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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5화 (1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화

온리원의 차량이 눈앞에 있었다.

차량만 보고 그게 온리원의 차량인지 다른 그룹 차량인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아…….”

차에서 온리원의 멤버 중 한 사람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름은 박영호.

온리원의 리드보컬인 멤버다.

온리원의 박영호는 우릴 보며 빳빳하게 굳었다.

아마 저쪽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나 보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저런 반응인 것을 보니까.

그때,

“아, 안녕하세요! 세이렌분들! 온리원의 박영호입니다!”

박영호가 대뜸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우와! 안녕하세요! 세이렌의 우연훈이에요!”

연훈이 형은 얼굴 가득 미소를 건 채 해맑게 인사했다.

박영호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연훈이 형의 인사를 받았다.

그때,

“챙길 거 챙겼으면 얼른 대기실로 돌아와!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저 멀리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온리원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 헉! 그, 안녕히 계세요.”

박영호는 차에 물건을 두고 와서 그걸 가져오려고 혼자 여기 온 모양이었다.

박영호는 우리에게 급하게 인사하고는 매니저가 있는 쪽으로 총총총 뛰어갔다.

“다른 아이돌분 보니까 기분 이상하다.”

연훈이 형은 그저 다른 팀 사람 보니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러게요. 신기하다.”

난 연훈이 형 기분에 적당히 맞춰주며 박영호가 지나간 길을 훑었다.

방금 박영호는 우릴 보자마자 세이렌이란 걸 알았다.

아직 우리 프로필이 따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우리가 딱히 유명인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말은 즉 본인들끼리도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뜻이다.

하긴.

완전히 똑같은 영상인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 리가 없다.

방금 박영호의 반응을 두고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경계하는 거 같네.’

마치 만나면 안 될 사람 만난 거 같은 반응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여행 가서 북한 사람 만나면 이런 반응이려나.

그 찰나의 눈빛에 놀람, 당황함, 신기함이 다 담겨 있었다.

‘경계 안 하는 게 더 이상하긴 하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경계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인터넷에서 그렇게 많이 묶여서 돌아다녔으니까.

“태윤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고 있어?”

그때 운이 형이 내게 물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았나 보다.

“아, 그냥. 촬영에 대한 거요.”

“그래?”

“네.”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말자. 준비 잘했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운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 다들 들어갑시다!”

WD의 이현아와 윤승연이 앞장서며 말했다.

우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 * *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니 제작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은 이거 쓰시면 되고요, 리허설할 때 부를 테니까 그때 밖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 외에는 이동은 최대한 삼가주세요. 꼭 이동해야 할 땐 보고 후 이동 부탁드립니다.”

우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은 후 대기실로 들어왔다.

아직 데뷔도 안 한 팀이라 모든 게 다 신기할 시기다.

형들은 스튜디오 내부를 연신 두리번거리며 대기실까지 이동했다.

대기실에 들어오고 나서도 우와, 라던가, 기분 묘하네,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한 방송의 출연자가 되어 공식적으로 대기실을 배정받은 거니까.

묘한 감정이 들 순 있을 거 같았다.

난 소파에 몸을 묻으며 생각했다.

‘이 연차 아이돌한테 단독 대기실 주는 건 더쇼케뿐이겠지.’

이게 더쇼케 사람들이 착해서 그런 게 아니다.

방송 재미를 위해서다.

같은 대기실을 사용해 그룹 간 친목이라도 다져 버리면 경쟁의 긴장감이 희석될 수 있으니 말이다.

-리허설 시청 금지

대기실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에는 이런 문구까지 붙어 있다.

저건 위쪽의 무대 실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인데 함부로 켜지 말란다.

다른 그룹이 어떤 무대를 할지 알면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으니 그런 거다.

우린 다른 그룹이 어떤 무대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다른 그룹들이 어떤 무대 할지 알고 있는데도 긴장이 된다.

다만 이건 조금 다른 류의 긴장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서 오는 긴장감이 아니라, 내가 계획한 그 그림이 과연 맞아떨어질지에 대한 긴장감이니까.

“으으으 다른 분들은 어떤 무대 할지 엄청 기대된다.”

“그러니까요.”

“다들 막 날아다니는 거 아니야?”

“도승이 형. 사람이 어떻게 날아다니겠어.”

“……박동준. 무대 전에 맞고 올라갈래?”

“강도승이 사람 친다!”

형들은 긴장을 한 건지 평소보다 더 텐션이 높다.

아니면,

‘카메라 의식해서 말을 많이 하는 걸지도.’

대기실 곳곳에 있는 관찰 카메라를 의식해 멘트를 계속 내뱉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몸부터 풀고 있죠.”

“그럴까?”

“가볍게 스트레칭부터 합시다.”

대기실이 넓어 안무 연습을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사실 이 정도면 우리 연습실이랑 거의 비슷한 크기다.

우린 롱패딩을 하나둘 벗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롱패딩을 벗으니 조금 춥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가 입은 의상은 세라복.

‘옷이 짧네.’

밖은 한창 겨울인데 우리 옷만 너무 여름이다.

나랑 도승이 형의 경우 긴바지를 입었지만 운이 형, 동준이 형, 연훈이 형은 반바지다.

“조금 쌀쌀하다.”

“우리만 지금 너무 여름 아니야?”

“원래 추울 땐 더 춥게 입는 게 패션쟁이라잖아.”

형들은 그리 말하며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사실 계절을 무시한 의상과 컨셉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내긴 쉽지 않다.

더워죽겠는데 애절한 발라드 듣고 싶은 사람 없고, 추워 죽겠는데 여름 시즌송 듣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늘만큼은 특수상황이다.

난 형들을 따라 손목 발목을 돌리며 위쪽의 상황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몇 번 안무도 맞춰보고.

휴식시간도 갖고.

이것저것 하며 나름 시간을 때우고 나자,

똑똑똑.

드디어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네에!”

우린 일제히 문 쪽으로 다가갔다.

“세이렌 리허설하겠습니다. 준비하고 올라와 주세요.”

드디어 리허설이었다.

“으아아아아!”

“후우우. 하아아.”

“……갑자기 훅 긴장되네.”

“쉽지 않구만.”

우린 리허설을 위해 위쪽으로 올라갔다.

* * *

더쇼케의 메인 피디 박수철은 텅 빈 리허설 무대를 바라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현재 4개 팀의 리허설 무대를 지켜본 상황.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왔다.

“민영아.”

“네.”

“너도 지금 문제 있다 느끼지?”

“네. 뭐.”

“하아. 이건 뭐, 누구 탓할 수도 없고. 아니지. 내 탓이지.”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아침 일찍부터 이어진 리허설은 이제 곧 올라올 세이렌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마지막 리허설까지 받고 난 후 잠시 휴식시간 갖고 본 촬영 시작이다.

즉 진짜 촬영까지 이제 겨우 한 팀 남았다는 건데

“미치겠네.”

예상 못 한 문제가 터졌다.

“왜, 다, 까만 거냐?”

“그러게요.”

바로 지금껏 보고 온 모든 팀들의 무대가 다 비슷비슷하단 거다.

오늘 그들이 참가자들에게 준 미션은 120초 대면식 무대 준비.

120초 동안 자신들을 소개할 수 있을 만한 무대를 준비하란 거다.

아이돌들이니 당연히 춤이나 노래를 하라고 시킨 거다.

다들 퍼포먼스 위주의 멋진 무대들을 준비해 왔다.

다만,

“왜 죄다 어둡고, 까맣고, 조명 번쩍번쩍하고, 그런 거냐고.”

누가 뭘 했는지 구분이 안 간다.

죄다 검은색의 멋져 보이는 옷들 빼입고 와서 휘적휘적 무대 돌아다니다가 내려오는 느낌이다.

못하는 팀은 없다.

다들 잘한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니 혼신의 힘을 다한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딴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노력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죄다 하는 게 노력이고.

눈에 띄는 성과물이 있어야 한다.

특히나 그걸 밖에다가 내다 팔아야 하는 거라면 더더욱 눈에 띄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온리원이네.”

“같은 검은색 삐융삐융이더라도 퀄리티가 다르긴 하더라고요.”

온리원 빼고는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분명 문서로 무대 설명 전달받았을 땐 이런 느낌 아니었거든요.”

김민영은 그리 말하며 각 회사에서 전달받은 무대 설명문을 늘어놓았다.

“설명들은 뭐 다들 청산유수지.”

설명문엔 다들 무슨 음악 평론가들 마냥 적어두었다.

날카로운 신스음과 묵직한 베이스가 결합된 트렌디한 댄스 음악에…….

앞으로 치고 나가겠다는 포부를 담아 만든…….

박수철은 한숨을 푹 쉬곤 설명문들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앞으로 뭐 날카로운 신스음? 묵직한 베이스? 이딴 거 쓰지 말라고 해. 그냥 딱 간결하게 어두움, 밝음, 귀여움. 섹시함. 이것만 적으라고.”

이대로 가다간 방송이 밋밋하게 나올 거 같아 박수철의 신경이 한껏 날카로워졌다.

그때,

“세이렌 올라왔습니다!”

제작진이 다가와 말했다.

“후우.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박수철은 시선을 돌려 무대 위로 올라온 세이렌을 확인했다.

제발 또 검은색만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응?”

본인도 모르게 부드러운 반응을 보여 버렸다.

검은색에 이상한 장식들 잔뜩 달아둔 의상만 입던 그룹들의 끝에.

하얀색과 네이비색으로 꾸며진 세라복을 입은 5명의 미남들을 보니,

“이야. 민영아.”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거, 안약이 필요 없겠는데?”

죽상이던 박수철의 얼굴이 활짝 폈다.

“민영아? 안약이 필요 없겠다니까? 왜 반응이 없어?”

박수철은 본인의 회심의 드립에 반응이 없자 서운한 마음에 김민영을 툭툭 쳤는데,

“뭐야, 얘 또.”

김민영의 두 눈은 무대에 고정된 채 미동조차 하질 않았다.

“얜 또 왜 그래.”

박수철은 어처구니없단 듯 웃은 뒤 다시 무대를 바라봤다.

그러곤 본인도 김민영만큼이나 주의 깊게 세이렌의 무대를 지켜봤다.

리허설이 끝날 때까지,

“감사합니다! 세이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 * *

리허설이 끝이 났다.

우린 대기실로 돌아와 푹 퍼져 버렸다.

“후아아! 엄청 긴장했나 봐. 나! 손바닥에 땀 난 거 봐!”

연훈이 형은 손바닥에 식은땀이 난 걸 신기하단 듯 자랑을 했다.

식은땀 자랑을 대체 왜 하나 싶긴 하지만 보라니까 일단 보긴 했다.

“진짜 카메라 앞에서 춤추니까 느낌이 확 다르다.”

“의상 입고 무대 위에서 하니까 확실히 다른 거 같아.”

“왜 리허설을 꼭 하는지 알겠네. 한 번 하고 나니까 어떻게 무대에서 해야 할지 더 감이 잘 오는 거 같아.”

형들은 한마디씩을 주고받으며 실제 무대에서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디테일을 더 살릴지.

무대 사이즈가 연습실과 다르니 동선을 어떻게 더 크게 가져갈지.

이런 부분들을 말이다.

‘역시. 능력이 빠지는 사람들은 절대 아니야.’

다시 한번 형들에 대한 확신을 품게 됐다.

운이 없었을 뿐이지 세이렌이라는 그룹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으면 안 됐다고.

그렇게 회의 겸 휴식시간을 가지며 숨을 돌리고 있을 무렵.

“본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본 촬영 시작이었다.

“호명하는 순서대로 무대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끝까지 타 그룹과의 조우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싶었다.

“먼저, 온리원! 올라가실게요!”

가장 먼저 올라가는 건 온리원.

“블레슈 올라가겠습니다!”

그다음은 블레슈.

“원바이원 올라가겠습니다!”

“루미닌 올라가실게요~”

원바이원과 루미닌도 올라갔다.

원래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이 네 팀만 더쇼케2에 나와서 경연을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번엔,

“세이렌! 무대로 올라가겠습니다~”

우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가자.”

“잘하고 옵시다!”

우린 대기실 문을 열고 무대로 올라갔다.

세이렌, 이라는 이름을 달고 처음으로 공식 스케줄을 소화하는 순간이었다.

“할 수 있다, 세이렌!”

연훈이 형이 뭔가 구호 같은 걸 외쳤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세이렌!”

마치 돌림노래처럼 우린 그 구호를 따라 했다.

할 수 있다, 세이렌.

입에 달라붙는 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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