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37화 (3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37화

강현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싸해지기 시작했다.

표정은 아까와 같이 무표정인데 눈빛만으로 이런 느낌을 주다니.

역시 저 ‘성공에 미친 눈깔’은 예사 눈깔이 아니다.

이러다 정말 한 대 맞겠구나 싶었다.

슬그머니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으로 손을 올리려는데,

“응원 고마워요. 다음에 보죠.”

강현성이 고개를 돌려 말하곤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녀석의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이윽고,

끼익, 쾅.

비상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강현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난 그제야 다시 회의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받아칠 때는 짜릿했는데,

‘하고 나니 뒷맛이 쓰리네.’

지금은 괜히 찝찝하다.

방금 내가 건드린 건 강현성이다.

물론 노골적으로 안 좋은 말을 한 건 아무것도 없다.

강현성이 조언이랍시고 한 경고를 똑같이 돌려준 것과.

무대 잘 준비하길 바란다며 응원해 준 것뿐이니까.

다만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강현성이 멍청이는 아니다.

당연히 싸우자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거고, 그 탓에 방금 표정도 싸해진 거다.

이 타이밍에서 강현성을 긁어놓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싶었지만,

‘애초에 적이었으니까.’

방금 분위기를 보니 강현성은 처음부터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아마 그중에서도 내가 주적이었던 거 같고.

외부에 보이기로는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지원 영상부터 무대까지를 이끈 걸로 보일 테니까.

‘괜히 나대서 형들까지 위험해지는 거 아니려나.’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일단 가자.’

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다고 나아질 건 없었다.

* * *

회의실 가서 차량 열쇠 받아온 후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형들은 내가 내려오자 미어캣처럼 목들을 쭉 빼며 날 반겨줬다.

저게 날 반긴 건지 차 키를 반긴 건지 애매했지만 뭐.

반응이 좋으니 그걸로 됐다.

“으으으 춥다춥다춥다아아아!”

“얼렁 들어가자.”

“히터 틀어요, 히터어!”

밖에 오래 서 있다 보니 다들 추위가 꽤 누적되었나 보다.

차를 열고 안에 들어가 히터를 틀자,

“하아아. 좋아.”

“따뜻해.”

“아아, 너무 좋은데?”

다들 그대로 녹아내린다.

그중에서도 동준이 형은 당장에라도 쿡 찌르면 스르륵 허물어질 것 같았다.

“왜 방송국이나 스튜디오는 유독 더 춥게 느껴지는 걸까?”

동준이 형이 의문이라는 듯 묻자,

“데뷔 못 하고 사라진 원혼들이 한곳에 모여서 그래요.”

내가 장난스레 이리 답했다.

그러자,

“……무섭게 그런 소리 하지 마……!”

동준이 형이 아닌 운전석에 앉은 연훈이 형에게서 반응이 왔다.

“하하하하!”

“지금 연훈이 형 겁먹었죠?”

2열에 앉은 운이 형과 동준이 형이 그런 연훈이 형을 귀엽단 듯 놀리자,

“아니……. 태윤이가 무서운 얘기를 하잖아…….”

연훈이 형이 잔뜩 쭈그러들며 변명한다.

“이거 무서움 허들이 너무 낮은데요. 공포 영화 보면 혼절할 거 같은데.”

“나 그래서 공포 영화 안 봐. 혹여라도 억지로 보여줄 생각 꿈에도 하지 마.”

공포 영화 시청 불가능이라.

나중에 꼭 한 번 보여줘야지 싶었다.

“그럼, 출발한다?”

“네에!”

“집으로 갑시다아!”

“예에에!”

연훈이 형은 차량 시동을 건 후 부드럽게 액셀을 밟았다.

지금도 의문이다.

이 사람이 대체 어떻게 면허증을 딴 건지.

핸들만 잡아도 뿌에에엥 하며 운전 못 하겠다고 떼쓸 거 같은데.

우린 집으로 가는 동안 오늘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관객분들 반응 진짜 장난 아니었어.”

“맞아요. 진짜 대박이었어요.”

“특히 우리 도포 벗을 때 함성 너무 커서 깜짝 놀랐어.”

우리가 꾸린 <월야> 무대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좋았었다.

그 덕분인지 오늘 온리원과 공동 1등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고.

과연 언제쯤이면 데뷔를 할 수 있을지 이런 거나 걱정하던 게 불과 한 달 전인데.

지금은 데뷔는 기정사실이며 성적이 어디까지 나올지를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날만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연훈이 형이 이리 말하자,

“그럴 거예요.”

난 그 말에 힘주어 대답했다.

이것보다 좋은 날만 있을 거라고 반쯤은 확신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근데, 우리 다음 무대 어떻게 하지?”

운이 형이 무대에 대한 걸로 화제를 돌렸다.

“온리원분들 대면식 무대가 워낙에 잘 만들어진 무대였어서…….”

운이 형은 걱정이 되나 보다.

아무래도 무대의 퍼포먼스적인 부분을 담당하니 부담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 곡이 라이트 선배님들 맞죠?”

동준이 형이 묻자,

“맞아. 편곡을 하긴 했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원곡 느낌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어.”

도승이 형이 대신 답했다.

실제로 온리원이 대면식 때 했던 무대는 의 댄브를 조금 더 길게 늘렸을 뿐 전체적인 멜로디나 악기 등은 그대로 사용했다.

구성이 바뀐 탓에 얼핏 보면 편곡을 대대적으로 한 것 같으나 자세히 뜯어보면 큰 수정은 들어가지 않은 편곡이었다.

작은 수정으로 큰 차이가 나게 만드는 것.

어찌 보면 기술적으로 잘한 편곡이었다.

“우리도 편곡을 해야 하나.”

“편곡 없이 갈 순 없잖아.”

“근데 이 곡이 워낙에 컨셉이 강한 곡이라서. 편곡 가능한 방향이 많진 않은데.”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라이트의

대중들에게 유명하진 않지만 케이팝 덕후들에게는 명곡으로 유명한 곡이다.

라이트라는 그룹 자체가 원래 컨셉츄얼한 노래를 많이 하는 그룹인데 저 곡은 그중에서도 더 컨셉츄얼한 곡이니까.

강렬한 전자음과 묵직한 드럼 베이스가 특징인 곡으로 암울한 근미래 SF를 떠올릴 수 있을 법한 분위기다.

아이코닉한 스크래치 음들을 잘 활용하여 미래적인 사운드를 잘 뽑아낸 곡이었다.

실제로 뮤직비디오 배경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직전의 기계화된 문명이었다.

그곳에서 배신자 한 명이 도시 전체를 골탕 먹이고 정보를 탈환하는 이야기다.

온리원도 여기서 크게 멀지 않은 사이버 펑크적인 무대를 선보였었고.

일단,

‘SF라는 분위기는 가져가야겠네.’

이건 확정이다.

다만 SF에도 많은 하위장르가 있다.

온리원이 한 사이버 펑크도 그중 한 갈래일 뿐이고.

SF라는 것만 지키면 어떤 하위장르로 가도 톤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차라리 여기 댄브를 좀 길게 하고…….”

“이 아이코닉한 사운드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갈지 아니면 과감하게 바꿀지…….”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무대를 구상하는 동안.

나도 형들이 하는 대화들을 들으며 가사나 전체적인 컨셉에 대한 부분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내일 회의 시간에 한 번에 정리해서 꺼내 볼 생각이었다.

때마침,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했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뮤직비디오 화면을 끄며 급하게 토론을 마쳤다.

나도 머릿속에서 정리 중이던 컨셉들을 대충 갈무리했다.

“끄아아아아!”

“내립시다!”

우린 다 같이 차에서 내렸다.

3열에 오래 앉아 있어설까.

“진짜 삭신이 쑤신다. 끄으으으!”

동준이 형과 나는 나오자마자 서로 어깨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했다.

이게 3열을 확장해서 승차감을 좋게 만든 차량도 많은데 우리가 탄 차량은 아니었다.

거의 짐이나 실어놓을 법한 3열 칸이라 오래 앉아 있으면 온몸이 쑤셨다.

우리가 몸을 푸는 동안 형들은 하나둘 옥탑으로 올라갔다.

나랑 동준이 형도 옥탑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집을 향해 올라갑시다아~”

아무리 좁고 열악해도 3년을 쓴 숙소라 그런가.

이제 정말 집 같은 느낌이라 마음이 포근해진다.

올라가서 짐 풀고 보일러 올린 뒤 너나 할 거 없이 바닥에 퍼지자,

“아아아.”

“좋다~”

바로 탄성이 나온다.

“이게 바로 K-온돌?”

“하하하!”

동준이 형이 바닥에 누운 채로 온돌 타령을 하니 운이 형이 빵 하고 터졌다.

K-온돌이 저렇게 웃을 일인가 싶었다.

연훈이 형은 눕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조용했다.

뭔가 싶어서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흐어어! 아 안자!”

그새 잠들었었나 보다.

인기척에 놀라서 깬 것 같다.

“우리 오늘은 씻고 그냥 바로 자죠. 다들 피곤하잖아요.”

“그래, 그냥 바로 자자. 밥 먹을 힘도 없다 진짜.”

난 형들이 씻으러 간 사이 바닥에 이불을 펴며 잘 준비를 했다.

‘이 이불도 가능하면 새 걸로 바꿔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우리가 쓰는 까는 이불과 덮는 이불 모두 3년째 같은 거다.

2주에 한 번씩은 세탁하며 깨끗하게 쓰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세월이 세월이다 보니 조금 해지긴 했다.

‘돈 벌면 이불부터 바꿔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가,

‘아니지, 숙소부터 옮겨야겠구나.’

이게 이불 문제가 아니라 숙소가 문제란 걸 깨달았다.

아직이야 이런 옥탑에 살아도 괜찮지만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가고 난 후부터는 위험하다.

보안이 너무 허술할뿐더러 위치가 투명하게 공개가 되니 말이다.

다만 아무리 돈을 벌어도 우리가 근시일 내에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건 불가능하다.

스케줄 하려면 가능한 서울에 숙소를 얻어야 하는데 서울에 보안 좋은 아파트 가격은 우리가 당장 벌 수 있는 돈을 한참 상회한다.

월세로도, 전세로도 힘들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더쇼케 우승 후 계약 이관되어 새 회사가 마련해 준 숙소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다만 그것도 당장이라 하기엔 기간이 꽤 소요된다.

그 해답은,

“나 다 씻었어! 다음 봉태윤 들어가!”

지금 욕실에서 뽀송뽀송해진 채로 나온 동준이 형에게 있었다.

‘날 봐서 형이랑 이야기해 봐야겠다.’

일단 이렇게만 생각한 뒤 나도 씻으러 들어갔다.

* * *

멤버 전원이 씻고 옷 갈아입은 채로 이불 위에 누웠다.

불 끄고 이불 덮으니 당장에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건지,

“다들 잘 자요.”

“……으어, 자알 자아으.”

연훈이 형이 반쯤 꼬부라진 혀로 이리 말했다.

그리고 약 3초쯤 뒤,

‘진짜 빨리 자네.’

정말 곯아떨어졌다.

연훈이 형 잠자는 속도는 거의 신생아급이다.

원래도 잠이 많은 사람인데, 앞으로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할지 살짝 걱정된다.

잠자리 가리는 타입은 아니니 차에서 조금씩 재우면 될 거다.

대충 이런 생각을 하다,

‘졸리네.’

나도 슬슬 자려 했다.

불면증도 녹일 만큼 힘든 스케줄이었기에 맘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컨셉이랑 가사 조금만 정리하고 자자.’

편곡을 위해 컨셉과 가사 작업을 조금이라도 해두고 자야 마음이 편안할 거 같았다.

핸드폰 밝기를 최저로 내리고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려는 그때,

탁.

누군가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뭔가 하고 보니,

“쉿.”

동준이 형이 입가에 손가락을 올린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놀란 눈동자로 형을 바라보니,

-일어나.

동준이 형이 입 모양으로만 말한다.

‘응?’

동준이 형뿐만이 아닌 도승이 형과 운이 형까지 일어나 있다.

지금 자는 건 연훈이 형 하나뿐이었다.

왜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 건가 싶어 의아한 찰나,

-나가자.

운이 형이 손으로 문밖을 가리켰다.

우린 혹여나 연훈이 형이 깰까 조심하며 숙소 밖으로 나왔다.

이내 옥탑을 완전히 벗어나 도로 위로 나왔을 때.

“하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동준이 형이 기다렸단 듯 소리를 내며 활짝 웃었다.

“연훈이 형 안 깨겠지?”

“걱정 마. 내가 전에 보니까 진짜 업어가도 모르더라.”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중 나만 멍한 얼굴로 형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

“왜 나온 거예요, 우리?”

일단 형들이 나오라길래 나오긴 했다.

한데 왜 밖에 나온 건가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왜 나온 거냐 묻자 형들이 오히려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내가 뭐 잘못했어요?”

약간 억울한 마음을 담아 말하자,

“정말 모르겠어? 우리가 왜 나온지?”

“와 봉태윤이 실망인데.”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이리 답한다.

정말 뭔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려는 찰나,

‘아.’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날짜 하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2월 29일?’

연훈이 형의 생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