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4화 (24/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4화

도승이 형이 계정 주인인 걸 모른 척해주기로 다짐한 후.

바로 그다음 날이 되었을 때.

“그, 제가 할 말이 있습니다.”

도승이 형이 연습실에 둘러앉은 우리들에게 중대 발표를 했다.

연습실에 모여 함께 곡을 수배하기로 한 약속에 맞춰 우린 둥글게 앉아 곡을 찾는 중이었다.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지 않아 다들 한참이나 애를 먹던 찰나.

도승이 형이 진지한 어조로 천천히 입을 뗐다.

이런 분위기 속 진지하게 할 말이라면 아마,

“제가 victory0505예요.”

정체 공개밖에 없을 거 같긴 했다.

분명 어제 모른 척해주기로 다짐했는데.

바로 다음 날 도승이 형이 스스로 밝히다니.

이런 전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와 운이 형은 서로 시선을 맞추곤 헛헛하게 웃었다.

어젯밤에 우리 둘이 그 난리를 친 게 다소 민망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으니 말이다.

반면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은,

“도승아 뭐라고?”

정말 눈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모습을 보였다.

연훈이 형 정도면 양반이다.

동준이 형은,

“도승이 형이 victory0505 선생님이라고……?”

엄청난 충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굴었다.

아니지.

저 정도면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맞았다.

victory0505 뒤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붙은 걸 보니 개인적으로 존경심을 품었나 보다.

좋은 곡을 찍을 줄 아는 작곡가는 이 바닥에 의외로 드무니까.

그런 좋은 곡을 무료로 쓰라고 던져준 사람이니 동준이 형 입장에선 무슨 의인 같은 걸로 보였나 보다.

한데 그 사람의 정체가 자기가 매일 장난치고 대드는 도승이 형이란 걸 아니 인지부조화가 온 것 같다.

“도승이 형이, 그 작곡가?”

동준이 형은 여전히 매치가 안 된다는 듯 도승이 형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어쩌면 몰카일 수도?”

현실 부정을 시작한다.

“더쇼케 제작진분들! 이제 나오세요! 몰카 다 걸렸습니다!”

급기야 현실 왜곡의 단계까지 이른다.

“도승이 형이 victory0505일 리가 없어. 없잖아. 없다고!”

마지막은 유아적 단계의 단순한 감정 표출.

다른 말로는 생떼다.

“아오! 좀! 내가 맞다는데 뭐가 아니야!”

참다못한 도승이 형이 동준이 형에게 소리치듯 말한다.

“인증해요! 인증하라고!”

슬슬 이 정도면 뇌절인데.

도승이 형은 본인 핸드폰으로 사운드 클라운에 들어간 뒤 계정 정보를 보여줬다.

“안 보이냐?”

“허허. 허허허.”

동준이 형이 이제 허탈하게 웃는다.

포기의 단계에 이르렀나 보다.

“애초에 victory0505면 나를 유추할 법도 하잖아. 도‘승’에 내 생일 5월 5일이니까.”

도승이 형이 다소 답답하단 듯 묻자.

“……그냥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승리자일 거라 생각했죠.”

동준이 형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도승이 형은 그런 동준이 형을 보며 어처구니없단 듯 피식 웃었다.

아마 동준이 형은 자기가 만만하게 여기고 달려드는 도승이 형이 그런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가 보다.

그것보다.

‘동준이 형이 저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이전 생에선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늘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유유자적 살았던 사람이니까.

아이돌도 그냥 재밌어 보이니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고.

“그러면, 왜 우리한테 말 안 하고 숨긴 거였어? 도승아?”

그때 연훈이 형이 조심스레 도승이 형에게 묻는다.

도승이 형은 이런 질문이 들어올 줄 알았다는 듯 차분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전 회사에서는 작곡 과제가 있어서 매주 곡을 발표해야 했거든요.”

“헉! 매주?”

“네. 근데 매주 찍는 거야 그냥 며칠 잠 포기하면 되는 일이라 괜찮은데, 발표하고 난 후에 그 싸늘한 분위기랑 묘한 눈치싸움이 저는 제일 힘들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작곡 수업을 듣는 연습생들끼리 매주 곡을 발표하는 자리마다 어떤 신경전이 오고 갔나 보다.

아무리 좋은 곡이었다 한들 칭찬보다는 혹평을. 응원보다는 견제를 보내왔을 거고.

그때의 분위기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니 우리에게 곡을 들려주는 게 망설였을 거다.

혹시라도 반응이 안 좋으면 옛날 기억이 떠오를까 봐.

이후 방송을 통해 반응이 좋단 걸 확인은 했지만 그래도 자꾸 망설여졌을 터였다.

아픈 기억이란 건 가끔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할 만큼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놓는 법이니까.

이제야 조금 더 분명하게 도승이 형이 이해됐다.

“태윤이가 제 사운드 클라운 계정 가져오며 이 사람한테 연락해서 곡 쓰자 했을 때 그냥 말해 버릴까 싶기도 했었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도승이 형은 답지 않게 감성적인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무대 서는 날에는 꼭 말하자 하다가 미루고. 숙소 돌아가는 차 안에서만큼은 꼭 말하자 하다가 미루고. 어제 저녁에 회의하는 시간에 꼭 말하자 하다가 미루고, 이제야 말하네요.”

도승이 형은 우리를 괜히 속인 것 같다며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했다.

“아냐, 아냐! 뭐가 미안해! 나 같아도 당연히 고민 많이 됐을 것 같아. 고생 많았어, 도승아.”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도승이 형을 안아주려 했다.

도승이 형이 몸을 살짝 빼며 연훈이 형의 스킨십을 피했을 뿐이지.

스킨십 싫어하는 인간과 스킨십 좋아하는 인간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살짝 흐른다.

“아무튼, 제작진분들에게는 제가 victory0505인 거 밝힌 후 음원 등록할 때 제 실명으로 등록해 달라 할게요.”

도승이 형이 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제 능력이 닿는 선에서 우리 팀 반주는 앞으로 제가 찍을 수 있도록 해볼게요.”

도승이 형의 말에 연훈이 형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진짜? 진짜 찍어줄 수 있겠어? 힘든 거 아니야?”

걱정하는 듯한 얼굴이지만 신난 감정을 채 가리진 못한 말투다.

팀의 색깔을 유지해 줄 음원 제작 가능한 멤버가 생겼단 건 엄청난 이득이니까.

“네. 물론 못 하는 건 못 한다 말할게요. 근데 이번 미션은 대충 어떤 곡 할지 그려지는 게 있어서요.”

세상 든든한 발언이다.

어떤 곡 할지 그려지는 게 있다니.

“일단 그러면 곡부터 만들러 갈까요?”

도승이 형의 말에 연습실에 잠깐 적막이 돌았다.

“그, 곡을 만들러 어디를 가?”

연훈이 형이 대신해서 질문해 주니,

“아, 맞다. 말을 안 했구나. 제 작업실 따로 있어요. 거기로 가죠.”

도승이 형은 자기 작업실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 말에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다만.

‘곡을 찍으려면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작업실이 있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그 작은 옥탑방에 장비 둘 곳이 없으니 작업실이 따로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안 멀어요. 걸어서 가죠.”

우린 도승이 형을 따라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 * *

여기서 안 멀다는 도승이 형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 연습실이 있는 건물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면 있는 곳이었으니까.

“여기를 제가 렌트해서 쓰는 건 아니고요. 전에 회사에서 작곡 공부하다 알게 된 형이 공짜로 빌려준 거예요. 여기가 그 형이 운영하는 공용 스튜디오라서요.”

그런 귀인을 만나다니.

도승이 형은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

아니지.

진짜 운이 좋은 거면 WD엔터를 안 왔으려나.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는 느낌이긴 하다.

귀인이 빌려준 작업실은 원래는 시간당 돈을 받고 빌려주는 공용 스튜디오란다.

커다란 스튜디오 중 가장 끝에 있는 방이 도승이 형 전용 방이란다.

“그렇게 넓진 않은데 붙어 앉으면 다섯 명 얼추 들어갈 거 같아요.”

문을 열어보니 확실히 작업 공간이 크진 않다.

하지만 조금 붙어 앉으면 못 앉을 사이즈도 아니었다.

우린 뒤쪽에 있는 미니 소파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도승이 형은 데스크탑을 비롯한 장비가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능숙하게 데스크탑 전원을 켜고 작곡 프로그램을 불러오는 모습에 우린 작게 오, 하고 감탄했다.

도승이 형은 오바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 반응이 기분 나쁘진 않은 모양이었다.

처음엔 현실을 부정하던 동준이 형도 지금은 도승이 형의 의외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일단, 제가 옛날에 만들어둔 곡들 있는데 그것들부터 한번 볼래요? 우울한 블루라는 테마에 맞출 수 있을 만한 것들 한 서너 개 있거든요.”

“그렇게 많아?”

“뭐, 다 습작이라서 별로일 수 있어요. 크게 기대는 하지 마요.”

“멋지다, 강도승!”

“은근슬쩍 말 놓지 마라, 동준아.”

“우우우. 쪼잔쟁이 강도승.”

난 도승이 형이 어떤 곡을 불러올지 기다렸다.

“우선, 이거부터.”

도승이 형은 작곡 파일을 하나 불러오더니 반주를 재생시켰다.

우린 가만히 앉아서 곡을 경청했다.

도입부는 어딘가 차가운 느낌의 드럼 사운드로 시작한다.

굉장히 독특한 사운드라 귀를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미디엄템포보다 살짝 느린 속도의 곡.

보다 템포가 느리니 가사를 쓸 때 조금 더 글자 수를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 같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몽환적,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법한 노래였다.

“좋은데?”

“그러니까요.”

“이게 습작이라고?”

연훈이 형.

동준이 형.

운이 형.

모두 놀랐다.

나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때,

“태윤이는?”

도승이 형이 나를 콕 집어 묻는다.

좋다고, 말을 하려 했는데.

“다음 거 들어볼 수 있어요?”

말이 이렇게 나가 버렸다.

“아, 곡은 좋았어요.”

황급히 말을 붙였지만,

“오케이. 그렇게까지 귀에 붙진 않았나 보네. 다음 거 듣자.”

도승이 형은 행간 사이의 의미를 읽었나 보다.

괜히 미안하다.

작곡 관련해서 트라우마까지 있는 사람한테 박한 반응을 보인 거 같아서.

“곡에 있어서는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좋아. 마음 쓰지 마.”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곤 다음 곡을 골라왔다.

“이건 바이올린 선율에 한때 꽂혀서 만들어 본 곡이야.”

확실히 도입부터 현악기군의 멜로디가 두드러진다.

곡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당장 어디 그룹 타이틀로 밀어봐도 될 법한.

문제는.

“이건, 우울한 블루보다는 완연한 봄 느낌인데요?”

“맞아. 나도 그게 걸리긴 했어. 편곡해서 좀 더 우울하게 뽑아볼 순 있을 거 같긴 해서 들려줘 본 거야.”

“근데 이건 이 상태로 이미 완성된 곡 같아서 건들지 않았으면 싶네요. 한 가닥만 잘못해도 곡 전체가 무너질 거 같아요.”

도승이 형은 의외라는 듯 날 보며 눈썹을 움찔거렸다.

연훈이 형이나 동준이 형, 운이 형도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고.

경계의 시선이라기보단 다들 조금 놀란 얼굴이다.

너무 설쳤나 싶다.

그냥 솔직한 감상을 남긴 건데.

“뭐라 하는 건 절대 아닌데, 봉태윤 듣는 귀가 좋네. 진심으로.”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마지막 곡을 들려줬다.

마지막 곡은 도입부에 피아노 선율이 들어간 곡이었다.

마치 빗방울이 한 방울 톡 떨어지듯.

마이너 음계의 사운드가 도입부에 툭 하고 쏟아져 나왔다.

“어?”

“오오!”

이전 곡들보다 확실히 좋다.

우울한 블루라는 이미지에 잘 맞는 사운드였다.

악기는 피아노 하나만 사용해서 만든 것 같았다.

마이너 발라드, 라고 부를 수도 있을 법한 코드 진행이긴 하였으나 곡의 템포나 전체적인 구성을 볼 때 춤을 집어넣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우울한 블루, 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살리면서 템포를 미디엄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가져간 게 인상적이었다.

우울하다 하면 느린 곡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니까.

이건 참,

‘오묘하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 순간,

지이잉.

예의 그 통찰이 갑자기 사용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도승이 형 곡 듣다가 대체 왜 이 능력이 밖으로 튀어나오려나 싶은데.

후웅!

세계가 일순 느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사고 가속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머릿속에 파고드는 지식들이 있었다.

‘어?’

방금 들은 도승이 형의 반주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해당 곡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진 건지.

어떤 악기를 써야 잘 어울리는지.

보완할 점과 강화할 점은 어디인지.

방금 내 귀에 들어온 반주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이 ‘통찰’이라는 능력이 최대한의 효율로 곡을 뜯어고치는 중이었다.

원래도 좋았던 반주가 내 머릿속에서 변형되고 발전하기 시작하더니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듯 뚜렷한 상으로 맺히기 시작했다.

그 상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지려는 순간,

“헉!”

통찰이 끝났다.

세계가 원래의 속도로 돌아왔다.

“응?”

“태윤아 왜 그래?”

“어디 아파?”

형들이 날 보며 묻는다.

다만 그런 것들보다,

“도승이 형.”

더 중요한 게 따로 있다.

“응?”

“국악……. 국악 샘플 좀 찾아봐요.”

방금 보고 온 그 그림을 지금 이 현실에서도 똑같이 만들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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