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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2화 (1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화

더쇼케 구성작가 김민영은 세이렌의 막내 봉태윤을 빤히 바라봤다.

“방송 탄다고 연습 많이 한 곡 꺼낸 거예요. 나도 이렇게 잘 부를 줄 몰랐어요.”

노래를 잘 불러놓고 갑자기 변명이라니.

“풉.”

김민영이 본인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혹여나 오디오가 물릴까 작게 웃긴 하였으나 분명히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웃고 있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스태프들도 얼굴에 미소를 걸고 있었다.

세이렌 멤버들도,

“하하하!”

“노래 잘한다고 우리가 잡아먹니?”

“태윤이 오늘 컨디션 좋나 보네.”

“봉태윤 요새 실력 빨리 느네.”

유쾌하게 웃으며 봉태윤을 축하했다.

봉태윤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형들과 스태프들을 바라봤다.

묘하게 귀가 붉어지는 것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려 하니,

‘재밌네.’

저 모습이 나름 귀여웠다.

‘막내 같구만.’

하루 종일 어딘가 근엄해 보이던 막내가 이제야 조금 진짜 막내같이 보였다.

* * *

낭패였다.

급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변명을 하다 보니 이렇게 대놓고 놀림거리가 되어버렸다.

‘크럼핑만 아니었어도. 하아.’

크럼핑 사태를 겪고 난 후 갑자기 실력이 느는 것에 대한 경계가 생겼다.

형들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그 탓에 급하게 변명한 거였는데,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해 보였나 보다.

노래의 경우엔 감정선만 생생해진 거라 기술적인 변화가 없어서 그냥 웃고 떠들며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거 같아서 묘하게 쪽팔리다.

“태윤이도 통과. 노래 많이 늘었네. 잘했어.”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내게 통과 사인을 줬다.

이 말은 오늘은 더 이상 보컬 연습은 안 해도 된단 거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도승아, 와서 건반 좀 맡아줘.”

“알았어요.”

우리의 메인보컬이자 리더인 연훈이 형뿐이었다.

‘연훈이 형 노래는 오랜만에 듣네.’

난 구석으로 가서 연훈이 형을 바라봤다.

도승이 형이 대신 건반을 잡아준 뒤 연훈이 형과 눈을 맞췄다.

“어떤 곡 할래요 형?”

“으음. 뭐 하지.”

연훈이 형에게는 이건 보컬 연습이라기보다는 그냥 취미생활 같은 느낌일 거다.

이유론,

‘더 연습할 게 뭐가 있다고.’

기술적으로 연훈이 형은 더 배우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이미 완성형의 보컬이니까.

어지간한 아이돌 메인보컬들을 살짝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사인을 주고받은 뒤,

딴-

연주를 시작했다.

반주를 듣자마자 다들 알 수 있을 법한 유명 사극의 OST였다.

스태프들 눈에는 의외라는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보여준 연훈이 형의 모습은 장난끼 있고 해맑은 모습뿐이다.

그런 사람이 애절한 감성의 사극 OST를 부른다니 의아할 거다.

다만,

-늦은 봄, 꽃은 시들어 가고

첫 음을 떼자마자 이전의 연훈이 형의 모습은 완전히 지워졌다.

이미 화자의 감정과 상황에 깊이 몰입한 것만 같은 눈동자였다.

-깊은 밤, 쉬이 잠 못 들던 날

-포근히 감싸준

-날 일깨워 준

-그대라는 한 줄기 빛이

저런 게 바로 재능이었다.

내가 ‘통찰’이라는 일종의 편법으로 잠시나마 따라 할 수 있었던.

스태프들 눈동자엔 거의 황홀에 가까운 감정이 실려 있었다.

우리야 매번 듣는 노래고.

또 연훈이 형 실력을 익히 알고 있으니 그렇게까지 놀라진 않지만,

‘나도 처음 들었을 땐 엄청 놀랐지.’

연훈이 형 노래 처음 들으면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청아하고 맑은 음색인데 삭풍이 부는듯한 목소리.

쉽게 하자면 맑고 고운데 서글픈 목소리란 말이다.

정반대되는 두 가지 특성이 한 사람 목에서 나온다.

특히 노래 부를 때 짓는 저 진지한 표정들이 청중들을 더욱 몰입시킨다.

-달아나도 날 쫓아와

-사랑이란 마음이

-때늦게 피어나 버린

-결코 시들지 않을

노래는 점점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이행해 갔다.

스태프들 눈동자는 거의 아련에 가까운 상태였다.

이제 곧 터져 나온 하이라이트에서 다들 탄성을 내지를 준비만 하고 있었는데.

-그 마, 켁!

“응?”

“어?”

“뭐야.”

연훈이 형이 노래를 멈췄다.

그러곤 구석에 가서 마구 기침을 한다.

이내 휴지를 급하게 뽑아 입에 가져다 댄다.

공기 안 좋은 곳에서 노래하다 큰일이라도 난 건가 싶었다가,

“벌레 입에 들어왔어! 이이이익!”

“아.”

“하아.”

“그나마 다행이다.”

벌레란다.

“내가 벌레 먹은 게 다행이야? 응?”

내가 다행이라고 한 걸 어떻게 들었는지 마구 서운한 티를 낸다.

“형 벌레 먹은 건 안타깝죠.”

사실 별로 안타깝진 않다.

뭐 그런 일이 종종 있을 수 있으니까.

다만 목이 다치는 건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다.

저 목이 앞으로 얼마짜리 목이 될 줄 알고.

“오늘 보컬 연습은 여기에서 끝내자. 벌레 먹어서 그런지 더 노래할 감정이 안 나와.”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아쉽단 듯 혀를 쯧 하고 찼다.

“아…….”

그러자 갑자기 김민영 작가가 아쉽단 듯 탄식한다.

저 눈빛.

저건 작가로서의 눈빛이라기보단,

‘관객 같네.’

그냥 연훈이 형 노래 듣고 반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김민영 작가는 금세 얼굴색을 바꾸더니,

“그러면, 잠시 브레이크 타임 좀 갖고 다시 촬영 이어가겠습니다.”

다시 냉철한 직업인이 되었다.

* * *

10분여의 쉬는 시간.

김민영은 오늘 촬영했던 부분들을 다시금 복기했다.

하지만 복기를 하려 해도 잘 되지 않던 것이,

‘방금 우연훈 뭐야.’

노래를 부르던 우연훈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렸다.

숱한 아이돌들 많이 봤지만 이렇게까지 놀란 적은 많지 않았다.

물론 우연훈보다 노래 잘하는 아이돌도 있고 잘생긴 아이돌도 많진 않지만 분명 있다.

그런 아이돌들과도 당연히 일을 같이해 봤고.

한데 오늘은 뭐랄까.

‘잘하네, 진짜.’

이상한 게 있었다.

다만 그 순간은 잊고 당장은 일에 집중해야 했다.

‘여기서 더 가면 막 치인다, 라고 하는 그런 느낌 되는 건가……. 재밌네.’

김민영은 아이돌 팬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다 생각했다.

다만 막 입덕이라거나, 치였다거나, 뭐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생각했는데.

‘음?’

쉬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우연훈에게 따라붙는 걸 느낀 후,

‘미쳤네, 김민영.’

본인의 직업인으로서의 소양을 의심하게 됐다.

* * *

휴식시간 동안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와 스태프분들에게 돌리기로 했다.

WD엔터의 윤승연과 이현아도 당연히 함께 갔다.

“아까 연훈 씨 노래 진짜, 와, 대박이었어요!”

“그러니까요! 진짜 소름 돋았다니까요.”

“정말요? 나 그렇게 잘했어요?”

카페에 가는 동안 윤승연과 이현아는 연훈이 형과 수다를 떨었다.

우린 스태프분들 몫의 커피를 전부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다.

이제 카드를 긁으면 되는데,

“후우. 승연아. 할 수 있어. 걱정 마. 한 번이잖아.”

카드를 쥔 윤승연이 손을 덜덜 떨며 무슨 주문이라도 외운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체크카드?’

분홍색에 유명 캐릭터가 박힌 체크카드다.

그 말은 즉,

“잠깐만요.”

“에?”

“이거 법카 아니잖아요.”

“아, 네!”

이 사람들 지금 사비 쓴단 거다.

그러자 형들의 시선이 승연 씨에게로 확 하고 몰렸다.

“네? 사비요?”

“법카 없어요?”

“왜, 왜 그러세요?”

“이게 뭐지?”

윤승연은 형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빠, 빨리 결제해 주세요!”

냅다 카드를 직원분에게 쥐여줬다.

카페 직원도 이 기회가 아니면 결제까지 한나절이 걸린 거란 걸 직감적으로 눈치챘는지 빠르게 결제를 완료했다.

다만,

“왜 개인카드 쓰신 거예요?”

“그게, 저희가 법카를 팀장님만 갖고 있기도 하고요. 법카를 받는다 한들 그거 긁었다간 엄청 깨질 게 뻔해서요.”

대충 예상이 간다.

만악의 근원 윤태형이군.

일하는데 법카도 안 주다니.

일단 결제가 된 걸 무를 순 없다.

대신,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네? 괜찮은데.”

“안 괜찮아요.”

한 사람에게 독박 씌울 순 없다.

적어도 나라도 같이 부담해 주려 했는데,

“앞으로 활동하며 돈 드는 것들 있으면 다 같이 부담해요!”

“승연 씨랑 현아 씨만 돈 쓸 순 없잖아요!”

형들도 가세했다.

그때,

“그냥 내 카드로 긁어도 되는데~”

뒤에 있던 동준이 형이 그리 말한다.

난 그 말의 뜻을 이해했지만,

“안 돼! 다 같이 고르게 분담해야지!”

다른 형들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뭐, 언젠간 알게 될 테니 그냥 뒀다.

우린 대량으로 나온 커피를 받아든 채 카페를 나섰다.

연습실로 가는 동안 우린 승연 씨 계좌로 각출한 금액을 보내줬다.

회사가 돈 안 쓰려고 발악하는 건 알지만 활동비도 안 주는 건 심했다.

‘싸워서라도 법카 받아내야겠어.’

일단 오늘 카페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매번 이럴 순 없다.

언젠가 한 번은 걸고 넘어져야 했을 문제다.

다음부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회사랑 한번 이야기를 해봐야 할 거 같았다.

* * *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촬영이 재개됐다.

이제부턴 리얼리티 느낌의 촬영은 끝이었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작가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다.

“지금부턴 방송에 필수적으로 들어갈 씬들 찍을 거예요. 여기 대본 줄 테니까 한번 훑어봐요.”

받아든 대본은 대충 이런 거였다.

우리가 연습실에 모여서 더 쇼케이스의 시청자들에게 첫인사를 드리는 것.

이후 몇 가지 게임을 진행한 뒤 첫 번째 미션을 받는다는 거였다.

촬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안녕하세요! WD엔터의 데뷔조! 세이렌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시청자들에게 드리는 공식적인 첫인사다.

그다음으론 간단한 자기소개도 했다.

큰 건 없고,

“팀의 리더 우연훈입니다!”

“랩을 맡고 있는 강도승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포지션과 이름을 설명하는 거였다.

“메인댄서 이운입니다!”

“귀여움을 맡고 있는 박동준입니다~!”

“세이렌의 막내, 봉태윤입니다.”

동준이 형과 나만 포지션을 빼고 말했다.

뭐, 사실 포지션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 작가가 뭐라고 하는 상황은 없었다.

그러곤 세이렌만의 장점을 설명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이건 윤승연과 이현아가 미리 작성해서 방송국에 보냈나 보다.

연훈이 형이 다소 가식적인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세이렌은 5인 5색의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년간의 연습으로 멤버 모두 탄탄한…….”

흔해 빠진 소개말이었다.

사실 여부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문장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소개 시간이 전부 끝나고 나자,

“우선, <더 쇼케이스2 - 퍼스트 찬스>에 합류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예에에에!”

본격적인 방송이 진행되었다.

진행자는 김민영 작가였다.

우리가 올렸던 영상이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단 걸 설명하고.

어떻게 그걸 찍게 되었냐고 물었다.

연훈이 형은 막내가 제안했던 거라며 그 질문에 답을 했다.

온리원분들과 겹친 걸 보고 우리들도 엄청 놀랐다고.

적당히 화기애애하고 훈훈한 분위기였다.

다만 그 분위기가 반전이 되는 순간이 왔는데,

“열흘 후면 이제 공식적인 첫 촬영이거든요.”

첫 촬영에 대한 메시지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그때 모든 팀이 수행해야 할 미션이 있습니다.”

미션 전달.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그러자 형들이 눈에 띄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연훈이 형은 말 그대로 굳어버렸고.

동준이 형조차 조금은 굳은 것 같았다.

“다만 미션을 그냥 받는 건 재미가 없겠죠?”

김민영 작가는 그리 말하며 밖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정체는,

‘돌림판이네.’

여러 그룹들의 이름이 적힌 돌림판이었다.

세이렌을 제외한 총 4개의 그룹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돌림판을 돌려서 나온 팀에게 전달할 선전포고 영상을 찍어야지만 미션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역시.

기억하던 것 그대로다.

그리고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저거 조작일 텐데.’

아마 저 돌림판은 백번을 돌려도 같은 이름이 나올 거다.

그 이름은 아마도,

‘온리원.’

강현성네 그룹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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