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8화 (1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화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노래와 춤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뭐 얼굴 상태나 재능의 균형에 따라 노래나 춤 중 어느 하나가 조금 떨어져도 되긴 한다만 기본적으론 둘 다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아이돌의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춤 잘 추고 노래 잘해도 방송에 안 잡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사람들이 실력이 부족하고 못나서는 아니다.

이유는 하나.

‘강현성 같은 놈들 때문이겠지.’

노래나 춤을 아무리 잘해도.

혹은 외모가 아무리 빼어나도.

그냥 갖고 태어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도화살이라고도 하고.

끼, 라고도 하고.

연예인 될 팔자나 사주라고도 하는 거.

그게 몰빵 되어 있는 인간이 지금 저기 서 있다.

-We will TAKE OVER! HOOK!

-내 걸음에 발맞춰!

멤버들 등을 밟고 하늘 위로 뛰어올랐던 강현성은 슈퍼히어로 랜딩하듯 바닥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온 곡의 훅은 사람들의 탄성을 터뜨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백금발의 전직 1군이 눈에 광기 비슷한 것을 번뜩이며 무대를 훑었다.

대형이 일사불란하게 바뀌며 곡이 고조된다.

온리원의 멤버들은 각각 강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딱히 춤의 장르를 구분 짓기 어려운 동작들이 나왔다.

저건 춤이라기보다는 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강현성은 앞에 있는 멤버들과 한 명씩 페어 안무를 선보였는데, 그 페어 안무가 마치 싸움을 하는 듯한 동작들로 이루어졌다.

주먹을 내지르고,

발을 뻗고,

바닥에 눕히고,

다시 일어서고.

그렇게 멤버 셋을 지나 마지막 멤버에게 도착했을 때.

-TAKE DOWN! HOOK!

-결국 널 무너뜨릴 LAST ONE!

다시 한번 후렴구 가사가 나오며 반주가 절정에 도달했다.

묵직한 베이스음이 강조되며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강현성과 마지막 멤버 간의 페어 안무가 이어졌다.

줄곧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이 그제야 나왔는데,

“와!”

“저거 뭐야?”

사람들 시선을 단번에 휘어잡을 만한 물건이었다.

형광색 빛을 사방에 뿌려대는 검.

‘라이트 세이버가 나올 줄은 몰랐겠지.’

감 좋은 사람이라면 사이버 펑크 복장에 칼 차고 나왔을 때 예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은 예상 못 했으리라.

광선검 들고 칼춤 춘다고 하면 오글거리거나 과해 보일 수 있다.

매니악한 거에 매니악한 걸 더한 셈이니까.

하지만 강현성의 춤선과 표정은 그 매니악함을 충분히 소화해 냈다.

반면 강현성과 페어 안무를 하는 멤버는 소화 못 할 깜냥이었는지 얼굴에 천 같은 복면을 둘러둔 상태였다.

이내 마지막 멤버까지 쓰러뜨린 후.

곡의 마지막 아웃트로가 나지막이 들려올 때.

강현성은 마치 비틀거리듯 무대의 정중앙으로 이동한 뒤.

쾅!

광선검을 바닥에 꽂으며 무대를 끝냈다.

그제야 광선검의 형광색 빛이 치지직거리며 꺼져갔다.

검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타이밍에 맞춰 강현성도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무대 위에 남은 건 망가진 광선검 한 자루와 잘생긴 남자 다섯의 시체뿐이다.

대충 무슨 그림을 원했는지 알 것 같은 구성이었다.

‘사이버 펑크 영화 한 편 뚝딱이네.’

강현성의 취향이 짙게 반영된 그림이다.

아니지.

저게 저 자식 취향일 린 없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거에 시간 투자할 캐릭터는 아니니까.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골라 잡은 거겠네.’

강현성은 저런 걸 잘한다.

컨셉츄얼하고 빡센 것.

컨셉츄얼하고 빡센 것들 중 그간 안 해본 장르 잡아서 해본 것일 터였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상시킬 법한 온리원의 무대였습니다!”

“와아아아아!”

MC 김영진이 멘트를 치며 무대를 정리했다.

조명이 원래 조명으로 돌아오며 무대 위에 쓰러져 있던 온리원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식의 구성일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요.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MC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마이크를 온리원에게로 넘겼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온리원 멤버는 강현성이었다.

아마 오늘 방송 중 처음 입을 떼는 순간이리라.

강현성은 호흡을 정리하며 목에 묻은 땀방울을 훔쳤다.

그러곤 주변을 스윽 훑더니,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리 말했다.

“멤버들도 같이 살을 붙여줬고요.”

보통은 멤버들과 다 같이 만들었다, 를 먼저 말한 후 최초 제안자는 저였습니다, 를 뒤에 붙일 텐데.

뭐, 순서야 상관없으려나.

그때 강현성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애석하게도,

‘뭐야.’

시선이 멈춘 지점은 나였다.

왜 굳이 나랑 아이컨택을 시도하려는 건진 이해할 수 없지만,

‘시비 거나.’

눈싸움하자는데 도망칠 필욘 없다.

강현성은 입꼬리를 한쪽으로 슬쩍 올리곤 시선을 MC들에게로 옮겼다.

“광선검 나왔을 때 진짜 놀랐어요.”

“다행이네요. 놀래키려고 넣은 장치거든요.”

“그렇다면 아주 제대로 성공하셨네요.”

이후로도 온리원과 MC들 사이의 대화는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묘하게 온리원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준다는 인상이 남는다.

이후 멘트들이 전부 끝나고 나자,

“다음 무대를 꾸며줄 세이렌분들! 무대 위로 올라와주세요!”

우리가 호명됐다.

난 형들을 쭉 둘러봤다.

방금 막 온리원의 무대를 보고 와서일까.

“와.”

“우리가 왜 엔딩이냐.”

“후우우.”

다들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럴 만한 무대이긴 했다.

우리 팀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들도 묘하게 풀이 죽어 있으니까.

온리원의 무대는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에게 벽을 느끼게 하는 무대였을 테다.

분명 같은 중소고, 같은 검은색 옷에 비슷한 느낌의 노래였는데 이토록 느낌이 다를까 하고.

이건 사실 좋게 말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센터 차이.

그냥 센터에 누가 섰냐의 차이다.

온리원도 강현성을 제외하자면 그렇게 잘 추는 사람은 없었다.

컨셉 소화력도 다들 떨어졌고.

노래는 뭐 훅 두 번이 전부라 판단하긴 어렵지만 그다지 잘 부르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현성이 센터에 서서 컨셉과 무대를 멱살 잡고 캐리했다.

자기 혼자서 멤버 네 명을 전부 수납해 버린 꼴이다.

어쩌면 일대일 페어 안무들로만 무대를 구성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형들 가요.”

난 굳어 있는 형들을 깨웠다.

센터 차이로 무대의 차이를 만들어낸 게 온리원이다.

하지만,

“연훈이 형, 쫄지 마요.”

“응! 안 쫄아!”

우리 센터도 지지 않는다.

아니지.

이 컨셉 한정으로는 우리 센터보다 잘할 사람 거의 없을 거다.

난 연훈의 형의 어깨를 부드럽게 마사지해 줬다.

“잘할 수 있다!”

“맞아.”

“연습 열심히 했잖아요~”

운이 형과 도승이 형과 동준이 형도 한마디씩 내뱉으며 텐션을 끌어올렸다.

아무리 전 무대가 잘했어도 쫄면 안 된다.

꼬리 내린 개가 이기는 싸움은 없으니까.

질 것 같아도 꼬리 빳빳하게 세워야 한다.

그리고,

‘질 거 같지도 않으니까.’

사실 온리원이 별로 두렵진 않았다.

우린 무대 위에 서서 사전에 맞춰둔 대형대로 섰다.

잠깐 심호흡을 하고 안무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한번 하고 나자,

딴-딴-딴-

반주가 시작됐다.

메이저 음계의 전자 피아노 음이 무대 위로 울려 퍼졌다.

그 뒤로 키치한 샘플들이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고.

반주 속도가 서서히 빨라진다.

한국인이라면 엉덩이를 흔들 수밖에 없는 BPM에 근접했을 때.

우린 반주에 맞춰 가볍게 어깨와 다리를 흔들었다.

현재 도승이 형과 내가 앞에 서서 뒤에 멤버들을 가려두고 있었다.

이내 첫 도입부가 시작되기 직전.

나와 도승이 형은 양옆으로 빠르게 이동했고 그 사이로 멤버들이 튀어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나온 건 센터에 선 연훈이 형이다.

연훈이 형 앞으로 카메라가 다가온다.

형은 카메라 앞에서 한껏 환하게 웃고는.

-LET’S SAILING!

-저 바다로 나가

-Keep Smiley~

-두려움 따윈 잊어

첫 가사를 내뱉었다.

맑고 고운 목소리가 장내에 또렷하게 울려 퍼진 순간,

‘됐다.’

난 박수철이 왜 우리를 엔딩에 심었는지 이해했다.

그간 계속 컨셉츄얼하고 어두운 것만 죽죽 나왔기에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어 있다고 느끼긴 했다.

그걸 노려서 애초에 이런 밝은 의상과 곡을 선정한 거였고.

한데,

‘체감이 더 되네.’

내 예상보다 현장 분위기는 더 어두웠나 보다.

연훈이 형이 카메라에 잡히자마자 죽상을 하고 있던 제작진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는 게 두 눈에 보일 정도니까.

* * *

박수철은 우연훈의 첫 도입부가 울려 퍼진 순간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속으로 됐다, 라는 말을 한 열 번은 중얼거린 것만 같았다.

이걸 마지막에 꽂길 참 잘했다며 스스로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우연훈 얼굴이 모니터에 가득 떠오르자마자 제작진 몇몇은 우왁! 이라며 탄성을 내질렀을 정도다.

잘생겨서 그런 것이냐 묻는다면 그건 절반만 맞힌 대답이다.

계속 어두운 곡, 어두운 조명, 알아먹기 어려운 가사들에 지쳐 있던 상태들이었다.

그 꽉 막힌 체기를 단번에 터뜨릴 만큼 상쾌한 비주얼이었기에 진심 어린 감탄이 가능한 거였다.

하얀색에 네이비색으로 포인트가 들어간 정석 세라복은 우연훈에게 찰떡같이 어울렸다.

반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고 눈에 글리터를 붙인 것까지 완벽했다.

무엇보다 깔끔하게 고음을 때리는 저 음색은 말할 것도 없이 고왔다.

‘후킹 포인트 나왔네.’

시청자들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썸네일이다.

처음엔 단순하게 쓰고 버릴 패로써 세이렌을 염두에 뒀던 박수철이었다.

하지만 첫 촬영부터 박수철의 예상을 줄곧 빗나가는 세이렌이었다.

좋은 방향으로의 의외성을 가진 팀이란 거다.

박수철은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어깨를 흔들며 무대를 바라봤다.

-Sailing Sailing~

-Keep Dreaming

-팔 벌려 끌어안은 푸른 바다

-턱 끝까지 숨이 차도록 달려간

-수평선 끝에 있을 Treasure

줄곧 센터를 차지하고 있던 우연훈이 옆으로 빠지고 메인댄서인 이운이 앞으로 나왔다.

이운이 센터로 나오자 그룹 전체의 춤선이 바뀐 듯한 인상이 남을 정도였다.

마치 수영을 연상시키는 듯한 팔을 쭉쭉 뻗는 동작에 미묘한 탄성이 느껴졌다.

시각적인 재미가 잔뜩 묻어 있는 동작들이라 해야 하나.

쫀쫀하게 춤을 춘다는 것의 교본과도 같은 동작들이었다.

특히 큰 동작들 사이사이 잔박자에 따라 움직이는 발동작과 골반 등은 동작이 밋밋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놓치지 않아 네 두 손

-꽉 붙잡아 오늘 밤

-우리 함께 저 깊은 바다로

-Full Diving

-Crushing

-I’m Falling

-To you

이운 뒤에 따라붙은 강도승의 래핑도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센스 있게 잘 만들어졌다.

특히 빠른 박자의 곡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느릿한 박자 감각을 유지하며 레이백 하듯 뱉는 랩은 곡의 분위기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냈다.

이후 나온 건 댄스 브레이크 타임.

120초라는 짧은 시간에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이란 구성은 죄다 때려박은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이운이 센터로 나오고.

반주의 분위기가 보다 묵직하게 바뀐다.

베이스음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마치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슬라이딩한 이운이 몸을 빙글 돌리며 춤을 춘 후, 코어 힘만 이용해 다시 일어섰다.

“와아악!”

“허리 멀쩡해?”

무용 전공자라 해도 믿을 정도로 가벼운 몸동작이었다.

동작 자체의 스케일은 큰데 그 과정이 매끄럽고 가볍다 보니 보는 입장에서 부담이 없다.

심지어 박자까지 전부 들어맞으니 탄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댄스 브레이크용 반주가 끝나고.

다시 곡의 분위기가 밝게 바뀌더니 반주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하이라이트 지점으로 나아가기 직전의 단계.

강도승과 봉태윤이 메인보컬 우연훈 옆으로 다가오더니,

-마침내 찾을 Treasure──!

-엔딩은 너와 함께-

-단 하나도 잊지 않을-

-우리 둘만의 Fairy tale──!

우연훈을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강도승과 봉태윤 둘 다 키가 훤칠하다 보니 정말 하늘로 날아오른 느낌이 들 정도였다.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하늘 위로 날아오른 우연훈은 높이 올라간 만큼 더 높은 고음을 마구 쏟아냈다.

그냥 듣기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높은 고음을 마치 기계처럼 쏟아내는 모습에 무대 위 출연진들마저 입을 떡 벌렸다.

우연훈이 바닥에 안전히 착지하고.

반주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자.

-Keep Sailing

박동준이 한마디를 나지막이 내뱉었다.

모난 것 없는 미성이 부드럽게 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Keep Dreaming

봉태윤도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딘가 사람 마음을 촉촉하게 만드는 듯한 목소리였다.

-드디어 만난, 우리의 바다.

엔딩은 역시나 우연훈이었다.

우연훈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카메라를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반주가 서서히 잦아들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우연훈의 가슴도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하자.

탁.

모든 무대가 끝이 났다.

박수철은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며 대면식 무대의 연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온갖 아이디어가 마치 폭죽이라도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지만 그 모든 말들의 잔가지를 쳐내고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면,

‘뛰어오른 강현성과 날아오른 우연훈이네.’

이 정도로 정리가 된다.

멤버의 등을 밟았냐, 멤버의 도움을 받았냐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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