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1화 (21/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화

내가 알던 미션이 아니다.

내 기억 속 이때의 미션은 색깔이 아닌 소품이었다.

여러 가지 소품들을 죽 늘어놓은 뒤 그중 소품 한 가지를 정해 그걸 테마로 무대를 꾸미는 거였다.

방영 당시 돌잔치 컨셉이냐며 욕 좀 먹었던 미션이었는데,

‘색깔?’

생각지도 못한 게 나왔다.

내 등장으로 인해 미래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가.

벌써부터 나비효과가 시작되나 보다.

앞으로 어떤 파장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으나,

‘꼬였네.’

일단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봐야 한다.

소품이 미션일 줄 알고 어떤 소품을 골라서 어떤 무대를 해야 할지도 생각을 끝내둔 상황이었는데.

‘복잡해졌네.’

계획을 폐기해야 할 것 같았다.

속은 타들어 가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했다.

“색깔?”

“할 만한 게 있어?”

“흐음.”

형들도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색깔 무대에 대한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꼴찌를 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은 뒤로 미뤄두고, 미션은 어떻게든 받아내야 하는 거니까.

그때,

“자! 그러면 1등을 한 온리원분들에게 헤택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MC 나현이 앞으로 나서며 그리 말했다.

그와 동시에 스태프들이 무대 위로 책상 하나를 올렸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건 5가지의 색종이였다.

레드.

블랙.

화이트.

골드.

블루.

일단 색깔들을 확인해 본 나는 1차적으로 안심했다.

‘장난질은 안 쳤네.’

저 중 어떤 무대를 해야 할지 안 떠오르는 색깔은 없었으니까.

뭐 밑도 끝도 없이 고동색이나 국방색 같은 걸 던져줬으면 난감했을 거다.

한 가지 걸리는 건,

‘블루만 피하자.’

오늘 했던 무대인 과 겹칠 만한 색깔이었다.

더쇼케2는 경연을 총 4번밖에 안 한다.

대면식까지 포함하면 5번의 무대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무대의 횟수가 많은 건 아니다.

한데 이 몇 번 없는 무대를 같은 컨셉으로 두 번이나 사용해 버린다면,

‘손해야.’

그것만 한 비효율이 없다.

최대한 다양한 걸 해봐야 한다.

어느 포인트에서 팬들이 결집될지 모르니까.

또 비슷한 느낌의 무대가 두 번 연속 이어진다면 임팩트와 존재감은 자연히 옅어질 수밖에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중요한 지금 같은 타이밍에선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

때마침,

“온리원분들은 나오셔서 색깔을 직접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온리원이 색깔을 선택하기 위해 책상 앞에 섰다.

대면식 무대 1위 혜택인 ‘경연 옵션 선택’을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블루를 골라주길 원했다.

가뜩이나 예상 밖의 전개가 펼쳐진 터라 정신없는데,

‘블루마저 우리 쪽으로 오면 더 최악이야.’

색깔 운마저 안 따라주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한데,

“골드 하겠습니다.”

온리원은 골드를 골랐다.

왜 골드를 골랐는지 알 것 같았다.

‘로얄 이미지 챙기려는 건가.’

어쨌든 온리원은 현재 더쇼케에서 압도적 1위다.

이 방송의 주인공 롤을 분명하게 챙겨가겠다는 거다.

골드로 대변되는 무대로는 왕 컨셉이 있을 테니까.

블루를 고르지 않은 게 아쉽긴 하다만 일리 있는 선택이긴 했다.

“자! 온리원의 색깔 선택이 끝났으니, 이제 나머지 팀들이 색깔을 선택할 시간입니다.”

MC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무대를 한 바퀴 쭉 훑었다.

1등을 한 온리원 외의 나머지 네 팀은 원하는 색깔을 가져갈 수 없다.

아마 어떤 과정을 끝내야 받아 갈 수 있을 터다.

이전 생에선,

‘서로 골라주기였던 것 같은데.’

이따위 과정이 있었다.

개인적으론 이런 건 나오지 않길 바란다.

손을 써서 방향을 바꾸는 게 불가능해지는 미션이니까.

서로 골라주기 같은 타인의 의지에 내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 것보다는,

‘간단한 미니게임 같은 게 나오면 좋을 텐데.’

내 의지와 노력으로 결과를 결정지을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나오길 바란다.

한데,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각 팀의 색깔을 서로 골라주시길 바랍니다!”

“오오오!”

“대박!”

“으아아아!”

망할.

이왕 틀어질 거 다 틀어지지.

왜 이런 건 똑같이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뭐 하나 맘대로 되질 않냐.’

이렇게 되면 모든 상황이 내 컨트롤 밖에 있게 된다.

난 형들을 쭉 둘러봤다.

“우우음. 무슨 색 하지?”

“블루만 피하면 되지 않을까요?”

“컨셉만 안 겹치면 되니까.”

형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나 보다.

블루만 피하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근데 뭐, 우리가 고르는 게 아니니까. 그냥 골라주는 색 아무거나 열심히 하자.”

나와는 각오가 다르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블루는 피해야겠다 인데,

‘그냥 무대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건가.’

형들은 블루는 ‘가급적’ 피하자, 인 거 같았다.

나랑 각오가 다르다 해서 마냥 뭐라 할 순 없다.

나야 도승이 형의 죽음을 막기 위한 엿 같은 미션을 수행 중이고.

형들은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그저 최선을 다하는 정도일 뿐이니까.

“순서는 블레슈가 ‘루미닌’을 골라주고, 원바이원이 ‘블레슈’를 골라주고, 루미닌이 마지막으로 ‘원바이원’을 골라준 뒤, 남은 색깔을 ‘세이렌’이 가져가시면 됩니다.”

순서는 대충 보니 순위 따라서다.

가장 먼저 색깔이 정해질 팀은 루미닌.

그다음이 블레슈.

세 번째가 원바이원.

마지막이 우리니까.

우리한텐 선택권마저 없다.

남은 거 가져가라니.

꼴찌를 대우해 주는 사회는 없다지만 이건 서러울 법한 일이다.

아무 색이든 상관없으니 제발 파랑 말고 다른 거 나와 달라고 속으로 기도라도 드리는데……,

“세이렌분들은 블루로 다음 무대 꾸며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만으로 플래그가 세워지는 건지 우리가 블루를 받아버렸다.

“아……?”

“블루…….”

“흐음.”

형들이 단체로 굳고. 나도 잠깐 표정이 싸늘해졌다.

우리가 블루를 받게 된 과정은 복잡하지 않았다.

루미닌이 원바이원 색깔을 골라주던 그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색깔은 레드와 블루였다.

이때 루미닌 놈들은 우릴 보며 씨익 웃고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블루를 마지막까지 남겼다.

원바이원에게는 강렬한 무대 하라고 레드를 넘겨주며 말이다.

루미닌 놈들도 알았던 거다.

우리가 블루로 무대를 두 번 하면 자연히 임팩트가 옅어질 것을.

‘엿 같네.’

피차 간절한 상황이니 이해는 한다만 너무 의도가 뻔히 보이니 한 대 쥐어박고 싶긴 했다.

“자! 그러면 5팀의 색깔이 모두 정해졌군요!”

온리원은 골드.

루미닌은 화이트.

블레슈는 블랙.

원바이원은 레드.

우리는 블루.

엿 같긴 하지만 정해지긴 정해졌다.

“그러면 5팀의 색깔이 잘 조화된 무대 기대하며, 오늘은 이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슬슬 촬영 종료 타이밍이다.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 그 대망의 첫 시작을 함께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MC 김영진과 나현의 멘트를 끝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쇼케2의 공식적인 첫 촬영이 끝이 났다.

승리뿐일 줄 알았던 첫 촬영이었는데,

‘5위에 블루라.’

뒷맛이 쓰다.

난 형들을 쭉 둘러봤다.

카메라가 돌고 있을 땐 그나마 유지하던 표정이 조금씩 깨지고 있었다.

“꼴찌 했네, 우리. 하하.”

“색깔도 하필이면 블루고요.”

“하하. 하하하…….”

분위기가 초상집 수준이다.

일단 좋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또 블루가 나왔단 건 잘만 하면 그룹 색깔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단 거다.

‘임팩트만 잘 줄 수 있으면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르잖아.’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장밋빛 엔딩을 상상한다.

어떻게든 형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세라복 다음으로 블루 컨셉을 하는 우리.

비슷한 컨셉이지만 훨씬 좋은 무대를 선보여 그룹의 분위기를 청량 상큼 같은 걸로 가져가는…….

‘쉽지 않네.’

상상해 봤지만 선뜻 그려지진 않는다.

같은 컨셉으로 임팩트 주려면 그냥 잘해선 안 된다.

진짜 뒤통수 얼얼할 정도로 잘해야 한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응?”

강현성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5위에 블루까지 받아서 분위기가 박살 난 이곳에, 1위에 원하는 색깔까지 가져간 놈이 왜 굳이 찾아오나 싶은데,

“무대 잘 봤습니다.”

대뜸 다가와서는 맥락 없는 친목을 시작한다.

뜬금없는 강현성의 등장에,

“아, 어, 어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세요!”

형들은 단체로 얼음이 되어 허리를 숙였다.

분위기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고 선배는 선배인 거니까.

반면 난 형들처럼 빠릿하게 반응하진 못했다.

강현성이 다가온 건 신기하긴 하다만 얼굴 구경이나 하며 감탄하기에는 머리가 복잡하다.

인사만 하고 홀로 생각에 빠져 있으려는데…….

“센스가 좋은가 봐요. 작사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로요.”

강현성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주어가 없기에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싶었는데 시선이 내 쪽을 향하고 있다.

뭐 어쩌라는 건지.

느낌상 지원 영상 똑같은 거 올린 걸 저격하는 말 같다.

내 반응을 보고 그게 우연인지 내부정보 빼돌려서 해낸 조작인지를 떠보려는 느낌이다.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기싸움까지 하려니 진이 빠진다.

물론 내 업보긴 하다만 막상 업보가 돌아오니 조금 귀찮다.

난 강현성을 똑바로 쳐다봤다.

“네. 감사합니다.”

딱히 과장하지도, 주눅 들지도 않고 말했다.

강현성은 날 빤히 바라봤다.

무대 위에선 다채롭게 변하던 표정이 무대 아래에선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건조한 걸론 나도 어디 가서 지지 않기에 똑같은 표정으로 바라봐줬다.

보통 이렇게 쳐다보면 한쪽이 시선을 돌리거나 할 텐데.

불쾌한 아이컨택이 쓸데없이 길어진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블루 무대도 기대할게요.”

강현성은 그리 말하곤 돌아갔다.

‘싱거운 놈이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말을 하겠다고 여기까지 오다니.

다시 생각에 잠기려는데,

“우와아아!”

연훈이 형이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환호한다.

“진짜 잘생기셨다! 얼굴에서 빛나는 줄 알았어!”

진짜 얼굴에서 빛나는 인간이 비교적 평범하게 생긴 인간에게 저런 말을 하니 재밌긴 했다.

“그러니까요. 목소리도 실제로 들으니까 엄청 좋은데요?”

형들은 강현성 명성에 속아 필요 이상으로 저 인간을 고평가하고 있었다.

난 멀찌감치 서 있는 강현성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자기네 팀원들과 가볍게 한두 마디씩을 주고받는 중이다.

또 한 번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킨다.

난 시선을 돌리곤 다시 형들을 바라봤다.

“2주 뒤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나둘 출연진들이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갑시다! 세이렌분들!”

때마침 현아 씨와 승연 씨도 우리를 픽업하러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방금 전에 강현성이 등장하며 연훈이 형 텐션이 살짝 올라가긴 했다만.

“넵. 가죠.”

“수고 많으셨습니다!”

“2주 뒤에 뵙겠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팀 분위기가 그리 밝진 않다.

이동하는 동안 형들 표정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5위를 한 건 방송 그림상 임팩트가 있을 것 같아 이득일 것 같긴 했는데, 막상 형들이 풀 죽은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블루고 자시고 타협할 수가 없겠네.’

간만에 전투력이 끓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난 차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블루도 다 같은 블루가 아닌 거니까.

더 좋은 블루가 있는 거니까.

최선의 답을 위해 머리를 굴리려는데,

의외의 곳에서 돌파구가 나왔다.

“근데 블루면 조금 우울하긴 하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연훈이 형이 이리 말했다.

“네? 우울이요?”

뜬금없는 발언에 운이 형이 되묻자,

“feel blue, 이거 우울하단 뜻 아니야? 우울한 무대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 걱정되네.”

연훈이 형은 나와는 다르게 블루를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우리 모두가 블루는 과 컨셉이 겹칠까 봐 피하려 했는데.

연훈이 형만 블루는 우울해 보일까 봐 피하려 한 거였나 보다.

그러자,

“아.”

“오!”

“어?”

“오오!”

연훈이 형을 제외한 우리 모두가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으응? 얘, 얘들아?”

연훈이 형은 다소 놀란 눈치였으나,

“그 방향이 있었네?”

우리 넷은 전혀 다른 가능성에 단체로 탄성을 뱉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