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8화
방금 막 리허설이 끝났다.
“감사합니다!”
우린 리허설을 위해 힘써준 제작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곤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방금 무대 할 때 간격 너무 좋았어요. 연습실이랑 사이즈 다른 거 알고 센스 있게 다들 조절한 거 맞죠?”
“그러니까! 한 큐에 다들 따닥! 좋았어!”
형들은 대기실로 이동하며 방금 한 리허설에 대한 셀프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큰 문제 없이 리허설이 끝나설까.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리허설 때 동작 실수하거나 가사 실수하면 본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한참을 신경 쓰게 된다.
한데 그런 것 없이 깔끔하게 끝났으니 이토록 개운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였다.
“대기실이다아!”
“한 10분만 쉬자!”
“좋아요~”
대기실로 돌아오고 난 후 형들은 소파 위에 풀썩 하고 쓰러졌다.
난 소파 맨 끝자리에 엉덩이만 대충 걸치고 앉았다.
그러자 운이 형이 다가와 옆에 앉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아까 리허설 어땠어?”
“좋았어요.”
“그래?”
갑자기 뭔가 할 말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내 무대에서 운이 형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걸까.
어딘가 본격적인 느낌이다.
“요새 춤 외우는 속도가 엄청 빨라진 거 같아. 이번 안무도 내가 보여주자마자 한 번에 다 외웠잖아.”
춤 외우는 속도가 빨라졌단 말에 난 또 한 번 뜨끔했다.
이건 내 실력이 아닌 ‘통찰’을 통해 일궈낸 거니까.
“디테일은 형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죠.”
난 대충 이리 말하며 멋쩍게 웃어봤다.
“그런데 태윤이는 카메라 볼 때 시선을 조금 더 꽂아버리듯이 하면 느낌 더 살 것 같더라.”
그때 운이 형은 이게 본론이라는 듯, 숨을 한 번 고르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꽂아버리듯이요?”
“응. 지금은 조금 기계적인 느낌이 나거든. 눈이 건조하다 해야 하나?”
이 말을 하기 위해 서두에 칭찬 한번 깔고 들어온 모양이다.
수정사항 말하기 전에 칭찬 한 줄 건네는 건 기본 세팅 같은 거니까.
“건조한 눈이라.”
난 방금 하고 온 리허설 무대를 복기했다.
내 개인적으론 크게 문제없다 생각한 무대였다.
동작들 다 맞췄고.
뚝딱대는 느낌도 없었으며.
맡은 파트도 튀지 않게 잘 소화해냈다.
다만,
‘아.’
운이 형이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태윤이 눈이 약간 정해진 일을 하는 사람 같은 눈이야. 좀 더 무대가 좋다는 듯이, 벅찬 눈빛? 아니면 몰입한 눈빛? 그런 눈빛으로 카메라를 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운이 형은 그리 말하곤 미소를 지은 뒤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난 자리에 남아서 운이 형이 해준 말을 되새김질했다.
정해진 동작을 하고, 정해진 파트 부르면 무대는 문제없이 끝낸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방금 말을 듣고 나니 셀프 모니터링이 되며 뭐가 문제였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문제를 여러 가지 언어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가장 정확한 워딩은 아마도 이거일 테다.
‘아이돌 자아가 부족한 게 이렇게 걸리네.’
바로 나 스스로를 얼마나 아이돌로 정의하고 있는가.
사실 이게 말장난 같은 부분이면서 은근히 무대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거였다.
난 아이돌 자아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소설가 자아이거나, 아니면 작사가 자아에 가까웠다.
무대를 잘할 생각보단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에 더 골몰했고, 잘 꾸민 무대를 어떻게 대중들에게 팔아치울지를 고민하는 중이었으니까.
사실 시간을 뛰어넘어 이 생에 도착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반면 웹소설 작가로는 3년 넘게 살았고.
나 스스로를 아이돌로 인지하지 못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저 도승이 형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었을 뿐이지.
‘눈빛을 카메라에 꽂아버리듯 쳐다봐?’
난 운이 형이 한 말을 떠올리며 대기실 거울을 쳐다봤다.
그러곤 다른 형들이 하듯 눈빛을 조금 더 감정적으로 바꿔보려 했다.
거울 속 나를 카메라라 생각하고 시선을 꽂아버리듯 쳐다봤는데…….
‘……미친.’
도저히 맨눈으로 더 볼 자신이 없어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취한 사람처럼 보인다.
내 얼굴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조금 싸가지없이 생긴 건 나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저게 뭐야.’
방금 거울을 통해 보고 온 내 얼굴은 자아도취가 심해 나 외의 인간은 다 벌레 취급하는 사람 같았다.
전생에 썼던 소설 중 이런 빌런이 있었는데.
그 빌런 반응이 아주 안 좋았다.
메인 빌런으로 상정하고 만들었는데 독자 반응이 끔찍해서 등장 후 3화 만에 죽여 버렸다.
방금 그 표정을 실제 방송에서 지었다간 나도 더쇼케 3화 안에 사회적으로 사망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눈빛을 다채롭게 써야 할 거 같은데.
‘흐음.’
도무지 쉽지가 않다.
난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동영상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눈빛 좋은 아이돌이란 무엇인지.
아이돌 자아 가득한 인간들의 무대 영상들을 참고했다.
* * *
박수철 피디를 비롯한 더 쇼케이스2 제작진들은 무대를 빤히 바라봤다.
방금 막 온리원의 리허설 무대가 끝이 났다.
이걸로 오늘 올라갈 5개 무대의 리허설이 전부 끝난 셈이었다.
“온리원 애들이 확실히 잘하긴 하네.”
“그러니까요.”
“강현성이 중심을 딱 잡으니까 어지간한 부분들은 다 수납되는 거 같기도 하고.”
제작진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온리원 리허설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다만,
“아까 그 친구가 온리원 막내랬지?”
“아, 네.”
온리원의 막내 박영호가 박수철 피디 눈에 밟혔다.
온리원 무대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무대였다.
하지만 마지막 댄스 브레이크 부분에서 막내가 동선 실수를 저질렀다.
큰 실수는 아니고 원래 나가야 할 보폭보다 한 걸음 덜 나간 거였다.
차라리 한 걸음 더 나간 거면 상관없을 텐데.
덜 나가다 보니 옆에 서 있던 강현성과 동선이 겹칠 뻔했다.
강현성은 그런 박영호를 옆으로 치워 버린 후 아무 일도 없단 듯 댄스 브레이크를 이어갔다.
실수야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강현성이 처리도 깔끔하게 해서 박수철을 포함한 몇몇 제작진들 외에는 눈치도 못 챘고,
다만 리허설 후 박영호의 상태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과하게 강현성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해야 하나.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일단 리허설엔 큰 문제가 없었으므로 그대로 대기실로 내려가긴 했으나,
“박영호 오늘 좀 예의주시하자. 얘가 멘탈이 약한 거 같으니까.”
“네.”
어쩐지 뭔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박영호가 우리 출연진들 중에 제일 막낸가?”
대뜸 이런 게 궁금해졌다.
“아, 아뇨. 출연진들 중 가장 어린 친구는 세이렌 봉태윤인데요?”
“아 그래? 전혀 몰랐네.”
“그 친구가 어딘가 성숙한 느낌이긴 하죠.”
“박영호가 나이에 비해 좀 더 어린 느낌이기도 하고.”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봉태윤에 대해 생각했다.
대충 이야기 들어보니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형들한테 기 안 죽고 할 말 다 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팀 방향성이 봉태윤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느낌도 들었고.
노래나 춤, 외모적인 부분까지도 어느 것 하나 모난 데 없는 멤버였다.
다만,
“그 친구가 무대가 살짝 약하지?”
“봉태윤 씨 무대요? 약한가? 막 기억에 남진 않은 거 보니까 눈에 띄진 않은 거 같은데요?”
“무대보다는 뒤에서 아이디어 짜내는 쪽인가.”
“네?”
“아냐. 그냥 괜히 우리 방송 막내들 상황이 궁금해서. 어린 애들이 열심히 살잖아.”
“그 열심히 사는 어린 애들 울려서 돈 버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하하하! 그것도 맞네.”
박수철과 제작진 사이의 사담은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었다.
리허설도 다 끝냈으니 이제 슬슬 본격적인 촬영을 준비할 때였다.
“시간 되면 방청객들 들여보내고, 우리도 방송 준비하자.”
“네에~”
더 쇼케이스2 첫 번째 경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대기실에 앉아 눈빛 연습을 하고 있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형들은 안무도 가볍게 맞춰보고, 간식거리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난 그동안 계속해서 눈빛 레퍼런스를 찾아보는 중이었고.
연훈이 형이 뭘 그렇게 보냐며 다가와서 앵기긴 했지만 그마저도 뿌리치고 영상을 봤다.
무언가 감이 잡힐 듯하면서도 안 잡혔으니까.
사실 이걸 이렇게까지 열심히 볼 필요가 있나 싶었다.
다만 지적을 한 번 받고 나니 그동안의 문제들이 한 번에 다 확인이 되는 느낌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내 역량이 부족한 문제로 팀에 불이익이 생기면 안 되니까.
특히나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는 더더욱.
그때,
“태윤아. 이제 촬영 시작한대.”
“아, 네.”
운이 형이 그리 말하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눈빛에 살짝 미안함이 맴도는 거 같다.
자기가 한 말 때문에 내가 계속 눈빛을 신경 쓰는 것 같아 미안한가 보다.
“미안할 거 없어요, 형. 어차피 고쳐야 했을 문제니까요. 짚어줘서 고맙죠.”
“그, 그래? 고마워?”
형은 멋쩍게 웃고는 내 옆에 앉았다.
우린 대기실에 설치된 모니터 전원을 켰다.
무대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는 스튜디오 상황이 어떤지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모니터 전원이 딱 하고 올라가자,
“헉!”
“와.”
스튜디오에 들어온 방청객들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150명 정도 모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막상 보니 생각보다 많다.
“이만한 인원 앞에서 무대 하는 거 진짜 오랜만인데?”
“재밌겠다!”
“사람 은근 많네요~”
형들은 관객이 생기니 더 흥이 난 모양이었다.
반면,
‘쉽지 않네.’
관객이 생기니 이상하게 더 긴장이 된다.
아니지, 긴장을 더 하는 게 당연한 거지.
저 형들이 너무 무대 체질인 거다.
난 긴장감을 떨치려고 애썼다.
다만 한 번 뇌가 긴장했다라는 인식을 하고 나니 좀체 상태가 나아지질 않았다.
일단 오늘 무대부터가 조금은 위험부담이 있다.
우리 무대가 별로인 게 아니라 다른 무대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까.
대면식 무대는 어떤 무대가 나올지 내가 전부 알고 있었다면 이번엔 아니다.
내가 알던 미래의 미션과는 다른 미션이 나왔으니 말이다.
물론 타 그룹들 실력을 아니 예상범위 안의 무대가 나올 거라 생각은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건 언제나 있으니까.
과한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지려는 찰나
“태윤이 얼굴 왜 이렇게 죽상이야~”
내 옆에 동준이 형이 와서 앉았다.
그러곤 자연스레 어깨에 팔을 두르곤 날 쳐다봤다.
“무대 전이라 긴장돼?”
“아, 네.”
“너무 긴장하지 마~”
동준이 형은 세상 태평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동준이 형의 태평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형은 눈웃음을 지으며 날 빤히 쳐다보더니
“무대 망치면 뭐 아이돌 때려치우면 되지~ 내가 집 한 채 내줄 게 거기서 살어~ 너 하나 먹여 살릴 돈은 되거든.”
이게 부담을 주는 건지 아닌지 애매한 말을 했다.
한데 그 말을 듣자,
“하.”
이상하게 헛웃음이 나며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치.
동준이 형 재력이야 뭐.
한번 환기가 되고 나니 무거웠던 생각들이 많이 정리가 됐다.
그러곤,
“무대는 안 망칠 거고 아이돌도 안 그만둘 거예요. 대신 집은 좀 받아갈게요.”
“뭐? 하하하!”
나도 형에게 농담을 건넸다.
이제야 조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또 무대를 찾아와준 방청객 여러분!
-저희는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MC를 맡은 개그맨 김영진.
-가수 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때마침 MC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제 진짜 1차 경연의 시작이었다.
난 숨을 골랐다.
더 이상의 생각은 독이다.
이제 무대에 집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