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38화
2월 29일.
연훈이 형의 생일이었다.
2월 29일이 생일인 사람은 흔치 않다.
2월은 보통 28일까지만 있기 때문이다.
다만 4년에 한 번씩 오차를 잡기 위해 2월 28일에 하루를 더 넣어 2월 29일로 정하곤 하는데 그걸 윤년이라 부른다.
해서 윤년에 태어난 사람은 생일이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셈인 거다.
물론 진짜 2월 29일이 있는 해에만 생일을 챙겨주는 집안이 있을까 싶긴 하다만.
아무튼 그 독특하고 복잡한 날이 연훈이 형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2월 24일이다.
아니지.
방금 막 자정을 지났으니 이제 25일이다.
올해는 2월 29일이 없고 28일까지밖에 없으니 연훈이 형 생일까지 약 사흘쯤 남은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따로 모여 밤 산책을 하는 이유는,
“연훈이 형 생일 때 뭐 해줄지를 정해보려고 모인 거잖아.”
“태윤이가 이걸 까먹어?”
“연훈이 형 생일은 까먹기도 어려울 텐데.”
연훈이 형의 생일파티 준비를 위해서다.
생각해 보니 매년 이랬던 거 같다.
누구 생일 있다 하면 그냥 챙겨주기보다는 따로 시간 내서 서프라이즈로 챙겨주는 것 말이다.
“일단 어디 가서 앉아서 얘기하자.”
“이 시간에 카페가 할라나?”
“내 작업실로 가자.”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앞장서 걸었다.
연훈이 형의 생일이라.
난 회귀 전 이맘때에 뭘 했는지를 떠올렸다.
아마,
‘병원에 있었겠네.’
교통사고 후의 부상이 다 낫지 않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던 거 같다.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캘린더 알람을 애써 무시하며 말이다.
화면 위에 떠오른 우연훈 님의 생일, 이라는 문구를 보며 허탈함에 입술을 씹었던 기억만 났다.
그러자니,
‘잘 챙겨줘야겠네.’
이번 생일이 더 와닿았다.
다신 챙겨주지 못할 줄 알았던 생일이니까.
난 형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홀로 쓴웃음을 삼켰다.
* * *
25일 아침.
유독 잠꼬대가 격한 우연훈은 반쯤 잠든 채로 옆으로 몸을 뒤틀었다.
벌써 오전 9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그는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원래라면 새벽 6시경에 봉태윤이 깨웠겠지만 오늘은 아무도 우연훈을 깨우지 않았다.
“……으어?”
잠꼬대로 몸을 뒤틀던 우연훈은 옆자리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는 살짝 눈을 떴다.
그러곤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봉태윤이야 요새 계속 새벽 기상을 했으니 옆에 없는 게 당연했지만 반대편 옆자리인 박동준은 아직 있어야 했다.
늘 자신과 함께 늦잠 콤비를 이루던 동생인데.
“……뭐지?”
주변이 허전해도 너무 허전했다.
우연훈은 가만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곤 허망한 자세로 앉아 허공을 바라봤다.
천천히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그는 잽싸게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늦잠을 잔 것 같긴 했는데,
“9시?”
평소보다 3시간이나 더 잤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오늘 멤버들이 자신을 두고 연습을 간 거다.
보통은 늦잠을 자도 깨워주곤 하는데.
오늘은 자신이 너무 깊이 잠들었나 보다.
“으아아아! 어떡해!”
리더로서의 체면도 살지 않고.
무엇보다 멤버들한테 너무 미안했다.
이제 막 잘 되려고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리더인 자신이 본을 보이진 못할망정 늦잠이나 자서 연습까지 빼먹었으니까.
샤워 생략.
세수 생략.
양치만 빠르게 끝낸 후 모자를 뒤집어썼다.
가서 무조건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하고 연습을 시작해야 할 거 같다.
미안하니까 오늘 후식 정도는 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옷방 문을 열었는데,
“……응?”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현재 우연훈은 잠옷에 모자만 쓴 상태였다.
옷방에 들어가서 연습용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한데 이 옷방에,
“아.”
“하아.”
“망할.”
“그러게 내가 빨리 좀 하라고……!”
멤버 넷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도 좁아서 옷만 겨우 모아두는 작은 방에 말이다.
멤버들은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고, 손엔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봉태윤은 ‘생일’ ‘축하’라는 글자가 새겨진 선글라스를 눈에 쓴 채였고.
이운은 아마 롤링페이퍼로 예상되는 기다란 색종이를 손에 들고 있었으며.
강도승은 손에 케이크를.
박동준은 손에 폭죽을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생일 축하를 위한 준비.
“아, 그.”
우연훈은 그 자리에서 굳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어색한 대치가 약 10초간 이어지다,
“서, 서프라이즈!”
박동준이 될 대로 되란 듯 서프라이즈를 외쳤고,
퐁!
마치 정해진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처럼 폭죽을 퐁 하고 터뜨렸다.
공중에 종이쪼가리가 잠시 나부낀다.
초라하고 어색하다.
세상 가장 안 놀라운 서프라이즈 생일파티가 시작되어 버리고 말았다.
* * *
우리가 기획한 생일파티는 이딴 게 전혀 아니었다.
어제 새벽 도승이 형 작업실에 가서 다 같이 연훈이 형 생일파티 계획을 세웠다.
맘 같아선 근사하게 해주고 싶었으나 예산이 부족했다.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챙겨줄 생각이었다.
우선은 케이크.
이건 분명하게 사야 할 케이크가 있었다.
먹는 거에 늘 진심인 연훈이 형은 언제나 맛집이나 좋아하는 음식 등을 핸드폰에 저장해 둔다.
그중 오랫동안 연훈이 형 갤러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생크림 케이크가 있었다.
홍대 쪽에 있는 유명한 맛집 베이커리에서 낸 케이크라는데 가격도 생각보다는 양심적이라 그걸로 사가면 될 것 같았다.
그다음 선물이 문제인데 이게 가장 애매했다.
연훈이 형이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고 뭘 갖고 싶다는 말 자체를 잘 하지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연훈이 형은 편지 같은 거에 깊게 감동하는 타입이었다.
해서 롤링페이퍼와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는 걸로 마쳤다.
이 간단한 선물은 각자 준비해서 따로 건네주는 걸로 했고,
해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부터 줄을 서서 베이커리 맛집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사 왔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형에게 건네줄 롤링페이퍼도 작성했다.
폭죽도 준비했고 간단한 소품으로 생일 축하 분위기도 냈다.
한데 한 가지 변수가 있었으니,
“지금 연훈이 형 깬 거 같은데요?”
“뭐?”
“진짜?”
“아니, 10시까지는 잔다며!”
연훈이 형이 생각보다 일찍 깬 거였다.
아침에 일부러 안 깨웠으니 최소 10시까진, 어쩌면 12시까지도 잘 줄 알았다.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니 말이다.
한데 요즘 일찍 일어났다고 바이오리듬이 바뀐 걸까.
예상보다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지금 나가? 나갈까? 나가 말아?”
도승이 형이 우왕좌왕 대며 속삭이듯 물었다.
“아아아아! 이거 어쩌지.”
운이 형도 패닉에 빠진 건지 결정을 못 내린다.
“그냥 나가죠.”
난 형들을 진정시키며 그냥 지금 나가려고 했다.
차라리 이때 먼저 선수를 쳐서 나갔으면 성공적인 서프라이즈가 될 수 있었을 거다.
한데,
끼익.
문이 열리고,
“아.”
“하아.”
“망할.”
“그러게 내가 빨리 좀 하라고……!”
우린 모자에 잠옷을 입은 연훈이 형과 대치하고 말았다.
“서, 서프라이즈!”
퐁!
자그마한 생일 폭죽이 퐁 하고 터지며 종이 꽃가루가 떨어진다.
옷장에서 맞이한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라니.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다 싶었다.
잘 챙겨주고 싶었는데.
괜히 속상하다.
이 어색한 대치가 언제쯤 끝나려나 싶었는데,
“아, 아아, 우으으으…….”
“……?”
“……형?”
예상 밖의 전개가 이어졌다.
분명 엉망인 생일파티였다.
이거보다는 조금 더 정돈된 서프라이즈여야 했는데.
이 엉망인 생일파티를 보고도 연훈이 형은 울먹거리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에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서 떨어질락 말락 하고 있었다.
이내,
“후으으음…….”
앞쪽에 있는 아무에게나 가서 안겼다.
그 아무, 가 내가 되어버린 게 문제였지만.
“이런 거 언제 준비한 거야…….”
목소리가 먹먹하다.
“이 케이크도 내가 먹고 싶어 했던 거잖아…….”
그새 베이커리 마크를 봤나 보다.
“롤링페이퍼 같은 거 써본 적도 없을 것 같이 생긴 애들이…….”
갑자기 뼈를 때리니 아프다.
사실 우리 중 롤링페이퍼를 써 본 사람이 없다.
해서 다들 굉장히 어색하게 롤페를 작성했다.
혹여나 상대방이 내가 써둔 글귀를 볼까 노심초사하며 눈치싸움을 벌였으니까.
“……고마워.”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내 품에 얼굴을 마구 비볐다.
“얼른 가서 케이크 먹자. 다들 아침 안 먹어서 배고프겠다.”
형은 울 만큼 운 후 내 품에서 떨어지더니 방 밖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접이식 테이블을 펼친 후 케이크를 위에 깔았다.
확실히 맛집답게 맛은 분명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사 온 게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맛있어……!”
연훈이 형은 그중에서도 특히나 감동한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이후 간단한 선물 증정 시간이 이어졌다.
다들 포장을 알뜰하게 해온 덕에 뭘 준비해 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 짧은 새벽 시간에 용케도 선물들을 사 온 모양이었다.
“이거 받아요, 형.”
난 준비한 선물을 연훈이 형에게 건넸다.
내가 준비한 건 텀블러였다.
겨울이라 목이 건조해질 일이 많은데 따뜻한 거 담아서 마셨으면 싶어서 샀다.
그동안 스케줄 다니면서 변변찮은 텀블러 하나가 없어서 일회용 카페 컵 사용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맘 같아선 정말 근사한 거 사주고 싶은데 당장은 내가 돈이 없다.
나중에 돈 벌면 그때 정말 멋진 걸 사줄 예정이다.
형은 우리가 건넨 선물들을 받고는 또 한 번 울먹였다.
“고마워, 진짜 다 잘 쓸게.”
형이 이리 말하자.
“안에 뭐가 있는 줄 알고 그래요~”
동준이 형이 장난치듯 말했다.
“뭐가 있든 꼭꼭 쓸 거야. 너무 고마워.”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곤 눈물을 억지로 밀어냈다.
이 상황에서까지 울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케이크로 아침을 대신한 후 우린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습하러 갈까 얘들아?”
“네.”
“가죠.”
이제 연습하러 갈 시간이다.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던 중
“근데 내 생일 29일인데 왜 오늘 챙긴 거야? 올해는 29일 없긴 하지만 그래도 28일 날 챙기는 게 보통이잖아.”
연훈이 형이 이제야 기억났단 듯 물었다.
“아, 그게 지금 아니면 마땅히 시간이 안 날 거 같아서요.”
그 물음에 도승이 형은 이리 답했다.
“응? 시간이 왜 안 나?”
연훈이 형이 무슨 말이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어제 형 자고 있을 때 생일파티 기획만 한 게 아니라 다음 경연곡 아이디어 스케치도 같이했거든요.”
“응? 나 빼고?”
연훈이 형은 자기를 뺀 게 속상한 모양이었다.
“오늘 형한테 말하고 형 의견까지 취합해서 픽스할 생각이었어요.”
그러자 운이 형이 연훈이 형에게 이리 말했다.
“아아, 그래? 근데 왜 내 생일파티 할 시간이 안 난단 건데?”
연훈이 형이 재차 묻자,
“앞으로 2주간 죽어라 연습만 해야 할 거 같거든요.”
“……응?”
“어제 태윤이가 낸 아이디어들 구현하려면 2주도 짧을지 몰라요.”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의 엄살에 연훈이 형 표정이 하얗게 질린다.
“그, 뭐 뭔데……?”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묻는 질문에,
“SF에 신화를 섞었어요.”
난 짧게 말했다.
“스페이스 오페라 느낌의 장르로 가려고요.”
“응? 스페이스 오페라?”
연훈이 형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스타워스랑 둔 같은 거요.”
상상력의 총체라 할 법한 장르였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자본의 CG가 더해진.
다만 우린 더할 자본이 없으니 연습량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고도로 발달한 코레오는 CG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