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2화 (2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2화

맞다.

그 방향이 있었다.

Feel Blue.

영어로 우울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를 활용한 노래도 꽤 있을 정도다.

블루라는 색감과 우울함이라는 정서가 만나면 의외로 임팩트가 있는 편이다.

그러자,

“아.”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으나,

‘일단은 좀 더 숙고해 보자.’

섣불리 튀어나간 아이디어 중 9할은 쓰레기란 걸 다년간의 작가 생활로 알고 있다.

난 흥분을 가라앉히고 형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우울함? 우울한 블루?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동준이 형은 새로운 방향성 자체에 흥미를 보이는 중이다.

“우울함이라. 흐으음. 이건 현대무용 쪽 동작들 참고해 보면 좋을 거 같은데.”

운이 형은 벌써 코레오를 생각 중이다.

아, 안무도 운이 형이 짰다.

이걸 방송에서 주접을 떨려고 적당한 멘트도 마련해 뒀는데.

워낙 변수가 많았던 탓에 멘트 칠 적당한 타이밍을 못 잡았다.

‘아깝네.’

한 컷 더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단 생각에 괜히 아깝다.

아무튼.

다시 블루로 돌아와 보자면.

“블루. 블루 흐으음~”

도승이 형은 벌써 블루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멜로디 라인을 짜는 중이다.

자기 작곡하는 거 아직 우리한테 비밀일 텐데.

뭐 다른 형들이 보기엔 그냥 아무 소리나 흥얼거리는 걸로 들릴 거다.

마지막 연훈이 형은,

“우울한 거 어떻게 하지? 우울한 거 싫은데…….”

그냥 조건 반사로 우울한 게 싫은 모양이다.

연훈이 형이랑 우울함은 안 어울리는 색이긴 하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보컬 색깔은 잘 맞을 거 같은데.’

미성임에도 불구하고 한 같은 게 맺혀 있는 듯해서 울적한 곡도 제법 잘 소화할 것 같긴 하다.

형들은 일단 전체적으로 우울한 블루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들 긍정적인 모양이었다.

연훈이 형만 제외하고.

다만 연훈이 형은 우리가 하자는 방향대로 늘 따라와 주는 편이니 우울한 블루로 가도 문제는 없을 듯했다.

그렇다면.

‘찍어내자. 이야기를.’

왜 우울한 블루인지.

어째서 우울한 것인지.

화자의 심정은 무엇인지.

가사로 쓸 법한.

춤으로 표현할.

무대 장치로 보여줄 법한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찍어내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팀들은 기존에 발표된 곡들을 가져와서 적당하게 편곡하고 무대를 할 거다.

하지만 난 우리 팀만큼은 무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가져가고 싶다.

일단 회사에 곡 수집과 편곡을 맡겨서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기도 하거니와.

‘자체 제작의 힘은 세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체 제작이 가지는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이는 비단 팬들이 즐길 만한 소스 하나를 더 제공해 주는 수준이 아니다.

‘회사 내부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거니까.’

차후 프로그램이 끝난 후 만들어진 합작회사로 우리 계약이 이관될 시.

그 회사에서 병풍 취급당하지 않을 무기가 될 수 있다.

일단 이건 먼 미래 이야기고.

당장은 자체제작돌이란 타이틀이 붙으면 한 번은 더 들여다보는 게 대중 심리니까.

그걸 적극 활용해 볼 생각이다.

그러려면,

‘일단 오늘내일 안으로 도승이 형 설득부터 시키자.’

작곡가부터 확보해야 한다.

난 계획도 짜고, 이야기도 짜고, 가사 테마도 골라보며 차창 너머를 바라봤다.

차는 앞으로 쭉쭉 잘도 나갔다.

* * *

온리원 차량 안.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적막하기만 했다.

이 적막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운전석 뒤쪽에 앉은 강현성이었다.

강현성이 차량에 타기 전부터 쭉 아무 말이 없었으므로 섣불리 이 침묵을 깰 수 없었다.

온리원 팀의 막내인 박영호는 강현성을 힐끔 곁눈질로 쳐다봤다.

같은 팀이고 한때 같이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때에도 막 살갑고 밝은 성격은 아니긴 했다만 지금처럼 찬바람만 쌩쌩 부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셀유돌 촬영 후 유어스로 활동하고 나니 강현성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팀에게 갑질을 하거나 분풀이를 하는 등의 행위는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지극히 비즈니스적.

가끔씩은 과하게 예의를 차리는 느낌도 든다.

마치 오래 보지 않을 사람에게 하듯 선을 지켜가며 말이다.

필요한 말 외에는 팀원들과 말을 섞지 않는다.

해서 팀원들 모두 서로를 비즈니스적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잡혀 버렸다.

강현성이 건조하니, 팀원들 모두 건조해진 거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평소보다 조금 더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해야 하나.

박영호는 강현성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싶어 과정을 상상해 보려 했는데,

“영호야.”

강현성이 대뜸 그를 불렀다.

“아! 네!”

적막 속에 대뜸 자기 이름이 튀어나오니 저도 모르게 군기 잡힌 대답이 튀어나왔다.

강현성은 그 반응에 살짝 미소 짓고는 박영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세이렌 막내가 너보다 한 살 어리지?”

“아,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보통 그 나이대 애들이 다 그런 분위기니?”

“네?”

박영호는 세이렌이라는 그룹에 대해 생각했다.

본인들과 같은 컨셉의 영상을 찍어 올린 팀이다.

사실 같은 영상이 올라왔을 때 본인들도 많이 놀랐다.

어떻게 똑같은 영상이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올라왔나 싶어서.

영상의 아이디어는 강현성이 낸 거였다.

애매하게 아이돌 같은 거 해봐야 밑천만 털리니 웃긴 걸 하라고.

늘 찬바람만 쌩쌩이던 인간이 그런 코믹한 소스를 가져와 직접 연기까지 하니 당시엔 이게 현실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었다.

한데 강현성과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한 인간이 세이렌에도 있었다.

그 팀의 막내.

알기론 19살이라 들었다.

학교를 다니는지는 아직 못 들었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경 쓰이는 걸까.

촬영 내내 강현성은 묘하게 세이렌 쪽 막내를 더 주시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따로 물어볼 정도니 정말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그, 어, 사실 보통 19살들이랑 느낌이 다르긴 하죠……?”

박영호도 그쪽 막내가 평범하진 않은 캐릭터인 걸 느끼긴 했다.

보통 그가 아는 남고생들은 저것보단 더 고삐 풀린 망아지 느낌이니까.

하지만 봉태윤은 오히려 팀 내에서 가장 연장자가 아닌가 싶은 인상마저 주었다.

“……근데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박영호는 조심스레 질문의 의도를 물었다.

“그냥 괜히 신경 쓰여서.”

그는 짧게 답하곤 시선을 돌렸다.

숙소로 가는 차량 안은 다시금 적막에 휩싸였다.

어딘가 꽉 막힌 듯한 느낌.

박영호는 습관적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언젠가부터 떠나지 않는 체기가 명치 근방을 꽉 누르는 느낌이었다.

* * *

“자~ 숙소 도착했습니다아!”

블루에 대한 주제로 한창 시끄럽게 떠들던 차량 안은 숙소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다시금 조용해졌다.

“일단 올라가서 무대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보자!”

“네네!”

“내립시다~”

“끄아아!”

앞자리에 앉아 있던 형들이 하나둘 내리고.

가장 뒤쪽에 앉아 있던 내가 시트들을 젖혀가며 밖으로 나왔다.

옛날 차량이다 보니 3열 시트가 아주 최악이다.

‘허리 아프네.’

이거 진짜 폼롤러 하나 사든가 해야겠다.

“그럼, 급한 일 생기면 언제든 꼭꼭 연락주세요! 저랑 현아 씨는 이제 회사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WD엔터의 윤승연과 이현아는 다시 회사로 복귀해야 하나 보다.

“퇴근 안 하세요, 두 분은?”

연훈이 형이 묻자.

“그, 오늘 활동 보고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해서. 하하하.”

“법인카드 사용 내역도 정리해서 경비 처리도 해야 하니…….”

저게 실무진의 고충이다.

뭐 하나를 해도 보고서 써야 하고 윗선에 올려야 하니까.

그 윗선이란 게 윤태형 팀장이라는 그 일 안 하는 양아치라는 게 문제긴 하다만.

‘뭐, 올려도 보질 않을 텐데. 전부 요식행위지.’

윤태형 이전에 있던 팀장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그 사람 있을 땐 나름 희망적이었던 거 같은데.

잡생각은 넣어두고 난 숙소를 올려다봤다.

낡은 빌라 옥탑.

‘이사를 가야 할 텐데.’

넓고 좋은 집을 원해서 그런 건 아니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크든 작든 팬덤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면 사생이 생길 위험도 분명히 있다.

이렇게 보안이 허술한 집에서 살면 사생이 옳다구나 하고 쳐들어올 게 분명하다.

이 정도면 그 사람들 입장에선 차려진 맛집일 테니까.

‘이건 동준이 형한테 부탁해야 하나.’

난 저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연훈이 형과 함께 이상한 탭댄스를 추는 동준이 형을 바라봤다.

매일이 하이텐션인 인간이다.

옛날엔 저 형은 왜 맨날 웃기만 하지, 싶었는데,

‘여전히 신기하네.’

나름 이유가 있긴 했다.

일단 이건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고.

난 우선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도승이 형은 탭댄스 추는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한테 그만 좀 하라며 진정시킨 뒤 두 사람을 계단으로 끌고 가는 중이었다.

‘작곡을 본격적으로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설득시켜야 하나 싶은데,

“안 가, 태윤아?”

뒤쪽에서 운이 형이 다가왔다.

“아, 가야죠.”

난 운이 형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옥상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다들 여기 앉아봐. 오늘 지나기 전에 다음 무대 어떻게 할지 이야기 조금만 해보고 자자.”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좌식 테이블을 거실 한가운데에 펼쳤다.

우린 짐을 구석에 내려둔 후 테이블 앞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일단 우울한 블루로 가는 건 확정이지?”

연훈이 형은 어디서 노트와 펜을 가져오더니 종이 한가운데에 우울한 블루라는 글자를 적었다.

“네.”

“전 좋아요.”

“저도 좋아요.”

“찬성입니다.”

우리 다섯 사람 모두가 찬성했으니 저 부분은 이제 완전 픽스다.

“흐음. 그러면 우울한 노래 중에 블루로 꾸며볼 만한 걸 찾아봐야 하는데.”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음원 스트리밍 어플에 들어갔다.

키워드별로 곡을 분류하는 탭에 들어간 뒤 우울한, 이라는 탭을 클릭했다.

“대부분 발라드네.”

당연하겠지만 이게 현실이다.

물론 우울한 아이돌 곡도 있다.

문제는,

“이건 춤이 없구나.”

안무가 없는 수록곡인 게 대부분이고.

애초에 안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이돌이 부른 곡이긴 하다만 기본적으로 발라드 정서였으니까.

“어렵다, 어려워.”

우울한, 이라는 방향은 좋았으나 그 결에 딱 맞는 곡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 사운드 클라운에서 찾아볼까? 그다음에 가사 붙이는 거 어때?”

“그쵸. 어차피 맞는 곡이 없으면 만들어야 하잖아요.”

“작곡가를 구하긴 어려우니까 그냥 무료로 음원 푼 사람들 중 한 분한테 부탁해서 사용 허락받는 게 최선일 거 같아.”

동준이 형과 연훈이 형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사운드 클라운 쪽으로 가자는 식으로 말을 이어갔다.

“태윤아, 이번에도 가사 쓸 수 있겠어? 어려우면 다 같이,”

“아뇨. 쓸 수 있어요.”

“와, 빨라. 그러면 가사는 일단 오케이고…….”

아마 이번에도 사운드 클라운에서 찾은 곡에 내가 쓴 가사를 붙이고 싶은 모양이다.

5위를 하긴 했다만 반응이 좋았단 걸 본인들도 알고 있으니까.

한 번 성공했던 방법이니 두 번 쓰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무대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

유독 말이 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도승이 형.

도승이 형은 사운드 클라운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줄곧 굳어서 주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두 번째는 운이 형.

운이 형이 의견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왜 아무 말도 없나 싶은데,

‘응?’

운이 형은 도승이 형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곤 뭔가 말하려는 듯 우물쭈물대다가 다시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뭐야.’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동갑내기라며 매일 붙어 다니긴 했으니까.

그 순간,

‘아, 어쩌면. 운이 형은 알고 있으려나?’

도승이 형의 작곡 계정을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손 안 대고 코 풀 수도 있겠네.’

조금 더 그럴듯하고 쉬운 방향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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