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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36화 (3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36화

우리 쟤네랑 안 친하다.

어색한 공기가 스튜디오를 채운다.

일단 쭈뼛거리며 온리원 쪽으로 이동하긴 했다.

박영호가 빠진 온리원은 4명.

우린 총 5명.

육탄전을 벌이면 우리가 이기긴 하겠…….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사람이 마주치기 싫은 상황에 놓이면 정신적으로 회피를 하게 된다는데.

별생각을 다 한다.

우린 의자를 끌고 와서 스튜디오 중앙에 모여 앉았다.

가운데에는 하드보드지로 만든 순서판이 있었다.

여기에 각 팀의 이름이 적힌 명패를 가져다 붙이면 되는 거다.

다만,

‘적막하네.’

누구도 섣불리 말을 안 한다.

온리원 멤버들은 묘하게 누구 눈치를 보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구’에 해당할 만한 인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저기 앉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그때,

“안 피곤해요?”

대뜸 강현성이 이런 말을 했다.

침묵을 깨고 나온 첫마디가 안 피곤하냐는 말이라니.

“아…….”

“네?”

“피곤이요?”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신경전 안 피곤하냐거나.

아니면 이런 식의 방송 세팅 안 피곤하냐거나.

기타 등등등.

한데,

“아, 오늘 촬영 오려고 새벽부터 샵 들렸을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 벌써 저녁 먹을 시간 훌쩍 지났잖아요. 버틸 만하냐는 말이었어요.”

강현성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부연 설명을 했다.

설마 저 의미로 물었을까 싶었지만,

‘저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괜히 힘 빼고 싶진 않다.

“네. 괜찮습니다.”

“아직 좋아요.”

“현성 선배님은 괜찮으세요?”

“네. 저도 괜찮습니다.”

강현성과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난 온리원 멤버들을 쭉 둘러봤다.

저기 맨 끝에 앉아 있는 게 이철운. 포지션은 리드댄서다.

이철운 옆에 앉아 있는 게 김주현. 포지션은 래퍼고.

김주현 옆에 앉아 있는 건 김시운이다. 포지션은 메인보컬. 우리한테 선전포고했던 멤버이기도 하다.

그리고 순서판과 가장 가까운 안쪽에 앉아 있는 게 강현성. 포지션은 메인댄서다.

확실히 이리 면면들을 살펴보고 있으니,

‘신기하긴 하네.’

지난 생에서 내가 알던 그 온리원인 게 실감이 난다.

이 상태에서 다들 조금씩 더 잘생겨지긴 한다만 기본 베이스는 동일하니까.

그때,

“매번 말할 때마다 선배님이라고 안 붙여도 돼요.”

강현성이 우리에게 이리 말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데뷔조 신분으로 나온 건데 선배가 어딨어요, 여기서.”

“아, 그래도…….”

연훈이 형이 우물쭈물대자,

“우리 동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에요?”

강현성이 선수를 친다.

“맞아요!”

연훈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그러면 우린 그냥 친구할까요?”

“네?”

뜻밖의 제안을 한다.

연훈이 형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강현성은 뚱한 얼굴이었고.

잠깐 불편해지려는 기색이 흐르자,

“천천히 친해지죠.”

“아, 네…….”

강현성이 한발 물러선다.

그러자 연훈이 형이 다소 아쉽단 듯 강현성을 바라본다.

의외의 제안에 놀랐을 뿐 강현성이랑 친구가 하고 싶었나 보다.

연훈이 형은 전쟁통에도 친구 만들어서 놀러 다닐 것 같은 인간상이긴 했다.

“우선 우리 순서를 정해볼까요?”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이 강현성 중심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게 가장 낫긴 하다.

이 자리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게 강현성이니까 강현성이 흐름 잡고 주도하는 게 가장 편안한 그림이다.

“세이렌분들 어디 하고 싶어요?”

강현성이 우리에게 묻는다.

난 형들과 아이컨택을 했다.

형들은 다소 난감한 눈치였다.

사실 어느 쪽을 할지 안 정한 상태였으니까.

이런 건 작곡가 양반과 코레오 양반에게 물어보는 게 낫다.

실질적으로 무대를 꾸리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니까.

“운이 형이랑 도승이 형은 어디가 좋을 거 같아요?”

“흐음. 그러게.”

“조금 뒤 순번이면 좋을 거 같긴 한데…….”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눈치를 본다.

저 형들 둘 다 무대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운이 형은 평소엔 나긋하다가도 연습할 땐 정말 쥐잡듯이 멤버들을 잡는다.

도승이 형도 이번에 <월야> 레코딩할 때 단어 음절 하나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전부 디렉팅했던 사람이고.

그런 인간들이 왜 여기에서는 눈치를 보는 건지…….

해서,

“저희 엔딩 주실 수 있으세요?”

내가 그냥 질러 버렸다.

“태윤아?”

“어억!”

“야……!”

형들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차분했다.

사실 이게 뭐 내가 돈 빌려달란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엔딩 달란 건데.

“엔딩이요? 왜 엔딩 서고 싶어요?”

강현성이 왜 엔딩을 원하는지 묻는다.

녀석은 손에 ‘세이렌’ 명패를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희 이번에 3번 무대 했잖아요.”

난 이유를 말하란 질문에 오늘 무대 순서를 언급했다.

“그러니 다음 무대는 엔딩 서고 싶거든요.”

3번 무대 했잖아요와 이번엔 엔딩 서고 싶거든요 사이엔 많은 말이 생략되어 있긴 했다.

3번 순서 준 거 너네니까 이번엔 우리가 엔딩 좀 해보자.

대충 이런 뉘앙스였다.

“근데 세이렌분들 대면식 무대 때 엔딩 한 번 서지 않았어요?”

강현성이 받아치자,

“한 번 서 보긴 했지만 또 서보고 싶습니다.”

난 이리 답했다.

사실 당연한 거다.

엔딩 한 번만 서고 말란 법은 없는 거니까.

강현성은 말없이 세이렌 명패만 만지작거렸다.

“우리 엔딩 어려울까요?”

사실 엔딩이란 말을 우리가 선점한 이상 저쪽에서 태클을 걸기 애매하다.

이게 선빵필승이란 말의 응용편인 셈이다.

시간만 끌면 무난하게 엔딩 받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도 엔딩을 원하거든요.”

강현성이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밀고 들어온다.

“모든 팀들이 다 엔딩을 원하지 않겠어요?”

심지어 이게 비단 우리 팀만의 이기심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당연한 욕심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지.

흐음.

일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여기서 더 드잡이질했다간 내 꼴이 우스워질 것 같다.

그때,

“우리 가위바위보로 정할까요……?”

연훈이 형이 조심스레 의견을 낸다.

한 줄기 햇살 같은 평화로운 안건에 강현성과 내 표정이 동시에 풀어졌다.

“가위바위보 어떠세요?”

내가 강현성에게 물으니,

“그렇게 하죠.”

강현성도 선선히 받아줬다.

여기서 더 가봐야 양 팀에서 손해일 뿐이었다.

“각 팀 리더가 가위바위보 하죠.”

연훈이 형과 강현성이 가위바위보를 한다.

평화로운 해결 방법이긴 한데 이게 의외로 쫄린다.

그 탓일까,

“우리 묵찌빠로 할까요오……?”

연훈이 형이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깔끔하게 가위바위보로만 가죠.”

강현성이 잘라낸다.

“자, 그러면,”

연훈이 형과 강현성의 가위바위보가 시작된다.

“가위~ 바위~ 보!”

그 결과는,

“어어어!”

“와아악!”

“잘했어요, 형!”

우리의 승리였다.

연훈이 형의 보자기가 강현성의 주먹을 이겼다.

연훈이 형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우리에게 달려와 안겼다.

뭐 가까이 있는 사람 아무나 안아 올리라는 듯 냅다 몸을 던진 탓에 나랑 도승이 형이 같이 연훈이 형을 안아 들었다.

“그러면 세이렌분들이 엔딩 서는 걸로 하죠.”

강현성은 그리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우리 명패를 엔딩 자리에 심었다.

이제 온리원의 자리를 정해야 하는데,

“우린 오프닝 서는 거 어때?”

강현성이 강수를 둔다.

온리원 멤버들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거 같아요.”

“차라리 오프닝으로 딱 기선 제압하고 들어가죠.”

“첫 무대인 거니까 그것도 임팩트 있을 거 같아요.”

왜 강현성이 오프닝을 골랐는지 알 거 같다.

오프닝으로 시작해서 뒤의 무대들을 전부 밋밋하게 만들어버리면 관객들 입장에선 역체감이 되며 온리원에 대한 평가가 올라간다.

‘실력에는 자신 있단 건가.’

하긴 오늘 무대도 박영호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댄브 전까지만 해도 관객 반응 엄청났으니까.

“그러면 이제 다른 팀들 순서 정하죠.”

우린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타 팀들의 순서를 정해줬다.

2번이 루미닌.

3번이 원바이원.

4번이 블레슈.

이렇게 모든 팀의 순서가 정해졌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해서 제출하고, 오늘은 우리도 퇴근합시다.”

그렇게 1등들끼리의 추가 촬영도 마무리가 되었다.

* * *

“으아아아~”

“으으으! 피곤해에!”

순서 정하기 촬영 끝.

형들은 기지개를 쭉 켜며 차량 앞에 서 있었다.

현재 우린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량 앞에 서서 승연 씨와 현아 씨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제작진들과 일정 조율할 게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10분 안에 오신다고 했지?”

“네.”

“왜 이 늦은 시간에 현아 씨랑 승연 씨를 불러가는 거야.”

“뭐, 방송국 사람들 밤낮없이 일하는 거 유명하잖아요.”

형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때,

지잉.

연훈이 형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응?”

연훈이 형은 핸드폰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현아 씨랑 승연 씨가 조금 늦어질 거 같다고 가능하면 우리끼리 차 운전해서 들어가라는데?”

아마 제작진과의 회의가 길어지나 보다.

“아무나 올라와서 차 키 받아 가래.”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우릴 쭉 둘러봤다.

저 표정은 자기는 움직이기 싫단 거다.

그러곤,

“그, 운전 내가 할 테니까, 아무나 올라가서 가져와 주면 안 될……까?”

운전은 자기가 할 테니 가서 키 받아오는 건 우리가 해줄 수 있냐며 조심스레 묻는다.

맞는 말이긴 하다.

운전하는 게 가장 피로한 일이니 키 정도는 우리가 받아와도 되니까.

다만 문제는 여기서 제작진들 회의실까지 거리가 꽤 된단 거다.

형들이 살짝 머뭇댄다.

이럴 때 나서는 게 막내다.

“제가 다녀올게요.”

“진짜?”

“와.”

“고맙다, 태윤아.”

“내가 내일 호빵 사줄게.”

내 희생정신에 형들이 감탄한다.

뭐 이런 걸로 감탄까지야.

“지금 회의실이래요?”

“응. 와서 문자 주면 잠깐 나와서 키만 건네주겠대.”

“다녀올게요.”

난 형들을 뒤로하고 회의실을 향해 걸어갔다.

비상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며 회의실까지 가는 최단루트를 머릿속에서 그렸다.

한 층만 더 올라간 다음 본관 계단으로 가는 게 더 빠를 수 있겠단 계산이 서서 걸음을 빨리하려는 그때.

끼익.

위쪽에서 비상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계단으로 들어왔다.

방송국 관계자겠거니 생각하며 계속 올라갔는데,

“아.”

강현성이었다.

강현성과 나는 계단 층계참에 서서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방금 전 촬영장에서는 괜찮았는데.

이게 카메라 밖에서 보니 묘하게 불편하다.

방송을 위해 만든 라이벌 의식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묘하게 미안하네.’

어찌 됐든 우리가 없었으면 무난하게 1등 하며 승승장구했을 팀이었기에 미안한 마음도 조금은 들었다.

현재 강현성은 메이크업을 지우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녀석은 날 빤히 보더니,

“아직 안 갔어요?”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이리 물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대충 이리 말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한데 강현성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지원 영상 그거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줄 수 있을까요?”

후진 없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마치 둘만 남기를 기다렸단 듯 꺼낸 멘트였다.

카메라 돌 때도 엄청 친절한 인상은 아니긴 한데 밖에서 보니까 더 건조하다.

카메라 없는 데서 굳이 서로 말 가려가며 대화하지 말잔 뉘앙스인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을 줄은 몰랐다.

“무슨 설명이요?”

내가 시치미를 떼고 말하자,

“같은 시간대에 같은 영상을 촬영해서 올린 건데. 이상하잖아요.”

좀 더 특정해서 다시 말해준다.

“뭐가 이상하죠?”

“그게 우연히 겹친 걸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강현성은 말없이 날 쳐다봤다.

나도 강현성과 시선을 맞췄다.

아주 조금 양심에 찔리긴 하다만 그래도 끝까지 아닌 척해야 한다.

나도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강현성은 한 템포 쉬더니 다시 입을 뗐다.

“우리 회사에 아는 사람 있어요?”

이게 심증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나갈 수 있는 사안인가.

“우연히 겹친 겁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다만 이럴수록 난 정공법으로 나가면 된다.

강현성은 다시 시선을 똑바로 해 날 쳐다봤다.

아무 감흥 없어 보이는 검은색 눈동자가 날 관찰한다.

이리 보니 더 체감된다.

정말 동공 떨림이 남들보다 덜한 사람이란 게.

이게 감정적으로 차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신체적 특징인 건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긴 하지만.

그때.

“이 바닥 험해요.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나락이거든요. 조심해요”

강현성이 아주 명백한 적의의 문장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와 온리원 간의 라이벌 관계는 위험하다.

우리가 한 발만 잘못 디뎌도 그딴 망돌 어따 비비냐며 가루가 될 정도로 까일 수 있다.

강현성 팬덤은 그게 가능한 스케일의 팬덤이니까.

다만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니 미안함과는 별개로 조금 열도 받았다.

“조언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조심하세요. 이 바닥 험하잖아요.”

해서 성깔대로 받아쳐 버렸다.

강현성의 미간이 꿈틀댄다.

“이 프로그램 우승할 생각으로 지원한 거 맞죠?”

녀석은 조금 더 적의를 드러내며 말했다.

다른 팀들이 우승할 생각보단 인지도만 챙기려고 지원한 게 대부분이란 걸 알고 묻는 거다.

어차피 이 판이 온리원 중심이란 걸 당사자가 모를 리 없으니까.

즉 저 말은 우리를 제끼고 진짜 우승할 생각이냐며 오만하게 묻는 거다.

다만,

“네. 우승할 생각입니다.”

객기라면 나도 조금 부릴 줄 안다.

우리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킨다.

“같이 열심히 해봐요.”

강현성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듯 말한다.

“선배님도 다음 무대 잘 준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난 강현성의 손길을 피해 어깨를 살짝 옆으로 빼며 말했다.

비상계단 층계참에 잠시 침묵이 돌았다.

그 순간.

강현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싸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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