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5화 (2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5화

“국악?”

도승이 형이 고개를 갸웃한다.

본인은 생각해 본 적 없는 방향인 것 같다.

하지만 난 확신했다.

방금 ‘통찰’을 통해 보고 온 그 그림.

그것보다 나은 그림을 찾긴 어려울 거란 걸.

사실 통찰을 통해 보고 온 그림으로 가게 되면 나도 골치가 아파진다.

기존에 생각해 두었던 우울한 블루가 있었으니까.

원래는 영화 오마주를 따올 예정이었다.

우울한 감성의 유럽 예술 영화 중 적당한 것도 하나 골라두었고.

한데,

‘아냐. 이게 더 좋아.’

국악풍의 소스가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국악이라. 흐음.”

도승이 형은 작곡 프로그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민을 시작했다.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는데,

“어떤 악기?”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문제는,

“아. 그.”

내가 악기를 모른단 거다.

“생각해 둔 악기 없어?”

“그냥 국악인데.”

이게 통찰이란 능력이 맥락 없이 간헐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혹시 국악 샘플들 모아둔 사이트들 없어요?”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머릿속에 있는 그 뚜렷한 이미지만 잊지 않으면 길을 잘 찾아갈 자신이 있다.

“국악원 사이트에서 전에 악기들 한 번에 올린 걸로 알고는 있는데…….”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인터넷에 들어갔다.

그러곤 국악기들 샘플을 하나하나 찾아내기 시작했다.

“일단 대중적인 가야금부터.”

난 도승이 형이 들려주는 샘플들을 하나하나 들었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그 외 등등등.

맘에 드는 사운드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과정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듣자마자,

“이건 아니에요.”

“이건 괜찮아요.”

“현악기 쪽은 이제 됐고. 베이스 담당할 만한 것들로 넘어가 주세요.”

어떤 걸 써야 하고 어떤 건 배제해야 하는지 감이 왔기 때문이다.

내가 사운드 몇 개를 골라내고 나자,

“아, 그럼 이 소리도 잘 어울리겠네?”

도승이 형도 내가 그리고자 하는 그 그림을 얼추 눈치챈 것 같았다.

내가 말하기 전에 본인이 직접 악기를 찾아와서 들려준다.

확실히 작곡에 재능이 있는 사람인 건지 난 통찰을 통해서야 겨우 봤던 그 그림을 단서 몇 개로 바로 추론해 낸다.

도승이 형이 편곡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고 나니 일이 빨라진다.

도승이 형과 나는 모니터 앞에 딱 달라붙어 한 몸처럼 곡을 찍어갔다.

우리가 만들려는 곡은 진짜 국악은 아니다.

기본적인 구성은 당연히 대중가요다.

그중에서도 아이돌풍이고.

다만 국악의 향을 진하게 풍기는 곡을 만들 거다.

그렇게 1차 반주가 완성되고 난 후,

“미쳤네…….”

도승이 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잘 나온 거 같네요.”

내가 보고 왔던 그 그림에 꽤 흡사하게 다가간 거 같아 나도 만족스러웠다.

이걸 이제 멤버들에게 보여주려 하는데,

“……다 끝났어?”

“으으음.”

“어우. 뻐근해.”

형들이 뒤에 앉아서 퀭한 눈으로 우릴 보고 있었다.

도승이 형과 나는 그제야 시간을 확인했다.

약 2시간 가까이가 흘러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곤 생각했지만 한 30분 정도겠거니 싶었는데.

벌써 2시간이라니.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과 운이 형은 2시간가량 아무 말도 않고 뒤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셈이었다.

“너희 집중 깨질까 봐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어.”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나, 다리를, 쭉 펴고 싶어요, 형…….”

동준이 형은 엉금엉금 자리에서 일어난 뒤 묘한 자세로 스트레칭을 했다.

좁은 공간에 장시간 앉아 있다 보니 뼈 마디마디가 결린 모양이다.

“으아아아아!”

동준이 형은 마치 포효하듯 소리를 지르며 팔다리를 쭉 펼쳤다.

“……다리에 쥐 났어요, 나.”

운이 형은 고통스러워하며 미니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곤 벽을 붙잡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발목을 살살 돌린다.

“으으…….”

고통에 찬 침음이 작업실 곳곳을 채운다.

바로 곡을 들려주려 했는데,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이후 형들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다 풀고 난 후.

우린 만들어둔 곡을 본격적으로 청음했다.

사운드 클라운을 백날 뒤져도 나오지 않을 퀄리티.

우울한 블루, 라는 정서에도 잘 맞는 곡.

무엇보다,

‘이랑 전혀 달라.’

이전 무대 컨셉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다.

“좋다.”

“좋아요.”

“딱이네.”

연훈이 형, 운이 형. 동준이 형.

모두 만장일치로 찬성한다.

“그러면 이걸로 우리 1차 경연 들어가죠.”

우리의 1차 경연 무대 곡이 픽스되었다.

“근데 이거 곡 제목이 뭐야?”

그때 연훈이 형이 묻는다.

“제목은 딱히…….”

도승이 형은 생각해 둔 건 없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날 쳐다본다.

마치 나한테 제목을 정하라는 듯하다.

난 우리가 만든 반주를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재생해 봤다.

그러곤,

“월야(月夜) 어때요?”

전생에 작가 짓 하려고 사전 뒤지며 어휘력 키우던 시절 봤던 단어를 꺼내봤다.

월야(月夜).

달빛이 밝은 밤을 뜻하는 말이다.

유독 새벽이 푸르게 느껴지는 날이면 종종 떠오르던 단어였다.

“월야?”

“오.”

“느낌 있는데?”

“곡이랑도 잘 어울리네.”

형들은 제목도 꽤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럼 우리 1차 경연곡은 월야로 픽스하자.”

그렇게 1차 경연이자 두 번째 촬영을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다.

* * *

더 쇼케이스2의 출연진들이 1차 경연을 준비하는 동안.

인터넷은 이제야 본편 예고편이 풀리며 프로그램 방영 전의 화제성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더 쇼케이스2의 예고편은 다른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게 만들어졌다.

시작은 즙부터 짜고 본다.

이전 더 쇼케이스1의 감동적인 순간들이 짧게 짧게 툭툭 치고 지나간다.

그 밑으로 깔리는 출연진 대사들.

-진짜, 진짜 간절했거든요.

-이게 마지막이야 우리는.

-제발, 제발…….

지난 시즌에 출연했던 걸그룹 멤버들이 울먹이며 인터뷰하던 장면.

무대에 서는 장면.

백스테이지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장면들까지.

지난 시즌을 봤던 사람이라면 울컥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컷들이었다.

그 끝,

화면이 검게 암전되며,

-더 쇼케이스2

타이틀이 떠오른다.

그 뒤 두둥 하는 효과음과 함께 붙는 부제.

-First Chance

타이틀이 내려간 후 나오는 장면은 걸그룹과 상반되는 보이그룹 멤버들의 얼굴이다.

이전 시즌과는 달리 대부분이 초면에 가까운 사람들뿐이다.

-이게 저희한테는 진짜 마지막 기회예요.

-이게 안 되면 저희는 진짜 안 돼요.

-저희도 능력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하는 말들이 시즌 1에서 걸그룹 멤버들이 했던 말들과 거의 흡사하다.

시청자들이 시즌 1의 걸그룹에게 가졌던 그 울컥함을 시즌 2의 보이그룹에게 그대로 이식하려는 컷편집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컷들은 각 보이그룹들이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격한 몸짓이 클로즈업되어 들어가고.

슬로우모션으로 들어가고.

쉬는 시간 구석에 가서 숨을 고르는 장면이 들어가고.

-다시! 다시!

-거기 발 안 맞잖아!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대체 무대엔 어떻게 설 건데!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

-좋은데?

-할 수 있어!

-자! 한 번 더 가자!

화합하며 안무를 맞추는 장면.

-일어나아!

-하하하하!

-예민하녜~ 화났녜~

웃으며 장난을 치는 장면들이 지나간다.

마치 삶의 희로애락을 전부 담은 듯한 장면이다.

이후 대면식 무대 장면들이 스포일러 방지 차 블러 처리가 되어 들어간 후.

-2022년.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당신의 그룹에게 찾아가세요.

화면이 암전된 후 타이포 자막이 지나간다.

그 끝.

-The Showcase 2 First Chance

프로그램의 제목이 영문으로 지나간 뒤.

탁.

슬레이트를 치는 듯한 효과음과 함께 예고편이 끝났다.

예고편 자체의 수위는 당연히 센 편이었으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전체적으로 매운맛임을 감안하면 평범한 정도의 수위였다.

그 밑으로 달리는 댓글들 또한.

-이번 W넷 서바 프로 애들 jonna 불쌍함…….

-그냥 더 이상 이런 프로 안 나왔으면 좋겠음……. 저는 소비 안 할게요 소비하시는 분 있으면 썰게요

-또 오지게 악편하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아ㅋㅋㅋㅋㅈㄴ뻔함

예고편의 그 비독창성에 대한 혹평이 가득하다.

다만.

-느슨해진 남돌 시장에 긴장감을 줄듯

-눈물 흘리는 저 남자 이름 뭐예요 급해요 제 남편이 될 사람 같아서요

-원래 한처먹는 서사가 ㅈㄴ 츄베릅임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홍수 탓에 이 정도 가학성에는 이제 면역이 생겨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오히려 이제 이 정도가 아니면 느낌이 안 온다는 식의 댓글들도 달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보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댓글 반응은 하나였다.

-michin 저거 셀유돌 강현성임?

-현성아ㅠㅠㅠㅠ

-#강현성_온리원탈퇴해 그냥 현성이 대기업 가셈 꿀리는 게 뭐 임? 얼굴? 실력? 아니, 뭐가 꿀린다고 우리 현성이 저 망돌 사이에서 저러고 있어야 해?

-열심히 살자…… 셀유돌서 2등 하고 다시 서바이벌을 나가 개같이 일하는 강현성처럼

강현성이 대체 왜 저기 있냐는 반응이다.

다들 강현성이 더쇼케 나간다는 건 알고 있었을 터였다.

지원 영상이 버젓이 돌아다니기도 하거니와.

기사까지 나왔을 정도니까.

하지만 공식 예고편에 등장하는 건 그 무게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2분 남짓한 예고편 영상 중 강현성의 등장 시간은 10초 남짓이건만 그 10초짜리 분량이 댓글의 9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었다.

나머지 10퍼센트는 다양한 부류의 조롱성 댓글 등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간혹 타 그룹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타 그룹에 해당하는 4개 그룹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름 아닌 세이렌이었다.

-얘네가 그 강현성네랑 같은 지원 영상 올린 데임?

-세이렌? 얘네 뭐 논란 있지 않음?

└논란 아니고 걍 온리원이랑 같은 영상 같은 시간에 올린 거예요ㅠ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ㅠㅠ

-표절돌 ㅋㅋ

└아니 똘추 새끼야 같은 시간대에 올렸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jonna 저기 팬덤은 지네 오빠 닮아서 성격도 ziral 맞음

아직도 강현성 유명세의 낙수효과를 누리는 세이렌이었다.

그 외에 주 반응은.

-근데 저기 구석에 누구임? 제 최애가 될 것 같은데요;;

└우연훈이에용ㅠㅠㅠ 세이렌 리더예요ㅠㅠㅠ 세이렌 표절 안 했어요ㅠㅠㅠㅠㅠ

세이렌의 우연훈 얼굴에 대한 반응이었다.

-저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애 누구라고요? 일단 제가 최애로 선점하겠습니다

-느슨해진 남돌판에 긴장감을 주실 분이 오셨다…….

-ㅋㅋ아 강천지들아 차세대 비주얼 느그오빠라고 그만 우기자 ㅋㅋㅋㅋ 우연훈이 누가 봐도 차세대 비주얼임

└우연훈이랑 강현성 동갑임

└그래서 더 문제 아님??ㅋㅋㅋㅋㅋㅋ동갑인데 흘러내린

세이렌의 우연훈과 온리원의 강현성을 비교하는 글들이 SNS와 커뮤니티 등에 간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이렌에 대한 반응들은 타 그룹에 비하면 많을 뿐, 역시나 소수 의견일 뿐이었다.

예고편 공개 후 주된 정서는 하나.

-#강현성_온리원탈퇴해

-현성이 어떡해ㅠㅠㅠㅠㅠ

망돌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강현성에 대한 짠내였다.

이러니저러니 말은 많아도 더쇼케2는 전 시즌보다 더한 화제성을 모으며 방영 전 열기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더쇼케2 방청객 모집하네

-오 저 오빠 찾으러감요 ㅅㄱ

1차 경연을 방청하고 평가를 매기기 위한 응모를 시작했다.

문제는.

-?평가 방식 이거 뭔 ziral 임?

평가방식이 기존의 아이돌 프로그램과는 달랐다는 점이다.

-이번 W넷 서바 A, B, C로 각 팀별로 등급 매기듯이 투표하는 방식이래요!

└각 팀에? ㅈㄴ 잔인하네

└역시 W넷

└사탄: 아 이건 좀……

‘등급’과 ‘투표’라는 아이돌 서바이벌의 양대 악의 축을 하나로 합친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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