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3화 (2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3화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관찰했다.

그러자 둘 다 서로의 눈치를 보는 중이란 걸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 성격상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는 뭐 그런 껄끄러운 상황은 아닐 거다.

분위기를 보고 추론해 보자면,

‘운이 형은 도승이 형이 작곡 계정의 주인인 걸 아는 거고, 도승이 형은 운이 형이 혹시나 그 사실을 말해 버릴까 봐 눈치 보는 거네.’

답답하게 착한 인간들의 콩트를 보는 거 같다.

운이 형이 말할 사람이 아닌 걸 아는데도 눈치를 보는 도승이 형과.

그런 도승이 형의 눈치를 보는 운이 형이라니.

티 나지 않게 속으로만 웃었다.

“흐으음. 우리 진짜 곡 어떻게 하지? 사운드 클라운에도 이제 마땅한 거 없는데?”

그때 연훈이 형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껏 사운드 클라운을 통해 곡을 수배 중에 있었다.

아무 곡이나 틀어보며 느낌 오는 게 있으면 자유롭게 말하라고 했는데 아무도 느낌이 오지 않았나 보다.

그도 그럴 게 사운드 클라운은 기본적으로 아마추어들의 판이다.

그곳에서 간혹가다 프로 수준의 곡을 찾을 수 있는 거지.

기본적으론 다 어딘가 서툰 작업물들 뿐이다.

그 순간,

‘어?’

도승이 형이 입을 열려고 하는 건지 몸을 움찔댔다.

“그…….”

설마 본인이 직접 밝히려나 싶은데,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영 다른 소리가 나왔다.

화장실로 이동하는 도승이 형의 뒷모습을 난 빤히 쳐다봤다.

사실 도승이 형이 이해가 가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자기 작업물을 함부로 공개하기 부끄러운 건 알겠다.

한데.

‘왜 이 상황까지 왔는데도 공개를 안 하는 거야?’

이라는 곡이 만들어졌고.

방송에서 공개까지 했다.

물론 아직 방영이 되진 않았지만 방영이 되고 나면 victory0505가 도승이 형이란 게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멀지 않은 시기에 저작권 신고를 해야 할 테고.

그 과정 중에 저작권료를 받을 작곡가의 실명이 기재가 되어야 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밝혀질 거 왜 우리한테 공개를 안 하나 싶었다.

‘개인적으론 작업하면서 밝힐 줄 알았는데.’

곡에 대한 사용 허락을 본인이 받아오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난 반쯤은 동의를 한 줄 알았다.

자신이 victory0505임을 곧 밝히겠다는 암묵적인 내 의도에 말이다.

곡이 발표되는 순간 도승이 형의 정체도 밝혀질 테니까.

그러니 적어도 우리에게만이 라도 먼저 말해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묘할 정도로 일이 길어진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단순히 작업물을 본인 이름을 달고 공개하기가 부끄러워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어렵지 않게 공개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우물쭈물대네.’

시간 지나면 밝혀질 게 뻔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도승이 형은 자꾸 시간을 끌었다.

그때,

“오늘은 더 이상 안 되겠다. 곡을 너무 많이 들었더니 뭐가 뭔지 감도 안 와…….”

“맞아요…….”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이 푹 퍼져 버렸다.

나랑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작곡 계정에 대한 걸로 묘한 눈치를 보고 있는 동안 저 두 사람만 곡 수배에 진심이었다.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에게 묘하게 미안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더 들었다간 오히려 판단력 잃고 이상한 곡 고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슬슬 회의를 파하는 분위기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연습실 가서 다시 골라봐요.”

운이 형이 내일 회의 시간을 먼저 제안했다.

“그래.”

“좋아요~”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이 동의한다.

“좋습니다.”

물로 나도 좋다.

때마침,

“응? 회의 끝났어?”

도승이 형이 돌아왔다.

“응. 내일 아침에 연습실에서 다시 회의 하기로 했어.”

운이 형이 도승이 형의 물음에 답을 해줬다.

그 순간,

‘뭐야.’

두 사람의 시선 사이에서 모종의 신호가 오고 가는 게 보였다.

“아, 응. 그래. 알겠어.”

도승이 형은 평소 같지 않게 어색한 말투로 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안 되겠다! 이제 자자! 하루 종일 너무 피곤했어!”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하긴.

첫 촬영 하느라 기력 다 소진했을 텐데.

피곤한 게 당연하다.

다만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놀리고 싶어진다.

“영감님. 이불에서 주무셔야죠.”

나이 많은 걸로 놀려보니,

“여, 영감?”

연훈이 형이 진지하게 충격받은 얼굴을 하며 날 바라본다.

“영감……?”

“장난이에요 장난.”

뭔가 일이 커질 거 같은데.

“영감 아니야! 이게 형을 놀리고 있어! 넌 안 늙을 거 같아? 그리고 나 나이 그렇게 안 많아! 23살은 아직 사회적으로 어린이라고!”

서러움에 가득 차 빼액 하고 소리를 지른다.

나이가 역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미안해요, 형.”

“두고 봐. 복수할 거야.”

연훈이 형은 이후로도 한참 씩씩대더니 스르르 잠들었다.

씻고 자야 할 거 같은데 일단은 그냥 뒀다.

괜히 깨웠다가 더 혼날 거 같았으니까.

‘나이 놀리기는 금지.’

속으로 규칙 하나를 더 세웠다.

“누구 먼저 씻을래?”

“나 먼저 씻을게.”

우린 잠든 연훈이 형을 제외하고 씻을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 * *

잠들었던 연훈이 형을 깨워서 씻기고.

우린 다 같이 이불 위에 누웠다.

씻기 전부터 잠들었던 연훈이 형은 씻고 난 후 다시 한번 빠르게 잠들었다.

오늘 하루가 정말 고됐었나 보다.

늘 이불 위에 누워 만담을 나누던 동준이 형도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동준이 형도 잠든 모양이었다.

첫 촬영하고 왔으니까.

곯아떨어지는 게 당연할 거다.

다만 아직까지 잠들지 않은 인간이 둘이 있었다.

도승이 형과 운이 형.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잠들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아냐면,

‘자꾸 핸드폰 만지작거리네.’

두 사람 다 10분에 한 번 꼴로 핸드폰을 본다.

잠이 오지 않아서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둘 다 자는 척을 한다고는 하는데 깊은 잠은 못 드는 것 같았다.

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준이 형과 연훈이 형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동한 뒤,

“운이 형.”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운이 형 귓가에 속삭였다.

“응?”

자는 척하고 있던 운이 형은 슬그머니 눈을 뜨곤 내 물음에 답했다.

난 말 대신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잠깐 밖에서 보자고.

운이 형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누운 도승이 형이 깰까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웃긴 건 도승이 형도 지금 안 자고 있단 거다.

자는 척만 하고 있을 뿐이지.

-가자.

운이 형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 * *

빌라 앞 편의점.

이전에 연훈이 형과도 함께 왔던 편의점이다.

오늘은 운이 형과 이곳에 왔다.

이전에 화분 추락 사고가 있었을 때 매장 주인도 놀란 건지 테라스 위쪽에 튼실한 가림막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롱패딩을 둘둘 둘러 입은 운이 형과 나는 따뜻한 모과차 두 잔을 올려둔 채 테라스에 앉았다.

“갑자기 왜 밖에서 보자고 한 거야?”

운이 형이 모과차 한 모금을 호로록 마시며 물었다.

난 대답 대신 운이 형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곤 고민하는 척을 했다.

운이 형이 걱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역시나,

“왜? 무슨 일이야? 걱정되는 거 있어?”

운이 형은 내 작은 반응 하나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물어봐 준다.

착한 사람 이용하는 거 같아 마음이 편친 않지만,

‘어쩔 수 없네.’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다.

난 운이 형을 똑바로 바라본 뒤,

“그, victory0505 있잖아요.”

문제의 그 계정명을 말했다.

그러자 운이 형이 조금 놀란 얼굴을 한다.

“어, 응. 말해봐.”

딱딱하게 굳은 말투.

내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 이미 눈치를 챈 것 같다.

난 조심스레 입을 뗐다.

“도승이 형, 맞죠?”

마치 확실하지 않은 일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물어봤다.

운이 형 눈이 동공지진을 일으킨다.

여기서 쐐기를 박지 않았다간 부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가 우연히 도승이 형 메일함을 봤는데, 메일명이 victory0505더라고요.”

운이 형 동공이 더 격하게 움직인다.

모과차를 공중에 든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역시.

운이 형은 무언가를 아는 게 맞았다.

형은 부동자세로 잠시 굳어 있더니,

“……맞아.”

결국 인정했다.

“형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개인적인 궁금증이다.

나야 전생이 있으니 알고 있는 거지만 운이 형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싶어서.

“도승이랑 나랑 원래 같은 회사였잖아.”

운이 형은 그리 말하며 먼 곳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원래 꽤 큰 기획사에 있던 연습생들이었다.

그러다 그곳 데뷔조가 확정되며 포지션이 애매해졌는데, 그때 윤태형 이전에 있던 팀장이 데뷔를 약속하여 WD엔터로 데려왔었다.

윤태형이 팀장으로 들어오기 전엔 그래도 나름 구색은 갖춘 상태였기에 두 사람도 회사를 믿고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들었다.

“그때에도 도승이 작곡했었거든. 당시엔 사운드 클라운은 아니고 다른 SNS에 작업물 올리곤 했는데, 그때 계정도 victory0505였어.”

운이 형은 그리 말하며 모과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근데, 그때 조금 회사 분위기가, 흐음.”

운이 형은 뭐라 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그러곤 한참을 고심한 끝에 다시 입을 뗐다.

“작곡하던 애들 경쟁시키는 분위기가 심했거든.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

“아.”

난 대충 이해했다.

왜 도승이 형이 자기 계정을 밝히는 걸 어려워하는지.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게 남은 모양이었다.

창작은 언제나 고통이다.

고통 없는 창작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한데 그 고통에 부스터 달아서 두 배로 더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은 경쟁이다.

고통스러운 창작 경쟁이 효율이 좋긴 하다.

고통스럽더라도 더 나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더 갈아넣으니까.

1등을 한다면 적지 않은 성취감과 함께 꽤 큰 자신감도 얻는다.

문제는 1등이 아닌 쪽들이다.

‘도승이 형은 그중 1등은 아니었나 보네.’

하긴 거기서 1등이었으면 그 회사에서 데뷔를 했겠지.

대충 도승이 형을 누르고 1등을 한 뒤 데뷔를 했을 멤버가 누군지 감이 온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니까.

다만 그건 그거고.

고통스러운 경쟁 끝에 1등이 되지 못한 쪽은 많은 걸 잃게 된다.

본인 실력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해지며.

자신감을 잃고.

해당 분야에 대한 애증의 심정을 갖게 되어 그걸 계속 붙잡고 있지도, 완전히 놓지도 못하게 된다.

사람을 천천히 말려 죽이는 창살 없는 감옥인 셈이다.

도승이 형이 지금 딱 그 상황인 거다.

본인도 이성적으로는 다 알고 있을 거다.

본인 작곡 실력이 업계 평균 이상임을.

더 나아가 을 공개했으니 멀지 않은 시기에 본인의 곡임을 밝혀야 한단 것도.

어쩌면 본인의 곡을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어 내가 일전에 시치미 뚝 떼고 제안한 건을 눈 딱 감고 받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이리 우물쭈물대는 건 그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다시 작곡 계정을 세상에 꺼낼 마음의 준비를 말이다.

그렇다면,

‘별수 없네.’

답은 하나다.

“기다리면 되겠네요.”

“응. 맞아.”

내가 어떻게 능동적으로 나서서 도승이 형의 작곡 계정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할 줄 알았다.

한데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나 보다.

도승이 형은 이미 본인 스스로 최선을 다해 과거의 족쇄를 끊으려 하는 중인 거다.

그러니 내가 사운드 클라운 계정 들먹이며 사용 허락받자 했을 때 못 이기는 척 받아준 것일 테고.

거기까지 혼자 알아서 나온 사람이니 나머지도 스스로 해결 가능할 거다.

이 일은 도승이 형 내부의 일.

내가 주제넘게 나설 사안이 아니었다.

“괜히 설친 거 같아서 미안해요. 형한테도, 도승이 형한테도.”

“응? 뭐가? 괜찮아.”

운이 형은 그리 말하며 싱긋 웃더니 모과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근데 이거 진짜 맛있네.”

“아무래도 맛있겠죠? 액상과당을 들이부은 음료니까요.”

“……응?”

“보통 이런 류의 차 종류는 전부 과당인데.”

운이 형은 배신당한 얼굴을 하더니 급히 음료 정보를 읽는다.

“카, 칼로리가…….”

“뭐 어때요. 이미 충분히 말랐,”

“말을 해줘야지!”

“어이쿠.”

운이 형은 다이어트 중 타의로 야식을 먹게 된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아니지.

그런 얼굴 같은 게 아니라 그런 얼굴이 맞구나.

내가 모과차 사줬으니까.

“아, 형. 진짜 미안해요.”

“하아아.”

규칙을 하나 더 세워야겠다.

운이 형한테는 되도록 다이어트식으로.

춤추는 사람이라 그런지 몸 선에 더욱 진심인 사람이니까.

“……아무튼, 도승이 계정은 일단은 모른 척해줘.”

운이 형은 그리 말하며 모과차 뚜껑을 닫았다.

“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모른 척을 아마 오래 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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