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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8화 (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8화

“미쳤어! 우리가 전체 2등이야 지금!”

“이게 진짜 먹혔다고?”

“밤사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뭐야~ 태윤이 선구안 대박이네~”

2월 1일 아침.

어젯밤 내가 올린 지원 영상의 조회 수를 확인한 형들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늘 태평한 텐션을 유지하던 동준이 형마저도 꽤 흥분한 게 보였을 정도니까.

그 탓에 간만에 늦잠 자던 나도 반강제로 기상할 수밖에 없었다.

“태윤아! 이거 진짜야? 꿈 아니지?”

연훈이 형이 내 앞에 핸드폰 화면을 가져다 대며 묻는다.

10만 회 언저리의 조회 수.

믿기 힘들겠지.

사실 1군 아이돌들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억 단위로 나오는 시대에 10만 회로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건 조금 안타깝긴 하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아무리 힘든 일도 첫걸음 떼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이 정도면 나름 준수한 첫걸음이다.

아니지.

‘장대 멀리 뛰기로 뛴 수준이지.’

더쇼케 출연권만 따낸다면 초동 10만이 영 허황된 말이 아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다 우연이야? 강현성 씨네 팀이랑 같은 컨셉을 같은 시간대에 올린 게?”

어느새 다가온 운이 형이 내게 물었다.

곱상하니 예쁜 얼굴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네. 우연이에요.”

절대 우연 아니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 말할 순 없으니 우연이라 해야지.

강현성이 속한 그룹 온리원.

난 지난 생에서 얘네가 얼마나 큰 성공을 거뒀는지 기억한다.

또 이 아이돌의 첫 시작이 어땠는지도 기억하고.

강현성의 그룹 ‘온리원’은 더쇼케2에 망돌로 출연하는 게 공식적인 첫 등장이었다.

다만 완전 망돌은 아닌 것이 강현성의 유명세 덕분에 지원 영상 올리자마자 엄청 화제성이 붙었으니까.

해서 유입도 꽤 늘린 채 방송에 들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내 계획은 그거였다.

‘온리원이 가져올 화제성 절반 갈라 먹기.’

어차피 온리원의 첫 시작은 강현성 화제성 뽑아먹는 거였다.

강현성도 자기 유명세 이용해 그룹 키우려고 더쇼케2에 나온 것일 테니까.

그렇다면 그 좋은 거 우리 살짝 나눠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 화제성을 가져오기 위해 걔네가 당시 어떤 영상을 찍었었는지, 그 영상을 언제 올렸었는지를 기억해 냈다.

온리원, 이라는 그룹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있어 얘네 일대기는 얼추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첫 등장은 팬들 사이에서 짠내 폭발이라며 계속 회자되는 등장이니 기억 못 하려야 못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같은 컨셉의 영상을 같은 시간에 올렸다.

이 시간대는 살짝 기억이 애매해서 지원 영상 페이지에 상주하며 하루 정도 대기를 탔다.

마지막 날에 가장 마지막 순번으로 올렸단 건 기억하는데 그게 정확히 몇 시 몇 분인지는 몰랐으니까.

그 결과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영상을 올릴 수 있게 됐고.

‘예상했던 대로 우리도 같이 주목받아서 다행이네.’

바라던 대로 강현성의 유명세의 특혜를 우리도 함께 받았다.

온리원은 가능만 하다면 계속 잡고 있어야 할 그룹 중 하나다.

떡상이 보장된 카드 중 하나니까.

얘네 그룹이 내가 살던 미래에서 더 쇼케이스2 최종 우승팀이 된다.

이후 데뷔 초동 30만 장을 뽑아내는 기염을 토한다.

가능만 하다면 너무 자극은 안 하는 선에서 자꾸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카메라에 한 번이라도 더 잡힐 테니까.

강현성은 셀유돌에서 한 번, 더쇼케에서 다시 한번.

총 두 번이나 자기 회사를 극복한 아이돌이다.

‘눈동자가 아주 성공하겠단 일념으로 드글드글 하던 사람이지.’

사실 나도 이런 식으로 강현성 화제성 갈라 먹는 게 양심상 조금 찔린다.

강현성은 이 악물고 활동하며 자기 힘으로 이 위치까지 올라온 거니까.

그 열정에 무임승차한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내 상황은 양심 운운할 상황이 안 된다.

초동 10만 못 찍으면 도승이 형이 죽는다니까.

내 양심과는 관계없이 이 악물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거다.

“봉태윤이. 진짜 잘했다. 고마워.”

어느새 다가온 도승이 형이 시크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곤 쿨한 척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린다.

형님 놀이 같은 걸 하고 싶은 모양이니 그냥 뒀다.

“태윤이 무슨 예지 능력 같은 거라도 있어? 대박이네.”

동준이 형도 내 쪽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다들 즐거워하는 걸 보니 어쨌든 다행이다.

다만,

‘앞으로 더 고달파지겠네.’

인생 2회차 편히 살려는 계획은 조금 어그러졌다.

이제 꼼짝없이 아이돌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내 실력 생각하면 앞으로 매일같이 연습으로 밤을 새워야 할 거다.

19살이라는 젊은 몸을 믿고 어떻게든 해보면 할 수 있겠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불 정리부터 했다.

“얼른 밥 먹고 연습 가죠.”

더쇼케 지원 영상 반응이 좋은 건 다행인 일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이다.

여기서 앞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디디면 도승이 형이 죽는다.

그러니 벌써부터 안일해지면 안 된다.

“아.”

“그래, 그래.”

“태윤이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오늘 아침은.”

형들도 조금씩 원래 텐션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 *

<더 쇼케이스2 - 퍼스트 찬스>의 제작진 회의실.

메인 피디 박수철은 지원 영상 페이지를 쭉 살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원팀들의 수준이 높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강현성 그룹이 나올지는 상상도 못 했네.”

“그러니까요.”

“TH엔터 사장이 강현성 절대 안 놔줄 줄 알았는데.”

“뭐, 강현성이 어떻게든 강짜를 놨겠죠.”

박수철은 영상 조회 수들을 쭉 훑어봤다.

1위는 당연히 강현성네 그룹 온리원이다.

다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세이렌이 어디라고?”

“WD엔터요.”

“거기가 무슨 회사야?”

“설립은 3년 전이고요, 원래는 연예인 매니징은 안 하고 그냥 작곡 의뢰만 받던 회사예요.”

“대표가 누군데?”

“피디님이 알 만한 분은 아니세요. 그냥저냥 곡 좀 만지던 작곡가 그룹이라.”

“근데 아이돌을 만들어?”

“뭐, 어디서 돈 된다는 얘기 듣고 붕 뜬 연습생들 모아서 런칭 준비 중이었겠죠.”

“아. 뭐.”

대충 어떤 그림일지 예상이 갔다.

한 그룹이 데뷔하고 나면 그 회사 소속 연습생들이 붕 뜨는 경우가 많다.

간혹 그런 애들을 잘 잡아서 가성비 좋게 데뷔시키는 회사들이 있으니까.

다만.

“그렇다 해도, 이 수치는 너무 대단하지 않냐? 10만 회는 너무 센데.”

“뭐. 그냥 운 좋은 거 아닐까요? 운 좋게 강현성네랑 같은 컨셉 잡았고, 운 좋게 같은 시간대에 올렸고.”

“그냥 운뿐?”

“뭐, 얼굴도 잘생기긴 했더라고요. 그래도 운이죠. 잘생겼다고 뜨는 바닥 아니잖아요.”

“흐음.”

박수철은 세이렌의 영상 썸네일을 바라봤다.

맨 앞.

얼빡으로 잡힌 남자 얼굴이 잘생기긴 했다.

그 뒤에 있는 애들 얼굴도 다 전체적으로 준수하고.

그중 박수철 피디 눈에 가장 밟힌 건,

“맨 뒤에 누구야?”

“봉태윤이라고. 팀 막내예요. 19살이고요.”

가장 뒤에 서 있는 한 남자였다.

눈이 가로로 길게 찢어진.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이었다.

얼굴만 보면 형들 다 잡아먹게 생겼는데 막내란다.

“그냥 운이려나.”

분명 정황을 보면 운이라고밖에 설명을 못 하겠지만 묘하게 노련한 냄새가 난다.

누가 조작해서 짜 넣은 것 같은 그림이니까.

“일단 얘네 쓰자. 뭐, 운 좋은 애들이면 그 운이 프로그램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

“그럼 연락해 볼까요?”

“어. 연락해 봐.”

“넵. 알겠습니다.”

박수철 피디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이렌의 더쇼케 출연이 확정 나는 순간이었다.

* * *

아침을 먹고 형들과 연습실로 들어왔다.

“환기~ 환기~ 환기를 하자~”

동준이 형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연습실 환기를 시작했다.

공기청정기도 틀고 위쪽에 난 자그마한 창문도 열며 쿰쿰한 공기를 밖으로 빼냈다.

다행히 전신거울이 달려 있는 곳이라 안무 연습하는 게 어렵진 않다.

지원 영상을 찍고 사흘이 흘렀지만 사실 진짜 연습이라 할 만한 건 하지 않았다.

첫날은 지원 영상 찍고 그거에 대한 토론을 하느라 연습 시간을 다 썼고.

둘째 날은 연습이라기보다는 기초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는 데에 시간을 썼다.

아마 오늘은 진짜 연습을 할 것 같았다.

난 더플백을 구석에 내려놓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봤다.

‘몸 좋네.’

이때의 나는 관리는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실력이 부족하니 외적인 부분에서라도 누가 되지 않으려 했으니까.

키도 시원시원하니 크고 몸도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다.

“스트레칭부터 하자!”

운이 형이 앞으로 나서며 스트레칭을 하자며 팀을 이끈다.

팀의 메인댄서이기에 몸을 쓰는 쪽의 일은 운이 형이 다 도맡는 상황이다.

“쭉 쭉. 근육에 길을 낸다라는 느낌으로.”

운이 형이 하는 동작들을 따라 하며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마저 끝나고 나자

“오늘은 뭐 해볼까?”

운이 형이 우리를 불러 모으며 말했다.

“흐음. 그러게. 뭐 하지.”

연훈이 형은 미간을 좁히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거 어때요? 막 연기하는 사람들 보면 물건이나 동물 같은 거 따라 하던데, 표현력 기르기 위해 우리도 그거 해보는 건?”

동준이 형은 그냥 자기가 하기에 재밌어 보이는 거 아무거나 던진다.

“힙합 댄스 느낌으로 가는 건 어때?”

도승이 형은 힙합을 원했지만,

“그거 며칠 전에 했잖아.”

“아. 맞네.”

운이 형이 딱 잘라 말했다.

늘 모두에게 자상한 운이 형이지만 도승이 형에겐 늘 단호한 구석이 있었다.

아마 둘이 동갑이라 서로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태윤이는 뭐 해보고 싶어?”

운이 형이 내게 묻는다.

“흐음. 잠시만요.”

나도 잠시 고민했다.

오늘 안무 연습을 뭘로 할지.

사실 이따위 고민을 하는 게 웃기긴 하다.

보통은 댄스 트레이너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 영세한 회사는 트레이너도 따로 두지 않는다.

분명 초반에는 안무와 보컬 트레이너를 따로 뒀다.

하지만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더니 우리들끼리 커리큘럼을 짜서 연습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버렸다.

이 회사의 유일한 연습생이자 데뷔조인 우리 다섯은 서로의 선생님인 셈이었다.

아니지.

형들끼리만 서로의 선생님인 거고 나는 그저 학생일 뿐이었다.

난 누굴 가르칠 실력이 안 됐으니까.

‘오늘이 공식적으로 회귀 후 첫 안무니까.’

쉬운 걸로 가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오히려 쉬운 걸로 가면 더 문제겠네.’

생각을 바꿨다.

현재 나는 가장 단순한 안무조차 따라 할 여력이 안 된다.

5년간 쉬는 시간을 갖다 보니 춤과 노래에 대한 모든 기술과 지식이 리셋 됐으니까.

해서 적응기를 갖기 위해 쉬운 것부터 하고 싶으나,

‘그 쉬운 것도 제대로 못 할 거야. 분명히.’

너무 쉬운 걸 골랐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하면 형들이 놀랄 거다.

아무리 실력이 안 좋아도 우리 태윤이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어디 안 좋은 거 아니냐면서.

연훈이 형은 진심으로 걱정할 수도 있다.

난 그냥 늙었을 뿐인 건데.

그러니,

‘차라리 어려운 걸로 가자.’

이게 더 맞다.

어려운 걸 못 하는 건 봉태윤에게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

형들도 그럼 그렇지 하며 넘어간 뒤 친절하게 알려줄 거다.

“전, 그러면, 그 크럼핑 댄서가 최근에 방송 나와서 했던 무대 하고 싶어요.”

“응?”

“크럼핑?”

“네. 더잭이 하던 거요.”

“더잭?”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다.

더잭은 유명 댄서이자 크럼핑 댄스 전문가다.

또한 안무가 어려운 걸로도 유명하다.

크럼핑은 조금만 잘못해도 박력이 아니라 허우적대는 걸로 보이는 장르니까.

“할 수 있겠어, 태윤아?”

“네.”

당연히 못 하지.

하지만 어차피 못 할 거 진짜 못 할 만한 걸 못 해야 한다.

“그러면, 일단 안무 따는 것부터 먼저 하자.”

운이 형이 노트북을 들고 와 더잭 무대 영상들을 몇 개 찾았다.

난 그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극악해 보이는 걸 골랐다.

“이건 나도 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운이 형도 조금 난감해하는 것 같다.

“일단 해보자.”

우린 노트북 영상을 반복 재생을 하도록 걸어둔 뒤 각자 안무 따기를 시작했다.

운이 형은 못 할 것 같다더니 금세 동작들을 따오기 시작했다.

도승이 형도 조금 헤매는가 싶더니 금세 따라갔고.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도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곁눈질해 가며 동작을 익혀갔다.

원래의 나는 이런 안무 하루 종일을 해도 따라 하지 못한다.

한데,

‘……음?’

“태, 태윤아?”

“엉?”

“뭐야?”

“누, 누구세요?”

분명 한 번밖에 안 본 안무인데 내 몸이 절로 그 안무를 따라 추고 있었다.

이유론,

[이탈자 특전, 통찰이 적용됩니다.]

이 ‘통찰’이란 것 때문이었다.

춤을 추겠다 마음을 먹고 동작을 수행하려 하니 이전에 연훈이 형을 구하려 했을 때랑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시간이 느려지는 듯하며 내 사고만 가속하는 상황.

그와 동시에 더잭의 모든 동작들이 어떤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머릿속에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가 됐다.

이 통찰이란 것,

‘뭐야 대체.’

내 생각보다 만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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