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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6화 (1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화

난 형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불렸으므로 당연히 무대에도 가장 마지막에 올라가는 거다.

아마 위쪽에선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하며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겠지.

그런 귀찮은 눈치싸움 안 할 수 있으니 늦게 이름이 불린 게 다행인 일 같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으으으.”

연훈이 형은 자꾸 할 수 있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무대가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할 수 있어요, 형.”

난 연훈이 형의 어깨를 마사지해 주며 말했다.

“맞아. 할 수 있어!”

연훈이 형은 금세 기운을 회복하며 텐션을 끌어올렸다.

리허설 때문에 이미 한 번 올라가 봤던 계단인데 유독 더 떨리는 것 같다.

“여기 벽이 양쪽으로 열릴 텐데 너무 당황하지 마시고 바로 걸어가시면 돼요.”

우린 스태프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윽고,

지이잉-

기계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우리 앞에 있던 벽 가운데가 갈라지며 양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앞에 드러난 건 직사각형 모양의 기다란 무대였다.

기다란 무대 양옆에 의자 여러 개 배치되어 있었다.

왼쪽에서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게 루미닌.

루미닌 옆에 앉아 있는 게 블레슈.

오른쪽에서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게 원바이원

원바이원 옆에 앉아 있는 게 온리원이었다.

우리 세이렌이 들어갈 자리는,

‘왼쪽 끝이네.’

블레슈의 옆자리였다.

다른 말로는 온리원의 건너편 자리이기도 했고.

온리원과 계속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이거 노렸네.’

방송국 놈들이 우리랑 온리원 엮어서 재미 좀 보려고 엮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타 그룹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로 꽂혔다.

뭐 눈에 띄게 반가운 척을 하거나 놀란 척을 하는 그룹은 없었다.

이미 어떤 그룹 나올지 사전에 다 전달받은 상태니까.

그저 적당히 경계의 눈빛을 담아 우릴 바라볼 뿐이었다.

우린 천천히 자리로 걸어갔다.

의자 위에 착석한 뒤 앞을 바라봤다.

바로 앞에 온리원이 보인다.

‘더럽게 신경 쓰이네.’

막상 앉고 나니 이 구도가 꽤 부담스러웠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만났던 박영호도 보였고.

온리원의 다른 멤버인 김시운과 김주현, 이철운도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센터에 앉아 있는 멤버.

‘강현성 실물로는 처음 보네.’

강현성이 저기에 있었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눈에 띄긴 한다.’

스타성이라던가 도화살 같은 게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이 생겼다.

하얀 피부에 백금발을 한 남자였는데 이목구비에서 눈에 띄게 잘생겼다 하는 부분은 없다.

전체적으로 인상이 강렬한 편도 아니고.

오히려 선이 얇은 얼굴이다.

어르신들이 보면 순하게 생겼다, 서글서글하게 생겼다며 좋아할 얼굴.

한데 눈에 계속 밟히는 얼굴이었다.

이유로는,

‘눈깔이 왜 저래.’

강현성의 눈이 조금 달랐다.

삼백안이라느니 어안이라느니 뭐 이런 류의 눈 모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눈빛 자체가 확실히 남들이랑 달랐다.

동공 떨림이 남보다 적은 느낌이랄까.

한 치 흔들림도 없는 눈이었다.

‘성공에 미친 눈이네.’

난 혼자서 저걸 성공에 미친 눈이라 불렀다.

실제 강현성 팬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간 욕 바가지로 먹을 게 뻔하니 혼자서만 그리 불렀다.

한데 실제로 보니 더하다.

진짜 성공에 미친 놈 같다.

눈빛만으로 이런 인상이 남을 사람은 강현성밖에 없을 터였다.

세이렌 형들도 조금 겁을 먹은 느낌이었다.

“후우우.”

연훈이 형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했다.

도승이 형은 아예 딱딱하게 굳어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운이 형은 가만있질 못하고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거렸다.

동준이 형만,

“응? 왜?”

조금, 태평하다.

다만 긴장은 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자꾸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으니까.

아직 무대는 적막하기만 했다.

원래는 서로 인사 같은 거라도 할 텐데, 묘하게 눈치 싸움이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이미 자기네들끼리는 인사를 다 나눠서 또 인사하기 애매해 눈치만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인사하는 게 나을 거 같다.

난 연훈이 형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형은 잠시 날 쳐다봤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희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그러곤 다른 팀들이 듣도록 크게 말한 뒤 시선을 모았다.

온리원을 비롯한 타 그룹들이 일제히 우릴 바라봤다.

“하나, 둘, 세이 예스! 안녕하세요! 세이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팀인사를 외치며 고개를 꾸벅 숙이자 곳곳에서 박수와 함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건너왔다.

가장 먼저 살가운 반응이 나온 건 옆에 있던 블레슈였다.

“안녕하세요! 저희 세이렌분들 지원 영상 정말 재밌게 잘 봤어요!”

블레슈의 리더가 그리 말하며 우리와 친목을 쌓으려고 다가와 줬다.

우리도 그렇다면 리더가 나가는 게 맞겠지.

뭐 시킬 새도 없이 연훈이 형이 화색을 띠며 답한다.

“진짜요? 고마워요! 그거 우리 막내 아이디어에요!”

“아, 막내요?”

“네! 여기 태윤이요!”

“아, 막내분이 머리가 좋으시구나.”

“완전 똑똑이 막내예요!”

“오오, 봉태윤 똑똑이 막내. 똑막~”

동준이 형이 은근슬쩍 대화에 끼어들며 날 똑막이라고 부른다.

것보다 하고 많은 단어 중에 왜 하필 똑똑이인 건지.

유아 방송에나 나올 법한 단어였다.

“저희 지원 영상도 보셨나요?”

블레슈의 리더가 자기네들 영상도 봤냐고 묻는다.

“네! 당연하죠!”

연훈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번갈아 가면서 노래 부르셨던 영상 맞죠?”

“맞아요! 마이크 쟁탈전하듯이 노래 이어 부르기 했어요.”

“그거 보고 진짜 아이디어 좋다 생각했거든요.”

난 우리 리더가 블레슈 리더와 친목 쌓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봤다.

확실히 친화력 하나는 최고인 사람이라 그런지 어색해하질 않는다.

오히려 블레슈 리더 쪽이 조금 버거워 보인다.

그냥 가볍게 한두 마디 나누려고 말 걸었다가 한참 붙잡혀 버린 사람 같은 얼굴이다.

뭐, 알아서 버텨야지.

본인이 선택한 친목인데.

난 블레슈 쪽엔 신경을 끄고 온리원을 바라봤다.

온리원도 옆에 앉아 있는 팀과 대화를 나누며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저긴 약간 팬사인회 느낌이다.

강현성 팬이었다, 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려오는 중이니까.

적당히 분위기가 풀려가고 있다 싶을 즈음.

탁!

“어?”

“응?”

“뭐야?”

무대 조명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어두워진 조명에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원인을 찾았다.

그때,

지이이잉-

익숙한 기계장치음이 들리더니,

화악!

핀 조명 하나가 무대 끝에 떨어졌다.

문을 넘어 남녀 한 쌍의 MC가 걸어 나왔다.

남자MC는 유명 개그맨 김영진이었고, 여자는 솔로 가수 나현이었다.

두 사람 다 현재 방송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는 연예인들이었다.

저 둘이 MC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리라.

이 중 미래에서 온 건 나밖에 없을 테니까.

“세상에…….”

“진짜야?”

“와, 대박!”

“영진 선배님 키 엄청 크시다…….”

“잘생기셨어.”

다들 놀라서 한마디씩을 던지며 MC들을 쳐다봤다.

웃긴 건 그 많은 반응들 중 나현에 대한 반응은 하나도 없단 거다.

이성에 대한 반응은 훗날 문제로 얽힐 수 있으니 벌써부터 조심하는 거다.

두 MC는 무대 중앙까지 나온 후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봤다.

“무대 위 가장 눈에 띄는 보석을 찾기 위한 전쟁,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MC를 맡은 개그맨 김영진.”

“가수 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두 MC들은 카메라에 인사를 한 후 시선을 돌려 우리들을 향해서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잘생기셨어요!”

우리의 반응들이 풋풋해 보인 걸까.

김영진과 나현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눈을 하나하나 맞췄다.

그러곤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와서는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이어갔다.

“오늘 수많은 지원자들을 뚫고! 총 두 팀의 아이돌분들과 세 팀의 데뷔조분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맞죠?”

“네. 더 쇼케이스2에 지원한 수많은 지원자분들이 계셨는데요, 그중에서도 여기 모인 분들은 특유의 재능과 재치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다섯 팀입니다.”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멘트들이었다.

작가가 써준 것이긴 하겠다만 저걸 저렇게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어디, 다들 얼굴 좀 한번 쭉 볼까요?”

개그맨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장난스레 주변을 쭉 훑어보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 애드립을 받아준 건 우리 팀 리더 연훈이 형뿐이다.

훑어보는 듯한 제스처에 맞춰 꽃받침을 하고는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연훈이 형이 이렇게까지 방송 체질일 줄은 몰랐다.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떨더니

“하하하! 너무 귀여운데요?”

연훈이 형의 꽃받침에 김영진은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감탄했다.

‘한 컷은 더 받겠네.’

연훈이 형의 재치 덕에 방송에 한 컷은 더 나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잠시 풀어지도록 몇 번 애드립을 더 주고받은 후.

다시 멘트가 이어졌다.

“오늘 모인 다섯 팀은 각각 본인의 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영상들을 올리는 것으로 선발되었는데요, 지금 바로 그 화제의 영상들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현의 멘트에 맞춰 조명이 한 번 더 어두워지더니 무대 끝에 있던 전광판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건 루미닌의 영상이었다.

6인조 그룹인 루미닌의 퍼포먼스 영상이었는데, 춤 자체에 특이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각각 기본기가 뛰어나단 게 눈에 띄는 영상이었기에 무난한 3만 정도의 조회 수를 받으며 마무리됐다.

루미닌은 이미 1년 전에 데뷔를 했던 팀이었지만 아직 변변찮은 음악방송에도 나가본 적 없는 망돌이었다.

그다음에 나온 영상은 원바이원의 영상이었다.

원바이원도 루미닌과 같이 1년 전에 데뷔를 했지만 변변찮은 화제는 못 끌고 묻혔던 그룹이었다.

5인조 그룹인 원바이원은 힙합 싸이퍼를 연상시키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래퍼 세 명과 보컬 두 명인 힙합 그룹답게 안무보다는 랩과 분위기 등에 더 신경을 쓴 영상이었다.

비슷비슷한 아이돌 영상들 사이 흔치 않은 힙합 영상이기에 소소하게 화제를 받아 조회 수 3만 5천 회 정도를 기록했다.

그다음은 블레슈의 영상이었다.

블레슈부터는 데뷔한 적 없는 데뷔조들의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본인들끼리 마이크 쟁탈전을 벌이며 한 곡을 완창하는 영상이었다.

예능식으로 재밌게 촬영된 데에다가 모든 멤버들의 보컬 실력이 탄탄해 좋은 호응을 받으며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총 조회 수는 5만이었다.

여기까진 사실 맛보기에 불과한 느낌이었다.

사실 지원 영상 다시 보여주는 건 누가 봐도 우리랑 온리원을 의식한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온리원과 우리의 지원 영상은 각각 따로 재생되는 게 아닌,

“2분할?”

“와…….”

한 화면에 2분할로 처리해 한 번에 담았다.

방송국 놈들의 의도적인 노림수가 너무 빤히 보이는 구조였다.

아마 실제 방송 시엔 저 밑에 자막으로 완전히 똑같은 영상을 올렸던 세이렌과 온리원, 이라는 문구 붙이며 반응 컷 하나 붙이겠지.

그때 쓰일 반응 컷으로는 떨떠름해 보이는 컷이 붙을 거 같았다.

그렇게 지원 영상 훑어보기가 끝난 후.

“자, 다섯 팀의 매력이 돋보이는 지원 영상들, 어떻게 재밌게 보셨을까요?”

다시 멘트가 이어졌다.

“네에에!”

우린 그 멘트에 적당히 대답을 해줬다.

아직까진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린 없다.

‘분위기가 훈훈하면 어떻게든 그걸 깰 생각을 해야지.’

나라고 구성을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작가로서의 감이다.

분야는 달라도 작가는 다 비슷한 족속들이니까.

역시나 예상대로,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더 쇼케이스가 아니죠.”

분위기를 깨는 멘트가 나온다.

“네. 맞습니다. 이미 다들 한 차례 수행하셨던 미션일 텐데요.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보낸 선전포고 영상까지 한 번에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억지로 시켰던 그 선전포고 영상.

이 인성 박살 난 제작진 놈들은 그걸 면전에 대고 바로 재생시켜 버렸다.

가장 먼저 등장한 건,

-아, 그, 안녕하십니까, 세이렌분들. 온리원의 김시운입니다.

온리원이 우리에게 한 선전포고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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