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0화
“내일 촬영이요……?”
난 눈앞의 두 직원에게 그리 말하며 고심을 이어갔다.
“아, 네.”
“그, 태윤 씨, 화나셨나요?”
내가 고심하는 게 화난 걸로 보였나 보다.
내 인상이 그다지 온화한 편은 아닌 걸 나도 알고는 있기에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냥 생각 중이었습니다.”
사실 화도 조금 났다.
일정 엄살 조금 떨었다고 내일 촬영을 덜컥 수락해 버린 사람들이니까.
일단.
‘더쇼케 합격한 건 다행이네.’
플랜 A가 성공했으니 안심이다.
플랜 B로 ‘그’ 드라마 출연권을 따내보려고 제작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있었는데 그럴 수고가 없어졌다.
이제 더쇼케에만 집중하면 되는 일이지만,
‘내일 촬영해도 되려나.’
이게 조금 걸렸다.
1차 동영상 지원이 마감됐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영상을 올린 지는 아직 하루 정도밖에 안 됐다.
물론 강현성 버프를 이용해 단숨에 전체 조회 수 2위가 되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 빨리 일을 처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나.’
원하는 게 있으니 빨리 움직이는 것일 테다.
그건 어쩌면,
‘망돌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은 걸 수 있겠네.’
우리의 환경을 보고 접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난 찬찬히 우리 연습실을 둘러봤다.
이 연습실에서 영상을 찍었으니 당연히 제작진들도 우리 연습실이 낙후된 곳인 걸 알았을 거다.
물론 지원 영상의 모든 장면이 얼빡 장면이라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올까 싶지만 방송국 놈들 눈에는 들어왔을 거다.
이 습하고 곰팡이 핀 엉망진창 연습실이.
같은 소형인 TH엔터의 연습실도 이 정도는 아니다.
큰 인테리어는 없지만 그래도 모던한 느낌 정도는 났으니까.
우리 연습실은 모던은커녕 세기말 감성에 가깝다.
즉 이토록 빨리 촬영 일정을 잡은 건,
‘준비할 시간 없이 쳐들어와서 최대한 날것의 느낌을 잡으려는 건가.’
망돌이 가장 망돌스러울 때 담아가려는 모양이다.
보통 망돌이더라도 큰 건을 하나 물어오면 관리에 들어간다.
급하게 숙소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이 기회 살리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아니 회사도 아이돌도 사활을 거는 거다.
물론 그게 너무 과하면 비호감으로 비칠 순 있지만.
아무튼 우리가 출연 제의를 받아 외양을 그럴듯하게 바꾸기 전에 쳐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히려 좋네.’
차라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일 촬영 조금 빠듯하지 않나?”
“우리 숙소 아직 청소도 안 했잖아.”
“연습실도 한번 대대적으로 청소해야 할 것 같은데.”
형들은 내일 촬영 일정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들 있었다.
아직 내일 촬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픽스가 안 난 상황이다.
“전, 내일 촬영 좋을 것 같아요.”
이럴 때 한 사람이 나서서 주도하면 그쪽으로 의견이 딸려오게 마련이다.
“태윤이는 내일 촬영 좋아?”
연훈이 형이 내게 재차 묻는다.
“네. 전 좋아요. 어차피 해야 할 촬영이라면 빨리하는 게 긴장 푸는 데 도움 될 거 같아서요.”
난 그리 말하며 긴장한 척 심호흡을 조금 했다.
“……맞네. 차라리 빨리해 버리는 게 긴장 푸는 데 좋겠다.”
연훈이 형은 그 짧은 새에 긴장한 내 심정에 공감을 했나 보다.
저 눈동자에 긴장한 막내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그렁그렁 맺혔으니까.
“또 빨리 촬영하면 첫 번째 무대 힌트도 빨리 얻을 수 있잖아요.”
두 번째 내 근거에는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반응했다.
“그렇긴 하네.”
“태윤이 말 듣고 보니 빨리 촬영하는 거에도 장점이 있는 거 같아.”
마지막 동준이 형은,
“빨리하자~”
역시나 큰 생각 없다.
사실 저 사람이 진짜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닐 텐데.
이상하게 이런 토론이 갈릴 만한 건에는 좀처럼 참여를 안 하는 형이다.
“네. 그러면, 내일 촬영 일정 픽스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사에서 나온 두 사람이 그리 말하며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아마 방송국이겠지.
두 사람이 방송국과 연락을 하러 잠시 연습실 밖으로 나간 사이.
“으아아아. 진짜 촬영이다, 이제에에.”
연훈이 형이 약간 두렵단 듯 발을 동동거리며 말했다.
“잘할 수 있겠죠.”
“일단 청소부터 해요.”
“오늘 저녁은 다 같이 굶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다른 형들은 내일 촬영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늘어놨다.
하지만,
“차라리 청소도 하지 말고, 저녁도 푸짐하게 챙겨 먹는 거 어때요?”
난 그 건들에 반대를 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청소했다간 망돌 느낌이 덜 살 거다.
그러면 방송에도 조금 밋밋하게 나올 거고.
기왕 망돌 하기로 한 거 최대한 망돌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다 얻어야 한다.
그러니 환경에 대한 개선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저녁을 굶는 건 사실 별 이유 없다.
그냥 형들 굶는 건 별로 안 내킨다.
나중에 데뷔하고 나서 다이어트하면 되지.
뭘 지금부터 굶을 생각들인 건지.
이미 뼈말라 인간들인 주제에.
“그, 그래도 될까?”
“오히려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이 보이면 더 어색하지 않을까요?”
“그 말도 맞긴 한데.”
“차라리 연습에 더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형들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래. 더쇼케 출연권 딴 것도 태윤이 아이디어 덕분이었으니까, 일단 태윤이 의견 따라보자.”
연훈이 형이 주도해서 이리 말하니 얼추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러면 지금부턴 앞으로 무대에 쓸 수 있을 법한 안무들 몇 개 연습하는 걸로 하죠.”
“오케이~”
그렇게 촬영 전날의 마지막 연습이 시작됐다.
* * *
<더 쇼케이스2 - 퍼스트 찬스>의 제작진들은 새벽 6시에 이미 촬영지에 모여 있었다.
어제 급하게 촬영 일정을 제안해 봤는데 픽스가 되었다고 들었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조금 무리하게 요구를 했는데 그걸 받아주다니.
이게 노련한 건지 일을 못하는 건지 감이 안 온다.
더쇼케의 둘째 작가 김민영은 한 빌라 옥탑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저기가 세이렌 숙소인 거죠?”
“그렇다고 하긴 하네요.”
새벽에 일하는 게 짜증 나긴 하지만 벌써부터 망돌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니 기분은 좋았다.
저번 더 쇼케이스1이 무명의 반란, 이라는 게 컨셉이었다면 이번엔 망돌의 발견이 컨셉이다.
저번에 무명들의 짠내를 팔아 재미 좀 봤던 걸 조금 더 심화하여 활용하자는 게 이번 프로그램의 목표다.
아무래도 무명보다는 망돌이 더욱 짠내니까.
또 저번엔 말이 무명이지 사실 아이돌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선 알음알음 이름이 나 있던 그룹들을 모은 거였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다.
진짜 망돌이었다.
현재 이미 망해 버린 두 팀과 데뷔 후 망할 게 뻔했을 그룹 세 팀이 모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게 망했을 곳을 꼽자면 세이렌이었다.
오기 전 찾아보니 무슨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
대표라고 되어 있는 작자들은 작곡가들이었는데 과거에 유명한 곡 몇 개를 써낸 적 있던 사람들이었다.
다만 이젠 감이 떨어져 일선에서 일하기엔 무리가 있는 사람들.
최근엔 소소하게 곡 몇 개 파는 게 전부인 사람들이었다.
돈이야 과거 히트곡들이 꽤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있는 거 같았다.
찾아보니 대표 중 한 명은 작은 건물도 갖고 있을 정도의 부자였고.
그러니 회사 자금 조달에는 큰 문제가 있진 않을 것 같았으나.
‘이상하게 일하는 게 지저분해.’
어딘가 구린 냄새가 솔솔 났다.
일단 애들 숙소부터가 문제다.
“저거, 아무리 봐도 원룸 구조죠?”
“그냥 조금 넓은 원룸 정도일 거 같은데요.”
“아니면 무늬만 투룸 정도 거나요.”
“세이렌이 다섯 명이죠?”
“네.”
“다섯 명을 저기에다가. 에휴. 진짜. 인권 유린인데 저건.”
다들 말은 안쓰럽다는 듯이 하고 있으나 표정들엔 묘한 미소가 걸려 있다.
모두가 동일하게 맡고 있는 거다.
아주 진득한 망돌의 냄새를.
“올라가죠.”
김민영을 필두로 촬영을 위한 제작진이 옥탑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지라 무거운 장비들을 들고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도착한 후 문을 똑똑 두드리니,
“네~ 나갑니다!”
안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문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어? 안녕하세요! 엄청 일찍 오셨네요!”
지원 영상에서 가장 앞에 있던 멤버.
우연훈, 이라는 멤버였다.
똘망똘망하니 동그랗고 예쁜 눈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얘들아! 제작진분들 오셨어!”
리더의 부름에 세이렌의 멤버들이 하나둘 나왔다.
키가 크고 예민해 보이는 인물이 팀 내 둘째이자 래퍼 강도승.
몸 선이 유려하고 곱상해 보이는 인물이 팀 내의 또 다른 둘째이자 메인댄서인 이운.
웃상에 피부가 창백할 정도로 하얀 인물이 팀의 셋째 박동준.
그리고 마지막.
가장 끝에 서 있는 인물이 팀의 막내 봉태윤이었다.
키가 크고 차가운 인상의 인물이었다.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막내라고 말 안 하면 우연훈이 막내인 줄 알겠네.’
봉태윤은 묘하게 어른 같은 인상이었다.
실제로는 유일한 미성년자인 19살인데 말이다.
겉늙어 보인단 말은 전혀 아니었다.
‘뭐지.’
기가 세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저희가 아직 팀인사가 따로 없어서 그러는데, 그냥 해도 될까요?”
그때 우연훈이 우물쭈물대며 이리 말했다.
“아, 네네. 그냥 인사하셔도 됩니다.”
김민영은 그리 말하며 세이렌의 인사를 카메라에 담았다.
“안녕하십니까! 세이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생긴 청년 다섯이 우렁차게 인사를 한다.
“이제부턴 자유롭게 움직이시면서 생활하시면 됩니다. 지금은 딱 리얼리티 느낌의 촬영이라서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김민영은 그리 말하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촬영팀이 관찰 카메라를 방 곳곳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불필요한 인원은 죄다 밖으로 나갔다.
최대한 리얼한 현장을 만들기 위함도 있지만,
“설치 끝냈으면 촬영팀은 바로 나가주세요~”
방이 워낙 좁아서도 있었다.
이후 모든 인원이 나가고 방에 남은 건 김민영 작가 한 사람뿐이었다.
김민영은 구석에 앉아 세이렌 멤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지켜봤다.
방송국에서 다년간 일하며 어지간한 아이돌들과는 한 번씩 다 면을 터본 김민영이었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원룸이나 다를 바 없는 숙소에서 멤버들 다섯이 함께 생활하는 건 처음이었다.
좁은 방.
그리고 낙후된 시설.
자칫 잘못했다간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다.
주제는 아이돌 산업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이라는 것으로.
그러자 김민영의 머릿속엔 좋지 않은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과하다고 욕먹는 거 아니야?’
짠내를 담기 위해 오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사실 몰랐다.
일단 사람 사는 집이니 대놓고 놀란 얼굴을 할 순 없어 평정심을 유지하곤 있지만 사실 아직도 꽤 놀랍긴 하다.
이게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간 조작논란이 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짠내를 중화하지 않으면 너무 짜서 먹지 못할 음식이 될 것만 같다라는 우려가 드는 가운데,
“자자자! 상 펴! 상 펴! 아 상 좀 펴어!”
“어어어!”
예민해 보이던 멤버 강도승이 한 솥 가득 찌개를 가져오더니 상을 펴라고 재촉한다.
그러자 멤버들이 다 같이 동그란 좌식 테이블을 펼친다.
할머니 집 가면 꼭 있는 그 양철 테이블이었다.
김민영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계란말이 나가요. 계란말이이!”
“스팸 나가요, 스팸!”
시설이 너무 낙후되어 짠내가 심하게 날까 걱정했는데,
‘이런 모습도 있네?’
낙후된 시설과는 반대되는 모습이 저기에 있었다.
진짜 가족들끼리 분주하게 아침밥 차려 먹는 모습이었다.
“박동준. 고봉밥 안 된다니까.”
“아 좀! 아침밥은 많이 먹어도 된다매!”
“정도가 있지.”
“스팸에 계란말인데 고봉밥이 안 되는 건 심한데.”
“적당히 깨작거려 가며 먹어.”
“하아.”
“도승아 동준이 너무 뭐라 하지 마.”
강도승과 박동준은 아침부터 투닥거리며 밥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고.
이운은 그런 강도승과 박동준 사이를 중재하고 있었다.
“으음! 찌개 너무 맛있다! 태윤이가 끓인 거야?”
“어제 끓여둔 거 그냥 아침에 다시 끓인 거예요.”
“맛있어~ 맛있어~ 맛있으면 콧노래가 나오지요~”
옆에서 봉태윤과 우연훈은 정답게 대화를 나눴다.
우연훈이 정말 맛있단 듯 어깨를 들썩이며 밥을 먹자 봉태윤은 입가에 슬쩍 미소를 걸며 우연훈을 바라봤다.
김민영은 밥상 앞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양철 책상 위에 올라간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스팸 구이라는 메뉴부터 시작해서.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까지.
짠내가 심해서 이걸 어떻게 중화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 방향이 바로 옆에 있었다.
시설이 낙후되었지만 그런 것 따위 전혀 아랑곳 않는 멤버들.
또 그런 멤버들 간의 가족 같은 우애.
사실 이런 방향으로의 연출은 이제 식상한 방향이긴 하나,
‘클래식은 영원하니까.’
식상한 것이 왜 식상할 때까지 우려졌는지를 재고해 봐야 한다.
이 정도 소스면 그 식상한 방향으로도 재밌는 장면을 만들어 볼 수 있다.
프로그램의 짠내를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망돌인데,
‘조금 더 복합적인 캐릭터로 밀고 갈 수도 있겠네.’
짠내를 위한 단순한 소모성 캐릭터보다는 조금 더 비중 있는 그룹으로 쓰는 게 나을 것 같단 결심이 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