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31화
“흐으읍……! 우으으…….”
연훈이 형 수도꼭지가 터지기 직전이다.
저 형은 다 좋은데 눈물이 너무 많다.
뭐만 하면 울어버리니까.
하도 많이 울어서 살이 빠진 적도 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연훈이 형이 울 때 너무 서럽게 운단 거다.
예쁘고 청초하게 우는 거라면 막지 않고 보여주겠다만 연훈이 형 우는 건 뿌에에엥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다.
물론 팬들 눈에야 그것도 귀여워 보이겠다만 지금은 ‘엥? 쟤 왜 갑자기 즙 짬?’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
어떻게 수습하거나 막기도 전에,
“아이고야.”
“오…….”
연훈이 형 눈물샘이 결국 터졌다.
무대 위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관객들도 살짝 멍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결국 터져 버렸으니 이거 오래 갈 거다.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운이 형이 연훈이 형을 꼬옥 안아줬다.
연훈이 형은 운이 형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는 음소거로 울기 시작했고.
그래 뭐.
이 정도면 나름 특색 있는 마무리겠지.
난 슬쩍 무대 아래를 내려봤다.
관객들이 눈가에 미소를 건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이 꽤 재밌었나 보다.
“울지 마!”
“괜찮아!”
이젠 격려의 말까지 쏟아진다.
“감사합니다! 세이렌이었습니다! 하하하!”
우린 빠르게 무대를 수습하곤 백스테이지로 내려갔다.
우리가 내려가자 MC들이 무대로 올라갔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세이렌 무대에 대한 등급 투표를 실시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내 등급 투표가 시작되었다.
반응만 봐서는 생각보다 높은 등급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강현성 팬들 위주의 방청객이라 점수가 낮을 것 같았는데,
‘반응은 그런 거랑 관계없이 좋았으니까.’
생각보다 좋은 분위기였다.
열성적으로 악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늑대 수인 컨셉이 나올 땐 진심으로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끝까지 별 호응 없이 아니꼽단 듯 우릴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만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초반부터 광역 어그로 끌며 적까지 같이 끌어안아 버렸으니까.
그러니 이 정도라면,
‘생각보다 선방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다.
백스테이지를 돌아 대기실로 돌아오고 나자,
“형 이제 괜찮아요?”
“……응.”
연훈이 형이 눈물을 그쳤다.
두 눈가가 팅팅 부어서 눈이 반토막 나긴 했다만 눈물이 멈췄으니 그걸로 됐다.
“하아아. 잘 끝나서 다행이다아!”
그때 동준이 형이 기지개를 쭉 켜며 그리 말했다.
그간 쌓였던 긴장이 단번에 풀린 모양이다.
“그러니까. 반응 엄청 좋았어.”
도승이 형도 방금 무대가 꽤 좋았나 보다.
평소보다 얼굴이 훨씬 환하다.
“이렇게까지 관객분들이 호응해 주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운이 형은 아직도 무대의 여운에 젖은 듯 표정이 몽실몽실했다.
“우리가 잘한 거잖아요.”
형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이제야 조금 뿌듯했다.
사실 저번 무대 5등 한 게 꽤 미안했었다.
어쨌든 내가 낸 아이디어였으니 말이다.
물론 5등 해서 임팩트 챙긴 것 같아 다행이긴 했는데,
‘미안한 건 또 별개니까.’
사람 마음은 한 갈래가 아니라 수십 갈래니 이런 양가 감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해서 오늘 이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우리 실력에 대한 재평가를 받은 거 같아서.
“……태윤이랑 도승이 진짜 수고 많았어.”
연훈이 형이 멍한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아직 울음기가 다 안 빠져서 멍한 얼굴인 채였다.
“아이고, 형. 눈물부터 다 그치고 말해요.”
내가 이리 받아치자
“이익! 칭찬해 줘도 뭐라 그래!”
연훈이 형이 소파 쿠션을 내 쪽으로 던지며 성을 낸다.
대기실에 잠깐 웃음이 번졌다.
“근데 진짜 도승이랑 태윤이 덕분에 이번 무대가 더 잘 살아난 거 같아.”
운이 형이 연훈이 형 말을 이어받으며 말했다.
“도승이가 찍은 반주에 태윤이 가사 붙이니까 진짜 너무 잘 어울렸어. 이번 무대는 좋은 곡이 있어서 완성될 수 있었던 거 같아.”
난 살짝 경탄의 표정을 지은 채 운이 형을 바라봤다.
저런 좋은 말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할 줄 아는 건 의외로 드문 재주니까.
운이 형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이 조금 더 살 만해질 텐데.
반면,
“그, 그러냐?”
운이 형 같은 사람이 있다면 도승이 형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좋은 말을 하지도 못하거니와 들으면 몸이 배배 꼬이는 사람.
도승이 형은 무슨 알레르기라도 있는 사람처럼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저런 칭찬이 듣기엔 좋은 건지 표정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저렇게 양극단으로 다른 두 사람이 대체 왜 저렇게 친한 건가 싶었다.
한 사람은 칭찬봇이고 한 사람은 칭찬 들을 때마다 뚝딱이는 사람인데.
뭐 그래서 더 친해진 걸지도 모르겠지.
“맞다, 태윤이도 마지막에 눈빛 그거 좋았어!”
그때 운이 형이 나에게 칭찬을 한 번 더 했다.
“예?”
뜬금없이 들어온 칭찬에 이번엔 내가 고장 났다.
“마지막에 포즈 풀고 살짝 뒤돌아보니까 너 엔딩 표정 유지하고 있더라. 근데 그때 엄청 눈빛 좋던데?”
“아…….”
그거 아무도 못 봤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들키니 기분이 묘하다.
“뭐야? 봉태윤이 이제 뭐 눈빛으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할 줄 알게 된 거야?”
동준이 형은 장난스레 말하며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싫단 듯 반응하자,
“기썬을! 제압해!”
동준이 형은 더 신나서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아 좀. 형.”
“아 쫌! 혀어엉!”
“하하하하!”
다시 한번 대기실에 웃음이 번져갔다.
그때 누군가 우리 대기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제작진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지금 세이렌 팀 인터뷰하러 이동하겠습니다.”
“네엡!”
팀 인터뷰 따러 가잔다.
우린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 인터뷰룸으로 이동했다.
* * *
온리원의 대기실 안.
그곳 분위기는 얼어붙은 상태였다.
방금 막 세이렌의 무대가 끝이 났다.
처음부터 분위기가 이리 안 좋은 건 아니었다.
강현성 혼자 조용히 있고 나머지 멤버들은 한두 마디씩 수다를 떠는 정도의 분위기였다.
강현성도 방송에 쎄하게 나가지 않을 정도로는 멤버들과 어울려줬고.
한데 세이렌이 무대에 나오자 강현성이 입을 닫았다.
그 탓에 멤버들도 눈치를 채고 모니터를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단순히 경쟁자 모니터링 정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작곡이야?”
“와…….”
세이렌의 곡이 자작곡임을 알았을 때.
강현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물론 타인이 보기엔 똑같은 무표정일 거다.
하지만 같은 온리원 멤버들이 보기엔.
특히나 눈치를 많이 보는 막내 박영호가 보기엔 그 차이가 분명했다.
이후 무대가 진행되고.
생각보다 곡의 퀄리티가 훌륭하단 걸 알았을 때.
그때부터 강현성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곡 좋다…….”
팀 내 누군가가 이리 말하자,
“그러게. 곡 좋네.”
강현성이 이리 받아쳤다.
그냥 들으면 의견에 동의하는 말 같았으나 묘하게 가시가 돋아 있는 것 같았다.
세이렌의 무대는 곡만 좋은 게 아니었다.
코레오나 전체적인 요소들의 조합까지도 좋았다.
마지막.
이게 단순히 사극풍 노래가 아닌 늑대 수인 컨셉까지 합쳐진 무대임을 알았을 때.
“오…….”
“대박…….”
몇몇 멤버들은 진심으로 감탄했고.
“잘하네, 세이렌분들.”
강현성까지 조금 진정성 있는 말투로 세이렌을 인정했다.
그때부터였다.
대기실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은 것은.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고.
눈치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들 입을 닫고 세이렌 무대를 바라만 보게 되었다.
아마 각자 다른 이유에서일 터였다.
경쟁팀의 좋은 무대를 보고 위기감을 느껴서.
아니면 그저 무대 자체에 압도되어서.
혹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의 심기가 불편한 거 같아 눈치가 보여서.
박영호는 강현성의 얼굴을 살폈다.
그때 강현성과 박영호의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뇨. 하하.”
“왜 그렇게 빤히 봐?”
“아, 아니에요.”
“그래?”
강현성은 그리 말하곤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세이렌이 무대에서 내려갔다.
내려가기 전 무슨 소란이 있던 거 같은데 강현성과 대화하느라 놓치고 말았다.
박영호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상하게 몇 달 전부터 이 체기가 내려가질 않는다.
오늘은 먹은 것도 없는데 체한 것 같다.
“속 안 좋아?”
강현성이 묻자,
“아뇨. 괜찮아요.”
박영호는 습관적으로 괜찮다 말했다.
다만 가슴 어딘가가 답답하고 꽉 막힌 듯한 느낌은 좀체 사라지질 않았다.
* * *
팀 인터뷰가 끝이 났다.
인터뷰 내용은 저번 대면식 때와 크게 다른 게 없었다.
무대 준비하느라 어떤 게 힘들었는지.
이번 무대 잘한 거 같은지.
후회는 없는지.
이런 부분들이었다.
다른 점은 저번보다 자작곡에 대한 파트가 길어졌다는 거다.
“그러니까 victory0505가 도승 씨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왜 처음엔 숨기고 나왔던 거였어요?”
“그게, 사정을 설명하자면 복잡한데요. 처음에 태윤이가 제 계정을 들고 와서 갑자기…….”
이미 저번 연습 영상 찍으러 왔을 때 한번 말했던 건데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말하고 있다.
그만큼 자작곡 문제가 중요하단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욕 좀 먹을지도 모를 요소일 수도 있다.
타인이 보기엔 어그로 끌려고 굳이 이름 안 밝혔다가 나중에 밝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다만 이 부분에선 우리끼리 떳떳하면 된다.
도승이 형이 계정을 공개하기 꺼려했던 이유가 분명하니까.
“제가 작업물에 자신이 없고, 또 이게 저라는 걸 밝히면 너무 과한 기대가 쏠릴 것 같아 숨기려 했다가, 고민 끝에 이렇게 밝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작곡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무대 전체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우린 인터뷰룸에서 나온 후 대기실로 돌아갔다.
“끄아아아!”
동준이 형이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기지개를 켠다.
그러곤 소파에 풀썩 쓰러졌다.
우리도 동준이 형을 따라 소파에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루미닌의 무대가 끝이 났나 보다.
지금 막 아웃트로가 지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저 사람들이 어떻게 무대를 했나 궁금했기에 조금 아쉬웠다.
우리한테 의도적으로 블루를 준 놈들이 얼마나 잘 준비했나 싶었으니까.
다행인 점은,
‘반응 별로네.’
그다지 인상 깊은 무대는 아니었나 보다.
관객 반응이 시원찮다.
루미닌 멤버들 표정도 안 좋고.
아마 우리 뒤에 해서 더 역체감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루미닌보다는 우리가 실력이 좋을 테니까.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루미닌 무대에 대한 등급 투표를 실시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때마침 루미닌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등급 투표가 시작되었다.
난 무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후 루미닌에 대한 투표가 마무리되고.
무대는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우리 대기실도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이제 곧 온리원의 차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건 연훈이 형이었다.
“……이제 온리원분들 나오시겠네?”
“그러니까요.”
“기대된다.”
다들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이유론 반응 잘못했다간 욕 바가지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실이긴 하나 관찰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말이다.
처신 잘해야 방송에서 살아남는단 걸 다들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우린 시선을 교환했다.
리액션 잘 해주자는 신호가 암묵 중에 오고 갔다.
이윽고,
“어어어! 올라오신다!”
“호오오!”
무대 조명이 켜지며 온리원이 무대에 올라왔다.
쎄하다는 반응을 피하기 위해 우린 열과 성을 다해 리액션을 했다.
다만,
“아……?”
“헉!”
온리원의 무대 중.
리액션을 어떻게 해도 이상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막내 박영호가 실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