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0화 (2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화

5팀 중 5위.

형들에겐 미안한 소리다.

다들 얼굴에 희망과 기쁨이 가득하니까.

아마 1위를 할 거라 굳게 믿는 눈치다.

1위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상위권을 차지할 수는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테다.

“베스트. 흐으음. 다들 너무 잘하셔서 한 팀만 뽑기 어려운데에…….”

그러니 이토록 즐겁게 베스트와 워스트 팀 선정에 골몰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우린 아마 꼴찌일 거다.

방금 우리가 한 무대는 온리원에게도 지지 않을 무대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원바이원이나 루미닌과 같은 이미 데뷔를 한 팀에게는 꽤 짜증 나는 일이었을 거다.

온리원이야 강현성이 있으니 이길 수 없다 쳐도, 2위 자리는 놓치면 안 될 테니까.

하지만 그 2위 자리를 듣도 보도 못한 데뷔조 팀이 나와서 가져가 버릴 것 같으니 위기감이 느껴질 거다.

정정당당하게 하자면 실력으로 경쟁하는 게 맞지만,

‘누가 이 마당에 정정당당하게 가겠어.’

망돌로서 짠내 팔아 방송 나온 팀들이다.

정정당당은 개뿔 당장 밥그릇이 위험하다.

당연히 수작질을 할 거다.

그 수작질은 순위를 떨어뜨리는 거고.

마땅히 할 만한 다른 수작질은 없으니까.

이전 생에서도 이런 식으로 애꿎은 팀이 꼴찌를 했다.

이번엔 우리가 그 애꿎은 팀이 될 게 분명했다.

“얘들아, 너희는 누가 제일 잘했다 생각해?”

연훈이 형은 우리 앞에 놓인 네 팀의 카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사실 진짜 다들 너무 잘하셔서.”

“맞아.”

“어느 한 팀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형들은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난 연훈이 형이 들고 있는 카드들을 쭉 둘러봤다.

사실 형들도 대충 알고는 있을 거다.

누가 제일 잘했고 누가 제일 못했는지를.

하지만 그걸 너무 쉽게 토론 없이 탁 내놓아 버리면 방송에 이상하게 나올 거라 생각하는 눈치다.

하지만 우리가 뭘 어떻게 한다 한들 이 장면은 교묘하게 편집될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야,

“저는 베스트 온리원, 워스트 루미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석으로 가는 게 낫다.

“응?”

후진 없는 발언에 연훈이 형이 놀라서 되물었다.

“온리원분들이 베스트인 거야 뭐, 눈에 띄게 무대를 잘 소화하셔서고요. 루미닌분들이 워스트인 거는, 실력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여러 무대들 중 가장 킥이 약했던 거 같아서예요.”

난 얼추 그럴듯한 이유도 댔다.

사실 내가 방금 말한 순위는 내 개인 취향이 반영된 순위가 아니다.

딱히 온리원이고 루미닌이고 크게 잘했다거나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부서져라 춤춘 인간들인데 순위를 어떻게 매겨.’

방금 말한 순위는 이 방송이 나갈 시 형성될 여론에 입각한 순위다.

이전 생에서 더쇼케2 1화가 방영된 후에 형성된 여론은 1위는 온리원, 꼴찌는 루미닌이라는 여론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그 여론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그 여론을 따라가는 게 안전하다.

박수철 피디가 악마의 편집을 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에선 맞는 말 했네, 정도의 반응으로만 끝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여론상 꼴찌만 루미닌이었고, 실제 방송에서는 블레슈가 꼴찌를 했었다.

내가 말했던 애꿎은 팀이 바로 블레슈였다.

지난 생에서는 블레슈가 현재 우리와 비슷한 포지션이었으니까.

온리원에게 그나마 대항할 만한 그룹, 이라는 식의 포지션이었다.

타 그룹들이 블레슈를 견제하다 보니 누가 봐도 2위는 했어야 했을 블레슈가 꼴찌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번엔 블레슈가 아니라 우리가 꼴찌겠지만.

괜히 블레슈 자리를 뺏은 것 같아 미안하지만, 사실 나도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양심은 잠시 뒤로 밀어뒀다.

또 이게 1위 자리 뺏은 게 아니라 꼴찌 자리 뺏은 거니 묘하게 덜 미안하기도 했다.

“나도 태윤이 의견에 동의하긴 해.”

그때 도승이 형이 슬쩍 내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흐음. 나도 조금은…….”

운이 형도 보아하니 나랑 도승이 형과 같은 의견인 듯싶었다.

벌써 과반이 넘었다.

동준이 형조차,

“그치. 루미닌분들이 훅이 조금 약했던 거 같기도 해.”

조심스레 말을 붙이며 내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그래. 그러면, 베스트 온리원분들, 워스트 루미닌분들로 하자.”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베스트 함에 온리원 카드를, 워스트 함에 루미닌 카드를 넣었다.

이후 우린 투표소를 나온 후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무대 위엔 어색한 침묵만 맴돌고 있었다.

서로 불편하고 찝찝한 순위 결정의 시간.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 * *

루미닌이 투표소에서 나오는 걸 끝으로 투표가 모두 종료되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휴식 중이던 MC 두 사람도 무대 위로 돌아왔다.

다시 조명이 켜지고,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현장이 다시 활기를 찾자

“자, 방금 대면식 무대에 대한 투표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MC 김영진이 마이크를 들고 멘트를 시작했다.

“방금 여기 계신 다섯 팀들이 베스트 팀과 워스트 팀을 각각 선정해서 뽑아주셨는데요.”

대본에 적혀 있는 멘트를 읽는 것일 뿐인데도 장내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새삼 이게 MC의 역량인가 싶은 순간이었다.

“베스트 팀으로 선정된 팀에게는 플러스 1점. 워스트 팀으로 선정된 팀에게는 마이너스 1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집계한 상황입니다.”

간단하고 명료한 방식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 결과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그란 포인트 조명이 어두워진 무대 위를 어지럽게 훑기 시작했다.

베이스가 둥둥 울리는 배경음도 깔리기 시작했고.

이건 촬영 후 편집으로 넣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현장에도 까나 보다.

조명과 음악의 힘 때문일까.

“으아아아! 아아아! 태윤아아!”

잔뜩 긴장한 연훈이 형이 내 몸을 잡고 흔든다.

“오오! 오오오!”

동준이 형은 뒤에서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아마 이 상황이 재밌나 보다.

“후우우. 심호흡하자. 심호흡.”

운이 형은 호흡을 가다듬었고.

“하아아아.”

도승이 형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자! 그렇다면, 집계된 점수 화면에 한 번에 띄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오오! 한 번에!”

“하아아.”

“으으으. 제발……!”

여러 반응들이 한데 터져 나오며 현장 분위기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가운데.

탁.

전광판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1위 : 온리원 (4점)

-2위 : 루미닌 (0점)

-공동 3위 : 블레슈, 원바이원 (-1점)

-5위 : 세이렌 (-2점)

순위와 점수가 한 번에 공개됐다.

“따하!”

“예에스!”

온리원 쪽에서는 탄성이.

“와!”

“다행이다.”

루미닌 쪽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잘했어.”

“그래.”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블레슈와 원바이원에서는 격려의 멘트가 오가는 가운데.

“어……?”

“마이너스 2점……?”

“우리가?”

“아…….”

우리 팀 분위기는 개박살이 났다.

난 형들을 쭉 둘러봤다.

전광판이 번쩍하고 빛나고 난 후.

기쁨과 희망으로 넘치던 형들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연훈이 형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고.

도승이 형은 미간을 구기며 전광판을 바라봤으며.

운이 형은 믿기지 않는단 듯 입을 떡 벌렸고.

동준이 형은 진심으로 조금 화가 난 듯 다른 팀들을 둘러봤다.

너무 리얼한 반응들인지라 방송에 어떻게 나갈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냐. 이 방향이 나을 수도 있겠네.’

우리 무대가 1위를 해도 될 법한 무대였다는 걸 깨닫고 나자 오히려 이런 리얼한 반응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분명 시청자들도 지금 우리 형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 테니까.

어쩌면,

‘역으로 이용해 볼 수도 있겠네.’

우리에게 꼴찌를 준 팀들의 심보를 역으로 이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순위와 관계없이 모든 팀들의 무대가 하나하나 다 빛이 났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MC 김영진이 작가들이 써준 멘트를 그대로 읊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일단 눈빛으로는 위로의 눈빛을 보내고는 있었지만,

‘자기네들이 순위 매겨 놓고 다 빛이 났다는 걸 알아달라는 건 뭐냐 대체.’

역시 방송국 놈들은 소시오패스가 분명하다.

MC 김영진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건 방송국 놈들이 잘못된 거다.

“아, 하하하.”

잠시 넋이 나가 있던 연훈이 형은 겨우 다시 정신줄을 잡고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더 안쓰러워 보였기에 난 그냥 형의 얼굴을 손으로 가려 버렸다.

사람 얼굴이 한 손에 다 가려진단 게 새삼스레 놀라웠다.

도승이 형과 동준이 형, 운이 형도 차차 표정을 정리했다.

지금 격한 반응 보여봐야 이득 될 게 없단 걸 빠르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때마침 MC 김영진이 마이크를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다가오는 동안 얼굴에 묘한 미안함이 얼핏 떠오르는 것 같았다.

김영진은 우리에게 마이크를 건네고는,

“아쉽게도 세이렌분들이 꼴찌를 하게 되셨는데, 괜찮으세요?”

잔인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한다.

이래서 아까 미안한 낯빛을 보였나 보다.

“아…….”

연훈이 형은 어떻게 그걸 우리한테 직접 물어보냔 듯 조금 뾰로통한 얼굴로 MC들을 바라봤다.

지금 마이크를 받을 만큼 멘탈이 멀쩡한 사람이 우리 팀에 없는 모양이었다.

난 연훈이 형을 대신해서 마이크를 받았다.

“네. 저흰 괜찮습니다.”

난 그리 말하곤 팀들을 한 차례 훑었다.

이게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감정적으로 굴면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계산이 모두 끝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건,

‘잘 될 수도 있지.’

방송의 훅이 되어줄 수 있다.

“근데, 전 우리 팀이 꼴찌라고 생각 안 합니다.”

난 있는 그대로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내 말에 MC 김영진과 나현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이런 식으로 받아칠 줄은 몰랐나 보다.

이 말은 우리가 실력으로는 꼴찌가 아니란 걸 대놓고 말한 거니까.

무대에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동시에,

‘시기심에 눈멀어서 억지 순위 매긴 놈들 저격이기도 하니까.’

우리에게 워스트 준 놈들 방송 나가고 욕 좀 먹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발언의 수위가 세니 나도 욕 좀 먹겠다만 그딴 거야 상관없었다.

내 발언에 놀란 건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억! 그, 태윤아……!”

연훈이 형이 놀라서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며 내 팔을 잡아챘고.

“봉태윤……?”

“하아아.”

“오…….”

도승이 형은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으며.

운이 형은 한숨을 푹 쉬었고.

동준이 형은 진심으로 놀란 사람처럼 오, 하고 짧게 감탄했다.

“그,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블레슈분들의 소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MC 김영진은 여기서 내가 더 멘트를 했다간 진심으로 싸움이라도 날 거라 생각했나 보다.

급히 마이크를 회수해 가더니 바로 블레슈에게로 갔다.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지만 일단 방송은 방송이니 다들 정해진 멘트를 착착 해나갔다.

이후 1위 온리원의 소감까지 듣고 난 후.

“네. 그렇다면, 이제 슬슬 대면식 1위 팀에게 줄 혜택이 무엇일지 공개해 봐야겠죠?”

방송은 순위에 대한 소감 주고받기에서 1위 팀에게 줄 혜택 공개로 넘어갔다.

내 발언으로 한차례 얼어붙었던 현장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네! 이번 대면식에서 1위를 한 온리원분들에게 돌아갈 혜택은요,”

MC 나현은 그리 말하고 한 템포 쉬더니,

“다음 경연 무대 순서를 직접 정하는 권한과,”

혜택이 하나가 아니다 보니 멘트도 한 호흡 더 이어진다.

“다음 경연 미션 중 유일하게 직접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혜택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막 아주 파격적인 혜택은 아닌지라 크게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방송이니 적절한 리액션은 넣어준 모양이다.

사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이따위 혜택이 아닐 거다.

진짜 궁금한 건,

“자, 그렇다면 이제 다음 미션 주제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2주 후에 있을 경연의 주제일 테다.

이제야 무대 위에 있는 출연진들의 얼굴에 흥미가 엿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MC 김영진의 입에서 나올 다음 경연 미션의 주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Color of Showcase입니다!”

아리송한 말이었다.

컬러 오브 쇼케이스.

다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 번에 이해하기엔 애매한 말이니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단 걸 눈치챈 걸까.

MC들이 먼저 선수를 쳤다.

“컬러 오브 쇼케이스! 색깔을 주제로 해서 무대를 꾸며주시면 됩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색깔?”

“오오!”

“재밌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죽상이던 우리 형들도 나름 눈동자를 빛내며 MC들을 바라봤다.

반면 이 중 유일하게 표정이 험악해진 사람이 있었으니,

‘컬러 오브 쇼케이스?’

바로 나다.

색깔을 주제로 무대라니.

‘미래가 달라졌어……?’

내가 알던 미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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