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화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보자마자 무슨 동작인지 알겠고.
저 동작이 무슨 감정을 표현하려 하는 것인지 알겠다.
크럼핑이란 마치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들이 많다.
강한 감정의 표출이 대부분인 안무들이다.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끓는 듯한 장르니까.
발로 바닥을 쿵 하고 찍고.
팔을 허공으로 강하게 뻗는다.
이전엔 그냥 팔을 뻗고 바닥을 찍는 동작으로만 이해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어떤 타이밍에 손과 발을 회수하며 탄성을 줘야 하는지.
이 동작이 어떤 느낌으로 남들에게 보여야 하는지.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 마냥 흡수가 됐다.
그냥 영상을 한 번 스윽 봤을 뿐이다.
하지만 내 몸은 자연스레 더잭의 동작을 모두 복사하고 있었다.
형들이 멍하니 날 쳐다본다.
이내 안무가 끝나고 나자,
“…….”
“태윤아……?”
“그, 어, 음.”
“……뭐니, 너?”
멤버들이 놀란 미어캣들처럼 날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통찰’이 끝나며 세상이 원래 속도로 돌아왔다.
난 가벼운 두통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야 현실 파악이 된다.
봉태윤은 춤도, 노래도, 겨우 구색이나 맞출 줄 아는 인력이다.
이런 인력이 갑자기 급격한 실력 상승을 이뤘다.
당연히 어이가 없겠지.
“그,”
일단 열심히 변명을 짜맞춰 봤다.
가장 설득력 있는 건,
“혼자 연습 오래 했던 곡이에요.”
“응?”
“이거?”
“네.”
이 곡을 혼자 연습했다고 하는 거다.
“언제?”
“그, 가끔, 밤에. 혼자서.”
“그래……?”
역시나.
다들 믿지 않는 눈치다.
특히나 운이 형은 더더욱 안 믿는 눈치다.
아니.
어쩐지 묘한 경계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우리 연습용 안무는 다섯 명 다 잘 모르는 안무로 하는 게 룰이잖아. 왜 갑자기 연습했던 곡을 하자고 한 거야.”
운이 형이 조금 냉한 어투로 물었다.
살짝 화라도 난 건가.
화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변명이 먼저다.
“그, 죄송해요. 전에 형들이 앞으로 연습 빡세게 시킬 거라 해서 그게 무서워서 그냥 아는 곡 말한 거였어요. 조금이라도 연습 덜 할라고.”
얼추 그럴듯하게 일단 뱉긴 했다.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형들 몫이긴 하지만.
운이 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날 쳐다보더니
“태윤아. 힘든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꼼수는 부리지 마.”
이리 답했다.
표정도 평소의 그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찌저찌 넘어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때 난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이 고개를 살짝 돌려봤다.
“태윤아! 방금 진짜 더잭 같았어! 연습을 언제 그렇게 한 거야!”
연훈이 형이 진심으로 감명받은 사람처럼 눈동자를 빛낸다.
“하하, 네.”
난 멋쩍게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 이 곡 말고 다른 걸로 다시 합시다.”
그때 운이 형이 더잭의 크럼핑 안무 말고 다른 안무를 가져왔다.
난 이번엔 적당히 통찰을 조절해가며 안무를 따라췄다.
평소 봉태윤보다 조금은 낫지만 결코 놀랄 정도는 아닐 만큼으로만.
그렇게 오전 댄스 연습 시간이 이어졌다.
* * *
WD엔터의 사무실.
매니지먼트팀의 팀장 윤태형은 의자에 앉아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아. 죽겠네.”
올해 마흔 중반에 들어서며 허리둘레가 꽤 늘어났다.
아니,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술이 문제일 수 있겠다.
이십 대더라도 술을 그렇게 부어대면 살이 찔 수밖에 없을 테니까.
어젯밤에도 3차까지 달리며 술을 마구잡이로 부어댔다.
그 결과 지금 숙취에서 깨지 못해 이렇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중이었다.
책상 위엔 숙취해소제 뚜껑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녔다.
“약을 먹어도 이제 듣질 않냐.”
그는 그리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실무진이라 해봐야 그를 포함해 총 3명뿐인 회사다.
이중 팀장급은 그 하나밖에 없다.
그 탓일까.
대표들이 출근하지 않는 동안엔 그가 이 회사의 대표나 다름없었다.
아니지.
대표들은 각자 작업실에서 곡이나 죽어라 찍고 있을 테니 사실상 그가 실질적인 대표였다.
“얘들 언제 데뷔시키고 무대 올리냐. 아이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데뷔를 시킬 생각은 딱히 없었다.
뭐, 대표들이 한 소리 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미룰 생각이니까.
데뷔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아무리 일을 미뤄놓으려 해도 미룰 수가 없다.
홍보를 위해 보도자료 만들어 뿌려야 하고.
음악방송 나가려면 피디들 비위도 맞춰야 하고.
음악방송 스케줄 잡혔다 하면 의상, 헤어, 메이크업도 따로 챙겨야 하며.
무대 세트도 새로 짜야 한다.
곡 받아오는 거야 대표들한테 받는다 쳐도 안무는 따로 의뢰를 해야 한다.
“머리 아프네.”
옛날엔 그도 그런 일들에 열정을 가지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지금은 별 관심 없다.
그냥 돈 많은 대표들 비위 맞추며 눈먼 돈이나 제 주머니로 모아둘 생각뿐이었다.
아직 세이렌 멤버들이 이 회사에 들어온 지 3년밖에 안 됐다.
원래 담당자가 나가고 그가 들어온 지는 약 1년 반 정도 됐고.
한 반년은 데뷔 안 시키고 더 질질 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점심은 해장국이나 먹을까?”
윤태형이 그리 말하며 주변을 훑었다.
디자인팀 팀원 한 명과 경영지원팀 팀원 한 명이 멋쩍게 웃으며 윤태형을 바라본다.
“팀장님 어제도 우리 해장국 먹었는데요……?”
“그래서?”
“아, 아뇨. 해장국 좋습니다. 하하.”
경영지원팀 직원이 그리 말하며 멋쩍게 웃는다.
“그, 팀장님. 혹시 그 세이렌 친구들 영상 보셨어요?”
그때 디자인팀 직원이 조심스레 윤태형에게 말했다.
“영상? 뭐 영상이 있어?”
“그, 더쇼케 지원 영상.”
“아. 아아 맞다. 뭐 그런 거 한다고 했지.”
기억난다.
봉태윤이 아침부터 전화해서 물어봤던 거다.
어린놈이 싸가지없게 아침부터 어른한테 전화나 하고.
“그냥 둬. 뭐 그러다 말겠지.”
윤태형은 그리 말하며 대충 손을 휘휘 저었다.
“근데, 그, 아무래도 한 번쯤은 보시는 게…….”
디자인팀 직원이 재차 물었지만,
“나중에 볼게 나중에.”
윤태형은 귀찮다는 듯 그리 말하곤 의자에 기댄 채 눈을 붙였다.
“나 1시간만 잔다. 대표들 온다 하면 깨워.”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은 그리 말하며 각자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그때,
띠리리리-
회사 전화기가 울렸다.
좀처럼 울릴 일 없던 회사용 전화기였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경영지원팀 직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WD엔터 경영지원팀 이현아입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받아본 외부 전화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찰나,
“네, 그, 에?”
생각보다 엄청난 이야기가 나와 멍청하게 반응을 해버렸다.
디자인팀 직원 윤승연이 이현아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러곤 입 모양으로만 조심스레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윤승연의 입 모양을 본 이현아가 눈짓으로 신호를 준 뒤 다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 넵. 알겠습니다. 매니지먼트팀과 아티스트분에게 전달 드린 뒤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현아는 그리 말한 후 전화를 끊더니,
“스, 승연 씨.”
멍하니 윤승연을 불렀다.
“네. 무슨 일이에요?”
윤승연이 얼른 말해주란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이현아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 우리 애들, 더쇼케2 출연 제의받았어요…….”
믿기 어렵단 듯 이리 말했다.
“네엑? 헙!”
윤승연조차 놀란 듯 입을 막고 소리를 줄였다.
맘 같아선 둘 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세이렌은 그녀들에게 아픈 손가락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애들 개개인은 능력이 좋은데 이 망할 블랙기업에 와서 제 기량도 다 못 펴고 있었으니까.
해서 가능만 하다면 다른 회사로의 이적이라도 도와주고 싶을 정도였다.
한데 며칠 전 본인들이 스스로 영상을 찍어 더쇼케에 지원하더니 이젠 출연권까지 따내 왔다.
다만,
“이거, 팀장님한테 말하면 좋아할까요……?”
“글쎄……요.”
두 사람 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팀장은 이 소식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거란 걸.
윤승연은 조심스레 윤태형 팀장에게 다가갔다.
윤태형은 정말 잠든 건지 코까지 골고 있었다.
매일 이 시간이면 늘 낮잠을 자는 인간인데.
당연한 일이다.
“저…… 팀장님?”
“……으응. 말해…….”
윤태형이 입을 뗀다.
“그, 저기, 세이렌 애들이 더쇼케에 출연 제의를 받았거든요……?”
그녀가 조심스레 윤태형에게 보고를 올린다.
“……어떻게 할까요?”
이 팀장 성격상 귀찮은 일 될 거 같으면 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
제발 그럴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더쇼케?”
윤태형이 짜증이 잔뜩 묻은 어투로 되묻는다.
“네네. 더쇼케2입니다.”
“하아. 뭐야. 그게 됐다고?”
윤태형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귀찮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하아. 귀찮은데. 또 거절하면 걔네가 개지랄할 테고…….”
이리 말하며 미간을 구겼다.
제발 거절만 하지 말아라, 라며 속으로 기도를 올리는데,
“너네가 할래?”
“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 튀어나왔다.
“어차피 너랑 이현아랑 회사에서 하는 것도 없는데 그냥 너희가 해. 나한텐 보고만 하고.”
윤승연이랑 이현아에게 매니징 업무를 맡긴 거다.
물론 하는 일 없는 건 팩트긴 한데,
“저, 저희 이런 거 안 해봤는데요?”
매니징 일에는 둘 다 문외한이었다.
“그냥 대충 해. 눈치껏.”
윤태형은 그리 말한 후 손을 휘휘 저었다.
이제 보고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란 말이다.
윤승연은 이현아에게 다가왔다.
“저, 저희가 세이렌 애들 맡으라고 하신 거죠, 지금?”
이현아가 믿기지 않는단 투로 말했다.
“……네.”
윤승연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최악의 상황이라 해봐야 스케줄 거절하고 끝날 줄 알았더니.
업무 이관이라니.
디자인팀과 경영지원팀에게.
머리가 복잡해졌으나,
“차라리…….”
이게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저 인간에게 세이렌을 맡기는 것보다야 이 둘이 나을지도 모르니까.
그간 세이렌 애들에 대한 미안함이 계속 쌓여 있던 찰나였다.
어차피 둘 다 올해 안에 퇴사하려고 각 재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애들한테 도움이라도 되고 나가자.’
퇴사 전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물론 연예계 쪽 일이라곤 경력이 전무한 두 사람이 얼마나 잘할지는 미지수였다.
* * *
오후 시간은 보컬 연습으로 이어졌다.
보컬 연습은 팀 내 메인보컬인 연훈이 형이 주도해서 이어졌다.
“입 근육을 잘 풀어줘야 해. 진짜 안 올라갈 것 같다 싶을 때 입을 있는 힘껏 찢으면 살짝 더 올라가기도 하거든.”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아기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리더니 앙양양양 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저게 보기엔 꽤 웃길지 몰라도 효과가 좋다.
우리 다섯은 다 같이 연훈이 형의 앙양양양을 따라 했다.
입 주변 근육이 풀리는 게 선명히 느껴진다.
그때,
똑똑.
누군가 우리 연습실 문을 밖에서 두드렸다.
“응? 누가 뭐 시켰어?”
한창 입 근육 풀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들이닥친 노크였다.
“아뇨?”
“우리 밥 방금 먹었잖아요.”
“맞네.”
누군지 특정이 안 되는 순간.
난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왔네.’
지금 이거 더쇼케 출연 제의 소식 전하러 온 거라고.
“제가 열어주고 올게요.”
난 연습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냈어요?”
낯선 두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지.
낯설진 않다.
나야 5년의 공백이 있어 낯설 뿐이지.
원래는 익숙한 얼굴들이다.
‘WD엔터 직원분들 아닌가.’
다만 매니지먼트팀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 회사에서 나오신 거였군요.”
회사 사람인 걸 알고는 다들 인사를 하러 나왔다.
더쇼케 일이라면 윤태형 팀장이 올 줄 알았는데.
뭔가 싶은 찰나,
“그, 여러분께 드릴 중대한 소식이 있어서 저희가 윤태형 팀장님 대리로 여기 왔는데요.”
조금 더 당차 보이는 분이 먼저 말을 뗐다.
“더 쇼케이스2에서 세이렌한테 출연 제의를 보내왔습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출연 소식에,
“진짜요?”
“저희한테요?”
“와…… 와…….”
“세상에.”
“미쳤네.”
형들은 단체로 놀라서 입을 벌렸다.
다들 출연할 거라고 반쯤은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이런다.
하긴,
실제로 듣는 거랑 예상만 하는 건 다를 테니까.
“해서 저희가 지금 방송국 쪽이랑 일정을 조율하고 있거든요!”
“아, 네.”
“방송국이랑 일정 조율이라니.”
“대박이다.”
다들 진짜 방송에 출연할 생각에 진심으로 들뜬 모양이다.
한데,
“혹시, 세이렌분들 내일 촬영 가능하실까요?”
“……네?”
한 가지 복병이 터졌다.
더 쇼케이스 출연 따낸 것까지야 좋다.
이후 어떻게 하면 될지 청사진은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망할.’
일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이건 손발이 일을 방해하는 수준이었다.
“그게 여쭤보니까 다른 팀들 스케줄이 어려워서 촬영 일정이 내일밖에 안 난다네요. 하하.”
방송국 사람들 일정으로 엄살떠는 거 일상인데.
이제야 감이 왔다.
WD엔터 직원들은 게으르거나,
‘감이 없네.’
일을 못하거나.
양극단의 선택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