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7화
더 쇼케이스2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하는 온리원의 차량은 평소보다 분위기가 올라와 있었다.
늘 강현성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닫고 있던 멤버들이 오늘만큼은 한두 마디씩 사담을 나누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고편이 공개되며 온리원에게는 폭발적인 관심이 생겼으니까.
이제 막 인사 정도만 올린 공식 SNS 계정의 팔로워 수가 빠르게 붙기 시작했다.
따로 홍보를 한 것도 아니고, 눈에 띌 만한 글을 올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모든 게 예고편 한 편의 힘이었다.
새삼 매스미디어의 힘을 체감하는 그들이었다.
“여기 영호 칭찬도 많은데?”
“영호야 네가 귀엽대.”
“우리 막내가 귀엽지.”
온리원의 막내 박영호는 형들의 말에 부끄럽단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형들이 건네준 핸드폰 화면 위의 자신의 칭찬들을 빠르게 스캔했다.
“우리 정말 뭐 되려나 봐요.”
온리원의 멤버 김시운이 말했다.
“그러니까. 시작이 좋아.”
다른 멤버, 김주현도 답했다.
“올해 신인상 노려볼 만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소망들로 온리원의 차량이 간만에 시끌벅적하다 싶을 즈음,
“다들 즐거워 보이네.”
그 소란을 뚫고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딱히 목청을 키워 말한 것도.
발음을 또렷하게 해서 말한 것도 아닌.
지나가는 투로 툭 하고 뱉은 말이었다.
온리원 멤버들의 시선은 운전석 바로 뒤쪽에 앉아 있는 강현성에게로 향했다.
강현성은 핸드폰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하고 있었다.
나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게 들려야 정상인 말인데,
“그,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어, 형?”
먼저 나온 반응이 이거였다.
강현성을 제외하자면 팀 내 가장 연장자인 이철운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괜찮아. 기분 좋은 일이잖아.”
강현성은 그리 말하며 여전히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무대만 잘하자. 그러면 다 괜찮아.”
강현성은 그리 말하곤 다시 입을 닫았다.
분명 분위기를 망칠 만한 말도.
귀에 거슬리는 말도 하지 않았으나.
“네.”
“무대 잘하자.”
“후우우.”
온리원 차량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한껏 신나서 형들과 대화를 나누던 박영호도 들뜨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곤 힐끔, 강현성의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딱히 특이한 화면은 아니었다.
SNS 페이지였으니까.
아마도 더 쇼케이스 모니터링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건 늘 보는 일상 같은 풍경이다.
강현성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모니터링을 하는 편이니까.
저 사람에게 핸드폰의 용도는 모니터링과 일적인 대화. 딱 이 두 용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박영호는 강현성의 핸드폰 대신 이젠 얼굴을 힐끔 바라봤다.
무표정한 얼굴이다.
하지만 미묘하게, 어제보다 기분이 나빠 보이는 것 같았다.
왜 기분이 나빠 보이는지 곰곰이 되짚어보니,
‘무대 때문인가?’
아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무대만 잘하자고.
그러자니,
‘아.’
강현성의 기분이 왜 좋지 않은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현재 온리원의 유명세는 양날의 검이었다.
지금 추세로 보자면 온리원은 어지간해선 모든 경연마다 1등을 할 것 같았다.
강현성의 인기로 말이다.
문제는 다른 팀들이 눈에 띄게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리원이 1등을 할 수도 있단 거다.
이는 논란이 될 소지가 분명하거니와,
‘어쩌면 역공당할 수도 있겠네.’
후반부터 1등을 빼앗길 수도 있다.
온리원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잡히면 마지막 경연인 생방송 문자투표에서 다른 팀으로 표가 몰릴 가능성도 분명 있다.
온리원이 엄청난 거대 팬덤을 갖고 있는 거라면야 그런 논란 정도야 덮고도 남겠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중 가장 눈에 띄는 개구리 정도인 거다.
다만 이런 우려를 덮을 수 있을 만한 방법도 분명 존재한다.
간단하고 쉬운 방법.
‘무대를 잘하면 되네. 정말로.’
그냥 온리원이 무대만 잘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다른 팀들보다 분명하게 앞서 있으니 이 기조를 유지만 하면 된다.
쉬운 일이다.
강현성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한데 박영호는 어김없이 명치 쪽이 쓰린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속이 더부룩하고, 기분 나쁜 체기가 몸을 장악한다.
잘해야 하는데.
어제까지도 연습했던 건데.
묘한 압박감이 박영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 * *
“우와아아!”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를 든 제작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훈이 형은 그걸 보자마자 우와와와라며 환호성을 질렀고.
이유는 간단했다.
“진짜 우리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네.”
“우와! 대박!”
그냥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단 게 놀라운 모양이다.
대면식 때는 이렇게 입장부터 카메라가 붙진 않았다.
대기실에서부터 관찰 카메라가 돌았고, 스튜디오로 올라가고 난 후엔 방송용 카메라가 따로 붙었으니까.
한데 지금은 주차장 입장부터 대기실 이동까지 그 과정을 전부 찍는 카메라가 따로 붙었으니 연훈이 형 입장에선 놀랄 만도 하다.
다만 기분이 너무 좋은 걸까.
“감독님은 밥 먹었어요?”
“네?”
“저흰 아침에 샌드위치 먹고 왔어요. 태윤이가 해준 건데 진짜 맛있었어요.”
연훈이 형이 TMI를 남발한다.
카메라 감독은 이런 전개는 예상 못 한 건지 곤란한 얼굴을 했으나,
“어디 불편하세요, 감독님? 표정이 안 좋으세요.”
연훈이 형은 그 불편함이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결국,
“형. 일로 와요.”
“응?”
난 연훈이 형을 억지로 뒤로 데려간 뒤 조용한 운이 형을 앞으로 보냈다.
운이 형은 카메라를 보곤 멋쩍게 웃고는 조용히 대기실로 올라갔다.
그제야 카메라 감독의 얼굴도 편안해졌다.
대기실로 들어가니 구성작가 한 사람이 카메라 사각지대에 앉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이름이 기억 날랑 말랑 하는데
“김민영 작가님!”
연훈이 형이 먼저 반응했다.
맞다.
김민영 작가.
우리의 첫 번째 촬영을 주도해서 찍어갔던 작가다.
보통 저런 건 조연출이 할 텐데 왜 작가가 와서 저러나 싶었기에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만 기억 못 했을 뿐이지.
한데 연훈이 형은 이름과 얼굴 둘 다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 지금 저토록 반갑게 구는 것일 테다.
“작가님 완전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아, 네. 네네.”
“왜 저번 대면식 촬영 때는 없었어요?”
“그, 있었는데, 그때는 제가 현장 안 뛰고 사무실에서 다음 촬영 대본을 쓰고 있었어요.”
“그럼 저희가 보는 대본 다 작가님이 쓰는 거예요?”
“아, 네. 그게 저희 일이니까.”
“우와아.”
과하게 반가워하는 연훈이 형과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김민영 작가의 조합은 나름 소소한 재미포인트가 될 거 같았다.
이걸 나만 생각한 건 아닌 건지 카메라 감독도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걸곤 이 광경을 찍고 있었으니까.
한데,
‘저 작가가 원래 저렇게 부끄럼이 많았나?’
내 기억 속 김민영 작가의 이미지와 지금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분명 첫 만남 때는 살짝 냉하고 드라이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뭐랄까.
‘사람이 왜 이렇게 촉촉해졌어.’
어딘가 감정적인 구석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연훈이 형 보고 입덕한 거 같던데.’
첫 촬영 때 연훈이 형 노래하는 거 보고 팬 된 것 같더니.
아마 요 몇 주 사이에 그 팬심이 더 커졌나 보다.
하긴 작가면 이미 대면식 촬영분까지 전부 봤을 테니까.
그거 자막 달면서 몇 번씩 돌려보다 보면 관심 없던 사람도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테다.
“일단 자리에 다들 착석해 주세요.”
김민영 작가는 금세 예전의 그 드라이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방송을 진행시켰다.
이미 오기 전 오늘 회차의 대본을 받아봤기에 어떤 시간일지 알 거 같다.
“지난 2주간 연습은 많이 하셨나요?”
의례적인 팀 인터뷰 시간인 셈이다.
“네!”
“많이 했습니다!”
우린 롱패딩을 둘둘 두른 채로 답했다.
“다행이네요. 다들 연습 많이 하셨다니까. 좋은 무대 보여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김민영 작가는 마치 대본 읽듯 딱딱하게 말한 뒤,
“그러면 오늘 1차 경연 무대의 순서를 전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우리에게 건네줬다.
연훈이 형이 대표로 나가서 그 종이를 받아왔다.
“지난 대면식 1위를 하셨던 온리원분들이 짠 무대 순번입니다.”
그 말에,
“오.”
“대박.”
형들은 이 정도의 감상을 나눴다.
그치.
무대 1등이 순서 짜는 게 국룰이지.
“하나, 둘, 셋 하면 열까?”
연훈이 형이 뭔가 방송적인 무언가를 뽑으려는 듯 말했지만,
“그냥 열죠.”
“아.”
도승이 형의 건조한 한마디에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우린 종이를 그냥 열어서 순서를 확인했다.
그러곤,
“……응?”
“오…….”
“좋아.”
“나쁘지 않아.”
“순서가 이렇게 됐구나~”
잠깐 리액션이 고장 났다.
하지만 금세 감정을 갈무리하곤 방송용에 어울릴 법한 리액션들을 했다.
온리원에게 통보받은 순서는 이러했다.
1번 블레슈.
2번 원바이원.
3번 세이렌.
4번 루미닌.
5번 온리원.
이상할 거 없는 순서다.
한데 우리를 한가운데에 박아뒀다는 게,
‘견제 안 하는 척하면서 견제하는 거 같네.’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보였다.
맨 앞도 맨 뒤도 아닌 애매한 순서.
무대의 인상이 흐릿해지기 딱 좋은 순서다.
다만,
‘뭐, 순서 안 좋다고 실력이 흐려지는 건 아니니까.’
순서가 중요하긴 하다만 그렇다고 실력을 가려 버릴 정도로 중요하진 않다.
좋은 무대는 어디에 심든 튀게 마련이다.
아니지.
어쩌면 중간에 박아둔 게 신의 한 수가 될지도 모른다.
앞뒤 순번 다 잡아먹으며 어쩌면 엔딩까지 우리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으니까.
“다들 순서 확인하셨나요?”
“네!”
“그 순서대로 지금부터 리허설에 들어갈 예정인데요, 당연히 리허설 시청은 안 됩니다.”
저번 촬영과 비슷한 환경이다.
“그러면, 잠시 후에 무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김민영 작가는 그리 말하곤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대기실에 우리 멤버들만 남게 되었을 때.
“후우우.”
“3번? 우리가 3번?”
“뭐, 누가 됐든 받아가야 했을 순서긴 한데, 조금 아쉽긴 하다.”
형들은 순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방송에 어떻게 나갈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쎄한 장면으로 나가진 않을 것 같다.
3번이란 순서는 누가 생각하든 좋지 않은 순서로 보일 테니까.
어쩌면 차라리 좋지 않은 순서를 받았다는 걸 조금 더 강조해서 우리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태윤이는 순서 맘에 들어?”
그때 운이 형이 다가와서 물었다.
“네, 뭐. 저는 괜찮아요.”
아쉽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다.
“오히려 우리가 중간에 들어가서 앞뒤 무대 다 잡아먹어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내 발언에,
“오!”
“그러네.”
“그래. 차라리 앞뒤 무대 다 잡아먹겠단 일념으로 하자!”
“좋아, 좋아!”
형들은 이상하게 또 사기를 다졌다.
뭐, 어찌 됐든 사기가 올라간단 건 좋은 거니까.
“그럼 가볍게 몸이라도 풀고 있을까? 리허설 시작하기 전까지?”
연훈이 형이 그리 말하며 롱패딩을 스르륵 벗었다.
마치 뱀이 허물 벗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연훈이 형을 따라 다들 패딩을 벗어서 구석에 올려뒀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신기하긴 하다.”
“의상 잘 고른 거 같은데.”
“일로 와봐! 다 같이 사진 찍자, 얘들아!”
연훈이 형은 우리를 한곳으로 모았다.
우린 거울 앞에 서서 단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연훈이 형의 핸드폰 화면 위로 푸른색 도포와 하얀색 저고리 셔츠를 각기 개성대로 갖춰 입은 우리가 떠올랐다.
첫 번째 경연곡 <월야>를 위해 고른 무대용 한복 의상이었다.
* * *
더 쇼케이스2 촬영이 이루어지는 스튜디오 밖.
그곳은 방청에 당첨된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리는 중이었다.
“현성이 셀유돌 결승 문자 인증해 주셔야 받을 수 있어요”
대부분은 강현성의 팬들로 그들은 스튜디오 앞에 모여 도무송, 종이슬로건, 현성 네컷 등의 비공굿을 나누고 있었다.
더 쇼케이스는 5개 그룹이 참여한 방송인데 실제 모인 인원은 강현성 팬덤뿐이니 아이러니한 면이 있었다.
다만 한쪽 구석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여성은 강현성 팬덤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건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집에 갈까, 라는 것을.
[오늘 새오빠 못 찾으면 탈케하겠읍니다.]라는 주접을 떨며 파랑새에 방청 당첨 포부를 밝히긴 했다만 막상 오고 보니 마음이 이미 떴다.
관심 가는 그룹이 없으면 휴식기를 가지면 될 걸 굳이 나서서 덕질할 걸 찾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이번에 덕질할 멤버를 못 찾으면 진짜 덕질 휴식기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때마침 스튜디오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입장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제법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되나 보네?’
강현성 팬덤이 아닌 사람들도 꽤 되나 보다.
손에 아무것도 안 들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으니까.
그녀는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스튜디오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진 몰랐을 거다.
그날 본인이 집으로 돌아가 흥분에 가득 차서 후기글을 찌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