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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3화 (1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화

돌림판.

얼핏 보면 가장 조작을 하기 어려워 보이는 게임 방식이다.

결과가 나오는 과정이 눈으로 보이는 게임이니까.

하지만 이 사람들은 저 돌림판에도 조작을 가했다.

원리는 어렵지 않다.

판의 무게중심을 살짝 다르게 해서 원하는 구역에 화살표가 걸리게끔 하는 거다.

이건 결코 좋은 일을 한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엄청나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냐 묻는다면,

‘뭐라 하긴 애매하네.’

조금 모호해진다.

윤리적 측면에선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조작 안 해서 방송 재미없어지는 건 방송국이나 우리나 둘 다 손해니까.’

쌩 리얼로 재미없게 뽑을 바에야 이게 나을 수도 있다.

너무 악편을 해서 한 사람 인생을 보내버리는 건 문제지만, 적당한 자극을 위한 장치로써는 이해 가능한 부분이니까.

이 돌림판 정도면 내 기준에선 적당한 자극을 위한 장치쯤이고.

“자! 대표로 한 사람이 나와서 이 돌림판을 돌려주시면 됩니다.”

김민영 작가는 그리 말하며 돌림판을 우리 바로 옆에다가 뒀다.

“와……. 와아아…….”

다들 리액션이 고장 났다.

늘 방긋방긋 웃는 연훈이 형조차도 입가가 딱딱하게 굳었다.

“서, 선전포고를 꼭 해야 하는 거죠……?”

연훈이 형이 묻자,

“네.”

김민영 작가가 단호하게 답한다.

“진짜 쉽지 않네.”

도승이 형도 한마디를 하고,

“선전포고라니……. 그런 거 해본 적 없는데.”

운이 형도 걱정스레 한마디를 거든다.

“신기하네~”

동준이 형만 태평하다.

미션 듣기 전엔 조금 긴장하는 듯하더니 막상 미션이 나오고 나니 긴장이 풀렸나 보다.

이거 잘못 걸리면 악편당하기 딱 좋다.

싸가지없어 보이거나 생각 없어 보이는 걸로 편집해 낼 수 있는 포인트니까.

돌림판 돌리기 전과 후 반응 리액션도 적절하게 잘 해내야만 한다.

형들이 악편당할 바에야,

“제가 돌려도 될까요?”

차라리 내가 당하는 게 낫다.

악플이야 이미 수도 없이 먹어봤다.

작품 엔딩 낼 때마다 살해 협박 받아왔으니까.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단련된 내가 받는 게 낫다.

“괜찮겠어?”

“위험한데.”

형들도 이게 악편당할 지점이란 건 아는 것 같다.

다만,

“네. 하고 싶어요.”

난 그리 말하곤 형들의 동의를 기다렸다.

연훈이 형은 조금 고민하는 눈치더니,

“그, 그러면 다 같이 돌리면 되잖아! 선전포고도 다 같이 하고!”

묘수라도 생각난 것인지 이리 말한다.

다만,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돌리고 선전포고까지 그 사람이 하는 게 미션입니다!”

제작진들은 철저하다.

자기네들이 원하는 그림이 있으니 그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거다.

난 표정을 결연하게 하곤 한 차례 더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할게요. 생각해 둔 선전포고도 있어요.”

나야 이 미션을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생각해 둔 바가 있다.

형들은 한동안 계속 고민하는 눈치더니.

“후우우.”

“알겠어.”

“잘 돌려야 한다.”

“진짜 조심해야 해.”

이제야 겨우 한발씩 물러난다.

‘누가 보면 진짜 전쟁 선포라도 하는 걸로 알겠네.’

형들 반응 보면 내가 사지로 밀려 나가는 것 같다.

그래 봐야 그냥 돌림판 돌리긴데.

뭐, 이런 장면도 막내 아끼는 형들의 모습으로 잘 포장되어 방송에 나갔으면 좋겠다.

난 돌림판 손잡이를 잡았다.

어차피 뭘 돌리든 답은 하나다.

드르르륵!

힘을 주어 돌림판을 돌리자 여러 가지 그룹명이 휘리릭 지나간다.

이내 멈춘 곳은,

-온리원

예상대로였다.

“헉!”

“세상에!”

“아…….”

“오…….”

형들은 차마 큰 반응은 하지 못하겠는지 입을 꾹 닫았다.

다들 무서운 것일 테다.

이미 우리들은 강현성 씨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온리원과 아예 같은 영상을 찍어 올렸으니까.

그 과정 중에 본의 아니게 온리원과 우리 사이에 외모 배틀 같은 게 있기도 했었고,

물론 대부분이 그냥 웃고 넘기긴 했다만 몇몇 팬들은 불쾌함을 드러냈다.

물증은 없지만 심적으로 찜찜하다는 식의 의견들 말이다.

해서 여기서 까딱 잘못하다간 그때 찜찜함을 느꼈던 팬들에게 욕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그걸 노린 거겠지 방송국 놈들도.’

아마 온리원과 우리 사이의 라이벌 구도를 잡고 싶나 보다.

진짜 건강한 라이벌 구도가 아닌,

‘우리가 염치없이 달려드는 도전자 느낌이겠네.’

정의의 주인공인 온리원에게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악역 엑스트라 1 느낌으로 쓰고 싶은 모양이다.

강현성이 이번 판에 뛰어든 이상 더 쇼케이스는 온리원 중심으로 흘러갈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주변부에 여러 망돌 그룹들을 어떤 포지션으로 넣냐의 문제일 뿐이겠지.

그 짜여진 연극 판에서 우리 세이렌이 맡은 배역은 초반부 화제성과 자극을 챙기기 위해 집어넣은 비참하게 몰락할 악역 엑스트라일 거다.

그렇다면,

‘한 번은 판을 뒤집어야지.’

비참하게 몰락할 순 없으니 판을 뒤집어야 한다.

물론 지금 당장 뒤집을 순 없다.

당장은 닥쳐온 위기를 넘기는 게 급선무니까.

온리원에게 선전포고.

난 카메라를 쳐다봤다.

“저 카메라 보고 선전포고하면 되는 건가요?”

작가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네.”

난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선전포고라는 게 꽤 중요하다.

재미없게 하면 통으로 편집이 될 수도 있다.

한 5초만 잠깐 나오거나.

그냥 한 회차만 편집되면 다행일 텐데 그게 아니다.

한번 재미없는 그룹이라 낙인 찍히면 그 후에도 편집에서 분량을 못 받을 수 있다.

이건 일종의 테스트이기도 한 셈이다.

우리의 예능감을 보려는.

그렇다면,

“저희는, 온리원분들을 반드시 이길 겁니다.”

차라리 원하는 그 그림을 던져주는 게 좋다.

뭣 모르고 덤비는 엑스트라 1.

당장은 그 포지션을 받는 것처럼 멘트를 던져줬다.

김민영 작가의 눈이 조금 커진다.

원하는 대사가 나와서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다만 원하는 그림 그대로만 가주진 않을 거다.

난 교묘하게 말을 바꾸고.

프레임을 다르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건 선전포고다.

하지만 온리원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냐 물으면, 분명 아니다.

적당한 긴장감이 있기도 하고, 적당히 웃기기도 하다.

무엇보다 누구 하나도 눈살 찌푸리게 하지 않았다.

내 선전포고를 듣는 김민영 작가의 눈빛이 오묘해진다.

형들의 표정도 차차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선전포고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감이 잘 안 오겠지.

그게 내가 의도한 바이니 저 복잡한 표정들은 선전포고가 잘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내 선전포고가 끝나자,

“…….”

“흐음.”

연습실은 잠시 적막해졌다.

몇몇 사람은 애써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쨌든 나쁜 선전포고를 하진 않은 것 같다.

김민영 작가의 눈동자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저건 얼추 맘에 들었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 선전포고를 할 줄은 몰랐겠지.

김민영 작가는 날 빤히 쳐다보더니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됐다.

편집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통편집은 면한 거 같으니까.

“네. 미션 완료로 인정하겠습니다.”

“헉!”

“오!”

“돼, 됐다!”

나보다 형들이 더 놀라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김민영 작가는 종이 한 장을 우리에게 건넸다.

난 대표로 그 종이를 받았다.

이 미션 내용도 뭔지는 알고 있지만 안 받을 순 없으니까.

난 형들에게 미션지를 건네줬다.

연훈이 형을 중심으로 형들이 동그랗게 모였다.

“미션, 엽니다……!”

연훈이 형이 카메라를 보며 비장하게 말하곤 종이를 열어젖혔다.

나름 방송이라고 미션을 카메라 쪽으로 보이게 열어준다.

종이에 적힌 미션은,

-120초 대면식 무대 준비.

이렇게 육갑 칠갑 호들갑 다 떤 거에 비해 식상해도 너무 식상한 거였다.

“그, 어, 끝?”

연훈이 형이 종이와 멤버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게 끝이냔 듯 묻는다.

120초라는 특이사항 빼고는 별다를 게 없다.

대면식에서 무대 할 거 예상 못 한 팀은 없을 테니까.

대면식이랍시고 아이돌들 모아뒀는데 정말 친목 인사만 하고 돌려보낼 방송국이 어디 있겠는가.

대단한 미션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어처구니 없는 미션이 나와 다들 실망한 눈치였다.

“네. 여러분은 열흘 뒤에 열릴 대면식에서 할 무대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시간제한은 120초입니다.”

형들은 다 김이 빠져 있었는데 작가는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당차게 방송을 이어갔다.

여기서 더 실망한 티 냈다간 편집될 수도 있음을 안 형들은 금세 얼굴색을 바꿨다.

“120초 시간제한이 있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히네.”

“신기하다~”

“역시, 흥미진진한 미션……!”

이 자본주의 리액션들을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면 열흘 뒤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는 그리 말하곤 스케치북을 들어 올렸다.

-클로징 인사

여기까지가 본 촬영분이니 이제 인사하란 거다.

“열흘 뒤에 다른 그룹분들과 시청자분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연훈이 형이 앞으로 나서서 클로징 멘트를 시작했다.

연훈이 형 머리에서 즉석으로 나온 멘트는 아니고 촬영 시작 전 작가가 보여준 대본에 있던 멘트다.

“그러면 지금까지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세이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클로징 멘트까지 촬영하고 나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촬영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수많은 제작진분들이 일제히 수고 많으셨다, 라는 말을 내뱉으며 장비를 수거해 갔다.

형들은 첫 촬영을 끝냈다는 생각에 그대로 푹 퍼져 버렸다.

“흐아아아~”

연훈이 형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아무한테나 가서 폭 안겼다.

도승이 형에게 안기려다가 도승이 형이 질색을 하는 바람에 운이 형에게로 가서 안겼다.

연습실에 설치되어 있던 장비들이 하나둘 철거되어 간다.

전체적으로 정신없는 가운데,

“오늘 촬영 수고 많았어요.”

구성작가 김민영이 다가와 이리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가님!”

우린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렇게 예의 차릴 필욘 없고, 오늘 첫 촬영인데도 잘해줘서 고마워요. 아무튼 열흘 뒤에 봐요.”

작가는 그리 말하곤 제작진들과 함께 연습실을 나섰다.

한데 나가기 전까지도 뭔가 두 눈이 연훈이 형 쪽에 붙박여 있는 느낌이었다.

뭐, 작가가 우리한테 호의를 보이는 건 좋은 거니까.

“이제 우리 120초 무대 뭐 해야 할까?”

“으으으. 막상 하려니까 진짜 고민되기 시작하네.”

제작진들이 다 나가고 나자 우린 120초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열흘 후에 다른 팀들 기선제압을 하기 위한 무대를 해야 한다.

“막 빡센 거 할까?”

“힙합 어때 힙합?”

“전에 태윤이 크럼핑 잘하니까 그쪽으로 생각해 봐도 좋겠다.”

“아니면 무용 쪽 동작들 섞어볼까?”

형들은 어떻게 멋진 무대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다만 난 대면식 무대가 어떻게 흘러갈지 안다.

그렇기에,

“세라복 입죠, 우리.”

우리가 세라복을 입어야만 한다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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