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39화
대화를 하며 걸으니 연습실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걸어오는 내내 연훈이 형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운이 형이 어제 우리가 이야기 나눴던 컨셉과 레퍼런스들을 몇 개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말 그거 할 거지 얘들아? 아니, 애초에 그 영상들을 코레오로 봐도 되는 걸까? 그냥 진기명기 아니야?”
아무래도 힘든 고난도 안무를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우리가 고른 게 온리원이잖아요. 그 이상을 보여주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팬덤 차이가 크니까 이 정도 실력 차라도 안 보여주면 어필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이번엔 회사에 말해서 댄서분들도 무조건 써야 할 거 같아요.”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번갈아 말하며 연훈이 형을 설득했다.
연훈이 형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치……. 나도 무대 잘하면 멋있을 거 같긴 해……. 근데 걱정이 되는 거지 그냥.”
형이 연습실 바닥을 바라보며 자신 없단 듯 말하자,
“저희가 옆에서 잘 서포트할게요 형.”
운이 형이 연훈이 형을 둥가둥가 해주며 말한다.
“형 춤 잘 추잖아요. 몸도 가볍고 춤선도 예쁘고. 동작들 잘 살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도승이 형도 가세해 연훈이 형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좋은 말을 해준다.
“아이, 뭘 또 그렇게까지 띄워줘.”
연훈이 형은 저 뻔한 사탕발림이 듣기 좋은지 그새 또 얼굴이 펴진다.
난 연훈이 형이 칭찬에 구워삶아지는 걸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동준이 형은 구석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나도 동준이 형 옆에 가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태윤쓰~ 몸 풀게?”
“풀어야죠.”
난 동준이 형과 함께 몸을 풀며 오늘 일정들을 정리해 봤다.
“오늘 연습 빡셀 거 같지?”
“안 빡세면 안 되죠. 그 동작들 다 수행하려면.”
“그치. 간만에 밤 좀 새우겠네.”
동준이 형은 진절머리 난단 듯 몸을 떨었지만 표정을 보니 묘한 기대감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 중에 누구보다 아이돌에 진심인 사람이니까 뭐.
어쩌면 고난도 안무, 어려운 보컬, 위험한 세팅 같은 거에 더 승부욕을 느끼는 타입일지도 모르겠다.
난 햄스트링 쪽을 쭉쭉 늘려주며 일정을 정리해 봤다.
일단 최대한 이번 주 안에 연습을 끝내둬야 한다.
해서 어젯밤에 형들에게 우리 연습에 공백을 최대한 없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해두기도 했다.
준비한 무대가 고난도라 그런 거냐 묻는다면 그건 절반만 맞는 대답이었다.
사실 형들에게 말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아마 오늘 중으로 연락 올 거 같은데.’
2차 경연 앞두고 중요한 이벤트 하나가 터지기 때문이었다.
“나 진짜 춤 잘 춰? 진짜?”
“네! 진짜 잘 춰요!”
“형 춤선 좋죠.”
난 뒤에서 칭찬봇을 하고 있는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저렇게 웃으면서 대화 나눌 시간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제작진들이 정신이 있는 인간들이라면 적어도 오전에는 연락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이잉.
“응? 잠깐만, 나 전화 왔다.”
연훈이 형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동준이 형과 나는 스트레칭을 멈추고 연훈이 형을 바라봤다.
“현아 씨한테 전화 왔는데?”
“응? 왜죠?”
“오늘 뭐 스케줄 있나?”
연훈이 형은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언제나와 같은 하이텐션이었지만,
“네?”
그 텐션은 얼마 못 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 추가 촬영이요?”
추가 촬영 소리에 다들 표정이 심각해진다.
운이 형은 이게 무슨 소리냔 듯 연훈이 형을 바라본다.
연훈이 형은 잠시 후에 알려주겠단 듯 손짓을 한 뒤 마저 통화를 하러 이동했다.
그렇게 불편하고 어색한 5분여가 지난 후.
연훈이 형이 다시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이에요?”
“추가 촬영?”
“뭔 소리지?”
나를 제외한 형들 모두가 연훈이 형에게 달려들었다.
연훈이 형은 어색하게 웃고는 입을 뗐다.
“아, 막 큰일은 아니고, 다음 주에 스튜디오에 모여서 잠깐 예능식 게임 같은 거 하는 촬영을 한대. 경품 같은 것도 걸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그런 거 많이 하잖아.”
“아.”
“뭔지 알겠네요.”
다른 형들은 생각 외의 큰일은 아니란 것에 안심한 눈치였다.
다만 한 사람.
운이 형은 다소 걱정스러운 눈을 한 채 추가 질문을 했다.
“근데 형, 그 촬영 시간은 어떻게 된대요? 한 시간? 아니면 두세 시간?”
운이 형은 제발 하루가 통으로 사라지진 않길 바라는 눈치였다.
다만,
“그, 어,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필요 시 연장될 수 있대.”
“아.”
“하루 종일요?”
“거기서 더 연장될 수도 있다고요?”
방송국 놈들이 출연진들 배려하는 꼴을 난 본 적이 없다.
특히나 그 대상이 망돌일 경우엔 더더욱.
저런 자잘한 촬영쯤 컴팩트하게 찍은 후 알아서 잘 쓰면 될 것이지.
추가 컷 촬영이니, 인서트 촬영이니, 이런저런 컷들 촬영 다 갖다 붙이며 촬영 시간 늘리고.
분량 안 나올까 걱정하며 재밌는 포인트 나올 때까지 코너를 끝내질 않는다.
“그, 촬영 주제가 <열심히 일한 그대! 놀아라!>래.”
“하아.”
“후우우.”
“참나.”
어처구니없는 주제에 형들의 한숨을 더 깊어졌다.
열심히 일한 그대, 놀라니.
놀 시간 없는 사람들 붙잡아 놓고 억지로 놀고 가란 거다.
그러면서도 업무는 완벽하게 마무리하란 거고.
지금 연습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잠자는 시간 쪼개가며 연습해도 기한 내에 완성 못 할 수도 있을 만큼 촉박한데,
방송국 놈들은 얼토당토않은 미션 줘놓고 연습할 시간까지 빼앗아 간다.
“그냥 오늘부터 잠은 포기하죠.”
“하루에 3시간만 자도 죽진 않더라고요.”
“하아아. 해보죠.”
형들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파이팅을 다졌다.
아마 며칠간은 카페인 음료 캔 따위가 연습실 바닥에 무한증식할 예정이다.
* * *
WD엔터의 윤승연과 이현아는 새벽 기상을 한 뒤 회사 차량을 끌고 나왔다.
“끄아아~”
“피곤해.”
윤태형 팀장은 이제 아예 세이렌 관련 업무를 그녀들에게 전부 이관한 상태였다.
빵꾸 안 내고 처리하는 걸 보니 그냥 맡겨도 되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완전 이관이라니.
정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프로의식이 없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게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윤승연과 이현아는 서로를 다독였다.
자기네들이 결정권을 갖고 휘두르니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예산도 쓸 수 있게 되는 등의 좋은 일도 많았으니 말이다.
다만,
“이게 진짜 옳게 된 일인 건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요.”
과연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이게 과연 진짜 좋은 일이었을까 싶긴 했다.
한탄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세이렌을 서포트해야 한다.
그녀들도 본인들 케어가 미숙한 건 알지만 그래도 지금 세이렌을 담당할 수 있는 건 그녀들밖에 없단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좋든 싫든 이 악물고 해야 한다.
그녀들이 바라는 건 제발 세이렌이 더쇼케 우승해서 합작회사로 계약 이관되는 것.
해서 제대로 된 케어받으며 애들이 쑥쑥 성장하는 것.
그거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서로 사직서 내고 맘 편히 다른 곳으로 이직하자고 말도 맞춘 상태였다.
“애들 아직 자고 있겠죠?”
“가서 얼른 깨우고 밥 먹이죠. 제가 김밥 근처에서 사 갈게요.”
윤승연과 이현아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세이렌 숙소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다만 숙소 근처에 도착하기 전.
연습실이 있는 사거리 횡단보도에 멈춰 섰을 때.
“응?”
“왜요?”
“얘들 연습실 불이 켜져 있는데요?”
세이렌의 연습실 창문에서 희끄무레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지하인지라 위쪽에 창문이 자그마하게 나 있는 게 전부긴 하지만, 아무리 작은 창이라 해도 이 야심한 시각에 홀로 빛나고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니겠죠?”
“그, 일단 차 세워볼까요?”
윤승연과 이현아는 차를 연습실 옆에 세워두곤 반지하로 내려갔다.
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은 없었다.
다만,
‘음악 소리?’
자그마하게 음악 소리가 계속 들린다.
쾅쾅!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려보니,
-어?
-누구 왔나 보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끊기고 말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이라 주변이 고요하다 보니 이런 작은 말소리까지 들리는 모양이었다.
연습실 방음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도 있었고.
-누구지?
-귀신 아닐까요?
-아아아아! 하지 마 동준아!
-귀이이시이이인.
-아아아아!
-제가 나가 볼게요.
마치 촌극 같은 상황이 지난 후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 봉태윤이 멀뚱멀뚱 서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승연과 이현아는 멍한 얼굴로 연습실 내부를 훑었다.
방금 전까지 연습을 한 건지 내부에 열기가 후끈하다.
그때 봉태윤이 묻는다.
“그, 왜 오셨어요?”
왜 왔냐니.
분명 오늘 촬영이라고 말을 했을 텐데.
“오늘 더쇼케 추가 촬영 있는 날이라고 전달해 주지 않았어요?”
“오늘 새벽 5시에 픽업하러 오겠다고 했는데…….”
“아.”
늘 무표정하던 봉태윤의 얼굴 위로 균열이 일어난다.
그 뒤에 나온 말은 윤승연과 이현아를 놀래키기 충분한 말이었다.
“벌써 내일이 된 거예요?”
벌써 내일이 된 거냐는 말.
그 뜻은,
“죄송해요. 오늘이 며칠인지 깜빡했어요.”
얘네 시간 감각을 상실할 정도로 연습만 했다는 말이었다.
“세상에…….”
“어머.”
윤승연과 이현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 *
윤승연과 이현아를 보고 나자 그제야 시간 감각이 돌아왔다.
하여튼 이 망할 반지하 연습실은 시간 감각도 잊게 한다.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게 되니 말이다.
난 뒤를 돌아 형들에게 말했다.
“저희 이제 촬영가야 한대요.”
그러자 바닥에 퍼져 있던 형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다들 눈동자가 퀭하고 얼굴 살이 쭉 빠진 상태들이었다.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지난 일주일간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한데 한창 운동을 할 때보다도 살이 더 빨리 빠지는 중이었다.
운동과 식이는 3 대 7이니 식단 없는 다이어트는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우린 그게 틀린 말임을 이번에 알 수 있었다.
운동과 식이가 3 대 7이긴 하나 그 3을 300으로 만들어버리면 고작 7 따위 식이로는 운동량을 이겨낼 수 없다.
해서 우린 먹을 거 다 먹으면서도 살이 빠지는 기적을 체험했다.
“저희 숙소 가서 샤워만 금방 하고 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으아아~ 얼른 씻자! 찝찝해!”
“이게 얼마 만에 밖으로 나가보는 건가 싶네요.”
“새벽 공기 좋네.”
우리 다 같이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현아 씨와 승연 씨는 다소 황망한 표정으로 우릴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형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확실히 새벽 공기가 피부에 닿으니 피로가 일정 부분 날아가긴 했다.
“오늘 촬영 빨리 끝내고 와서 다시 연습하자.”
“아까 그 동작 이제 좀 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흐름 끊겨서 아쉽네요.”
“진짜 조금만 더 하면 동작들 다 완성할 거 같은데. 하아.”
형들은 씻으러 가면서도 연신 무대 얘기만 나눴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난 그런 형들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오늘을 위해 지난 일주일간 잠도 안 자고 연습에만 매진했다.
남들은 아마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 촬영을 하러 가야 해서 조금 빡세게 연습을 한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오늘 촬영이 연습 시간 뺏는 배려 없는 촬영인 것은 맞긴 하다만, 그렇다고 필요 없는 촬영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서 잘 할 수 있으려나.’
오늘 촬영에 걸려 있다던 경품.
그 경품이 생각 외로 더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전생과 완전히 똑같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떠올려 보자면,
‘광고 촬영권이었을 텐데.’
이번 촬영 1등 경품은 티비 광고 촬영권이었다.
한 달짜리 단발성 단기 계약으로.
업계 평균 조건을 떠올려 보면 아쉬운 조건이긴 하나,
‘인지도 떡상의 기회야. 잡아야 해.’
이거 하나로 방송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무조건 잡아야 했다.
해서 오늘 하루를 위해 지난 일주일을 불태운 거였다.
이 하루만큼은 연습에 대한 걱정은 잊고 온전히 촬영에만 몰두해야 했으니 말이다.
나 혼자 파이팅을 다지며 오늘 계획을 정리하고 있는 그때.
한동안 잠잠하던 현상이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
그건 바로,
[돌발 미션 발발]
날 이 시간선으로 회귀시켰던 바로 그 중성적인 기계음이 다시 들려온 거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그 내용이었는데,
[온리원 박영호의 하차를 막으시오.]
[성공 시, ‘통찰’의 통제권 일부 획득.]
[실패 시, <더 쇼케이스2 - 퍼스트 찬스>의 보이콧.]
갑자기 나더러 온리원 막내의 하차를 막으란다.
프로그램 망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