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34화
저건 명백한 적의였다.
사실 명백하다, 라는 말까지 써야 할 정도로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친 강현성은 분명 적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은근하게 무표정한 얼굴과.
고저 없는 목소리.
또 애매하게 벌인 거리까지.
모든 지표가 우릴 그다지 반기지 않는단 걸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이것들만으로 적의라고 판단하는 건 억측이다.
한데도 어떻게 이걸 적의라고 확신하냐면,
‘이렇게 먼저 다가올 성격이 아닐 텐데.’
강현성은 더쇼케2에서 날 처음 보는 것일 테지만 난 이전 생에서 무수히 많은 미디어로 강현성을 접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미디어로 보는 타인과 실제 그 인간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하지만 없는 것을 억지로 짜내서 만들어낼 순 없는 법이다.
방송에 비치는 모습들도 어느 정도는 진짜 모습과 일치한다.
내가 아는 강현성은 조심성이 많고, 조용하며, 섣부른 친목질은 절대 시도하지 않는 인물이다.
온리원의 멤버들도 데뷔 후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강현성의 속내를 알게 됐다고 했을 정도다.
이걸 어떻게 다 아냐면,
‘진짜 도화살 한가득이네, 얼굴에.’
인정하기 싫지만, 라이트하게 온리원을 소비해 봤기 때문에 안다.
많은 지출을 하진 않았지만 앨범 나올 때마다 분철 따라가며 활동기를 지켜본 정도는 된다.
다만 내 그러한 이력을 ‘덕질’로 정말 표현 가능할지는 의문이긴 한다.
덕질, 이란 건 어쨌든 애정에서 나온 행동이니까,
하지만 그때의 내 행동은 애정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회한, 그리움, 부러움.
이런 마음에 더 가까웠다.
우리도 데뷔했다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IF 놀이의 대상이 온리원이었던 셈이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니 조금 쪽팔린다.
난 최대한 티는 내지 않으며 강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의 골드도 저는 인상 깊었습니다.”
칭찬 하나 던져주면 비슷한 칭찬 하나 던져주는 게 국룰이다.
강현성은 온몸으로 풀풀 풍기던 적의를 금세 갈무리하곤 표정을 부드럽게 바꿨다.
“고마워요.”
그러곤 내 대답에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그, 선배님. 근데 영호 씨는 괜찮으시죠……?”
연훈이 형이 박영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발목이 꺾인 온리원 막내 말이다.
저걸 저렇게 물어보다니.
금지어 같은 거 아닌가.
다만 연훈이 형 얼굴을 보니 저건 진짜 걱정된 거다.
하긴.
연훈이 형 성격상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문제는 저 순수한 걱정을 타인도 순수하게 받아주냔 거다.
강현성 표정이 살짝 싸해졌다.
하지만 금세 얼굴색을 바꾸곤,
“무대 끝나자마자 인근 병원으로 매니저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연훈이 형 질문에 대한 답을 줬다.
“연락받아 보니 생각보다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아! 다행이에요 진짜. 꼭 금방 나으시라고 전달해 주세요!”
“네. 고마워요.”
“아니에요!”
강현성과 연훈이 형 간에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연훈이 형은 계속 방긋방긋 웃고 있었고 강현성의 표정은 조금씩 식어갔다.
“그러면, 또 뵙죠.”
강현성은 그리 말하곤 온리원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와아아!”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더 잘생기신 것 같아.”
“그러니까요.”
강현성이 사라지고 나자 다들 강현성 칭찬하기 바쁘다.
또 명성에 속아 올려치기 중이다.
난 그런 형들을 그냥 바라만 봤다.
대신 강현성의 심리를 추론해 보려 애썼다.
지금 어떤 마음일지.
자기네들이 독식할 줄 알았던 프로그램에 웬 이상한 팀 하나가 들어와서 화제성 갈라 먹는 중인데.
과연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봤다.
그때,
“촬영 들어갑니다!”
제작진이 돌아다니며 이제 다시 촬영이라고 알려줬다.
우린 다시 촬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 * *
다시 시작된 촬영에서 우린 이전에 대면식에서 섰던 것과 같은 대형으로 섰다.
2차 경연 미션 전달과 이런저런 추가 컷들 촬영이다.
“자! 더 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1차 경연이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수고해 주신 다섯 팀분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MC 김영진이 그리 말하며 방송을 진행했다.
우린 그 멘트에 맞춰 각 팀에게 박수를 보냈다.
“방금 막, 1차 경연에 대한 순위까지 보고 왔는데요, 여러모로 반전이 있었던 발표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MC 나현은 멘트를 치며 슬쩍 우리 팀을 쳐다봤다.
반전이라 함은 대면식 5위에서 1차 경연 1위로 올라온 우릴 보고 말한 것이리라.
“반면 아쉬운 성적을 거둔 팀도 있었는데요.”
그 말에 다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원바이원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꼴등 할 만한 무대이긴 했지.’
내가 보기에도 그 무대는 안타까웠다.
조폭 컨셉이야 그래 뭐 잘 살리면 인상적인 느낌이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매하게 집어넣은 랩 파트와.
초반부의 그 엉성한 액팅.
그리고 피 조금 튄 거 가지고 레드라고 우기는 뻔뻔함이 만난 환장의 콜라보였다.
다만 그건 그거고.
왜 이렇게 멘트가 길어지나 싶은데,
“다들 각자의 성적표를 받아든 지금, 소감을 한 번씩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시키려고 혓바닥이 그렇게 길었나 보다.
떠올려보니 이전 생에서도 이런 장면이 꼭 들어갔던 것 같다.
순위 발표식 끝나고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둔 채 소감 말하게 하는 시간.
사실 이것만큼 잔인한 시간이 없다.
말 잘못하면 그대로 나락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이다.
가식 떤다, 위선이다.
혹은 건방지다, 주제도 모른다.
이런 말들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한 시간이니까.
“가장 먼저 5위를 한 원바이원분들의 소감부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MC 김영진이 그리 말하며 원바이원을 가리킨다.
원바이원은 누가 마이크를 들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방황하다가
“그, 아, 네. 우선 5위라는 성적, 저희는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었습니다.”
리더가 마이크를 받았다.
“다른 팀분들이 워낙에 좋은 무대를 보여줘서요. 그것들 보며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쪽은 팀 분위기가 박살이 나 있다.
근데 어쩌면 이런 식으로 컷 몇 번 더 받는 게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기서 후회하며 가만히 멈춰 있지 않고. 더 좋은 무대 준비하여 2차 경연에서 높은 순위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정석 같은 소감이었다.
무대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소감은 잘 준비한 것 같다.
다음은 4위를 한 루미닌.
그쪽은 리더가 아닌 다른 멤버가 마이크를 잡았다.
“4위라는 성적이 아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저희 또한 이 순위를 얼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아쉬웠지만 2차 경연에선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원바이원이 길을 닦아 놓으니 소감에 대한 패턴이 생겨 버렸다.
이 패턴 반복되면 단체로 통편집일 텐데.
블레슈라도 다르게 해주길 바랐는데
“저흰 우선 순위에 많이 만족을 합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저희도 더 노력해서…….”
얘네도 같은 패턴이다.
순위에 대한 아쉬움 드러내기. 다음 무대 더 잘하겠다고 공손하게 말하기.
두 가지 문구가 말만 다르게 변형되어 지금 세 번이나 반복됐다.
이거 진짜 통편집당하겠다 싶은데,
‘사실 달리 할 말도 없긴 하네.’
괜히 다른 팀들이 비슷한 말만 반복한 건 아니긴 했다.
소감 말하라는데 미리 준비도 안 시켜뒀으니 비슷한 말만 나오는 건 당연한 셈이다.
“자, 다음은 온리원분들 소감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게 강현성이었다.
“우선 과분한 성적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현성은 초장부터 다르게 간다.
다만 이거야 1위를 했으니 당연한 멘트이다.
다음부터가 중요한데,
“오늘 무대 보며 많은 걸 배우고 자극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 결국엔 비슷한 얘기다.
하긴 굳이 모험을 할 필욘 없겠지.
한데,
“세이렌분들의 블루로 표현한 무대, 보면서 저런 식으로 색을 보여줄 수 있구나, 우린 너무 평면적으로 골드를 해석했구나 싶었습니다.”
갑자기 우리를 지목해서 말한다.
“에?”
“헉!”
“아.”
“세상에.”
형들이 각기 반응하며 고개를 홱 하고 치켜들었다.
설마 우리한테만 이런 말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또한 블레슈분들의 블랙도…….”
모든 팀에게 해주는 건가 보다.
차라리 다행이다.
한데,
‘말의 길이가 다른데?’
다른 팀의 무대에 칭찬을 보낼 때와 우리에게 칭찬을 보낼 때에 뉘앙스와 문장 길이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러자니,
‘아.’
강현성이 무슨 생각인지 얼추 감이 왔다.
지금 강현성은 우리만 확실하게 띄워준 거였다.
일단 명목상 모든 팀에게 칭찬 한마디씩을 건네긴 했지만 우리에게 분명하게 더 많은 칭찬을, 조금 더 진심에 가깝게 건넸다.
이걸 피디가 못 알아차릴 리 없다.
이렇게까지 우릴 띄운 이유는 뭐냐.
아마,
‘욕 처먹기 싫어서겠네.’
실수해 놓고 공동 1위 한 걸로 욕먹기 싫어서다.
이런 식으로 우리를 띄워주면 자기들의 무대가 1위를 하기에는 부족했었다는 걸 본인들도 잘 안단 사실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느낌이니까.
이렇게 되면 ‘쟤넨 양심 없이 인기빨로 1위 챙겨가네’라는 발언에서 일정 부분 면죄부를 갖게 된다.
적어도 ‘얘들은 본인들 무대가 1위 한 거에 부끄러움 갖는 것 같던데?’라는 반응을 끌어올 수 있을 테니까.
또한 이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갑분 칭찬을 건넨 건 아닐 테다.
추가적으로 하나를 더 보자면,
‘원톱 체제 포기했네.’
더쇼케2에서 왕 놀이하려던 걸 빠르게 포기한 거다.
이미 공동 1위를 할 정도의 팀이 등장했는데 계속 왕 놀이하려고 들면 그건 그거대로 꼴값으로 보인다.
그럴 바에야 깔끔하게 우리를 인정하고 라이벌 느낌으로 가는 게 낫다.
즉 혼자 다 먹으려던 파이를 이젠 우리랑 나눠 먹겠단 거다.
대신 양이 적어지면 곤란하니 그 파이 크기를 조금 키워보잔 거겠지.
어쨌든 라이벌 구도가 생기면 시청자들 과몰입 유도도 쉬워지고 긴장감도 더 생기니까.
‘과대해석이려나.’
물론 이 모든 해석이 나만의 망상일 가능성도 높다.
강현성은 정말 순수하게 모든 팀에게 칭찬 하나씩 건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정말 그러려나.’
셀유돌 겪고 프로젝트 그룹으로 데뷔 후 온갖 고초 다 겪은 후 다시 더쇼케2에 나온 놈이다.
순수함을 간직하기엔 풍파가 너무 많았을 거다.
난 생각이 더 이어지려는 걸 의지적으로 끊어냈다.
지금은 다른 게 더 중요하니까.
이제 우리가 소감을 말할 차례다.
마이크를 잡은 건 연훈이 형이다.
“우선, 1위라는 과분한 성적 주셔서 너무,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이걸 온전히 우리 실력이라 믿고 자만해지기보단, 다음에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도 참 예쁘게 잘한다.
난 남들보다 조금 더 세게 박수를 쳤다.
“자! 그러면 이걸로 다섯 팀들 모두의 소감을 들어봤는데요. 그러면 이제 슬슬 그걸 준비해 볼까요?”
MC 김영진이 그리 말하며 악동 같이 웃었다.
“자! 여러분들 모두가 고대하던 바로 그 시간!”
그가 톤을 높여 분위기를 띄우자,
“2차 경연 주제 발표의 시간입니다!”
MC 나현도 텐션을 맞추며 멘트를 이어 쳤다.
“호오오오오!”
우리도 지지 않고 적당히 환호하며 현장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Color of Showcase, 색으로 무대 꾸리기라는 주제로 이미 한차례 다들 좋은 무대를 보여주셨는데요, 이번 2차 경연의 주제는 바로 뭐냐. 그건 바로,”
MC 김영진은 거기까지 말하곤 잠시 호흡을 끊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바로, Your Showcase, 상대 팀의 노래로 무대 꾸리기, 입니다!”
MC 나현이 멘트를 치며 주제를 발표했다.
한데,
‘응?’
상대 팀 무대?
유얼 쇼케이스?
이번에도 역시나 처음 듣는 주제였다.
또 한 번 미래가 달라졌다.
다만 이번엔 좀 더 명백한 주제다.
듣자마자 무슨 주제인지 알 거 같았으니 말이다.
이건 바로,
“여기 다섯 팀이 지금까지 했던 대면식 무대와 1차 경연 무대 중, 뺏어오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빼앗아 오면 됩니다!”
남의 그룹 무대 가져오란 거다.
그 말은 곧,
‘누가 누가 더 잘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겠단 거네.’
다섯 그룹들 간에 줄 세우기를 하겠단 말이다.
아주 노골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