돌 데뷔조 애들만 잔뜩 모일 지원 페이지에 똑같이 아이돌스러운 거 올리면 아무런 경쟁력 없잖아요.”
봉태윤은 그 말에 딱 잘라 답했다.
“그러면 차라리 이거 말고 다른 색다른 거 하면 되잖아!”
“아뇨. 이게 딱이에요.”
“하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물러서지 않는 봉태윤과 어떻게든 물리고 싶은 우연훈, 강동승, 이운. 그리고 아무 생각 없는 박동준은 연습실 바닥에 앉아 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먼저 백기를 든 건 의외로 봉태윤이었다.
“그러면 이거 올려보고 하루 안에 반응 없으면 바로 내릴게요. 어때요?”
한 치 물러섬 없이 맞설 것 같더니 의외로 순순히 고집을 꺾어줬다.
“진짜?”
“네.”
우연훈, 강도승, 이운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 영상이 과연 하루 안에 반응이 올 것인가.
냉철히 봐서,
‘아냐. 절대 안 와.’
‘태윤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안 올 거 같네.’
‘저게 반응이 오긴 힘들겠지.’
이 셋은 모두 저 영상이 하루 안에 반응을 얻어내긴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하루가 아니라 1년을 걸어도 될 정도로.
저 영상은 사실 전체적으로 놓고 보자면 평범하게 웃긴 수준일 뿐이었다.
이런 영상도 인기 많고 유명한 애들이 해야 의외의 모습이네, 하면서 먹히는 거지 자기들처럼 듣보에 망돌이 하면 그냥 짠내만 날 뿐이다.
셋은 봉태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러면 일단 올려보고 하루만 기다려 보자.”
“네. 대신 올리는 시간은 제가 정할게요.”
그렇게 네 사람과 천하태평한 한 사람의 대치는 막을 내렸다.
* * *
사흘 후,
“얘, 얘들아. 우리 영상, 조회 수가. 이상한데……?”
그들이 찍었던 조악한 퀄리티의 허접한 유머 영상은 101,476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게 됐다.
망돌 인생에서 절대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수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