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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9화 (29/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9화

새오빠 찾겠다며 찾아온 방청객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도 미심쩍은 눈초리로 주변을 훑었다.

이게 강현성 사녹인지 더쇼케 전체 방청인지 헷갈릴 정도로 팬덤 분포가 불균형했다.

‘그냥 힘만 빼고 가는 건 아니겠지?’

사실 이미 불쾌지수가 꽤 쌓인 상태였다.

추운데 밖에서 덜덜 떨며 기다린 것.

내부로 들어와서도 또 한참을 대기한 것.

그리고 강현성 팬들이 자기들끼리만 너무 극성인 것까지.

사실 얼추 다 예상하고 온 것들이었으나 막상 몸으로 겪으니 살살 대미지가 쌓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무대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곧 촬영 시작일 텐데 아무 일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스태프들이 움직이는 경우도 거의 없다.

원래 이렇게 고요한 편인 건가 싶을 찰나,

탁!

“어어?”

“뭐야?”

“헉!”

“시작하려나 보다!”

스튜디오 조명이 전부 꺼졌다.

카메라 불빛만 은은하게 빛나고.

그 외 광원이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

묘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조명이 일제히 돌아옴과 동시에.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또 무대를 찾아와준 방청객 여러분!

-저희는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MC를 맡은 개그맨 김영진.

-가수 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MC 두 사람이 무대 위로 나타나 멘트를 쳤다.

암전 후 등장이라는 클래식하지만 효과 좋은 장치를 써서일까.

“와아아아아!”

환호성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새오빠 찾으러 온 방청객조차 본인도 모르게 어어어! 하며 소리를 내질렀을 정도니까.

-자,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 벌써 대면식까지 치르고 난 후 1차 경연까지 도착을 했는데요, 나현 씨! 지난 대면식 무대 어떻게 보셨나요?

-5개 팀들의 파이팅 넘치는 무대를 보니까 제 신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더라고요.

나현과 김영진은 방송에 나갈지 안 나갈지도 모를 멘트들 주고받으며 분량을 채우고 있었다.

이 자리에 앉은 방청객들 대부분이 저 멘트의 90프로가 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망돌들 보며 자신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던 나현의 말에서 몇몇 사람들은 속으로 웃음을 삼켜야 했다.

‘대형에서 그룹으로 데뷔한 후 침체기 없이 활동했던 거 같은데.’

나현과 망돌들 사이엔 넘으려야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워낙에 크니까.

다만 어차피 작가들이 써준 멘트 읊는 것일 테니 나현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몇 차례 별 영양가 없는 멘트들이 이어지고 난 후.

-이번 1차 경연의 주제, , 색깔로 꾸린 무대의 첫 번째 선을 보일 팀을 소개해 드릴까요?

-멤버 모두가 메인보컬이자 메인댄서인 실력파 그룹이죠. 블랙으로 무대를 꾸린 블레슈의 무대.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무대 소개가 이어졌다.

스튜디오에 모인 방청객들이 이전보다 큰 환호성으로 블레슈를 맞이했다.

조명이 꺼지고.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오오?”

다섯 명의 남자들이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검은색 옷으로 다들 깔맞춤을 한 상태였다.

검은색 가죽 바지에 라이더 재킷.

새오빠 찾으러 온 방청객은 눈을 빛내며 무대를 바라봤다.

일단 전부 초면인 건 어쩔 수 없다.

예고편을 보며 그룹별 멤버들 얼굴을 얼추 외워오려고 했다.

하지만 남정네들 수십 명의 얼굴을 한 번에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다 보니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다.

그나마 블레슈라는 그룹에서 기억에 남는 건 리더 정도였다.

지금 센터에 서서 비장한 얼굴로 카메라 노려보고 있는 멤버 말이다.

어떤 곡을 하려나 싶은데,

지지지지직──

일렉기타 코드를 잘못 연결했을 때 날 법한 스크래치 가득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EVERYBODY!

-HOLD ON.

리더의 외침을 시작으로.

“오?”

도입부터 댄스 브레이크를 갈겨 버린다.

“오오!”

아까 전에 MC들이 했던 말이 장난이 아님을 확 체감할 수 있었다.

전원이 메보에 메댄이라고.

신인의 패기로 젖 먹던 힘까지 끌고 와 쓰는 건지 춤 하나하나가 칼각이었다.

거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데도 피치가 떨어지는 구간이 없었고.

새오빠 찾으러 온 방청객은 그간의 피로가 일정 부분 날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탈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역시 타고난 취향은 바꿀 수 없는 건가 싶어지려는데,

‘아, 음.’

1분 정도 지났을 때부터.

어딘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구성과 익숙한 안무.

심지어 익숙한 편곡이다.

블랙, 하면 떠올릴 수 있을 법한 클리셰의 총체.

창의성이나 와우 포인트가 전혀 존재하질 않았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거라곤 저 미친 듯한 연습량.

문제는 저게 멋있어 보인다기보단,

‘아이고야…….’

안쓰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빛이 난다기보단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다만 클리셰적인 구성보다 더 큰 문제는 멤버들이 눈에 확 띌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단 거였다.

춤을 잘 추긴 하나 저만큼 추는 아이돌은 흔하며.

노래를 잘하긴 하나 저만큼 부르는 아이돌도 흔하다.

비주얼이 나쁜 것은 아니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도 아니며, 무대에서 끼를 부리며 시선을 끌어모을 줄 아는 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하고 실력도 준수하나 인상에 남긴 어려운 팀.

이 정도로 정리가 가능했다.

비단 그녀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시작된 첫 번째 무대라 초반 반응은 분명 좋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슬슬 딴짓하네.’

격렬하게 흔들던 응원봉이 점차 느려진다.

눈에 띄게 관객 반응이 줄었다.

이내 블레슈의 무대가 끝나고.

-파이팅 넘치는 블레슈의 무대! 어떻게 보셨나요?

-연습을 많이 하셨다는 게 확 체감되는 무대였던 것 같네요.

다시 MC들이 나와서 멘트를 친다.

이마저도 창의성 없는 구색 맞추기용 멘트다.

원래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MC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느낌이 되는 걸 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앞선 무대에서 흥미가 안 느껴져서일까.

저런 매뉴얼 같은 멘트들 마저 다소 껄끄럽게 느껴진다.

다만 방청객의 본분에 맞춰 그에 따른 리액션 좀 넣어주고.

환호성도 적절하게 질러줬다.

-이제 다음 무대 만나 보실까요?

-힙합을 베이스로 한 강렬한 사운드가 특징인 그룹이죠. 레드로 무대를 꾸린 원바이원의 무대.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무대는 또 어떨지 모르니까.

힙합이라고 하니 이전과는 분명 다른 느낌의 곡일 거다.

레드가 컨셉이라고 하니 분명 블랙보다 조금 더 색감적으로 다채로운 느낌이 들 테고.

한데,

‘뭐야?’

레드라더니 무대 위엔 정장을 빼입은 남정네 다섯이 올라왔다.

그것도 무대용 정장이 아닌 진짜 직장인들이 입을 법한 일반 정장.

넥타이도 없고 셔츠도 대충 아무거나 찾아 입은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저런 옷을 입었다기보단,

‘조폭?’

한국 조폭 영화에 나오는 착장을 따라 한 모양이다.

곳곳에 금목걸이나 금팔찌 같은 소품들을 착용한 걸 보니까.

이번 무대는 음악이 시작하기 전에 액팅(acting)이 먼저 있나 보다.

한 멤버가 가운데로 나오더니.

정장 안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곤,

탕!

멤버를 쐈다.

“악!”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방청객들 몇몇이 비명을 지른다.

이내 무대 조명이 꺼지고.

다시 무대가 밝아졌을 때.

‘저게 진짜 뭐야?’

아까 그 총을 쏴서인가.

셔츠 깃과 얼굴에 핏자국이 묻어 있다.

설마 고작 피 저거 조금 묻은 걸 지금 레드라고 하는 건가?

뭐가 됐든 무대만 잘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이 길거리를 우리가 접수

-이 구역에서 이젠 돈 벌어

-내 형제들 난 절대 안 잃어

‘존X 구려.’

멜로디랑 안 맞는 이상한 랩이 들어간다.

조폭 영화 느낌 살리려고 억지로 넣은 게 너무 티가 나는 랩이다.

갑자기 돈 얘기랑 형제 얘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

관객 반응이 끔찍하다.

망돌이라 해도 구색은 갖출 줄 알았는데,

‘대체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야?’

이건 정도가 심하다.

만일 이게 저 멤버 중 한 사람의 아이디어라면 그 사람은 아이돌 관둬야 할 거다.

다만 이런 경우는 아이돌이 스스로 찾아서 했다기보단,

‘망돌 회사니까 감 없는 대표가 나섰겠네.’

이게 합리적인 그림이다.

그 대표는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보다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던 청년들의 가능성을 본인의 손으로 망쳤으니까.

설사 잘된다 하더라도 두고두고 놀림당할 소스였다.

이건 뭐 애교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대표가 전날 밤에 조폭 영화라도 보고 잔 거야 뭐야.’

방청객은 안쓰러운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이게 못할 거면 완전히 못하는 게 임팩트라도 있을 텐데.

이 거지 같은 컨셉을 살리려고 멤버들 전원이 사활을 걸고 춤을 추는 중이니 구리다는 인상이 묘하게 중화된다.

구리게 갈 거면 확 구리게 가서 깊은 인상이라도 남기는 게 나을 텐데.

이젠 인상마저 흐릿해진다.

그냥 구린 무대 했던 망돌 1로만 자리 잡을 느낌이다.

새오빠 찾으러 왔던 방청객은 혀를 쯧 하고 찬 뒤 영혼 없는 눈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이미 두 개의 무대가 성에 안 찬 상태다.

그나마 있던 흥미마저 팍 식어버렸다.

‘이래서 대형에서 나온 아이돌들 좋아하는 건가.’

내 새끼들이 방송 나와서 이런 무대 하고 돌아갈 거 생각하니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원바이원의 무대가 끝나고.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온 듯한 원바이원의 무대가 아니었나 싶네요.

MC들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 편의 영화로 마스터피스를 가져온 게 아니라 싸구려 도메스틱 느와르를 가져온 게 문제였단 건 모두가 입 꾹 닫고 흐린눈을 하는 중이다.

-이제 다음 무대를 만나 볼 시간인데요, 이번 무대는 어떤 무대인지 나현 씨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이번 무대는 지원 영상에서 한차례 화제가 됐던 팀이죠. 세이렌분들의 무대입니다.

흥미가 식을 뻔했던 방청객의 시선을 다시 잡아당기는 멘트가 나왔다.

‘세이렌?’

다른 그룹들은 다 못 외웠어도 이 그룹은 얼추 다 외웠다.

타 그룹들보다 비주얼이 전체적으로 괜찮아서도 있지만

‘얘네가 온리원이랑 겹친 걔네구나.’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블루로 무대를 꾸몄다고 하는데, 세이렌분들의 곡은 무려 자작곡이라고 합니다!

셀프 프로듀싱까지 한단다.

‘오.’

얼마나 잘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분명히 차별화되는 요소다.

-그럼 세이렌분들의 무대 만나 보고 올까요? <월야>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월야>?’

방청객은 MC가 남기고 간 곡의 제목을 속으로 되뇌며 무대를 바라봤다.

또다시 암전.

이후 다시 조명이 켜졌을 때,

‘어?’

예상 밖의 그림이 펼쳐졌다.

무대 위엔 세이렌 전원이 올라온 게 아니었다.

메인댄서인 이운 홀로 서서 포즈를 잡고 있었다.

그 위로 푸른 느낌이 드는 핀 조명 한 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한복이야 저거?’

메인댄서가 입은 의상이었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무대용 한복 의상이다.

은은한 푸른색이 감도는 도포가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당- 다아앙- 당.

“오오!”

국악기 중 현으로만 이루어진 선율이 흘러나왔다.

서양 현악기가 주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른 느낌의 사운드들이었다.

그에 맞춰 부드럽게 팔다리를 뻗는 메인댄서.

마치 한국 무용을 보는 듯 우아한 몸동작이었다.

도포 자락이 무대를 휩쓸고.

옷감에 닿은 푸른 조명이 가볍게 부서지며 어딘가 서늘한 느낌마저 주는 찰나.

메인댄서의 독무가 끝나고,

탁.

다시 한번 무대가 암전됐다.

적막이 이어진다.

묘한 기대감으로 모두가 입을 꾹 닫고 있던 중.

당- 다당-

쿵!

현악기로만 이루어졌던 멜로디 뒤에 북소리가 들어가고.

국악기만이 아닌 서양 악기까지 들어오며 사운드가 풍성해졌다.

탁.

조명이 다시금 밝아지며 대형 전광판에 커다란 달이 떠올랐다.

푸르고 서늘한 느낌에 몸이 잠시 떨린다.

커다란 달을 배경으로 세이렌 멤버 다섯이 서 있었다.

한치 흔들림 없이 곧은 자세.

결연한 표정.

풍성하게 깔리는 국악 사운드.

센터에 선 멤버가 손을 뻗어 허공을 훑는다.

이윽고.

-깊고 어둔 밤. 잠 못 이룬 날.

-부드럽게 휘어감아.

-망망한 창공에 푸른 달빛은.

-또 날 거리로 내몰고.

메인보컬의 한 맺힌 음성이 카랑카랑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새오빠 찾으러 왔던 방청객은 눈을 번쩍 떴다.

직감이 외쳤다.

여기가 바로 누울 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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