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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33화 (3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33화

우린 순위 발표식을 위해 무대로 올라갔다.

방금 전 우리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던 무대는 어느새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무대 위치별로 마킹이 되어 있기에 어느 팀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는 안내 없이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 위치는 중앙에서 살짝 오른쪽.

어쨌든 중앙 쪽이긴 하다.

센터는 온리원이 맡았다.

중앙에서 살짝 왼쪽은 블레슈였고.

오른쪽 끝에 있는 건 루미닌.

왼쪽 끝에 있는 건 원바이원이었다.

‘뭐야. 이게 순위야?’

스윽 둘러보니 영 신빙성 없는 소리 같진 않다.

중앙 1등.

중앙에서 오른쪽 2등.

중앙에서 왼쪽 3등.

오른쪽 끝 4등.

왼쪽 끝 5등.

이렇게 되면 우리가 2등이란 소린데

‘가능할 수도 있겠네.’

허황된 소리는 아닌 거 같았다.

다만 오늘 우리가 한 무대 퀄리티를 보면 2등도 사실 아쉬운 수준이다.

솔직히 이 다섯팀들 중 제일 잘했으니까.

하지만 1등은 온리원이 굳게 지키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2등은 안 했으면 싶긴 하다.

‘임팩트 있게 꼴등이 낫지.’

물론 진짜 못해서 꼴등 한 거면 안 된다.

무대가 엉망이었다면 그건 꼴등 할 만해서 꼴등 한 거니까.

무대를 잘했는데 꼴등을 해야 저건 불합리하다며 화제성 타고 여기저기 퍼다 날라지는 거다.

한데,

‘반응 보면 아닐 거 같은데.’

어째선지 우리가 꼴등을 할 거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형들도 그런 걸까.

다들 눈빛이 희망이 가득 차 있다.

관객들 반응을 실시간으로 느꼈으니 더더욱 그런 것이리라.

들려온 함성과 박수가 결코 우리 무대가 엉망이었다면 나올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관객과 직접 한 공간에 있다 보면 공기로 체감되는 게 있는 법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으니까.’

우리 무대가 이전 무대들에 비하자면 압도적인 퀄리티였단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난 슬쩍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어느새 온리원도 무대에 올라와서 서 있었다.

부상 때문일까.

박영호는 빠진 채 네 사람만 올라와 있었다.

강현성을 비롯한 온리원 멤버들은 무대 아래의 팬들과 아이컨택을 하고 있었다.

팬들 몇몇이 함성을 지를 뻔하다가 제작진들의 제지에 의해 입을 꾹 닫았다.

‘저 와중에도 팬서비스를 하네, 강현성은.’

강현성은 제작진의 제지에 의해 뻘쭘해진 팬을 보며 안타깝단 듯 표정을 구겼다.

그러곤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표정으로 팬을 다독인다.

대체 저 많은 감정표현을 어떻게 표정만으로 다 해내는 건지.

그냥 평상시 얼굴은 무뚝뚝한 사람인 거 같은데.

새삼 놀랍다.

그때 강현성이 휙, 하고 눈동자만 살짝 돌려 날 바라봤다.

난 급히 고개를 돌렸다.

다만 강현성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는 게 피부에 닿을 정도로 선명히 느껴졌다.

이거 괜히 봤나 싶다.

그냥 궁금해서 본 건데.

시비 거는 것처럼 느껴졌으려나.

난 뻔뻔하게 앞만 바라봤다.

사실 지금 말을 걸기도 애매한 게 스튜디오 전체가 적막한 상태다.

여기서 강현성에게 말을 걸기엔 분위기가 애매하다.

때마침 다른 팀들도 무대로 올라와서 도열했다.

팀들이 다 올라온 걸 확인한 후.

MC들도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어지럽게 스튜디오 내부를 훑고.

웅장한 효과음이 깔린다.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 그 여정의 첫 번째 경연이 방금 막 모두 끝이 났는데요, 나현 씨는 이번 무대들 어떻게 보셨나요?”

“정말 하나하나 다 각 그룹만의 매력이 잘 살아 있던 무대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해진 멘트들이 몇 번 오고 가며 MC들이 방송 분량을 채우기 시작했다.

우린 그런 MC들 뒤에 서서 병풍처럼 리액션을 할 따름이었다.

“저희 더 쇼케이스2만의 투표 방법이죠, 방청객분들이 직접 실시한 등급 투표의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때마침 MC 김영진이 그리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대본을 한 장 더 넘겼다.

“지금 제 손에, 오늘 경연 무대에 대한 순위표가 들려 있습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장난스레 대본을 보여줄 듯 말 듯 방청객들 약을 올렸다.

별로 재밌진 않은데 왜 굳이 저런 장난을 치나 싶었는데,

‘애초에 저런 거 하라고 부른 사람이니까.’

그냥 멘트만 치고 넘어갈 거였으면 개그맨 안 쓰고 아나운서 썼을 거다.

난 별 감흥 없이 김영진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흐읍!”

“후우우.”

“진정하자.”

형들은 꽤 흥분한 모양이었다.

저 순위표라는 것에.

대체 뭘 바라고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거지?

난 슬쩍 눈치를 보고 물었다.

“어떤 등수 예상하는 거예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남한테 피해 안 가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찬 마이크는 다 내려가 있다.

MC들 멘트할 땐 사운드가 물릴 수 있으니까.

내 물음에 먼저 답한 건 가장 끝에 있던 동준이 형이었다.

가장 끝에서 어떻게 이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 싶은데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동준이 형이 대답 대신 들어 올린 손가락의 개수가 문제였다.

카메라에 안 잡히게 최대한 허리 아래로 손을 내려 사인을 보냈는데,

‘1위?’

펴 보인 손가락이 개수가 하나다.

그 후 동준이 형 옆에 서 있던 도승이 형도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운이 형도.

연훈이 형도.

모두 손가락을 하나만 편다.

내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자 동준이 형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친 뒤 손사래를 치는 모션을 취했다.

저걸 해석해 보자면,

-5위? 안 돼, 안 돼~

대충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될 거다.

꼴등을 할 거란 내 초반 예상을 부정하는 거다.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꼴등을 할 거 같은 분위기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1등?

내가 조금 보수적으로 늘 계획을 짜는 편이라 등수나 점수 등에 짠 편이긴 하다만,

‘1등이 될까?’

감히 여기서 1등을 노리기엔 저기 온리원이 너무도 굳건하다.

실수를 하긴 했다만 실수 좀 했다고 흩어질 팬덤이 아니다.

강현성의 팬덤은 특히나 더욱 말이다.

셀유돌 하며 중소 기획사라며, 든든한 뒷배 없다며, 온갖 모욕과 악편을 당했던 게 강현성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팬들은 더더욱 결집됐고, 계속해서 악편에 대한 해명글을 올렸으며, 그 끝에 강현성은 전체 2위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유어스에 합류할 수 있었다.

고난을 겪고 나면 더 단단해지는 건 당연지사다.

강현성의 팬덤은 악편 해명글 올릴 때마다 사방에서 싸불당하는 걸 버텨가며 더욱 단단해진 상태다.

결코 실수 한 번 했다고 와해될 단체가 아니란 거다.

다만,

‘저렇게 넷 다 1등을 예상한다고?’

이건 단순히 ‘목표를 높게 가져야지’라는 말로 퉁 칠 게 아니다.

진심으로 1등을 예상한다는 거다.

설마 진짜 될까 싶은 마음으로 다시 정면을 주시했는데,

“자! 그러면 지금부터 순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위는 5위부터 차례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MC 김영진이 목소리 톤을 높이며 순위 발표의 포문을 열었다.

이 또한 짜여진 멘트일 텐데 절로 긴장감이 생긴다.

다시 한번 조명이 무대 전체를 훑는다.

“자! 조금은 아쉬울 수 있는 순위인데요, 5위를 차치한 팀은 바로,”

내 예상대로라면 여기서 우리 이름이 불려야 한다.

하지만,

“원바이원입니다!”

꼴등은 원바이원이 차지했다.

스튜디오를 훑던 조명이 원바이원에게로 가서 멈춘다.

조명 아래 드러난 원바이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미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렇다면,

‘3위, 4위도 아닐 거야.’

우리가 애매하게 3, 4위를 하지도 않을 거다.

역시나.

“4위를 차지한 팀은 루미닌입니다!”

“3위를 차지한 팀은 바로, 블레슈입니다! 축하드립니다!”

3위, 4위도 아니었다.

남은 순위는 둘뿐이다.

1위와 2위.

여기까지 와서일까.

이상하게 나도 욕심이 난다.

이게 정말 될까 싶은데,

‘되는 거 아니야?’

묘하게 가슴이 뛴다.

나도 이 정도인데 형들은 아마 더 심하리라.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아이고.’

형들 얼굴이 아주 터질 거 같다.

연훈이 형 눈동자가 아주 초롱초롱 빛난다.

운이 형도 잔뜩 긴장한 듯 어깨가 굳었고.

도승이 형은 거의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동준이 형은 이미 얼굴에 웃음이 한 바가지다.

이렇게까지 표정이 투명할 수 있다니.

난 고개를 돌려 온리원을 바라봤다.

저쪽은 비교적 침착하다.

이거 잘만 하면 인터넷에 비교짤로 돌아다닐 수도 있겠다.

온도 차가 너무나도 극명하니까.

“자! 이제 남은 순위는 1위와 2위뿐인데요. 이번엔 1위를 먼저 발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MC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방청객들을 살폈다.

방청객들 얼굴 표정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누군가는 기대하는 표정.

누군가는 이미 짜증이 제대로 난 표정이다.

“영광의 1위는 바로,”

김영진이 톤을 높이며 순위를 발표하려는 그 순간

빠른 비트의 드럼 사운드가 깔린다.

이내,

“온리원입니다!”

발표가 났다.

‘아.’

2위 했구나.

갑자기 뒷맛이 확 쓰리다.

이게 여기까지 왔다 보니 나도 진짜 1위를 기대했나 보다.

다만 내가 실망한 것보다 형들이 실망한 게 더 중요하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세상에.’

다들 얼굴색이 검게 변해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이면 방송에 어떻게 나갈지 감도 안 잡힌다.

물론 1등 해도 아깝지 않을 무대였으니 실망한 건 알겠다만,

‘큰일이네.’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티가 나버리면 곤란하다.

그때,

“자,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MC 김영진이 말을 이었다.

뭐가 끝이 아니야?

“오늘 150분의 관객분들이 매겼던 등급 투표의 총 점수와 평균를 지금 전광판에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이걸 왜 띄우나 싶은데,

-1위 온리원 – 평균 90점

-1위 세이렌 – 평균 90점

-3위 블레슈 – 평균 85점

…….

수많은 숫자들과 그에 대한 평균값이 표로 정리되어 촤라락 올라왔다.

자잘한 거 필요 없고 중요한 건 순위와 평균 점수다.

한데,

“응?”

“그, 뭐야?”

“잘못 본 거 아니지?”

“이거 오류 아니지?”

2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형들의 예상이 맞았다.

“오늘은 2위 없이 공동 1위가 나왔습니다! 세이렌분들! 축하드립니다!”

우리 1위다.

“으아아아악!”

“어어어억!”

“대박이야!”

“끄아아아악!”

이게 반전이 있어서 그런가.

형들 반응이 엄청 크다.

주변 다른 팀들도 놀라서 힐끔 우릴 바라볼 정도니까.

보통 이런 순위 발표식에선 점잖을 떠는 게 보통이다.

한데 이게 너무 기뻐서 그런가.

마음이 주체가 안 된다.

“대면식 무대 5위에서 1차 경연 1위까지. 단 두 번의 무대였지만 벌써 엄청난 드라마를 쓰고 있는 세이렌 팀이네요.”

그때 MC 김영진은 은근슬쩍 대면식 순위를 흘리며 관객 반응을 유도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대면식 꼴등이었다는 게 안 믿기는 듯한 눈치였다.

‘혹시 첫방 전에 화제성 끌어올리려고 일부러 흘린 건가?’

아직 알 수는 없다만 저 멘트가 그냥 나오진 않았을 거 같다.

우린 급히 얼굴색을 정리했다.

언제까지고 기뻐할 순 없다.

이 자리엔 좋지 않은 순위를 받아든 팀도 있으니까.

특히 같은 1위를 한 온리원의 표정도 영 밝지만은 않았다.

여기서 계속 방방 뜨고 있으면 안 된다.

“자! 그러면 이걸로 오늘 1차 경연의 무대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방청객 여러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MC들의 클로징 멘트를 끝으로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방청객들이 빠르게 스튜디오 밖으로 빠져나갔다.

다만 우리의 촬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청객들이 다 빠져나가고 난 후.

“다음 경연 미션 주제 전달이랑 무대 순서 정하기 남았습니다! 출연진분들 무대 위에서 대기 부탁드립니다!”

제작진이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이탈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공지를 전달했다.

우린 무대 위에 서서 다음 촬영을 기다렸다.

“아직도 안 믿겨.”

“진짜 1위라니.”

“하아아.”

“대박이야 대박.”

아직 1위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형들은 이리 중얼거리며 서로 어깨동무를 했다.

그때.

“무대 잘 봤어요.”

강현성이 갑자기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블루를 그런 식으로 표현할 줄은 몰랐네요.”

그는 정확히 내 쪽을 보며 그리 말하고 있었다.

“에?”

“헉!”

“선배님.”

형들은 단체로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려 강현성을 바라봤다.

나도 형들과 함께 고개를 돌린 후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금발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얼굴에 도화살이 가득 낀 듯한 남정네 하나가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다만,

‘뭐야 이 새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강현성은 지금 좋은 관계를 다지려고 우리 쪽으로 온 게 아니었다.

“보다가 한 대 맞은 느낌이더라고요. 무대 잘 봤어요.”

강현성의 표정은 명백한 적의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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