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42화
난 발목 통증이란 단어에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또렷하게 들린 단어에 주변의 모두가 나와 박영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영호는 얼굴을 왈칵 구기더니 끝내 아랫입술을 씹으며 날 쳐다봤다.
저건 낭패를 봤다, 라는 표정이었다.
사람 심리가 이렇게 표정으로 투명하게 보일 수도 있군.
대충 이런 생각을 했다.
형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연훈이 형이 묻는다.
“보니까 영호 씨 발목이 휘청휘청거리더라고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심한지 목뒤에 식은땀도 꽤 나신 거 같고요.”
난 내가 봤던 그 증상을 살짝만 과장하듯 말했다.
가만있을 박영호가 아니지.
바로 반격을 한다.
“통증 없어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살짝 적대적인 말투다.
하긴 박영호 입장에선 내가 갑자기 시비 건 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
내가 그에 대한 답을 하기도 전에,
“영호 씨, 근데 정말 괜찮으세요?”
연훈이 형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며 묻는다.
“태윤이 말 듣고 보니까 아까 영호 씨 계단에서 휘청이시던 게 통증 때문인 거 같은데.”
“촬영 괜찮으시겠어요?”
뒤에서 도승이 형과 운이 형도 지원사격을 나온다.
“다치면 안 돼요~ 우리는 몸이 재산이잖아요~”
동준이 형까지 합세하니 박영호는 입을 다물었다.
난데없이 타 팀 멤버 다섯이 자기를 걱정해 주니 안 아프다며 시치미를 뚝 떼기가 본인도 애매하겠지.
이게 구도가 웃기게 잡혔다.
박영호를 걱정하는 세이렌 다섯과.
멍하니 구경만 하는 온리원이라니.
누가 보면 박영호가 우리 멤버인 줄 알겠다.
보통 타 팀이 이렇게 걱정하기 시작하면 자기네들 팀이 따로 말을 하지 않나.
온리원 멤버들 얼굴을 보니,
‘뭐야. 왜 이렇게 홍당무야.’
강현성을 제외한 멤버들의 얼굴이 붉어져서 터지려 한다.
이제 보니,
‘몰랐던 거네.’
저 자식들은 박영호가 아픈 걸 정말 몰랐나 보다.
얼마나 서로에게 관심이 없으면 애가 이렇게 아픈 걸 못 알아볼 수 있는 거지?
걷는 걸 조금만 관심 있게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자연스럽게 걷는 척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픈 사람의 보폭은 아프지 않은 사람의 보폭과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저 진짜 괜찮아요, 형들. 그냥 조금씩 통증이 남아 있는 정도지 촬영 못 할 그런 수준 정말 아니에요.”
박영호는 온리원 멤버들에게 갑자기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아프면 제발 쉬라고.
어처구니가 없어 영혼 없는 눈깔로 박영호를 쳐다봐 버렸다.
다만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곤 다시 박영호를 불렀다.
“영호 씨. 잠깐 발목 좀 만져봐도 괜찮아요?”
“네?”
“잠깐만, 실례할게요.”
난 박영호의 발목을 잡고 옆으로 돌려봤다.
발목에 문제없는 사람이라면 별 반응이 없을 거다.
하지만,
“흐읍!”
박영호는 중심을 잃고 휘청이더니 옆의 철골 구조물을 급하게 잡았다.
“증상이 심하신 거 같은데요?”
이쯤 되니 경이롭다.
대체 뭐가 박영호를 이토록 조급하게 만든 건가 싶다.
이렇게까지 아프면 하루 쉬어갈 법도 한데.
박영호는 아픈 걸 참아가면서까지 억지로 촬영에 나온 거다.
이 정도면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한 거다.
대충 팀 내 분위기가 예상 간다.
‘엄청 숨 막히는 분위기인가 보네.’
난 온리원을 빤히 바라봤다.
다들 입을 꾹 닫고 아무 말을 안 한다.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찰나,
“통증이 심해?”
강현성이 입을 뗐다.
“네?”
박영호는 강현성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단 듯 굴었다.
“왜 말 안 했어?”
강현성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표정은 온화한 듯하지만 묘하게 싸한 느낌이다.
온리원 멤버들이 단체로 굳는다.
이 자식들 팀 내 분위기가 엉망인 이유가 이렇게 밝혀진다.
‘강현성 눈치 보나 보네.’
원래 팀에 기 센 멤버 한 명 있어야 안무도 잘 맞고 활동기 동안 단합도 잘 되긴 한다.
다만 지금 얘네는 강현성이 너무 기가 세서 나머지가 죽은 모양이다.
기 센 캐릭터가 인기까지 압도적으로 많고 사실상 팀을 멱살 잡고 끌어가고 있으니 힘의 균형이 깨지는 거야 당연하다.
그럼에도,
‘애들 분위기 좀 풀어주지, 너무하네.’
힘의 균형이 깨져 있다 해도 자기가 나서서 분위기 좀 화기애애하게 풀고 가지.
이건 조금 심하다.
“왜 말 안 했냐니까?”
지금도 박영호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있을 정도다.
그냥 묻는 질문에도 저 정도로 애가 떠는데.
평소에 강현성이 팀 내에서 어떤 캐릭터인지 보이는 대목이었다.
“무리하게 해서 부상 덧나면 촬영에 지장 생겨. 알잖아.”
“아, 네. 근데,”
“근데?”
“그, 오늘은 무대 하는 게 아니고……. 게임이니까……. 팀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자꾸 늘어진다.
아마,
‘이거 화법 강현성이 싫어하지 않을까.’
강현성이 싫어할 화법이지 않나 싶다.
“제대로 말해.”
역시나.
강현성은 살짝 짜증 난 듯 말한다.
표정은 평소와 같지만 분위기가 분명히 다르다.
남의 팀 멤버가 본인 팀 멤버 아픈 걸 찾아냈으니 쪽팔릴 만도 하지.
한데 그게 지가 팀 분위기 곱창 내서 그렇게 된 건데 왜 막내한테 화풀이하는 건가 싶다.
그때,
“여기 무슨 문제 있어요? 왜 안 올라와요?”
제작진이 다가왔다.
스튜디오로 올라가지 않고 그 중간에 서서 한참을 실랑이 중이었으니 걸릴 만도 했다.
우리들 시선이 일제히 제작진에게로 간다.
지금이 기회다.
“지금 영호 씨가 발목 통증이 심하다 하셔서요. 촬영에 지장이 있을 거 같아서요.”
박영호를 오늘 촬영에서 빼야 한다.
“네. 우리 팀 막내가 발목 부상이 아직 다 안 나은 거 같습니다.”
강현성도 제작진에게 그리 말했다.
방금 전까진 나랑 기싸움하던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죽이 맞는다.
제작진은 놀란 눈을 하며 박영호를 바라봤다.
“아프면 말씀해 주시지, 왜……. 괜히 사고 날 수도 있으니까 오늘 촬영은 쉬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제작진도 박영호에게 오늘 촬영은 쉬라고 말한다.
하긴.
자기네들도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진 않겠지.
이대로 사건 종결이구나 싶었는데……
“저, 정말 괜찮습니다. 할 수 있어요!”
박영호는 촬영에 굳은 의지를 드러낸다.
‘망할.’
중간에 끼어들려고 했으나,
“그러면 통증 심해지시면 지체 없이 촬영장에서 나가는 겁니다. 아시겠죠?”
제작진은 보수적으로 조치를 취하곤 물러났다.
독단적으로 방송 출연진을 뒤로 뺄 순 없으니 아마 저 정도가 말단 스태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일 테다.
그러니 저 정도 반응이 이해는 가긴 한다만,
‘하아.’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강현성도 어처구니가 없는 건지 박영호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박영호는 강현성의 시선을 피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촬영에 임하려는 건지 공감이 안 된다.
지금 박영호는 상황 파악이 객관적으로 안 되나 보다.
자기가 촬영에 올라가는 게 무조건 이득이라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사람이란 게 정서적으로 구석에 몰리면 판단력을 잃기도 하는 법이다.
이성적으론 박영호의 저 똥고집을 이해하나 화딱지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맘 같아선 다시 제작진에게 달려가 박영호 촬영에서 빼야 한다고 말하고 싶으나,
‘그것도 너무 오지랖이야.’
이상하게 볼 게 분명하다.
내 팀이 아닌 남의 팀 일이니까.
그리고 나야 사고가 날 걸 아니 이리 과민 반응하는 거지.
남들이 보기엔 그냥 부상을 딛고 열심히 촬영하려는 애로만 보일 터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호 씨. 오늘 촬영 무조건 조심하세요.”
이리 말하는 게 최선이다.
“맞아요, 영호 씨 다치시면 안 돼요.”
연훈이 형이 내 말을 지원해 준다.
“몸이 재산입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우린 그리 말하며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어떻게든 박영호를 빼내고 싶었는데 1차 계획은 실패다.
그래도 소정의 수확은 있다.
‘부상으로 하차한다는 플래그는 세워졌네.’
여러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의 가능성으로 좁혀졌으니까.
오늘 촬영 중 박영호는 다친다.
그 확실한 미래를 알고 있으니 대비를 하면 된다.
“으으, 오늘 촬영 기대된다.”
“어떤 게임 할 거 같아요?”
“흐음. 고요 속의 외침 같은 거?”
“경품은 뭘려나.”
“강남 50평형대 아파트 같은 거 줬으면 좋겠다.”
“에이~ 뭐 그런 걸 바라요~”
형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촬영 전 긴장을 풀고 있었다.
난 대화에 끼진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오늘 스튜디오는 체육관 느낌으로 꾸며진 상태였다.
가운데에 기다란 테이블이 있고.
왼쪽에 블레슈와 루미닌과 원바이원.
그리고 오른쪽에 우리랑 온리원이 있다.
이게 아마 오프닝 세팅인 거 같다.
난 슬쩍 온리원 쪽으로 한 걸음만 전진했다.
박영호를 시야권 안에 두기 위해서였다.
그러곤 주변을 재빠르게 훑었다.
‘박영호가 부상당하는 건 확실한데, 그게 왜 보이콧까지 가는 걸까.’
신인지 시스템인지 하여튼 그 요상한 녀석이 던진 그림.
그 그림의 퍼즐을 맞출 단서 하나가 부족하다.
보이콧까지 가려면 박영호의 부상이 온전히 제작진의 탓이 되어 제작진이 갑질을 했다는 등으로 소문이 나야 할 거다.
뭐 아이돌 산업의 현실, 이딴 제목으로 기사 올라가며 말이다.
즉 이 현장에 소식을 왜곡해서 퍼다 나를 어그로꾼이 있단 거다.
다만,
‘갑질이라고 논란이 날 만큼 엉망인 현장은 아닌데……?’
물론 아주 쾌적하다고 말할 순 없으나 그건 일 못하는 사람들이 적당히 껴 있기 때문이지 갑질은 아니었다.
종합해 보자면 갑질에 대한 내부고발이라기보단 어그로성 글이었을 것이다. 다소 원한도 있는 것 같고.
그 뻘글 하나 탓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여기 모인 아이돌들의 땀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고.
일단 어그로꾼 후보에 피디나 작가진은 제외다.
커리어가 끝나는 사건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럴 리가 없다.
난 짬이 좀 차 있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그 밖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이 망하든 말든 상관없이 어그로성 뻘글을 올릴 만한 인물이라면 아마 정규직보다는 아르바이트생일 확률이 크니까.
그중,
‘뭐지 저 노랑머리 남자는?’
한 사람 눈에 걸리는 인물이 있었다.
샛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머리 색이 튀네.’
무엇보다,
‘뭘 저리 핸드폰을 만지작거려.’
저 남자 자꾸 핸드폰을 꺼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곤 무슨 철골 구조물이나 무대 아랫부분을 사진으로 찍어간다.
사진을 다 찍고 난 후엔 급하게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다.
마지막,
“경준 씨! 트라이포드 여기 좀 세우라고 몇 번 말해요!”
“아, 죄송합니다!”
저 남자, 이곳 정규직 직원이 아닌 듯했다.
맡은 업무를 보니 아르바이트 중인 것 같았다.
트라이포드나 그 밖의 장비들 옮기는 걸 보니 촬영 보조 아르바이트일 터였다.
증거가 이렇게까지 아귀가 맞으면 저 남자가 유력 용의자일 수밖에 없다.
‘저 인간이 뻘글 올릴 사람일 확률이 높네.’
일단 가정이긴 하지만 확률상 저 사람이 유력 용의자이긴 할 터였다.
난 저 남자도 오늘 주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발목 다친 박영호와 노란 머리 30대 남자.
시야권에 한 사람 두기도 빡센데 두 사람을 두려니 어질어질하다.
문제는,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촬영까지 한단 거다.
카메라에 불빛이 들어오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튜디오 뒤쪽에서 우리 방송의 진행자인 MC 김영진과 나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우린 MC들에게 90도로 꾸벅 인사하며 촬영에 들어갔다.
MC들은 카메라를 보며 텐션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오프닝 멘트를 시작했다.
“오늘 특별히 이 자리에 더쇼케2 출연진분들을 모신 이유는…….”
“열심히 일한 그대 놀아라! 라는 취지의…….”
“게임을 하며 단합을 다지는 등…….”
작가들이 썼을 게 뻔한 멘트들이 MC들 입에서 튀어나왔다.
난 그 말들에 적당히 호응하며 박수를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박영호와 노란 머리 남자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말이다.
“자! 오늘 게임들에서 종합 1등을 한 팀에게 돌아가는 경품은 무엇이냐! 아, 이거 엄청난 경품이라 다들 놀라실 거 같은데요!”
그때 MC 김영진이 평소보다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난 박영호와 노랑머리 남자를 주시하며 귀는 김영진에게로 돌렸다.
“무려 킹시콜라의 광고 출연권입니다!”
역시.
내가 생각한 그대로가 맞다.
반면.
“뭐?”
“광고?”
“진짜로?”
“이게 맞아? 와!”
“더쇼케 클라스 대박이다…….”
“역시 대기업…….”
스튜디오는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광고 촬영이란 스타들에게만 허락된 영역이자 인지도 상승의 기회이니 말이다.
실상은 한 달짜리 초단기 계약이고 인건비만 겨우 건질 정도의 페이겠지만 말이다.
난 적당히 놀란 척하며 반응해 줬다.
문제는 지금 이게 아니다.
저 엄청난 경품도 1등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거다.
어떤 게임인지가 더 중요하다.
일단 레몬 먹기는 확정이고.
다른 팀들이 어떤 게임을 말했을지.
그게 궁금해 죽겠는 와중,
“자 그러면 첫 번째 게임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준비됐나요?”
“네에에!”
MC 나현이 멘트를 치며 현장 텐션을 끌어올린다.
난 어서 게임이 밝혀지길 기다렸다.
뭐가 됐든 다 부셔주겠단 마음가짐으로 전투력을 끌어올리는데,
“첫 번째 게임은 바로! 레몬 빨리 먹기입니다!”
끌어올랐던 전투력이 그대로 위액이 되어 역류했다.
하필이면 첫 게임이 레몬이라니.
가급적 세 번째 정도에서 나오길 바랐는데.
속 쓰린 아침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