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9화 (19/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화

무대가 끝이 났다.

120초 동안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심장이 거칠게 펌프질을 해댄다.

카메라를 끝까지 노려보며 표정을 유지했다.

우리 중 누가 엔딩요정이 될지는 뻔했지만 그래도 표정을 풀어버리면 안 된다.

제작진들 보기에 안 좋아 보일 수 있으니까.

엔딩씬까지 찍고 난 후,

“감사합니다!”

우린 제작진들과 동료 출연진들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난 인사를 하며 형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들 표정이 밝았다.

아마 무대를 하면서 본인들도 느꼈을 터였다.

‘……우리가 1등이야.’

무대의 퀄리티나 동작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온리원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 구성과 임팩트를 놓고 보자면 우리가 1등이었다.

도승이 형이 조심스레 내 쪽으로 오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잘했다, 라고.

다 끝나고 말해도 되는 걸 뭐가 그리 급하다고 지금 와서 말하는 건지.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1등이라는 것의 증거로 하나를 더 골라보자면 타 출연진들의 표정이다.

블레슈를 제외한 나머지 세 팀이 모두 얼굴이 안 좋다.

특히 똥 씹은 표정을 하는 건 루미닌.

방송에서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짜증 난단 표정을 지으면 나중에 활활 타오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6명이서 우릴 노려보니 나름 박력 있어 보이긴 했다.

온리원은 큰 감흥 없단 듯 우릴 쳐다봤다.

그렇다고 화면에 안 좋게 잡힐 만큼 똥 씹은 표정을 짓진 않았다.

적당히 박수 치며 좋은 말도 한두 마디씩 섞어준다 해야 하나.

다만 그중 한 사람.

강현성은 딱히 큰 리액션이 없었다.

대신 날 다시 뚫어져라 쳐다봤다.

방금 본인 무대 끝내고도 날 쳐다보더니.

뭔가가 거슬리면 남 눈치 따윈 안 보고 눈싸움부터 거는 놈인 거 같았다.

지금은 내 행동 중 무언가가 거슬린 눈치고.

“보는 것만으로도 두 눈이 시원해지는 세이렌의 무대였습니다!”

그때 MC 김영진과 나현이 무대 위로 올라오며 멘트를 쳤다.

우린 멘트용 대형으로 서서 MC들을 기다렸다.

“이 세라복 의상으로 입었을 때부터 예상은 했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더 시원하네요!”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우리의 의사를 물었다.

“이번 무대 아이디어는 누가 짠 건가요?”

왜 꼭 저 질문을 하는 건가 싶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거 같은데.

“형들과 함께 논의하며 만들었습니다. 최초 제안은 제가 해봤고요.”

형들은 뭔가 뿌듯한 사람들처럼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이 곡도 처음 들어본 거였는데, 혹시 이 곡 자작곡이었나요?”

MC 나현이 묻는다.

이번에 우리가 무대에 올린 곡.

이 곡에 있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일단 이 곡은 기존에 있는 다른 가수의 곡이 아니다.

“사운드 클라운에서 찾은 반주에 가사를 입혀서 썼습니다.”

“아 그러면 작사만 새로 하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작사는 주로 누가……?”

“제가 했습니다.”

내가 작사를 했다고 하자 MC들 표정이 바뀐다.

방송용 얼굴에서 진심으로 조금 놀란 얼굴로.

내가 딱히 작사할 거처럼은 안 생겼나 보다.

나름 전직 소설간데.

일단 이 곡에 대한 비하인드는 상당히 많다.

2주 전,

우린 세라복을 입기로 정한 후 그에 맞는 곡을 선정하기 위해 사운드 클라운을 끝도 없이 뒤졌다.

사실 형들은 정말로 끝도 없이 뒤졌을지 모르지만 나는 끝도 없이 뒤지는 ‘척’만 했다.

난 내가 원하는 사운드 클라운 계정이 이미 존재했으니 말이다.

계정명은 victory0505.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초소형 작곡 계정이다.

내가 이 계정을 왜 찾았냐.

이유는 간단하다.

계정 뒤에 붙은 0505가 우리 멤버 중 누군가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저기서 어색한 웃음으로 곡 이야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도승이 형 말이다.

victory0505는 도승이 형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은 비밀 작곡 계정이다.

난 해당 계정을 찾아낸 후 형들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이 계정에 올라온 반주 중 하나가 맘에 드는데 그 계정 주인에게 말해서 그 곡 위에 가사를 입혀서 써보자고.

다들 좋다고 말했고, 도승이 형만 처음엔 반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다.

내가 들고 온 게 본인의 비밀 계정이니까.

하지만 지속적인 찬성 여론 탓에 어쩔 수 없이 도승이 형도 찬성을 해줬다.

그러곤 자기가 직접 연락해 보겠다는 적극성까지 보였다.

그 부분에선 내가 웃음이 나올 뻔했다.

본인이 본인한테 연락해서 곡 사용에 대한 걸 물어보겠다는 거니까.

그 결과 이라는 곡이 탄생했다.

작사는 내가.

작곡은 victory0505라 쓰고 강도승이라 읽어야 하는 누군가가.

내가 victory0505를 알게 된 계기는 솔직히 유쾌하진 않았다.

지난 생에서 형들의 유품 등을 정리하다가 찾게 된 거였으니까.

도승이 형이 남몰래 운영하던 작곡 계정이 있었다는 걸.

아마 본인 작업물에 자신이 없었는지 우리에겐 비밀로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만든 곡에 대한 평가는 받고 싶기도 하니 이런 작곡 계정을 따로 판 것 같았다.

victory0505는 아직 우리 외의 다른 사람들에겐 크게 알려진 적 없는 초소형 작곡 계정이다.

일단은 익명 계정이지만,

‘최대한 빨리 도승이 형이란 걸 알려야지.’

계속 익명으로 둘 순 없다.

이번 촬영이 끝난 후 도승이 형과 솔직한 대화의 시간을 한 번쯤은 가져야 할 거 같았다.

그건 그거고.

아무튼 우리 무대는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자! 그러면 이걸로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다섯 팀들 간의 대면식을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MC 김영진이 그리 말하며 대면식 무대의 본격적인 종료를 알렸다.

이게 촬영 끝은 아니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촬영가겠습니다!”

1차 촬영 끝이라는 소리다.

휴식시간 가진 후 2차 촬영 시작이다.

“으아아아! 잘했어어!”

휴식시간이 되자마자 연훈이 형은 내 쪽으로 달려와 포옹을 하며 말했다.

“진짜 잘했다 태윤아.”

“세라복 하길 잘한 거 같아.”

“곡도 잘 고른 거 같고.”

다른 형들도 한마디씩을 건네며 이리 말했다.

다들 세라복 컨셉이 먹혔다는 걸 확신하고들 있는 눈치였다.

사실 이건 모르기가 더 어렵다.

우리가 무대를 하는 동안 터져 나온 제작진들의 반응과.

다른 팀들이 무대를 하는 동안 나온 반응이 극명하게 달랐으니까.

이미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엔딩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방금 무대 너무 잘 봤어요!”

그때 블레슈 멤버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말요? 감사해요!”

어느새 그쪽으로 오도도 달려간 연훈이 형이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 과한 밝음에 블레슈 리더는 또 한 번 당황한 거 같다.

“확실히 의상이랑 곡 분위기가 차별화되니까 더 기억에 남더라고요.”

“우리 막내 아이디어예요!”

“진짜 똑막이네요.”

“똑막……. 하하.”

난 허탈하게 똑막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특히 연훈 씨 표정이랑 노래가 엄청 좋더라고요.”

“아유 아니에요~”

“진짜 완전 연훈 씨 맞춤 곡이던데요?”

“그건 작곡가분이 잘해주신 거죠!”

“그 작곡가분 저희도 알고 싶네요.”

곡 이야기가 나오자 뒤쪽에 있던 도승이 형이 혼자 움찔댄다.

난 그걸 보면서도 모른 척했다.

지금 도승이 형은 부끄러움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끼는 중일 테니까.

본인이 만든 곡이 대중에게 풀렸다는 부끄러움이 들면서도 그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성취감도 들 테다.

개인적으로는 성취감이 더 컸으면 좋겠다.

그래야 후에 익명을 풀자는 말을 할 때 좀 더 협조적으로 나올 테니까.

“태윤 씨가 작사하셨다는 것도 엄청 놀랐어요.”

“아, 감사합니다.”

“원래 작사를 하셨어요?”

“아, 네. 관심 있어서 몇 번 작사법 책 같은 거 읽은 적 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로 읽었다.

대뜸 아무 근거 없이 작사하겠다고 나서면 형들이 안 믿어줄 거 같아서 작사법 책을 이틀 동안 두 권이나 읽어냈다.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했고.

“저희도 태윤이가 작사를 할 줄은 몰랐어요.”

“우리 똑막이가 기능이 많아요~”

동준이 형은 어느새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팔다리를 잡으며 기계 흉내를 냈다.

난 별 저항 없이 동준이 형에게 팔다리를 내줬다.

이러다 말겠지 싶었으니까.

그때 뭔가 위화감이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지금은 쉬는 시간이고, 팀들 간 친목 다지라고 아예 판을 깔아준 시간이다.

한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 지금 너무 저희끼리만 떠들지 않아요?”

현재 말소리가 나오는 건 우리랑 블레슈뿐이다.

루미닌도.

원바이원도.

온리원도.

모두 각자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 없이 쉬고 있었다.

온리원의 경우 그냥 본인들끼리 둘러앉아서 대화를 나누고는 있었다.

한데 루미닌과 원바이원은 그냥 대놓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게 경계의 눈빛인지 그냥 우리 쪽을 보며 멍 때리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일단 우리만 떠드는 것 같아 괜한 눈치가 보였다.

무엇보다,

‘이거, 끝이 조금 안 좋겠네.’

난 오늘 촬영의 끝을 예상할 수 있었다.

때마침,

“다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촬영 재개 소식이 들려왔다.

블레슈와 우리는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무대를 떠나 있던 MC 김영진과 나현도 현장으로 돌아왔다.

잠시 장비 점검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뒤쪽 전광판의 불이 켜지며, 무대의 조명이 들어온 순간.

“자!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대면식 무대! 다들 재밌게 즐기셨나요?”

“네에에에!”

“호오오!”

MC 김영진이 멘트를 하며 촬영의 시작을 알렸다.

우린 그 멘트에 적절한 호응을 보내줬고.

“방금 막 다섯 팀의 개성 넘치는 무대들 확인하고 왔는데요, 혹시 이 뒤에 어떤 순서가 기다리고 있을지, 예상하고 계신 분들 있으실까요?”

이걸 예상 못 할 사람이 있을까.

“더 쇼케이스의 꽃! 순위 결정의 시간입니다!”

“오……오오!”

“하하, 하하하.”

순위 결정이라 하니 다들 표정이 조금씩 굳었다.

아마 예상들은 했을 텐데 막상 진짜 순위를 정하려니 불안한 모양들이었다.

하지만 난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

얼추 예상 가는 순위가 있었으니 말이다.

“대면식의 순위는 최종 우승팀 선정을 위한 전체 점수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1위에겐 특별한 혜택을 주니 최종 우승을 꿈꾸는 팀이라면 반드시 선점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맞는 말이긴 하다.

대면식 1위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자! 그렇다면 이 대면식의 순위는 어떻게 정해지느냐 하면,”

MC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한 템포 쉬었다가.

“바로 여러분들이 직접! 베스트 팀과 워스트 팀을 선정해서 골라주면 그 합을 내서 순위를 정할 예정입니다!”

이 아주 졸렬하고 극악하기 짝이 없는 순위 결정 방식이 문제다.

이건 방영 당시에도 아주 욕을 푸짐하게 먹었던 방식이다.

이전 더 쇼케이스1의 대면식에서는 비교적 민주적인 투표 방식이었다.

전문가와 제작진들의 비밀투표를 통해서였으니까.

한데 우리들의 투표 방식은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비인도적이기까지 하다.

그냥 대놓고 서로 견제하며 물어뜯고 싸워라라고 종용하는 셈이니 말이다.

진짜 실력대로 순위를 주란 게 아니라 너희 맘 가는 대로 하란 말이다.

형들도 꽤 놀란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훑어본다.

“지금부터 무대 뒤쪽에 마련된 투표소로 이동할 텐데요, 가서 베스트 팀 한 팀과 워스트 팀 한 팀을 골라주시면 됩니다! 단, 베스트와 워스트에는 본인 팀을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투표 방식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자! 그러면 투표 순서는 무대 순서의 역순으로 가겠습니다. 세이렌분들! 먼저 들어가 주세요!”

하필 투표는 우리가 1번이다.

“으으으.”

“묘하게 긴장되네.”

“걱정들 하지 마요~”

형들은 이동하며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러곤 투표소에 도착해서는,

“진짜 누굴 뽑지. 후우우.”

“고민되네.”

“쉽지 않구나.”

베스트와 워스트로 누굴 뽑아야 하는지로 한참 토론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난 누굴 뽑아야 할지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이미 얼추 순위가 보였기 때문이다.

예상이 맞다면 우리의 대면식 순위는 아마도,

‘꼴찌겠네.’

5팀 중 5위일 터였다.

이상할 건 없다.

우리끼리 투표하라 한 이상 이건 이미 정해진 결말이니까.

원래 애매하게 거슬리는 놈은 초장에 죽여놓는 게 이 바닥의 섭리다.

우리가 온리원처럼 강현성이란 치트키가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커서 뒷배가 든든한 것도 아니다.

무대를 잘하긴 했지만 딱 그거뿐인 데뷔조 팀.

초장에 죽여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단 위기의식이 다들 스멀스멀 피어올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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