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41화
경기도에 있는 더쇼케2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을 했다.
대면식 때와 1차 경연 때에 이어 세 번째 스튜디오 방문이었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걸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린 차량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메라 감독님들에게 능숙하게 인사하며 밖으로 나왔다.
처음엔 카메라가 있다는 것에 신나서 막 오버액션 했던 것 같은데.
형들은 빠르게 아이돌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오늘 촬영에서 어떤 게임 할 거 같아요?”
그때 카메라 감독님이 연훈이 형에게 물었다.
연훈이 형은 카메라와 아이컨택을 하곤 생각에 잠겼다.
“레몬 먹기?”
형이 정말 아무 맥락 없는 게임을 던지듯 내뱉자,
“하하하!”
앞서 걷던 동준이 형이 빵 터졌다.
“뭐야! 왜 웃어!”
연훈이 형이 괜한 부끄럼에 화내듯 동준이 형에게 소리를 치자,
“형! 레몬 먹기는 너무 맥락이 없잖아요~”
동준이 형이 빵 터진 이유를 설명해 준다.
“매, 맥락이 왜 없어! 먹을 수도 있잖아!”
연훈이 형은 동준이 형의 반응에 소심하게 반항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망했다.’
레몬 먹기라니.
형들에게 깜빡하고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이날 게임이 정해지는 방식이었다.
‘첫 질문 그대로 게임 정해지는 걸 텐데.’
내가 박영호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걸 형들에게 말을 못 해줬다.
물론 이걸 말해주는 것도 웃기긴 하다.
가서 카메라 감독님이 하는 질문에 함부로 답하지 말고 고심한 후 대답하세요, 라고 말할 순 없는 거니까.
그러면 왜 그래야 하냐라는 질문에서부터 이것저것 말이 길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 우회해서 말을 한다던가.
아니면 먼저 내려서 질문을 인터셉트 했을 수도 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아침밥 못 먹었는데. 망했네.’
오늘 첫 끼를 레몬으로 하게 될 거 같아 두렵다.
제발 다른 팀이 푸드 파이트 같은 게임을 말했기를 빌어본다.
공복에 레몬은 진짜 아닌 거 같으니까.
그때,
“어?”
스튜디오 복도 끝에 익숙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팀 사람들이었는데,
“블레슈분들 아니야?”
“맞아요!”
“오!”
블레슈분들이 맞은편에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오!”
“헉! 안녕하세요~”
우린 블레슈 멤버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 촬영장에서 드물게 우리에게 호의적인 팀이 블레슈다.
나도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나와 눈이 마주친 블레슈 멤버 한 명이 슬쩍 시선을 돌려 버렸다.
뭐 암튼 반가운 건 반가운 거다.
무엇보다 블레슈 리더의 반응이 하이라이트였는데,
“단체로, 금식이라도 하셨어요……?”
우리 외모를 보고 진심으로 놀란 얼굴을 하는 거였다.
블레슈 리더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입을 모아 한마디씩을 했다.
“다들 인상이 엄청 또렷해지셨어요.”
“메이크업이 달라진 건가.”
“갑자기 너무 연예인이 되셨는데요. 하하.”
형들은 오늘 들은 두 번째 외모 칭찬에 다들 입꼬리가 씰룩댔다.
누가 뭐 옆구리 한번 찌르기만 하면 파안대소할 게 분명한 얼굴들이다.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겸손 떠는 표정을 하고는 있지만 속으로 아주 기분 좋아서 깔깔거리고 있을 게 눈에 선하다.
“블레슈분들도 오늘 엄청, 엄청 잘생기셨어요!”
연훈이 형은 받은 칭찬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리 답했지만,
“하하, 감사해요.”
찐텐으로 나오는 칭찬과 보답용 칭찬 간에는 언어의 밀도가 다른 법이다.
“그럼 잠시 후에 스튜디오에서 봬요!”
“네! 잠시 후에 봬요~”
우린 블레슈 인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다시 복도를 걸었다.
아침부터 외모 칭찬을 계속 받으니 형들은 피로도 잊고 기분이 좋아진 거 같다.
팀 텐션이 올라간단 건 좋은 거다.
특히 오늘처럼 예능식 스튜디오 촬영일 경우엔 더더욱.
텐션 좋은 팀이 리액션도 잘하고 카메라에도 한 번 더 잡히니까.
‘어쩌면 오늘 촬영본 방송 나가면 팬들 꽤 모일 수도 있겠네.’
빨리 유입이 늘어서 팬덤이 형성되길 바라는 중인데 어찌 보면 오늘이 중요한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기실이다아~”
연훈이 형은 콧노래를 부르며 대기실 문을 열려고 했는데,
“응?”
“어?”
“잠시만요.”
문을 열려다 말고 우뚝 멈췄다.
이유론,
-온리원/세이렌 대기실
우리 이름 앞에 붙으면 안 될 이름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 대기실이야?”
형들이 단체로 굳는다.
온리원분들과 안 친할뿐더러 묘하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조졌네.’
맘 같아선 저번 주의 나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강현성 도발 안 했지.
지독하게 불편한 대기시간이 될 거 같았다.
뭐 파티션 같은 거라도 달아뒀기를 바라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지금 분위기 보니 이거 일부러 우리를 한 방에 가둔 거다.
이 스튜디오에 대기실이 부족할 리가 없다.
매번 팀당 대기실 하나씩 줬는데 이제 와서 부족하단 건 말이 안 되니까.
그간 대기실 하나씩 준 건 무대 스포일러 방지와 팀 간 견제를 위해 그런 거였다면,
‘오늘은 스포일러 할 게 없으니 이렇게 한 건가?’
오늘 같은 경우엔 같은 대기실을 쓰게 하는 게 경쟁심 유발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모양이다.
“으아아아! 어쩌지.”
연훈이 형이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때,
끼익.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헉!”
“깜짝이야!”
온리원의 멤버, 김시운이 튀어나왔다.
김시운은 대기실 앞에 서 있던 우리를 보고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하긴 나 같아도 문 열었는데 남정네 다섯이 우뚝 서 있으면 놀라 자빠질 거 같긴 하다.
김시운은 자빠지는 것까진 아니고 조금 놀란 채 뒷걸음질만 몇 번 쳤을 뿐이다.
그러곤 금세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곤,
“오셨어요? 오늘 저희 같은 대기실이더라고요.”
눈웃음을 치며 이리 말한다.
“아, 하하! 네!”
“그러게요!”
“와아!”
형들은 억지로 텐션을 올리며 답했다.
다만 아까와 달리 표정에서 즐거움이 한 꺼풀 날라갔다.
“들어오세요! 밖에서 그러시지 마시고.”
김시운은 슬쩍 옆으로 비켜주며 우리보고 안으로 들어오란 듯 손짓을 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형들은 천천히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모양새가 우리 대기실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의 대기실에 신세 지는 느낌이다.
이거 뭐 가서 온리원 애들 앞에 앉혀두고 ‘세이 예스! 안녕하세요, 세이렌입니다!’라고 인사라도 해야 할 분위기다.
안에 들어가니 역시나 파티션 따위 없었다.
마주 보는 형태로 소파 두 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하필 또 소파가 마주 보는 거라니.
견제 구도 잡으려고 제작진들이 지독하리만치 애쓰는 거 같다.
우린 한쪽 소파에 짐을 풀며 앉았다.
소파 위쪽에 처음 보는 의상 다섯 개가 있었다.
아이돌들끼리 체육대회 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 쨍한 색감의 트레이닝복이었다.
사이즈도 M부터 XL까지 다양했다.
온리원 멤버들은 이미 그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걸로 환복하고 대기하시면 된대요.”
온리원의 멤버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줬고,
“아, 감사합니다!”
“호오.”
우린 옷을 챙긴 뒤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옷을 갈아입을 만한 곳은 화장실뿐이었다.
우린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사이즈를 확인해 보니 M이 두 개, L이 하나, XL이 두 개다.
이건 누가 봐도 연훈이 형, 동준이 형이 M.
운이 형이 L.
나랑 도승이 형이 XL이다.
다만,
“왜, 왜 나랑 동준이만 M이야…….”
연훈이 형은 섭섭한가 보다.
동준이 형은 별생각 없이 M사이즈를 받아들인 것 같으나 연훈이 형은 큰 게 부러운가 보다.
난 내 옷을 대충 꿰어 입은 뒤 연훈이 형 옆에 다가갔다.
그러곤 연훈이 형이 들고 있던 트레이닝복 중 상의를 뺏어 들었다.
“응? 뭐야?”
연훈이 형은 내가 갑자기 자기 트레이닝복을 뺏어가자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형의 상의를 만지작거렸다.
두툼한 맨투맨 재질의 트레이닝복이다.
정사이즈보다 살짝 루즈핏으로 나온 것 같다.
난 옷의 입구를 잘 벌린 후,
“잠시만요.”
수욱.
“헉!”
그대로 연훈이 형 상체에 입혀 버렸다.
한 번의 걸림도 없이 정말 부드럽게 수욱 들어갔다.
“딱 맞네요.”
“날 두 번 죽여?”
“사이즈 맞게 준거면 좋은 거죠.”
“나, 나도 작은 편은 아니야!”
“작다고 한 적 없는데.”
M이면 정사이즈지.
174㎝면 대한민국 평균 신장이다.
“굴욕적이야……. 분명 처음 만났을 땐 나랑 키 비슷했는데…….”
연훈이 형이 부들부들댔지만,
“전 한창 크는 중이었고 형은 그때 이미 다 큰 상태였잖아요.”
“구, 군대 가서도 큰다잖아.”
“형 나이면 이미 군대 간 나이 아니에요?”
“…….”
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대미지가 쌓이는 건 연훈이 형일 거다.
결국 연훈이 형은 입을 꾹 닫는 선택을 했다.
최근 한 선택 중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그러곤 꾸물꾸물거리며 맨투맨 팔 쪽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난 형이 M사이즈를 잘 받아들이는 걸 보곤 속으로 웃었다.
“우리가 이 체육복을 다 입어보네.”
“그러니까요.”
“매번 티비에서나 보던 건데.”
형들은 환복을 마친 후 거울 앞에 서서 그리 말했다.
아이돌들이라면 한 번쯤은 입어보는 옷이니까.
우리도 저걸 입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입게 되니 다들 기분이 묘한가 보다.
“오늘 촬영 잘하고 오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세이렌!”
형들은 서로 구호를 외치며 파이팅을 다졌다.
이후 다시 대기실에 돌아가자 온리원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다.
이걸 기다렸다고 해야 하나.
그냥 우리가 들어오자 슬쩍 시선을 한 번 줬을 뿐이다.
우린 온리원을 보며 살짝 눈웃음 지은 뒤 소파로 가서 각자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인터넷에서 더쇼케 예고 반응 모니터링도 하고.
각자 보고 싶은 인터넷 게시글들도 보며 시간을 가졌다.
온리원만 없다면야 수다도 떨고 좀 더 시끌벅적하게 보낼 텐데 온리원이 있다 보니 우리도 조금 조용해지는 거 같다.
난 핸드폰을 하는 척하며 온리원의 박영호를 바라봤다.
박영호는 아직까진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사람이 좀 맹한 구석이 있나.
맹하게 생긴 건 아닌데 저 표정이 상당히 맹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깁스를 안 했네?’
분명 저번 주 부상을 보면 깁스를 해야 할 거 같은 수준이었는데 지금의 박영호는 아무런 장치를 하고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얕은 부상이었던 건가.’
내 생각보다 몸 상태가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대체 어느 구석에서 박영호가 하차를 하는 거지.
머리가 복잡해지려는데,
똑똑.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리더니,
“촬영 시작합니다~ 스탠바이해 주세요~”
우리보고 스튜디오로 올라오라는 사인을 준다.
“으아아~”
“가자아!”
우린 소파에서 일어나며 쭈욱 기지개를 켰다.
온리원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듯 기지개를 켰고.
우린 다 같이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함께 이동하는 동안.
난 박영호의 다리를 바라봤다.
‘걷는 모습에도 크게 문제는 없는데?’
다쳤던 사람이라기엔 정상적인 걸음걸이다.
정말 다 나은 건가 생각이 들려던 그때.
스튜디오로 올라가기 전, 야트막한 계단이 하나 있었는데,
‘뭐지?’
계단을 오르려고 발을 들어 올리던 박영호가 그대로 휘청였다.
그러곤 눈에 띄게 표정이 구겨진다.
그는 옆에 있던 구조물을 잡고는 중심을 찾긴 했다만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제야 좀 더 박영호의 상태가 정확하게 보였다.
이 추운 날씨에 목뒤에 식은땀이 난 것 하며.
묘하게 각이 잡혀 있던 걸음걸이까지.
‘참고 있는 거야?’
지금 저 자식 통증을 억지로 참는 거다.
‘뭐 저런 무식한 짓을 해?’
저번 주에 다친 거 뻔히 아는데 왜 아픈 티를 안 내는지 모르겠다.
팀에 누가 될까 봐 그러는 건가.
그건 너무 쓸데없는 짓인데.
웬만하면 알아서 잘하겠지, 라며 넘기겠으나,
‘하아. 미치겠네.’
박영호가 오늘 다치면 프로그램 보이콧이 일어난다.
이건 살짝 어그로를 끌어야겠다.
스튜디오 무대로 올라가기 전.
탁.
난 박영호의 어깨를 잡았다.
“예?”
온리원과 우리 사이 불문율처럼 자리하고 있던 그 침묵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뭐야?”
“응?”
온리원 멤버들의 시선과 우리 팀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와 박영호에게로 향한다.
그런 시선 따위 아랑곳 않고.
난 아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영호 씨, 지금 발목 통증 심한 거 같은데 촬영 가능하시겠어요?”
지금 이 자식 발목 아픈 거 숨기는 중이라고.
주변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